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인물열전

[주간조선] 박 대통령과 독대 가장 많이 하는 남자 (주간조선 2013.07.19 15:31)

[주간조선] 박 대통령과 독대 가장 많이 하는 남자

박근혜 정부의 파워맨 ③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청와대 조원동(55) 경제수석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차례 청와대 춘추관을 드나들며 기자들에게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던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한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조 수석의 별명은 ‘또와수석’이었다.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춘추관에 나타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그에게 일부 기자들이 붙인 별명이다. 그런 그가 최근 기자들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에는 예고됐던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와 관련한 비공식 브리핑을 20분 전에 취소하기도 했다. 출입기자들에게 가장 많은 취재거리를 던져줬던 조 수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취재원 하나가 사라졌다며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조원동 경제수석이 
정부의 경제전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조원동 경제수석이 정부의 경제전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한 직원은 “현안이 산적해 있어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이나 또 다른 내부 관계자들은 그의 잦은 춘추관 출입을 홍보수석실을 비롯한 다른 수석실에서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청와대 직원들은 공석인 정무수석을 제외한 8명의 수석비서관 중 가장 바쁜 인물로 조원동 경제수석을 꼽는다. 그는 지난 7월 7일 새벽(한국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청와대로 출근해 국토해양부의 보고를 받았다. 경제수석은 국토해양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청와대 수석 중 가장 많은 부처의 업무를 관할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항공기 사고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됐거나 향후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슈들은 대부분 조 수석의 업무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 청와대 경제수석실 직원들의 설명이다. 그동안 정국의 이슈였던 개성공단 정상화, 통상임금, 고용률 등 주요 국정 과제들이 모두 경제수석의 소관이었다. 조 수석은 미리 잡힌 일정이 있더라도 이를 취소하고 청와대로 복귀해 보고를 받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출근은 보통 오전 7시30분에 하지만 요즘은 청와대 내부에서만 일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가는 경우도 부쩍 늘어났다.

수석들 중 대통령과 독대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조 수석이다. 청와대 직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수석비서관이라 해도 박 대통령에게 독대해서 보고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도 어렵다. 조 수석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도 달라지게 만든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한 행정관은 “조 수석을 파워맨으로 꼽는 것도 대통령과 독대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정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에서 조 수석 정도로 박 대통령과 독대하는 인물은 허태열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정도가 있다고 얘기된다.

조 수석이 경제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청와대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동행했던 대기업의 총수 중 몇몇이 국빈 만찬에 빠져서 논란이 있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보면 조 수석이 현 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당시 방중 사절단에 동행했으면서도 국빈만찬에 빠진 기업인은 포스코 정준양 회장, 이석채 KT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등 7명이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외국 방문을 수행하는 기업인 명단은 청와대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국빈만찬 참석 기업인의 경우, 청와대 부속실과 경제수석실이 조율해서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조 수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빠진 기업 중 일부는 조 수석에게 줄을 대 만찬에 참석하려 했다는 말이 재계에 돌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사건은 적어도 재계가 조 수석을 현 정부 핵심 포스트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는 에피소드”라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조원동 경제수석과 관련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부분은 정권이 바뀌어도 승승장구했던 그의 인적 네트워크와 실력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정권의 색깔과 상관없이 주요 요직만을 맡아왔다. 충남 논산 출신인 조 수석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23회 행정고시를 합격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부임지는 경제기획원. 그는 1981년 경제기획원 투자심사국 사무관을 시작으로 1998년 청와대 비서실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17년간 경제기획원(후에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로  이름이 바뀜)에서만 근무했다. 그동안 조 수석은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 경제정책국 조사홍보과 과장 등을 거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공직생활에 이렇다 할 만한 특이점은 없었다. 그의 공직생활에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재정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1998년 4월 청와대에 들어가 1년2개월간 일했다.

당시 조원동씨를 청와대로 끌어들인 것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다. 강봉균씨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던 1998년 2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부임해 1999년 5월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강봉균씨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평소 재정경제원에서 눈여겨봤던 조원동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 과장을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에 대해 강 전 장관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재정경제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잘 알고 있었는데 거시경제 부문에 밝았고, 차분하고 말수가 적어서 함께 일하기에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강봉균 경제수석이 1년3개월 뒤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맡은 업무는 대기업 구조조정. 강 장관은 이때도 조원동 행정관을 재정경제부로 복귀시켰고, 그에게 경제정책국 정책조정심의관을 맡겼다. 구조조정과 관련해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당시 조원동 심의관의 역할과 비슷한 일을 산업자원부에서 했던 한 인사는 “조 수석이 대우그룹과 관련된 일을 비밀리에 진행했는데 이 역할을 굉장히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같은 행시 출신보다 2~3단계 앞서서 승진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대로 조원동씨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재경부 정책기획관, 경제정책국 국장 차관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재경부 내에서는 행시 23회인 조 수석이 19회 선배들보다 먼저 국장급인 정책조정심의관으로 승진한 것은 아직도 전례없는 일로 회자되고 있다. 조 수석 역시 조세연구원장 시절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으로 외환위기 당시 청와대와 재정부에 근무하면서 기업 구조조정 논의과정에 참여했던 일을 꼽은 바 있다.


	지난 6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초선 모임에 초청받아 강의하고 있는 
조원동 경제수석(오른쪽).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 6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초선 모임에 초청받아 강의하고 있는 조원동 경제수석(오른쪽).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조원동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합류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도 중용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스승인 한승수 전 총리와 경기고·서울대 동창인 정두언 전 의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특히 조 수석은 동창이지만 행시 1기수 후배인 정두언씨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수씨 역시 그가 직접 주례를 선 몇 안 되는 제자로 조 수석을 꼽는다. 그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과 사무차장, 조세연구원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두 사람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실 경제수석에 발탁되며 15년 만에 청와대로 복귀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경제수석을 보좌하는 역할이었지만 경제수석이 되어 돌아온 것.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한승수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그를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한승수씨는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육영수씨의 언니인 육인순씨 사위이므로, 박 대통령에게 이종사촌 형부가 된다. 조 수석은 한승수씨가 총리로 일하던 2008년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이런 인연 외에도 그가 조세연구원장 출신의 조세 분야 전문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경제수석으로 발탁됐을 때 관가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과 세원 발굴을 통해 박근혜표 복지공약 재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특히 조 수석이 평소 당장의 증세보다는 비과세 감면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던 것이 박 대통령의 평소 지론과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전직 고위공무원은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승승장구했던 그의 행적들을 중국의 정치인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저우언라이는 중국의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로서 지략이 뛰어나며 당의 지도자가 바뀌어도 그의 지위는 변함이 없어 ‘오뚝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경제수석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우호적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말 없는 참모’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강봉균씨는 주간조선에 “비서가 상관을 잘 보필하기 위해서는 말수가 적어야 하는데 (조 수석은) 그런 점에서 적합한 인물”이라며 “무난하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조 수석은 소신을 잘 바꾸지 않는 강단이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국무조정실에 일하면서 세종시 실무기획단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주도로 세종시 수정을 추진했으나 박 당선인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대선 직전에는 여야 후보들의 ‘대학 반값 등록금’ 공약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는 길을 확대하겠다’(고졸 채용 확대)는 공약을 내걸면서 동시에 ‘대학 진학 비용을 대폭 낮추겠다’(반값 등록금)는 상반된 공약이 나오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발탁됐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다는 조 수석은 아이러니하게도 ‘말’ 때문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몇 차례 있다. 조 수석은 지난 6월 13일 간만에 입을 열었다가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조 수석은 지난 6월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치라는 것도 여러 사람이 여러 정의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좋은 관치도 있을 수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재무관료 출신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와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의 선임과 이장호 전 BS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퇴진 요구 등으로 불거진 관치 논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방미 중에는 국내에서 논란이 극심했던 통상임금 문제를 끄집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측 GM 댄 애커슨 회장의 통상임금 민원을 들은 박 대통령이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는 사실을 수행기자단에 자진신고한 것. 국내에서 노사가 정면충돌하는 민감한 경제현안을 미국에서, 그것도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와 공개하면서 “설화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일각에선 “조 수석이 의욕이 넘쳐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며 ‘입조심’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 수석이 공직자보다는 학자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호기심도 많고 다방면에 능통해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기 때문에 속도감이 없다는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조 수석 등 현 정부의 경제 지도자들이 속도감이 너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