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관계/중 국

`사발주 마시면 사주마`에 원샷 이틀 기절 (주간조선 2010.01.30 10:06)

"사발주 마시면 사주마"에 원샷 이틀 기절… 머리맡엔 계약서

입력 : 2010.01.30 02:56 / 수정 : 2010.01.30 10:06

우린 이렇게 뚫었다 / 두산 인프라코어
2008년 '쓰촨 대지진'때 굴착기 제일 먼저 지원…'어려울때 돕는 기업' 심어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이 발생하자 신속한 피해 복구가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고마쓰·히타치 등 굴착기 업체들은 수십대씩 굴착기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두산 인프라코어 중국법인의 김동철(金東喆·57) 법인장도 굴착기 지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진으로 쓰촨성으로 가는 길이 무너져 외부에서 보낸 굴착기가 현장에 도착하려면 몇 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경쟁사보다 빨리 지진 현장에 굴착기를 투입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김 법인장의 머리에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쓰촨성 지역의 대리점들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두산 굴착기 보유자가 쓰촨에서 지진 피해 복구를 하면 굴착기 임대료와 인건비·부품값·기름값 등 모든 비용을 지원하겠습니다. 두산 굴착기를 구매한 분들에게 빨리 알려주세요." 그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몇 시간 만에 270여대의 굴착기가 지진 현장에 모여들었고, 복구 현장을 중계하는 중국 방송에 두산 굴착기가 가장 먼저 등장하게 됐다. 두산은 적극적인 지진 복구 노력으로 '어려울 때 발벗고 돕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중국 옌타이 두산 인프라코어 공장에서 생산된 굴착기가 트레일러에 실려 출하되고 있다. / 두산 인프라코어 제공

지진 현장에 가장 먼저 굴착기를 보낸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발로 뛴 김 법인장의 영업 현장 경험과 인간관계에서 나왔다. 그는 1993년 10월부터 중국 굴착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1년간 중국어 연수를 받은 5명의 동료들과 함께였다.

회사(당시 대우중공업)는 그들을 '무빙 브랜치(Moving Branch·움직이는 지사)'라 불렀다. 사무실 없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선 영업맨을 부르는 말이었다. 1993년 초에 설립된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 굴착기 공장은 2년 후에 첫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제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굴착기 그림 한 장만 들고 무작정 영업 전선에 나섰다.

아직 생산하지도 않는 제품을 놓고 대리점과 납품계약을 맺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중고 기계 대리점과 건설 현장이었다. 김 법인장은 "보는 사람마다 제품 그림을 보여주며 '우리가 곧 이런 제품을 만들 예정이니 구입해 달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처음엔 정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동료 영업맨 중 한 사람은 이런 일도 겪었어요. 굴착기 사달라고 찾아가니 큰 사발에 배갈(고량주)을 가득 부어놓고 '이거 두 잔 마시면 제품구매 계약서에 서명해 주겠다'고 하더래요. 억지로 다 마시고 나서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그 사이 이틀이 지났더래요. 하지만 그 친구는 머리맡에 서명이 된 계약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더군요.

김 법인장은 "이런 식의 영업을 꼬박 6년을 하고 나서 2000년에야 공장이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옌타이 공장이 중국에 진출한 외국 중장비 업체로선 드물게 100% 한국법인이 출자한 회사여서, "중국에서 번 돈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간다"는 오해를 받기 쉬웠다. 이런 오해를 사전에 불식(拂拭)시키기 위해 중국에 학교를 지어주는 사업을 펼쳤다. 현재까지 중국 전역에 23곳의 '두산희망소학교'를 설립했고, 3곳은 짓고 있다.

두산 굴착기는
일본 고마쓰와 연간 100여대 정도의 차이로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2001년 이후 두 번을 빼고는 중국 시장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작년에도 1위를 지켰다. 김 법인장은 "중국은 크고 작은 토목공사가 잇따르고 있어 굴착기 수요는 계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