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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씨줄날줄] 이사지왕/안미현 논설위원 (서울신문 2013-07-05) [씨줄날줄] 이사지왕/안미현 논설위원 1921년 9월 경주 노서리 주막집 주인 박문환은 주막을 늘리기 위해 뒤뜰을 팠다. 그런데 난데없이 유물이 나왔다. 경주경찰서의 일본인 순경 미야케 고조는 소문을 듣고 즉시 박문환의 집으로 달려갔다. 땅 파기는 중단됐고 27일부터 30일까지 유물 수습 작업이 이뤄졌다. 4일 만의 ‘뚝딱 발굴’로도 유명한 금관총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1927년 11월 10일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도둑이 들었다. 금관만 남기고 허리띠, 귀걸이 등 순금 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구열이 쓴 ‘한국문화재비화’의 한 토막. “차마 금관까지는 손댈 수 없었는지 아니면 가져가기 거추장스러웠는지 금관만 무사했다. 천수백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여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느니,.. 더보기
금관총 칼에 ‘尒斯智王’… 무덤 주인 알려줄까 (동아일보 2013-07-04 10:15:30) 금관총 칼에 ‘尒斯智王’… 무덤 주인 알려줄까 신라 무덤서 처음 왕이름 글자 나와 신라 금관총 고리자루큰칼의 칼집 맨 아랫부분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발견됐다. 이 이사지왕의 정체가 무엇일지가 국내 고대사학계에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라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의 칼집에서 최근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가 발견됐다. 신라 무덤에서 왕 이름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무덤의 주인공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칼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고리자루큰칼과 칼집을 3일 공개했다. 이 글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사업’의 일환으로 칼을 보존처리하다가 발견됐다.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는 칼집의.. 더보기
신라고분서 王名 첫 발견 (매일경제 2013.07.04 00:58:35) 신라고분서 王名 첫 발견 금관총 출토 칼집서 `이사지왕` 글자 확인…피장자 연관성 논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수습된 환두대도에 새겨진 명문이 3일 공개됐다. 신라 최고지배층 무덤에서 왕의 이름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칼자루 금속부(오른쪽)에 "이사지왕"이라는 한자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김재훈 기자>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왕명(王名)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발견됐다. 신라 최고지배층 무덤을 통틀어 발굴조사에서 왕의 이름이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산하 보존과학부가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를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글자는 칼.. 더보기
신사임당의 눈물 (중앙일보 2013.07.02 10:18) 신사임당의 눈물 알다시피 신사임당은 이율곡의 어머니로, 어머니와 아내의 자격에 있어선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사임당은 부친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딸의 재능을 높이 산 부친은 결혼 후에도 딸이 서화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부러 좀 만만한 사윗감을 골랐다. 남편은 과거공부에 집중한다며 집을 떠나 산에서도 살았고, 홀로 자녀를 키운 신사임당은 그런 남편과 10년간 떨어져 지냈다. 한 번은 아내가 그리워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질타해 돌려보낸 적도 있다.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한 신사임당의 내조와 고귀함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남편은 주막집 권씨와 외도를 했고, 이는 사임당의 귀에도 들어간다. 무식하고 천한 권씨와 외도행각을 벌인 남편에게 신사임당의 실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