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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유 장관은 누구… 22세 공직에, 38세 최연소 구청장 (문화일보 2013년 07월 19일(金)

유 장관은 누구… 22세 공직에, 38세 최연소 구청장

박근혜 비서실장때 MB 입각 제의 일언지하 거절… 朴은 “다녀오라”

 

▲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국민만 바라보면 문제의 답이 나온다는 게 박근혜정부의 행정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다양한 표정을 지어 가며 낮지만 강한 어조로 “원칙과 신뢰의 행정을 펼치겠다”고 역설했다

 

유정복 장관은 “1995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만 22세에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후 1994년 37세에 관선 김포군수를 맡았다. 이듬해 인천 서구청장이 됐는데, 최연소 구청장이었다. 그는 그해에 치러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가 초대 민선 김포군수가 됐다.

“저는 민선 단체장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공직생활이 20년 동안 보장돼 있는데 당락을 알 수 없는 선거에 나갈 수 없잖아요. 그런데 지역민들이 출마해 달라고 매일 찾아왔어요. 거기(김포군)는 제 고향도 아닌데, 제가 꼭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할 것 같았어요. 그때 내 욕심을 던지고 사람들의 요구에 답하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지요.”

1998년 김포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김포시 초대시장에 취임했던 그는 2004년에 국회의원이 돼 여의도 정가에 입성했다. 이듬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주목을 받게 된다.

“대통령(당시 박 대표)께서 특별한 인연이 없는 저를 임명해 줬습니다. 최선을 다했지요.”

박 대표가 대선 당내 경선에 실패한 후에도 비서실장직을 수행하던 그에게 이명박정부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제안한다. 2010년 8월의 일이었다.

“제가 비서실장인데, 그럴 수 없다고 했지요.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빨리 다녀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는 농식품부 장관 시절에 구제역 파동을 선방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그의 행정철학이 빛을 봤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장관직을 수행했다”고 되돌아봤다.

2011년 6월 농식품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국민생활체육회장직을 맡았다.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그 일이 좋았다”며 “지금도 명예회장으로 있다”고 애착을 보였다.

지난해 4월 3선 의원이 된 그는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다. 올해 1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3월에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았다.

“행정안전부 이름이 바뀌고 역할이 커져 안전행정부가 됐으니, 저는 공식적으로는 장관직을 세 번 맡은 셈입니다. 하하.”

그의 공직관은 진부하지만 진실한 울림을 준다. “공직자가 사욕이 없으면 일을 할 때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일을 바쁘게 많이 하더라도 마음은 편할 수 있습니다. 떳떳하고 당당하니까요.”

▲1957년 인천 생 ▲제물포고·연세대 정치외교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 ▲행시 23회 ▲내무부 행정국 등 재직 ▲경기도 기획담당관 ▲제33대 김포군수 ▲제5대 인천 서구청장 ▲초대 민선 김포군수·김포시장 ▲제17·18·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대표 비서실장 ▲대한민국학사장교총동문회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국민생활체육회장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現정부 신념체계 강해… ‘국민과 함께 간다’ 원칙 확고”

 (문화일보 2013년 07월 19일(金)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중대본이 붐비지 않는 상황이 좋은 게 아니겠느냐”며 “기상이변 등 환경 변화에 맞는 선제적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장관께서 이렇게 길게 인터뷰를 하신 것도, 또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신 것도 처음입니다. (기자가) 예민한 문제까지 물어보셔서 배석한 제가 안절부절못하겠더군요.”

유정복(56) 안전행정부 장관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배석했던 안행부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장관에게 미리 전달했던 질문지에 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을 많이 물었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미리 만든 답변서 책자에 없는 이야기를 즉석에서 내놔야 했다. 그는 막힘없이 답변을 하는 내공을 과시했으나 그것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속으로 땀을 흘렸을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안행부 장관 집무실(12층)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1층) 등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더위와 싸우며 진행됐다. 정부청사가 사무실 기준 온도 유지(평균 28도 이상)에 앞장서야 한다는 이유로 냉방을 가동하지 않고 있어서였다. 창문을 열어 놓은 장관 집무실의 온도는 31도였다. 장관실에 앞서 인사차 먼저 들렀던 이경옥 차관실도 마찬가지였다.

“장·차관 집무실은 시원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중요한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인데….”

농기를 섞어 한 말인데, 유 장관의 답은 진지했다. “장·차관이 그러면 어떻게 해요. 솔선수범해야지. 더욱이 안행부가….”

장관 집무실 명패에 쓰인 글씨(劉正福)를 보고 “이름을 누가 지어 줬나요? 바른 복이라는 뜻이 좋네요”라고 덕담을 건네니 “아버지가 지어 주셨는데, ‘정복’이라는 이름 덕분에 ‘일복’이 많아요. 일을 계속하면서도 힘든지를 몰라요”라고 말했다. 더위를 무색하게 만드는 썰렁한 답인데, 싱긋 웃으며 말하니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행부 전신인 내무부에서 일했다. 내무부를 떠난 지 20여 년 만에 장관이 돼서 세종로 서울청사로 돌아왔다.

“이 청사에 첫발을 디딘 것은 30여 년 전 갓 사무관이 됐을 때입니다. 그때 이 청사엔 15개 부처가 있었는데, 이제는 3개 부처만 남게 됐으니 세상의 변화가….”

한때 서울의 랜드마크로 불리기도 했던 세종로 서울청사는 이젠 노후한 건물이 돼서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느낌을 준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께서 중대본에 들렀다 가시면서 ‘리모델링 안 해도 되느냐’고 물으시기에 ‘올해 할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겨울에는 너무 춥거든요.”

유 장관은 서울청사를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건립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박 전 대통령이 1977년 청사 기공식 때 썼던 글이 1층에 친필 부조로 걸려 있다. ‘…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오늘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서 뭘 강조했나.

“선제적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화상회의를 통해 중앙정부와 협력해 수해지역 복구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 이후에 서울 강서구 상습 침수지역 현장에 가서 방지대책이 잘 돼 있는지 점검하셨다.”

유 장관은 “장기간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해져 있어 장마가 끝난 뒤에 현장 점검을 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재난에 대응하는 장비나 시스템이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기상이변이 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안전은 현 정부의 국정 기조 중 하나인데, 이전 정부와 확연하게 다르게 펼칠 정책이 뭔가.

“우선 (안전을 앞세운) 안행부가 탄생한 게 다르다. 박근혜정부가 끝날 때까지 안행부가 컨트롤타워가 돼 기관별로 안전책임관을 두고 안전 종합점검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4대 악(학교폭력·성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감축목표제를 실천하겠다. 자기 책임 속에 스스로 구속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감축목표제를 하다 보면 실적 때문에 강력계 형사가 불량식품을 단속하는 일이 생기고 그럴 텐데….

“그럴 가능성도 약간 있는데 이건 일회성이 아니라 몇 년간 분명한 목표치가 있어서 그럴 수 없다. 나는 양심을 걸고 국민들이 진정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애쓸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는 법규만 지키면 아마 반이 아니라 5분의 1로 줄 거다. 법규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예외로 하는 것, 이게 문제다. 안전문화운동추진중앙협의회(안문협)를 구성해 국민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장관은 언행에 제약이 있을 텐데, 정치 쪽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지금도 정치인 신분은 갖고 있고 정무적 기능도 하니까 뭐…. 우리 부의 일이 과거보다 커져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총무처하고 통합이 됐고 비상기획위원회 업무와 정보통신부 공공부문, 전자정부 분야도 흡수됐다. 또한 새 정부는 국민 안전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업무가 많다.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정치인들은 뜨는 데 목숨을 건다. 막말 경쟁을 하는 것도 그래서 아닌가. 장관은 다른가.

“그 말뜻 잘 안다. (정치판에서) 뜨기 위한 언행이 수없이 많다. 장관직은 그런 거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공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국가가 아니라 자기 앞세우고자 한다면 사회 발전에 도움보다는 해악을 미칠 수 있다. (나는) 그런 거 의식한 적 없다. 박근혜 비서실장을 5년 하면서 왜 유혹이 없었겠나. 그분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내가 뭘 할 수 있나 생각했지, 한번도 나를 내세워본 적은 없다.”

―지루한 내용인데, 진솔하게 말씀하시니 받아들이겠다. (웃음) 이명박정부 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재직했는데. 박근혜정부 국무회의와 그때의 국무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

(유 장관은 연필을 들고 메모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그가 설득형의 리더라는 게 절로 드러났다)

“대통령의 정치 신념과 가치 체계가 다르니 국무회의도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초기다. 대통령이 많은 걸 지시하고 장관들은 받아쓰기만 한다는 비판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큰 방향을 잡기 위해 이야기하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사회경험이 많다. 험한 일도 겪고 비정상적인 사회현상도 봤다. 그걸 다 감안해서 지향한 게 실용주의 국정운영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대통령보다 정치 경험이 많은데, 무엇보다 가치와 신념 체계가 강한 분이라는 특징이 있다. 정치인은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떨어지면 임기응변 수를 생각하는데, 박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심없이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는 신념 체계이기 때문에 나는 그걸 높게 평가한다. 5년 동안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되게 할 것이다. 이런 면 때문에 오해도 있고 갈등이나 우려도 있다. 초기 단계라 그러는데 참모들이나 국정운영 세력이 공감해서 잘 가도록 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같은 뜻의 말을 반복했다. 대통령에 대한 그의 신뢰는 가위 ‘종교’ 수준이어서 듣기에 편하지만은 않았다. 과거 정부에도 친위세력이 있었고, 그들은 긍정적인 역할 못지않게 부정적인 그늘도 남겼다. 그는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도 신이 아니니 틀린 거에 대해서는 얘기해 줘야 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리면, 사심없는 걸 아시니까 공감해 주곤 한다”고 덧붙였다)

―친박(친박근혜)계들끼리 권력 다툼 조짐이 벌써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얼굴을 약간 붉히며) 그건 내가 잘 모르겠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내가 할 역할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내가 쭉 얘기하지 않았나. 정치철학이랄까 가치 신념 체계를 공유해야지, 친박이 됐든 뭐가 됐든 누가 더 득세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이 그거랑 무슨 상관인가. 누가 그러라고 장관 시키고 수석 시켰겠는가. 박 대통령은 자기들 앞가림하기 위해 뭐하는 거 아주 싫어한다. 세간에서는 2인자를 두지 않는다, 뭐다 그러는데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100% 대한민국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친박계 갈등에서 조정 역할을 할 것인가.

“(갈등과 같은) 그런 일이 없다. 난 없다고 본다. 다만 언론에서 그런 부분이 흥밋거리니까 과도하게 보도하니….”

―이명박정부 때의 친이(친이명박)계도 그런 일 없다고 하더니 결국은 정권의 정치력을 스스로 갉아먹었다.

“박 대통령 임기 내에 (친박계 문제 등으로 인한) 정치적 레임덕은 없을 거다. 대통령은 퇴임 후를 염려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이번에 박정희 공원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이분의 최고 강점은 퇴임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위할 거라는 점이다. 레임덕은 없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구속된 것은 기본적으로 비리 탓이지만 다른 배경이 있다는 설이 돌출했고, 그중에 현 정부가 이전 정권과 선긋기를 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설도 있다.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할 때 출입기자로서 만난 적 있는데, 모든 말이 MB(이명박 대통령)에서 시작해서 MB로 끝났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뭔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느낌을 유 장관에게 전했다)

“내가 정치적으로 깊게, 또 잘 아는 것도 없고…. 기자들은 정치적 배경이 뭐냐, 비하인드 스토리가 뭐냐, 이런 거 따지며 복잡하게 접근하는데, 박 대통령은 정상적으로 하기 때문에 간명하다. 그걸 두고 이전 정권과 차별화니, 뭐니 정치적 계산을 하고 보는데, 내가 보는 박 대통령은 모든 걸 정상적으로 간다. 이전 정부에 충격을 주거나 옹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겠으나, 전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간명하고 재미없는 정치를 받아들이는 게 선진 문화이긴 하다. 그렇지만 한국 정치는 그림자가 너무 많은 게 사실 아닌가.

“간혹 여의도 정치가 오버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관료적 사고를 갖고 가서,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게 이렇게 굴러가나 했다. 불합리하고 단편적인 게 중심에 서기도 하고 그렇더라.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게 생명력일 수 있겠다 싶더라. 이런저런 게 가미되고 이해관계가 조정이 되고 그런 거 같다. 공무원들이 국회에 가서 보면 ‘아휴 저건 참~’그런 경우도 많을 거다.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국회는 국회대로 그런 특성이 있더라.”

―박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대선 때 지역 사업 공약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저걸 어떻게 지키려고 하나, 걱정되더라. 결국 사업 타당성을 조사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정치권에서 전략적으로 공약을 수없이 하는 게 사실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그런 걸 안 받아들인다.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말 무책임하게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건 극히 자제됐다. 그래도 (선거에 이기기 위해) 공약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지키신다는 거다. 다만 그대로가 아니라 현 상황을 따져서 제반 예산, 기술적 부분, 국가적 사업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정교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다. 정부 입장에서는 덜어내고 슬림화시키고 싶은데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한다는 거다. 재검토라는 게 다 무산시킨다는 게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건립 공약 번복) 때문에 곤란을 겪었는데 박 대통령은 그걸 끊어 버리려고 한 거다.”

―정부세종청사에 가봤다는데 뭘 느꼈나. 현장의 공무원들은 공식적으론 말을 안 하지만, 불편해서 정말 미치겠다고 하더라. 행정 비효율이 극심하다.

“세종시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지속돼 부대시설 구축이 늦어졌다. 공무원들은 당연히 과천청사에 있을 때보다 힘들 것이다. 빨리 적응하는 게 답이다. 세종시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대로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행정시스템을 세종청사 중심으로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무회의도 한 달에 한 번씩 열기로 했다. 대통령께서 모든 장관들더러 필히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나도 가세할 것이다.”

―정부 자료를 국민들에게 공개한다는 ‘정부3.0’의 이상은 좋은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

“분명한 실천 틀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 과연 공무원들끼리 칸막이 제거가 되겠냐고 하는데, 국민들에게 (전시용으로) 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액션플랜이 있다. 어떻게 이용할 수 있고, 실적은 어떻게 되는지, 실천 프로그램이 잘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하겠다.”

―주택취득세 인하 문제를 둘러싸고 안행부와 국토교통부의 갈등이 외부에 노출됐는데….

“실무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 지방세 인하를 하든 말든 안행부에서 하는 거다. 국토부 실무자들은 그것이 주택시장 정상화에 유용한 수단이라고만 표현했어야 한다. 그런데 취득세를 인하하겠다고 한 게 오류였다.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정부3.0’을 통해 협업을 강조하는 국정 운영 시스템하에 있지 않은가. 취득세를 인하할 수 있다. 그게 뭐 절대법칙이냐. 그런데 그것에서 오는 세수 결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려면 기획재정부하고 안행부, 국토부 다 같이 논의해야 한다.”

―주택취득세 내리고 보유세와 지방소득세, 담배소득세 등을 올리거나 세목을 교환하는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연필로 메모지에 계속 도형을 그리며) 전반적인 상황을 검토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목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단체 간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원 구조가 똑같지 않다. 취득세를 인하하면 재정 결함을 보전하는 세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거다. 재정부와 논의하겠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영유아 무상보육비 국고보조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자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공박했다고 들었다. 유 장관도 공격에 가세했다던데….

(이 소식을 들은 서울시 간부들은 “지방자치 주무부서인 안행부의 수장이 서울시장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격분했다. 그 이야기는 유 장관에게 전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웠다고 했는데 국무회의인데 그랬겠냐. 사실은 이렇게 된 거다. (그는 이 부분을 알아듣기 쉽도록 10여 분간 자세히 설명했으나, 편의상 요약한다) 지난해 정치권에서 무상보육을 확대하니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결함이 생겼다. 그래서 정부가 예비비에서 3607억 원을 지원하고 안행부가 특별교부세로 2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신에 지역에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무상보육 확대에 따른 추가 금액을 메우기로 시·도지사들과 약속했다. 영유아 보육법에 따르면 국고보조율이 서울시는 20%, 나머지 시·도는 50%다. 서울은 지역에 비하면 아동 수가 많다. 서울시는 이 때문에 부담이 크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 시장은 그날 국무회의에서 ‘지방 재정이 녹록지 않다’ ‘이전 총리가 지방에 부담되지 않도록 한다고 약속했다’며 추경 편성을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국무조정실장이 점잖게 정부에서 시·도지사들과 약속한 부분이니 서울시도 추경 편성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했다. 박 시장이 이전 총리의 약속을 언급하자 또 실장이 반박했다. 이때 내가 안행부도 2000억 원 줄 테니 서울시장도 추경 편성해서 원활히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서울시로서는 정치권에서 무상보육 약속하고 생색내는데 왜 우리가 출혈을 해야 하느냐는 논리인데….

“그래서 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올해도 그렇지만, 내년 무상보육비가 더 문제가 아니냐. 현재 국회에 (국고보조율을 높인)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데 이를 정부 부처 간에 긴밀히 협의해서 꼭 처리를 하자고 했다. 이게 처리돼야 지자체에 내년도에 대한 희망을 주고, 국민들에게 문제가 없음을 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하고 불편하진 않겠나.

“박 시장에게 나쁘게 얘기한 게 아니다. 충분히 다 이해했을 거다. 민선 시장인데, 추경 편성 안 하고 문제가 생기면 어떤 심판을 받겠는가. 시민들한테 도리가 아니다. 박 시장하고는 개인적으로 조찬도 함께하는 사이다. 오늘도 만나지 않았는가. (두 사람은 이날 강서구 상습 침수지역을 함께 점검했다)”

―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계속 나돈다.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이야기하더라도 기자들이 추측해서 쓰더라. 그러니 내 말은 여기서 의미가 없다. 나는 안행부 장관에 충실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초기인데 내가 뭘 생각하겠나. 정부 운영과 균형 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그게 사실관계에 충실한 답변이다.”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진부한 답변이다.

“안다. 그렇더라도 나는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자정부 수출’건으로 해외 가보니

 (문화일보  2013년 07월 19일(金)

우즈베크·印尼, 한국이 롤모델… ‘안행부’改名도 알더라

 

▲  유정복 장관이 서울 세종로 서울청사 1층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부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서울청사 기공식 때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취지의 글을 써서 남겼다.

―여름 휴가 때 볼 책으로 미래 관련 서적들을 꼽았더라.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가.

“물론 낙관적이다. 우리가 지난 50년 동안 어떤 발전을 이뤘나.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해 놀랐다. 그 나라 대통령을 만났더니 박 대통령 취임사를 정독했다고 하더라.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안행부 이름 바꾼 것까지 알고 있었다. 한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인도네시아에 갔더니 대통령이 1급 이상 공무원들을 전부 소집시켜 놨더라. 이들은 우리나라를 산업화를 넘어서 정보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본다. 우리 국민 내부의 갈등을 치유하고 원칙과 신뢰가 존재하는 사회로 바꿔 놓으면 미래에 더 발전할 것으로 본다.”

―우즈베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 ‘전자정부 수출’ 건으로 갔다고 들었다.

“전자정부 수출, 이게 ‘야마’(큰 주제라는 뜻의 속어)가 될 수 있을 거다. 새마을 운동을 아프리카 등에 수출하듯이, 우리의 전자정부 노하우를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나는 ‘행정 한류’를 주장한다. 안행부도 수출부처다. 정부 혁신, 행정 개혁, 전자정부 수출 등을 통해 행정 한류를 발전시키겠다. 이걸 전 세계에 알리겠다. 행정 한류가 새로운 창조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