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취재 인사이드] 미국 최고 스펙 '알파우먼' 샌드버그 따로 만나 물어보니…
미국 대표 ‘알파우먼’인 셰릴 샌드버그(44)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얼마 전 한국을 찾았습니다. 지난달 출간된 저서 ‘린 인(Lean In·기회에 달려들어라)’ 관련 홍보와 강연 등을 하기 위해서죠.
3박 4일 일정을 소화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그녀가 지난 7일 착륙 사고가 난 아시아나 항공기에 탑승할 뻔했던 사실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족의 마일리지 사용 문제로 항공사를 바꿔 극적으로 사고를 면했다죠.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샌드버그를 따로 만났습니다. 전날 연세대에서 ‘여성과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한 그녀는 “아주 익사이팅(exciting)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강연 직전 연세대 측에서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나는 반드시 질문이 나오리라 확신했다. 책 제목처럼 여성들이 달려들 준비가 돼있다고 믿었다. 역시나 처음에는 남자들이 몇 분 손을 들다가 나중엔 여성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더라. 아주 기뻤다.”
책 출간 이후 한국의 많은 여대생들이 그녀를 ‘닮고 싶은 여성’으로 꼽는다네요.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우등 졸업·세계은행 연구원·매킨지 컨설턴트·재무장관 비서실장·구글 부사장·페이스북 2인자.
최고의 스펙에 부드러운 카리스마, 단아한 미모까지 갖춘 여걸이죠.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위, 지난해 ‘최고 연봉 여성’ 3위(3096만 달러·약 35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미래의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됩니다.
-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COO/사진=페이스북
그런 샌드버드가 이젠 ‘여성들의 멘토’로 발벗고 나선 겁니다. 책에서 그녀는 여성과 일, 리더십에 대해 솔직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여성이 승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본인의 야망이 부족해서”라는 주장이죠.
“여성은 큰 일에서든 작은 일에서든 자신감이 부족하고, 기회를 잡겠다고 손을 번쩍 들지 못하며,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때 오히려 주춤하며 물러선다” “여성은 자신이 달성할 수 있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 낮춘다. 직장에서 중역이 되겠다고 열망하는 여성의 비율도 남성보다 적다”.
즉, 고위직 여성이 드문 이유가 (제도·법·사회가 아니라) 여성의 내면에 있으니, 스스로 강인해져야 모든 걸 뚫고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에선 지난 3월 출간 즉시 “성공 아이콘의 현실적 조언”이라는 찬사와 “평범한 여성에 대한 성찰 없는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읽으면서 거부감이 들더군요. 연봉 수천만 달러를 받고 가사도우미를 두면서, 두 아이와 저녁을 먹기 위해 5시 반에 칼퇴근할 수 있는 워킹맘이 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그녀가 육아와 가사의 부담을 덜고 자신있게 일할 수 있는 건 결국 ‘돈의 힘’ 아닌가.
하지만 제 주변의 많은 여성들은 “그녀의 일갈에 뜨끔했다” “밑줄 그으며 읽었다”고 공감하더군요. 그래서 더 그녀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40분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여성과 리더십’에만 집중됐습니다. 샌드버그는 “솔직히 내가 재정적으로 남보다 굉장히 여유있다는 걸 안다”며 “물론 내 메시지가 모든 여성들에게 다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책에 쏟아진 비판들이 억울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은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것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관심이 많다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샌드버그와의 인터뷰 전문을 조선닷컴 독자들께 공개합니다.
-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노자운 기자
-여성들이 가정이냐 일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현상은 전 세계 공통 현상인 것 같다.
“미국에서도 결혼과 일이 양립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여성들이 많지만 한국은 더 심한 것 같다. 왜 그럴까. 여성이 남편보다 커리어가 더 좋아도 가사노동은 으레 여성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60대 여성 얘기다. 그녀는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데다 남편보다 더 주요 직책에 있는데도, 일년동안 365가지 메뉴로 남편에게 ‘겹치지 않는 식단’을 제공했다고 한다.(그녀의 며느리가 알려줬다.)
남녀 모두 하루가 24시간뿐인데 왜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가 더 많은 건가. 통계치를 보면 한국은 남성 대비 여성의 가사부담율이 4배 정도 높다. 한국 여성들이 더 많이 경제활동을 하길 원한다면, 너무 많은 걸 강요하고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아침일찍 출근해 밤 늦게까지 야근하면서 가사와 육아까지 떠맡는 건 불가능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해법은?
“남편이 육아 참여를 조금씩 늘린다면, 근무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면, 주말에 남편들이 가사 노동을 도와준다면, 충분히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한꺼번에 모든 게 바뀌는 건 불가능하지만, 조금씩 작은 변화가 더해질 때 큰 변화도 가능할 거다.”
-요즘도 5시반에 칼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나?
“출장이 아니면 항상 그렇게 한다. 애들 재우고 다시 일어나서 일을 한다. 사무실에 묶여서 아이들 얼굴도 못보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유연하게 일하는 거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일하고, 집에 가서 저녁 같이 먹고 또 일한다.”
-실리콘밸리에선 그게 가능하겠지만, 한국에선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내게도 절대로 쉬운 건 아니었다. 내가 맨 처음 ‘5시반 퇴근’을 언급한 순간, 기사가 몇천 개 떴다. 내가 이렇게 큰 뉴스거리가 될 줄 몰랐는데(웃음). 그만큼 5시반 칼퇴근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굳이 발표한 이유? 나와 같은 입지에 올라가는 여성 리더들이 더 많아지고, 이런 얘기를 공론화하는 게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육아와 일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올 수 있다. 매일 야근을 해야 되는데,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다급한 상황이 온다면.
“정확히 맞는 지적이다. 한국은 근무시간이 특히 긴 나라라고 알고 있다. 상사 눈치가 보여서 일찍 퇴근하지 못하는 문화도 십분 이해한다. 그래서 이 책을 남성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 리더들만이 아니라 남성리더들, 경영진들이 읽고 도움을 주셔야 된다는 걸 알리고 싶다.”
-워킹맘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으려면 육아나 가사를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이 자신있게 커리어를 쌓아온 것도 사실 돈이 있어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맞다. 나도 안다. 솔직히 책에서도 인정했다. 내가 재정적으로 남보다 굉장히 여유있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내 메시지가 모든 여성들에게 다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통계를 보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똑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급여수준이 낮은 걸로 나타난다. 역설적으로 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여성들이 급여가 올라가는 사례를 목도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사장에게 “내 임금을 올려달라”고 자신있게 요청했더니 올려줬다면서,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는 여성들도 있다.”
-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안지영 기자
-집에서 가사를 돌보나.
“(고개를 끄덕이며) 한다. 하지만 내게 철칙이 있다. 남성에게는 그런 것 묻지 않지 않나. 많은 기자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혹시 같은 질문을 남성에게 하신 적이 있고, 그게 기사화된 걸 보여주시면 답을 할게요.’ 그러면 아무도 증거를 못댄다.(웃음)”
-가사도우미를 따로 두고 있나.
=“(고개를 끄덕이며) 있다. 하지만 같은 철칙에 의해서 구체적인 답변은 할 수 없다.”
-당신은 운도 좋은 것 같다. 서베이몽키 CEO인 남편은 가정적이기까지 해서 집안일의 절반을 도와준다는데.
“하하하. (큰 소리로 웃으며) 맞다, 맞다. 등락은 있지만 가사 분담 노력은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남편이 집안일의 절반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으니까. 출산 직후 육아의 대부분이 내 몫이었던 적도 있다.”
-워킹맘의 경제활동은 제도나 정책적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여성들의 의지로 극복하라고만 얘기한다.
“여성들이 혼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전적으로 동감한다. 물론 여성의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공공정책의 변화, 근로시간 유연성 같은 기업의 방침 변화, 남편들의 가사 분담 등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다만 내가 여성의 내면 변화를 강조한 것은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충분히 공론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다뤄지지 않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 거다.
물론 정부 정책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 정책마저도 충분요건은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특히 노르웨이를 보자. 정부 정책만으로는 완벽한 천국이다. 여성을 위한 각종 정책이 갖춰져 있고, 의회에서 여성 비중이 50% 할당돼 있고, 1년동안 남녀 공히 출산 휴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은 3%가 안된다. 공공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화적 관념, 여성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남아들은 어릴 때부터 ‘너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여아들은 자라면서부터 ‘너무 나서지 말아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일하면 공격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책 변화만 얘기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바꿔야 할 문화적 통념이 많다는 것이다.”
-책에 대해 “평범한 여성들의 현실을 모르는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억울한 건 없나.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것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관심이 많다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관심을 너무 받아서 놀랐다. 찬반여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과 리더십’이라는 주제의 발전에 기여할 거라고 믿는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이 책이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라는 추측도 나오는데.
“(손사래를 치며) 아무도 내가 진짜로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출마 계획도 없다. 다만 여성들을 위해서 변화를 주도하고 싶을 뿐이다.”
-정치에 뜻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아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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