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인물열전

에이브러햄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65)


미국의 정치가. 미국 16대 대통령.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여 연방(聯邦)을 보존하고 노예를 해방시킨 제16대 대통령(재임 1861~65)이다.


빈농의 아들로서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어 정계에 투신, 미국­·멕시코 전쟁에 반대하고 한때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공화당 결성과 더불어 정계에 돌아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 중 게티즈버그의 싸움 후에 행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연설은 유명하다.


1864년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남북전쟁 종결 직전에 암살당하였다.

1. 링컨의 삶

* 노예제 반대

극단적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부는 링컨의 백악관 입성을 거부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그해 6월까지 남부 11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했다. 남부는 나라를 새로 세웠다. 아메리카연합(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다. 미시시피 상원의원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 연방(The United States of America·아메리카합중국)은 둘(북부 19개 주)로 갈라졌다. 독립(1776년) 85년 만이다.


링컨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켄터키의 가난한 집안 출신에다 자수성가한 변호사다. 내세울 경력은 연방 하원의원(2년)이다. 정적(스티븐 더글러스)과의 노예제 논쟁으로 전국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연방 상원선거에서 두 번 떨어졌고 부통령 선거도 실패했다.

용기가 없으면 준비된 대통령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결단력이 없으면 경험은 단순한 연륜에 불과하다. 용기와 통찰력은 링컨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성숙시켰다. 그의 지도력은 진화했다. 연방을 재통합했다. 노예제의 야만적 난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꿨다.

* 포용의 용인술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은 내부 단합이 절실했다. 그는 공화당 내 소수파였다. 대통령 예비선거 때의 거물 경쟁자들을 장관으로 기용했다. 윌리엄 슈어드(국무), 새먼 체이스(재무) 등이다. 나중에 민주당 출신 에드윈 스탠턴을 전쟁장관으로 발탁했다. 슈어드는 링컨을 “애송이 촌놈”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3개월 뒤 슈어드는 “실천력과 용기를 가진 드문 인물”로 그를 재평가했다. 링컨의 내각은 경쟁자들을 합친 탕평 내각(Team of Rivals)이다(도리스 굿윈). 링컨은 겸손한 자세로 이들의 역량과 장점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상호견제와 균형으로 내각을 통솔했다. 굿윈은 포용의 용인술을 링컨의 성공 요소로 평가한다.

* 전쟁의 大義를 장악하다

링컨은 전쟁 대통령이다. 취임 한 달쯤 뒤 남북전쟁(내전·Civil War·1861년 4월~1865년 5월)이 시작된다. 그리고 암살 당한 직후 끝난다. 그는 국정 우선순위를 짰다. 첫 과제는 연방의 재통합이다. 그의 노예제 해법은 현실주의를 따랐다. 연방 보존 목표에 맞춰 단계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전쟁 목표는 연방 분열을 막는 데 있다. 노예제를 없애거나,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노예제 폐지를 앞세우면 연방 보존이 불가능하다는 게 링컨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노예해방 선언도 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1863년 1월 1일을 기해 연방에 반란한 주의 노예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선언한다”로 돼 있다. 반란 주는 남부다. 링컨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다. 북부의 일부 노예주(메릴랜드·미주리)는 선언에 해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식 해방된 노예는 없었다.


그러나 그 선언으로 링컨은 전쟁의 대의(大義)를 장악했다. 노예해방을 역사의 필연으로 전환시켰다. 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 됐다. 영국·프랑스는 남부연합을 국가로 승인할 수 없었다. 링컨 외교의 승리다. 전쟁 승리가 굳어진 1865년 1월 수정헌법 제13조가 의회를 통과했다. 그것은 모든 지역의 노예제 종식을 규정했다. 물론 노예제 퇴출이 흑백평등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 원칙에 타협은 없다

남북전쟁은 거대한 재앙이다. 전쟁 4년여간 62만 명이 숨졌다. 그 숫자는 20세기 큰 전쟁(1차·2차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쟁)의 미군 전사자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다.

당시 인구는 3000만 명이다. 링컨은 처음엔 오판했다. 전쟁을 6개월의 단기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전은 계속됐다. 그럼에도 링컨은 남부와의 휴전을 거절했다. 남부연합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연방이 헌법(1789년)보다 먼저 성립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어떤 주도 연방을 탈퇴할 권한이 없다고 단정했다. 그 원칙은 타협하지 않았다.


링컨은 완전한 승리를 추구했다. 협상으로 얻은 평화는 위선이며 분쟁의 불씨를 남긴다고 판단했다. 완벽한 승리가 정의로운 평화를 보장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원칙의 리더십이 미국을 재통합한다.

링컨은 전시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반역과 배신자를 영장 없이 투옥했다. 대통령의 비상대권은 독재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비난을 일축했다. 그의 권력의지는 전쟁 승리와 연방 재통합에 집중됐다. 그의 냉혹한 전쟁관은 전선에서 실천된다. 북군 윌리엄 셔먼 장군은 잔인한 초토화 작전을 폈다.

* 일관성이 부른 행운

1864년 링컨은 대통령 재선거에 나섰다. 그 무렵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는 고전했다. 남군 로버트 리 장군의 천재적 전략에 말려 참혹한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버지니아 전선에서 한 시간에 수천 명이 죽기도 했다. 도살(屠殺)적 희생이다. 유혈의 참극 속에 유권자는 평화를 갈구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평화 협상에 나서자고 했다. 유권자는 야당에 기울었다. 낙선의 분위기가 번졌다.

그때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9월에 셔먼의 승전보가 날아왔다. 그는 남부의 심장부 애틀랜타(조지아주)를 점령했다. 전황이 좋아지면서 링컨은 재선(11월)에 성공했다. 리더십의 일관성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다. 신념의 리더십이 갖고 있는 오묘한 이치다.

남군은 애포머톡스(버지니아주)에서 전쟁을 포기했다(1865년 4월). 리는 그랜트에게 항복했다. 애포머톡스에 가면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그곳에는 흔한 전적비·기념비가 없다. 조촐한 안내문만이 있다. “미국이 다시 합쳐진 곳, 가장 위대한 드라마를 만든 곳”이라고 쓰여 있다. 승자의 환희, 항복의 절망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의 감정을 배제한 글귀가 링컨의 종전 정신이다. 적과의 화합과 관용이다. 한 달 전 그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정의의 이름으로 나라의 상처를 꿰매자”고 호소했다(재선 취임연설). 남군 항복 5일 뒤 링컨은 피격된다. 암살은 링컨을 순교자로 만든다.

* 언어의 마술사

링컨은 언어로 세상을 다스렸다. 그 상징은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3분짜리 불후의 명연설은 참담한 전투의 희생자를 기렸다. 게티즈버그 전투(펜실베이니아주) 사상자는 5만 명. 그곳 국립묘지에 평풍 형태의 링컨 기념상이 있다.

연설은 272개 단어로 구성됐다. 핵심은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a new birth of freedom)를 탄생시켜야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이다. 연설은 민주주의 이념을 간결하게 농축했다. 새로운 자유의 탄생은 만인 평등이다. 전쟁 목적은 연방 보존에다 흑백평등까지 진전한다. 링컨은 유머의 달인이다. 언어의 마술사다. 지도자의 유머와 낙관적 사고는 전염된다. 링컨의 유머는 국난 극복의 긍정적 에너지를 제공했다.

2. 연혁

1809년 2월 12일 : 켄터키주 하젠빌에서 출생

1815년 :초등학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그만둠

1832년 : 일리노이주 선거에 휘그당원으로 출마해 낙선

1834년 : 측량기사로 취직. 일리노이주 의회 의원 당선

1836년 : 변호사 시험 합격. 일리노이주 의회 의원에 두 번째 당선

1837년 :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 개업

1840년 : 일리노이주 의회 의원에 네 번째 당선

1842년 : 메리 토드와 결혼

1846년 : 일리노이주 연방 하원의원 당선

1858년 :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출마해 낙선

1860년 5월 :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

1860년 11월 : 제16대 대통령 당선

1861년 3월 : 대통령 취임

1862년 7월 : 노예해방선원 초안

1863년 1월 : 노예해방선언 발표

1863년 7월 : 게티즈버그에서 리 장군 지휘하의 남군 공격을 저지

1863년 11월 : 게티즈버그 연설

1864년 11월 : 대통령 재선 성공

1865년 4월 : 14일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피격(15일 사망)

출처
[타인글이나 자료 인용] http://www.opentory.com/index.php/%EC%97%90%EC%9D%B4%EB%B8%8C%EB%9F%AC%ED%96%84_%EB%A7%81%EC%BB%A8

 

 

링컨

 

노예해방선언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해방에 관하여 대통령 A.링컨이 발표한 선언.
남북전쟁 중 링컨은 62년 9월의 안티텀 전투에서 전황이 북부에 유리해지자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여러 주가 63년 1월 1일까지 연방에 복귀하지 않으면 노예해방을 선언하겠다는 경고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선언이 정식으로 포고되었다.

내용은, ① 반란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부 해방하며, ② 해방된 흑인은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임금으로 충실히 일할 것, ③ 흑인에게 연방 군대에 참가할 기회를 줄 것 등을 규정하였다.

이 선언은 남북전쟁에서의 전략적 의의도 가지는데, 남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남부 여러 주의 연방 조기복귀(早期復歸)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노예해방은 전쟁 뒤 합중국 수정(修正)헌법 제13∼15조의 성립으로 폐지가 확정되었다.



링컨Abraham Lincoln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결심한 사람일수록 언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한 성질의 악화나 자제력의 감퇴 결과를 훌륭한 사람일수록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이쪽에 반쯤의 타당성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크게 양보하고, 자신이 만만한 일일지라도 조금은 양보해라. - A. 링컨

국가는 거기에 거주하는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현정부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 그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개선할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거나 분할 내지 전복시킬 수 있는 혁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링컨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링컨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또한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링컨

그랜트 장군의 위대한 점은 침착하면서도 목표에 집요하게 매달린다는 점이다. 그는 쉽게 흥분하지 않으면서도 불독같이 용맹스럽고 끈질기다. 그의 이빨에 한 번 물리면 그 누구도 끄집어낼 수가 없다. -링컨

나는 계속 배우면서 나는 갖추어 간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링컨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의 것, 내가 아는 한의 최선의 것을 실행하고 또한 언제나 그러한 상태를 지속시키려고 한다. -링컨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주인도 되고 싶지 않다. -링컨

나는 어릴 때, 가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온갖 고생을 참으며 살았다. 겨울이 되어도 팔굽이 노출되는 헌 옷을 입었고, 발가락이 나오는 헌 구두를 신었다. 그러나 소년시절의 고생은 용기와 희망과 근면을 배우는 하늘의 은총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웅과 위인은 모두 가난 속에 태어났다. 성실 근면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만 있으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반드시 큰 꿈을 이룰 수 있다. 헛되이 빈고(貧苦)를 슬퍼하고 역경을 맞아 울기만 하지 말고, 미래의 밝은 빛을 향해 분투 노력하며 성공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링컨

나는 찬스가 올 것에 대비하여 배우고, 언제나 닥칠 일에 착수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 -링컨

나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뒤로는 가지 않는다. -아브라함 링컨

나에게 밤낮으로 무서운 긴장이 생겼기 때문에, 만일 내가 웃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은 지가 오래 되었을 것이다. -링컨

나이가 40을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링컨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나의 어머니가 준 성경때문이었다. -링컨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보는 일이다. -링컨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링컨

노동을 소중히 여기자. 노동의 빛은 아름다운 것이다. 노동은 온갖 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링컨

만나는 사람마다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 -링컨

많은 자유국가가 자유를 상실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가 나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도망을 쳐서가 아니라, 결코 도망을 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스프링필드의 연설 중에서) - A. 링컨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

미국의 국민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의 세계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더욱이 '나'라고 하는 일개 인간의 궁극적 인격을 가지고 하느님께 대하여, 나는 책임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링컨

변호사가 되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면 그것만으로 목적은 절반이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꼭 성공하고 말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항상 명심하라. -링컨

뿔뿔이 흩어진 집안은 살아갈 수 없다. 저는 연방이 해체되거나 집안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링컨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될 것인지는 자기의 결심에 달려 있다. -링컨

40세가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링컨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게 물리느니보다는 개에게 차라리 길을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개를 죽여 본들 상처는 치유될 수 없는 법이다. - A. 링컨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길이 열리게 마련이다. -링컨

일이란 기다리는 사람에게 갈 수도 있으나,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자만이 획득한다. -링컨

자기가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우리시대의 사건과 연결짓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는 삶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름과 어떤 유익한 일과를 연결짓는 일이다. -링컨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먹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을 만드셨다면, 그 인간은 아마도 입만 있고 손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부류로 일만 하고 먹지는 못하게 되어 있는 인간을 만드셨다면, 아마도 그 인간은 손만 있고 입은 없었을 것이다. 입과 손을 동시에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일하면서 먹고, 먹으면서 일하자. 어느 한 쪽에만 치중하는 불구자가 되지 말자. - A. 링컨

절반은 노예, 그 절반은 자유의 상태에서 이 관계가 영속할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링컨

타인의 자유를 부인하는 자는 그 자신도 자유를 누릴 가치가 없다. -링컨

하나님이 자기를 만드셨기 때문에 자기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을 비참한 사람으로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링컨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