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화를 낸 까닭
이같은 장자의 사상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다. 한 때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장자는 이를 사양하고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현세와의 타협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이렇듯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즐겼던 사람이었지만 장자도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집에 식량이 떨어진 장자가 지방장관격인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감하후는 “장차 내 봉읍(封邑)이 나오면 그것을 받아서 삼백금쯤 빌려 주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장의 끼니가 급했던 장자는 “오는 길에 보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물에 있던 붕어가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살려 달라기에 지금 남쪽 오(吳)나라나 월(越)나라로 가서 강줄기를 터 너를 맞아가겠다 하자 붕어가 말하기를, 저는 단지 한 되쯤 되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의 말대로라면 일찌감치 건어물(乾漁物)가게에서 저를 찾으라 하더라”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장자의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얘기다. 외물편에 보면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있는 붕어의 급함”이란 의미로 ‘철부지급( )’이라는 고사성어가 전해진다. 철부지급은 위급한 경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을 비유할 때 종종 인용되는 말이다. 무위자연을 주장했던 장자도 멀리서 해결책을 찾지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오는 7월 1일이면 민선5기가 출범한다. 이들은 ‘행복한 강원도’ 혹은 ‘모두를 위한 교육’ 등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출발선에서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강원도로서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여 자칫 너무 멀리만 보다가 장자도 화를 냈던 ‘철부지급’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기에 꺼내 본 얘기다. |
(문화일보 2010년 12월 30일(木)
제목을 ‘바보 송’이라고 하니까 대뜸 바보나 얼떨리우스에 관한 우스개 노래가사인가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기의 송은 영어 Song이 아니라 나라 송(宋)을 말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는 늘 바보 취급을 받아왔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 사람으로 밭을 가는 농부가 있었다. 밭 가운데에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토끼가 달려가다 그루터기에 걸려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러자 농부는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가 걸려들기만 기다렸다.”
맹자(孟子)도 송나라 사람을 비웃었다. “어느 농부가 자기 집 논의 벼가 이웃집 것보다 더디 자라는 것을 보고는 살짝 묘(苗)판의 벼 싹을 뽑아 올렸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나가보니 묘 싹들이 무참하게 시들어 있었다.”
장자(莊子)에는 어리석은 장사꾼 이야기가 있다. “송나라 사람이 갓을 장사 밑천으로 장만해 월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을 하고 있어 갓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바보 송의 압권은 역시 송양지인(宋襄之仁)일 것이다. 송나라 양공이 초나라와 싸울 때 먼저 강 저쪽에 진을 치고 있는데 초나라 군사가 뒤늦게 강을 건너고 있었다. 부하들이 적군이 강을 반쯤 건널 때 치면 이길 수 있다고 권했다. 그러자 양공은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라며 초 군사들이 다 건너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결과 송나라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는 고사(故事)로 십팔사략에 나온다.
왜 하필 어리석은 자는 모두 송나라일까. 좋게 말하면 브랜드 효과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낙인찍기다. 요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바로 송나라 신세다. 요리조리 기피하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풍문 탓에 ‘행불 상수’로 불리더니 얼마전에는 ‘보온 상수’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쯤되면 이미 브랜드급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엔 반(反)성형수술의 깃발을 내거는 바람에 ‘자연산 상수’로 통한다.
사실 송나라 사람 모두가 얼떨리우스 취급당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중국 역사상 희대의 천재인 장자도 송나라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상수 대표도 내심은 꽤나 억울한 심정일 것이다. ‘왜 그래~ 나 서울 법대 나온 남자야!’
학철부어(涸轍鮒魚)와 역주행 정권의 서민정책
(미디어스 2009.09.23 11:09:19)
[철학으로 세상읽기]이쯤 되면 장자도 울고 간다
중국 고대의 철학자 장자는 당시 난무하던 궤변론자들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마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자들’이라 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럴싸한 말로 거짓을 감추는 궤변은 순진한 사람들을 현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이 나라에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어 장자의 비판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 장자(莊子) | ||
먼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명제로 “오늘 월나라로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말은 되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장자 또한 이 명제를 두고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고 우기는 오류’라고 규정하고 고대의 성인 우임금이 나타나도 이런 사람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와 비슷한 명제로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이 “나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시간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잘게 나누어 흐름을 정지시켜 버리는 궤변인데, 장자가 지적한 궤변은 시간을 아예 거꾸로 돌리는 역주행 궤변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 그런 일이 실제로, 그것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믿겠는가.
예컨대 ‘녹색성장’이라는 형용모순의 기치 아래 MB정부가 추진하는 대운하 또는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를 들여다보자. 이들은 “운하를 만들어 배를 띄우면 물이 깨끗해진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더욱이 수량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물을 가두어 두는 보를 수십 군데 설치한다는데 아무래도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싶다. 아마 이들이 강이 아니라 산에 손을 대면 “나무를 베어내면 공기가 맑아진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작은 것을 크다 하고 큰 것을 작다 한다
▲ 112층 제2롯데월드 조감도.ⓒ 롯데 | ||
장자는 또 “흰 말은 말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궤변론자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일도 이 나라에서는 “위장전입은 범법행위가 아니다”라는 말로 간단히 대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장자는 “혁대 고리를 훔치면 사형당하고 나라를 훔치면 제후가 된다”고 당시의 세태를 비판했는데 이 말도 이 나라에서는 그대로 통한다. 최근 고위 공직에 추천된 이들의 행적에서 드러난 공개된 불법행위를 보면 이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고위직에 추천되려면 큰 죄를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할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총리지명자를 비롯하여 법무장관, 대법관, 검찰총장 내정자 등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사람들이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SBS 방송사의 토론에 참여한 보수논객들은 도리어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헐뜯기로 흘렀다고 비난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가 하면 아예 위장전입 정도는 문제 삼지 말자고 대놓고 불법 옹호 발언을 내 놓기도 한다.
이쯤 되면 패러디의 대가인 장자도 울고 가지 않을까 싶다.
▲ 안동지역 낙동강 둔지 정비 사업 현장. ⓒ 초록의공명(지율) | ||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은 말라가는데
게다가 최근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서민행보’를 보고 있자니 장자의 우화 한 토막이 더 생각난다. 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장자가 바쁜 일이 있어서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돌아보았더니 수레바퀴 자국 물 고인 곳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다.
장자가 이렇게 물었다.
“붕어야. 붕어야. 거기서 뭐하니?”
장자를 본 붕어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길손! 여기 물 한 바가지만 부어주시오. 그러면 내가 살 수 있겠소”
장자가 살펴보니 물은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당장 도와주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빴던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내가 지금은 바빠서 도와줄 수가 없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내가 사실은 오나라 왕을 만나러 가는데 일이 잘 되면 오나라 서강의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해서 그대를 맞이하겠네. 그러면 되겠지?”
붕어는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몸 둘 곳이 없어져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당신은 먼 훗날의 강물을 말하는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일찌감치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아보는 게 빠를 게요”
사실 장자의 이 이야기는 장자 스스로 배가 고파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가 거절당한 이야기를 빗댄 것으로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 안의 붕어’라는 뜻인 ‘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된 고사성어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신세가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둘러보다가 상인들이 대형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자 그들에게 농산물 직거래와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야후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하고 각종 경기지표를 들면서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학철부어’의 신세에 놓인 서민들에게 그런 지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게다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자는 사탕발림은 옛날 독재정권이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40년도 더 된 버전이다. 그러니까 개발 독재가 한창이던 70년대에도 재무장관이니 국무총리니 하는 이들이 나서서 우선 대기업에 혜택을 주어서 파이를 크게 한 뒤에 분배를 하는 것이 나라 전체를 위해서 옳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동안 참고 또 참아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던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국가경쟁력 운운하며 아직도 분배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체 몇 년이 지나야 분배에 적당한 시기가 도래할까. 그리고 파이를 얼마나 크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이 나라의 경제가 성장한다면 반가워할 일이다. 문제는 그 사이 마실 물조차 없는 서민들이 지금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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