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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죽도(竹島) 정여립① 조선 최초의 양반사대부 출신 혁명가 (헤드라인뉴스 2014.10.14 08:06:58) 죽도(竹島) 정여립① 조선 최초의 양반사대부 출신 혁명가 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⑱ ▲ 정여립 [한정주=역사평론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조 체제의 전복을 꿈꾼 조선사 최초의 인물이 허균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허균이 죽음을 맞은 1618년 보다 30여 년이나 이른 1580년대에 이미 ‘천하(天下)는 공물(公物)이므로 따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왕정(王政)을 부정한 사람이 있었다. 원로 정치학자인 신복룡 교수는 그를 가리켜 ‘우리나라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했고, 재야 역사학자인 신정일씨는 “영국의 올리버 클롬웰보다 50년 앞선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까지 평가했다. 이 사람은 바로 죽도(竹島)라고 자호(自號)했던 정여립이다. 정여립은 1544년(중종 39년) 전라도 전주 남문 밖에서.. 더보기
[백가쟁명:강성현]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진회(秦檜) (중앙일보 2014.10.06 10:30) [백가쟁명:강성현]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진회(秦檜) 충신이든 간신이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간에, 뜬 구름 같은 세상에서 잠시 얼굴을 내밀다 사라진다. 중국 민초들은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 1103~1142)를 구국의 영웅으로 받든다.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충무공 이순신 못지않다. 반면에 그를 모살한 화친파의 영수, 진회(1090~1155)는 매국노(大漢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만고의 죄인으로 남아 있다. 서호(西湖) 가까이에 위치한 악비 묘 앞에 진회 부부가 상반신이 벌거벗겨진 모습으로, 두 손을 뒤로 포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저마다 침을 뱉어서,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람들은 ‘회(檜)’라는 글자를 꺼려, 이름을 지을 .. 더보기
미나리와 장다리 '인현왕후를 추억하며...' ( 마음의 가방 2009/08/30 21:02) 미나리와 장다리 '인현왕후를 추억하며...' 조선 19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는 우리 역사상 가장 어질고 겸손한 왕후였다. 그런데 위에 오른 지 6년이 되도록 왕자를 낳지 못해 충심으로 왕에게 장희빈을 천거하였으나, 오히려 왕의 총애를 입은 장희빈의 모함으로 쫓겨나 6년 동안 안국동 본가에서 칩거하였다. 거기서 그는 조금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폐위를 하늘의 뜻으로 받들어 근신하는 삶을 살았다. 장희빈은 포악하고 질투가 많은 못된 여자였는데, 왕자를 낳자 모략과 흉계를 주저없이 꾸몄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어 쫓았을 때에 온 백성과 산천초목이 다 울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지은 노래가 곧‘미나리와 장다리’였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더보기
[이정민이 만난 사람] '내각제 신봉자' 박철언 전 의원 (중앙일보 2014.11.01 00:48) [이정민이 만난 사람] '내각제 신봉자' 박철언 전 의원 내각제 개헌, YS는 할 수 있는데 안 했고 DJ는 여건 안 됐다 공 황태자, LP(Little Prince)란 별칭으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 있다. 국회의원(13~15대)과 정무·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낸 박철언(72) 전 의원이다. 5, 6공의 실세였던 그는 북방정책·정계개편 등 국가 운영의 틀을 바꾸는 일에 깊숙이 관여했다. 헌법을 전공(서울대 법대, 한양대 법학박사)한 율사이기도 한 그는 내각제 신봉자다. 30여 년의 정치 인생에서 세 번이나 내각제 개헌의 밑그림을 그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각제 구상,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한 3당 합당과 김대중+김종필 연대가 그것이다. 하지만 구상은 모두 빗나갔다. 그는 “지역감정 극복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