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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40대 대원군 사진 등 구한말 ‘미공개 사진’ 발굴 (KBS 2015.03.01 (22:53) 40대 대원군 사진 등 구한말 ‘미공개 사진’ 발굴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을 비롯해,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의 미공개 사진들이 미국에서 발굴됐습니다. 사진과 관련된 정황도 기록돼 있어 역사적 가치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유동엽 기자입니다. 앳된 얼굴의 이 청년은 독립운동가이자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서재필 선생의 23살 때 모습입니다. 1887년에 찍은 것으로 흑백 사진에 색깔을 입힌 것이 이채롭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찍은 김옥균, 박영효 선생의 사진도 모두 청년 시기 모습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들입니다. 양복 차림의 이 청년은 고종의 아들이자 항일활동을 했던 의친왕입니다. 사진들은 당시 일본에 머물던 미국인 윌리엄 그리피스가 수집한 것인데 사진마다 촬영 시기나 상세한 관련 정보를 직접 기록해 놓았습니다. 흥.. 더보기
[광복 70주년 기획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건축 기행]116년 전 건물 ‘조선은행’ 간판 그대로… 중구 ‘수탈 잔재’ 많아 (경향신문 2015-01-26 21:50:12) [광복 70주년 기획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건축 기행]116년 전 건물 ‘조선은행’ 간판 그대로… 중구 ‘수탈 잔재’ 많아 ㆍ(4) 인천 조계지 ▲ 일본제1은행·일본제58은행… 일 ‘자금줄’, 수탈 전초기지 역할 응봉산 중턱 깎아 영사관 짓고 공병대 동원 홍예문 터널 뚫어 일제는 1883년 조그마한 포구였던 제물포항(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켰다. 초가집 40∼50가구에 불과했던 제물포항에 서구 열강이 몰려들면서 이 일대에는 조계지가 형성됐다. 조계지는 외국인이 자유로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구역이다. 일제는 조계지에 영사관과 은행, 점포, 상회, 우체국, 가옥 등을 짓고 자국민을 통제했다. 일본 화폐를 사용하기 위해 은행을 세웠고, 인천항에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도록 갑문도 .. 더보기
수백년 ‘타향살이’…세종때 간행 ‘자치통감강목’ 완질 중국서 발견 (한겨레 2014.12.30 22:31) 수백년 ‘타향살이’…세종때 간행 ‘자치통감강목’ 완질 중국서 발견 조선 세종 때 금속활자로 찍은 완질(59책). 500여년 전 금속활자로 찍은 역사책의 운명은 모질었다. 본디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토론하며 펴 보았을 터였지만, 임진왜란 뒤 책은 주인을 잃고 일본과 중국을 수백년 떠돌아야 했다. 15세기 조선 세종이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經筵)에서 쓰려고 금속활자로 찍은 중국 사서 (資治通鑑綱目) 완질(59권 59책)이 최근 중국에서 발견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강탈해 갔다가, 근대기 중국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파란만장한 전래 경위도 눈길을 모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0월 상하이도서관과 푸단대도서관에 소장된 국내 옛 문서·책들을 조사하다 세종 2년(1420년) 제조한 구리활자 ‘경자자.. 더보기
황당한 석탑 위에 가냘픈 여왕의 별이 떴다 (한겨레 2014.12.06 14:10) 황당한 석탑 위에 가냘픈 여왕의 별이 떴다 첨성대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조차 그 구조를 두고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재까지 학계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적극적인 천문대의 역할은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를 둘러싸고 탑돌이를 하는 모습. 신라문화원 제공 [토요판] 별 첨성대 미스터리 ▶ 첨성대는 정말 천체를 관측하는 곳이었을까요? 정부 공식 자료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소’라고 밝히고 있지만, 건축 구조를 곰곰이 따져보면 천문관측소라고 하기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불평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출입도 불편하고 관측대는 좁고 바닥은 울퉁불퉁합니다. 첨성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별의 정치적 의미를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월성 언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