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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로 필/칼 럼

[삶의 향기] 한국 정치엔 유머가 없다 (중앙일보 2012.12.18 00:44)

[삶의 향기] 한국 정치엔 유머가 없다

 

조화유
재미 칼럼니스트·소설가

지지율 1% 내외의 여성 후보가 잘못 만들어진 공직선거법 때문에 대선 후보 TV토론에 끼어들어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여성 후보에게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반드시 떨어뜨리고 말겠습니다”라며 오만불손하게 대드는 장면을 보고 정말 놀랐다. 한국 정치판이 어쩌다 이 정도로 살벌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이 투표일을 10여 일 앞두고 NBC TV 심야 토크 쇼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인 커미디언 제일 레노는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부동산 재벌 다널드 트럼프가 오바마의 대학입학지원서와 성적표, 그리고 여권발급신청서를 공개하면 오바마가 지정하는 자선단체에 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트럼프와 나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린 어릴 때부터 자주 다투곤 했답니다”라는 조크로 트럼프의 제안을 일소에 부쳤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치에는 유머가 있다. 1984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했을 때 나이가 73세였다. 5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상대 후보 먼데일 전 부통령은 TV토론에서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 삼았다. 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후보의 나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조크로 역공했다. 정책 대신 대통령의 나이를 걸고 넘어진 먼데일은 자기 출신 주를 제외한 나머지 49개 주에서 완패하는 치욕을 당했다.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링컨은 가장 유머가 있는 대통령이기도 했다. 링컨은 정적을 공격할 때도 조크를 했다. 젊은 변호사 링컨이 하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였다. 정견발표회에서 상대 후보는 링컨이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청중을 향해 “여러분, 천당에 가고 싶은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라고 소리쳤다. 물론 모두들 높이 손을 들었으나 링컨만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자 그 후보는 “미스터 링컨, 당신은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럼 지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오?”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링컨은 빙긋이 웃으며 “천만에요. 나는 지금 천당도, 지옥도 가고 싶지 않소. 나는 국회로 가고 싶소!”라고 응수해서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자기 연설 차례가 되었을 때 링컨은 “나의 상대 후보는 피뢰침까지 달린 호화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벼락을 무서워할 정도로 죄를 많이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조크를 해서 또 청중을 웃겼다. 물론 링컨은 당선되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정치인은 매력이 없다. 그래서 미국 정계에서 출세를 하려면 조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96년 1월 23일 클린턴 대통령이 국회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할 때였다. 클린턴은 연설을 하기 위해 상원-하원 합동회의 의장단석 밑에 마련된 연단에 오르자마자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뒤에 앉아 있는 깅그리치 하원의장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본 깅그리치는 웃음을 터뜨리며 뭔지 한마디 했고, 클린턴 대통령도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국정연설을 시작했다.

 클린턴이 준 종이에는 ‘State of the Union. Thank you and good night(국정연설문.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한다. 바로 전날 깅그리치 하원의장(공화당 소속으로 클린턴의 최대 정적이었다)은 한 기자로부터 “클린턴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무슨 말을 듣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고 “연설은 그만두고 인사만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했었다. 이것을 클린턴이 전해 듣고 깅그리치의 말을 그대로 쓴 가짜 연설문 원고를 그에게 주었고 깅그리치는 웃으며 “이것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겠습니다”라고 대꾸했던 것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한국에서는 언제나 이런 유머 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한국 정치가 살벌하고 잘 풀리지 않는 건 유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어속담에 ‘Laughter is the best medicine(웃음이 최고의 약이다).’이라는 게 있다. 웃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한국도 이제는 좀 웃으면서 정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 화 유 재미 칼럼니스트·소설가

 

 

유머가 이긴다

(법률신문 2012-11-01)

 

얼마 전에 조찬 모임인 이비엠(EBM) 포럼에서 ‘유머가 이긴다’의 저자 신상훈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역시 유머 전도사답게 강의 내내 참석자들에게 웃음꽃을 담뿍 선사하였다. 신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유머는 필수적인 것이고, 또한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하고 소통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유머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치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유머가 뛰어난 분에 누가 있었던가? 과문한 탓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외국에는 ‘유머 정치인’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에 링컨과 처칠이 있지 않은가?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 때 상대 후보인 더글러스가 자신을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하자, 내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 같이 중요한 날 왜 이런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냐고 유머로 응수하였단다. 처칠도 하원의원 선거 때 상대 후보가 늦잠꾸러기인 게으른 사람을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냐고 공격하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청중들을 향해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아내와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고 하여 연설장에 폭소가 터지게 하였단다. 처칠은 이 유머의 후속탄을 총리로 있을 때에도 써먹었다. 한번은 처칠이 국회에 늦게 도착하여 의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그래서 앞으로는 회의가 있는 전날에는 아내와 각 방을 쓸 생각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처음 처칠이 늦게 나타났을 때 의원들 중에는 ‘처칠이 우리를 무시하나’ 하며 불쾌하게 생각한 의원도 있었겠지만, 처칠의 이런 유머 한 방으로 그런 불쾌감은 싹 날아가고, 그 날 회의는 훈훈한 가운데에서 진행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인신공격이 난무하지만, 이를 멋진 유머로 받아쳤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국회 석상에서도 살벌한 얘기가 오간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처칠이나 링컨과 같은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정치인이 있었다는 얘기 또한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정치인이 없을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엄숙한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살벌한 당쟁정치의 유산이 아직도 남아서일까? 다행히 최근 유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신상훈 교수는 유머 감각은 선천적으로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연습과 노력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세 분의 대통령 후보가 한창 대권고지를 향해 뛰고 있다. 마침 미국도 오바마 후보와 롬니 후보가 차기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대결을 벌이고 있는데, 가시 돋친 설전뿐만 아니라 뉴욕의 어느 자선 만찬에서는 유머 대결도 펼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분의 대통령 후보가 멋진 유머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나라도 링컨이나 처칠처럼 유머로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소통시키는 정치인, 국회의원, 대통령을 보고 싶다.

 

 

노무현과 나꼼수는 왜 실패했을까?

 (빅뉴스 2012-12-19 오전 8:12:14)

사람이 먼저다? 아니, 사람이 문제다!

 

18대 대선 후보가 내세운 표어 중에서 재미있는 게 있다. 문재인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택에 임한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먼저다’가 아니라 이와 묘한 라임을 가진 ‘사람이 문제다!’가 훨씬 어필할 것 같다. 즉 대통령이 될 사람의 소양이 향후 한국 사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권후보 주위에 포진한 사람들의 이념 성향이나 소양도 중요한 판단요건이 된다.

노무현은 왜 실패했을까? 필자가 보는 근본 이유는 단 한가지! 참여정부인사들이 국민을 따르려 하지 않고 감히 국민을 가르치고 선동하여 이끌려고 했다. 이들은 88올림픽을 이어 2002월드컵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인의 수준을 너무 낮게 평가했다. 이에 비해 권력을 쟁취한 자신들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지독한 오만이었고 그 대가는 시간이 확인해 줄 문제였다. 자멸! 5 년 후 그들은 스스로 폐족이라 하면서 무대 뒷편으로 밀려 났다. 노무현의 자살이라는 반전요소가 없었다면 이들은 이름 그대로 폐문당한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한국 미디어계에서 나꼼수도 이런 오만과 착각 속에서 자멸해 갔다. 참여 정부와 나꼼수 둘 다 몰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건 스스로에 대한 주제파악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을 설정해 두고 “저 놈 = 나쁜 놈!”이라고 줄창 외치고 삿대질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정작 자신들을 평가하고 냉정하게 저버릴 주체가 ‘저 놈’이 아니라 ‘국민’임을 잊고 있었다. 국민이 원하는 건 욕이나 삿대질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아까운 시간에 그들이 열심히 일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를 바랬다. '욕'하기보다는 '일'하기를 원했고 과거에 삿대질하기 보다는 그 손가락으로 미래를 가리키길 원했다. 나꼼수는 비키니녀 논란에서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였다. 심지어 ‘사과는 배신‘이라면서 '너꼼수'까지 부리다가 결국 대중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이들은 국민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 졌는지 모르고 있다가 저버림을 당한 것이다.

맞담배와 금연 – 과거와 미래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실패하리라는 건 한 신문기사에서도 예감했다. 당시 필자는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 있었는데 사진에 나온 날짜를 보니 2003년 3월경으로 참여정부 출범 초기였다. 기사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들과 맞담배를 피운 걸로 이른바 권위주의 청산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다. 한데 문제는 이 컨셉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뒷북치기’였다는 점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웰빙 열풍이 불어 국민건강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 금연을 선도해야 할 때였는데 최고의 정치 세력이 뜬금없이 맞담배를 들고 나오다니 그걸 보는 순간 머리가 ‘띵!’ 하고 아팠다. 그들이 권위주의 청산을 홍보 컨셉으로 들고 나온 건 시선이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시대착오 증세였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권위는 이미 땅바닥에 추락해 있는 시대였다. 또한 국민들은 그런 영양가 없는 사안보다는 ‘건강 100세’를 하겠다고 금연운동을 하는 등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참여 정부는 과거사 청산, 친일청산 등 과거에 매달리다 에너지를 소진하고 끄진 불꽃처럼 사그라져 갔다.

한국 사회에서 권위가 와르르 무너진 건 이미 80년대로 참여정부 출범보다 무려 20년 앞 서 있었다. 전두환을 전대머리로 불렀고 87년 대선 후보 1노 3김 중에 노태우를 노가리, 김영삼을 영새미, 김대중을 김돼지 등으로 막 불러제끼던 때였다. 70년대 박정희를 박통이라 부르고 비아냥대는 명칭은 아예 없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엉첨난 차이였다. 80년대는 어용교수 논란으로 대학 교수의 권위가 추락했고 90년대에는 초·중·고 교사의 교권마저 붕괴되어 오히려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걱정되는 시대였다. 또 각종 인터넷 미디어의 부상과 함께 사회 전 분야의 권위가 날개 없는 추락을 했다. 그런데 21세기에 출범한 정권이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뒷북이나 치면서 흥행에 성공하려고 하다니 참 어이상실이었다. 지금도 참여정부의 공적으로 '권위주의 청산'을 들고 있는데 이건 사실 시대착오적인 일을 한 것으로 따져보면 사회에 진짜 필요 한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환호할 사람들은 철없는 10대~20대들 정도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747 공약이라도 기억나지만 참여정부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 자체가 없었다.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모여 무능한 정치를 하다가 마지막엔 지지율 2%까지 내려가고 폐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역사상 최대의 표차이인 500만표 차이의 성적표를 남기고 사라졌다.

프레임, 스타일, 패러다임

누가 당선되든지 간에 다음 정부는 참여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럴려면 일단 국민이 뭘 원하는지 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나꼼수는 프레임보다 강한 게 스타일이라며 이른바 '스타일 예찬론'을 펼치고 있었지만 기실 대중은 더 높은 단계로 진화된 ‘패러다임’의 차원에서 놀고 있었다. 대중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데 일방적인 주입식 마타도어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나꼼수 방식이 외면 받은 것도 대중과 나꼼수의 수준차이에서 오는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대중이 나꼼수보다 훨씬 수준 높았다. 나꼼수의 착각 또한 그들이 주제파악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나꼼수는 자신들의 저질 흑색선전이 곧장 네티즌들이 찾아낸 팩트들에 의해 낱낱이 반증될 수 있는 시대임을 몰랐다. 이는 곧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고 몰락을 자초했다. 공지영의 멘붕사건 또한 궁긍적으로 대중과의 수준차에서 비롯되었다. 대중이 공지영보다 수준이 더 높은 데 공지영만 착각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기능인으로서 글 잘 쓰는 것과 개인의 소양 수준은 별개의 문제 아닌가? 나꼼수의 몰락은 나꼼수 리더의 소양의 문제에서 온다. 문재인이 내세운 ‘사람이 먼저다’ 라는 표어가 있지만 실상 많은 문제는 ‘사람이 문제다!’ 라는 시각에서 보아야 정답이 나오는 법이다.

소양과 순수함

노무현은 과연 권위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적 소양이 넘치는 사람이었는가? 전혀 아니다. 그는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온 국민이 보는 공중파 토론에서 “이쯤하면 막가자는 것이죠?” 라며 윽박지른 사람이다. ‘지금 막가자는 것이냐?‘는 절대로 약자가 강자에게 할 수 있는 화법이 아니다. 이 말은 힘 쎈 자, 권력을 가진 자만이 상황을 중단시키고 자기 보다 약한 자를 그 힘으로 눌러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평검사와 대통령의 간격처럼 권력이 월등한 자가 민주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토론이 자신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는다 해도 절대로 이런 화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문화적 소양까지 갖춘 권력자라면 이런 경우 고도의 유머를 동원하여 위기를 돌파하거나 분위기를 부드럽게 전환시킬 줄 안다. 필자가 아는 한 노무현 전대통령은 단 한번도 말로서 국민을 파안대소하게 하거나 심지어 빙그레 미소 짓게 한 적도 없다. ‘지금 막가자는 것이냐‘ 할 때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일순 싸늘해지고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그건 수준높은 권력자의 탁월한 유머감각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다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깽판쳐도‘, ’NLL은 땅따먹기 줄긋기‘ 등의 화법에서 평가할 수 있는 건 국가 리더로서의 소양의 정도지 결코 순수함이 아니다. 소양과 순수함, 이 둘은 차원과 범주가 전혀 다른데 많은 사람들이 혼돈하고 착각했을 뿐이다. 정제되지 못한 막말이 순수함의 증거라면 조폭이 가장 순수할 것이다. 노무현의 NLL 논란에서는 전 국정원장조차도 국격의 품위를 논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이 유머감각을 갖춘 리더였다면 결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도 노무현의 순수함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순수함은 리더의 자질이나 소양으로는 함량미달이고 국가 외교까지 좌우하는 대통령이라면 오히려 위험요소다. 적어도 별개의 차원인 것은 자명하다. 노무현이 존경한 링컨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이 뛰어났지 순수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

노무현의 넘사벽 워너비 링컨 대통령

노무현이 존경했다는 링컨의 경우를 보자. 링컨의 정적인 더글러스 의원이 링컨을 보고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했다.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응수했다.

"더글라스가 저를 이중인격자라고 하는데, 제가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처럼 중요한 날 이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대중은 링컨의 여유 있는 유머에 파안대소했다. 링컨은 노무현 전대통령으로서는 넘사벽 차원의 ‘워너비’였을 뿐이었다.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미대통령은 저격을 당하고 병원에서 몸에 박힌 두 개의 총알을 꺼낸 후 급히 달려 온 낸시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유머 또한 너무나 유명하다.

“여보, 영화인 줄 알고 몸을 숙이는 걸 깜박했어!”

낸시 여사는 남편을 참 잘 얻었고 미국인들은 정말 멋진 대통령을 가진 것이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부흥시켰다.

노무현은 고도의 유머감각 대신 똘똘 뭉친 결기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 점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이 점 때문에 가장 많이 이용당했고 또 이 점이 그를 사지로 몰아 넣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노무현이 링컨이 가진 자질과 소양의 1/10 이라도 가졌던들 한국과 노무현 둘 다 훨씬 행복해졌을 것은 확실하다.

현명한 선택

조직의 성취도를 높여 발전하려면 일부러 스펙이 좀 낮은 지원자를 뽑아서 ‘낮은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알려주면 효과적이라고 한다. 물론 이 사실을 반드시 그 대상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향후 5년을 좌우할 두 대권후보는 공통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안고 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독재유산, 그리고 문재인은 실패한 참여정부의 유산이 그것이다. 어느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국민이 이 두 후보의 약점을 잘 알려 준다면 대한민국이 더 발전할 모티브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필자는 누가 이기든 박빙으로 이기는 게 우리 한국인들의 미래에 좋다고 본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한국은 역대 대통령들 중에 링컨처럼 유머감각을 가진 대통령을 키워내지 못했다. 2012년 12월 19일 대선의 향방은 크게 두 사람으로 압축되었다. 기호 1번 박근혜와 기호 2번 문재인. 누가 당선되든 간에 향후 5년간 우리 한국인은 대통령으로부터 웃음을 몇 번이나 선사받을 수 있을까? 다행히 이번 대선에서 똘똘 결기로 뭉쳐 투쟁하자는 정치가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그렇다. 혹시라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후보가 나왔다면 그는 국민평균수준보다 소양이 한참 아래에 있기에 냉정하게 배척당했을 것이다. 차라리 허경영이 그립다. 무정당 무이념의 안철수가 대중의 인기를 끈 것도 이를 반영한다. 또 모든 후보가 동일하게 복지를 내세운다. 그럼 어느 누가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잘 구현해 낼 것인가? 투쟁보다는 화해, 그리하여 행복, 이게 관건인 것 같다. 향후 한국 사회의 행복을 위해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 김휘영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