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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비밀어찰로 정조실록·승정원일기 타격 (조선일보 2009.02.11)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역사학계 곤혹”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299통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그랬을 것이라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었던 일이 정말로 그랬다”는 것으로 드러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막후 정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막후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이번 정조어찰은 그런 점에서 핵폭탄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했으며,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비밀편지가 공개됨으로써 가장 크게 타격을 본 곳은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던 측이라기보다는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조실록 1797년 10월7일 기록을 보면 우참찬 심환지가 정리곡.. 더보기
`정조 독살설(說)은 시골서 떠돌던 야담(野談)`(조선일보 2009.02.11) 학계, 대중문화계 '음모론' 일관되게 비판해 와 일부 "심환지에게 편지 썼다고 가깝다 볼순 없어"정조가 노론 벽파(僻派)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이 공개되면서 '정조 독살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조가 자신을 독살한 것으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여러 차례 병세를 알리고 의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살설은 일단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조 독살설'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은 정조가 개혁 반대세력인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음모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은 마흔여덟 한창 나이인 정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남인 일부 사이에 퍼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은 1990년대 100만부 넘게.. 더보기
정조(正祖)의 두 얼굴 (조선일보 2009.02.10) 세종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 명군(名君)으로 꼽히는 정조의 젊은 인재 사랑은 유별났다. 조선 후기 개혁과 문예중흥의 산실이 된 규장각을 설치,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등 준재들을 불러모으고 '객래불기'(客來不起·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아라)라는 현판을 직접 써주었다. 아무리 권세 있는 신하라도 함부로 와 간섭할 수 없도록 보호하고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이런 정조가 젊은 학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들의 문장이 순정(純正)한 격식에서 벗어나 시정잡배의 글을 닮아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덕무 박제가 따위는 그 문체가 완전히 패관(稗官) 소품에서 나왔다. 이들은 처지가 남과 달라(서얼 출신) 이런 문장으로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정조는 박제가에겐 반성문까지 쓰게 했다. 표암 강세황의 손자 강이.. 더보기
이덕일 `편지공개로 정조 독살가능성 더 높아져`(조선일보 2009.02.10)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10일 조선 후기 개혁군주로 꼽히는 정조가 자신과 대립각을 세웠던 노론 벽파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이 공개되면서 ‘정조독살설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에 대해 “오히려 정조의 독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소장은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정조가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을 보면 상당히 깊은 이야기까지 오고 갔는데 왜 정조는 자기 자신이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체제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소장은 “암살이나 독살은 항상 최측근에서 믿는 사람한테 나오는 것이지 아주 반대 사람한테 나오지는 않지 않냐”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