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애국과 함께 기다려지는 봄 |
입력시간 : 2011. 02.18. 00:00 |
올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오고 있다. 1월에는 서남부 지역을 온통 설원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2월 들어서는 동남부 지역에 눈폭탄 세례를 퍼붓고 있다.
그래도 계절은 어쩔 수 없는지 남도 산녘에서는 고로쇠 수액 채취가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눈 덮은 대지를 뚫고 홍어애국을 끓일 파릇파릇한 보리가 수 놓을 것이다.
지금이야 쾌속선으로 두어 시간 남짓 뱃길이면 갈 수 있는 흑산도지만 예전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뜸 했던 궁벽한 섬, 정약전의 유배지, 섬 전체가 검게 보인다 해서 이름 붙혀진 흑산도를 상징하는 홍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옛 이야기를 보면 고려시대 항몽 삼별초, 그리고 왜구들의 잦은 침략으로 섬을 비워두도록 한 공도령(空島令)으로 흑산도 앞섬인 영산도 사람들이 지금의 나주 영산포로 집단 이주해 그 지명을 영산포로 불렀다. 이들이 해마다 고향을 생각해 홍어를 잡아 영산포로 실어와 팔았는데 뱃길이 멀어 오는 동안 저온ㆍ저장방법이 없어 자연발효돼 삭은 홍어가 되었다. 그래서 홍어축제가 열리는 영산포 홍어는 신선한 것보다는 삭힌 홍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홍어는 왜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아니 할까? 홍어의 몸 안에 있는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고 산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대장균이나 식중독균 같은 부패세균은 사라지고 몸에 좋은 성분만 남게 되기 때문이란다.'자산어보'에 삭힌 홍어는 배앓이와 취기, 주독을 풀어 주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감기와 관절염, 기관지 치료에도 도움을 주고 뱀이 물린 자리에 홍어 껍질을 붙이면 좋은 효험을 본다고도 전해 온다.
남도의 음식을 대표하는 삼합은 잘 삭힌 홍어와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 그리고, 묵은 김치에 막걸리를 더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식단이 꾸려진다. 이밖에도 홍어는 회, 무침, 전, 구이, 육포, 죽 등 다양한 변신을 통해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데 일년 중 입춘 전후에 잡힌 것이 가장 살이 찌고 맛이 뛰어나다. 홍어의 맛은 최고가 코 부분이고 그 다음이 날개, 세번째가 꼬리이며, 고소한 애(간)는 하도 맛이 좋아 영순위란다.
사실 홍어는 바다 밑에 사는 저서어류로 오늘날의 최첨단 장비인 어군탐지기 등으로도 식별이 어려워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비유 된다. 홍어를 신안지역 근해연승 어선이 7척이 잡고 있는데 그 비결은 흑산 지역에서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뱃사람들의 숨은 지혜와 오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홍어자원은 한정돼 있고 그 맛 또한 외국의 수입산과 비교할 수 없어 몸 값이 3배 정도 비싸다. 이 귀한 홍어를 마구 잡아버리면 몇 년 후에는 어류도감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부도 금년에는 전국어획량을 230톤으로 정하고 그중 85%인 195톤을 전남지역 어선이 잡도록 총 허용 어획량(TAC)제도를 시행한다. 홍어잡이 어업인들도 홍어자원 회복을 위한 표지방류 지원 봉사단을 발족하여 자원을 계속 보호하면서 어획을 하는 자율어업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남도의 들녘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보리로 녹색 융단이 펼쳐 질 것이다. 보리의 여린 싹과 홍어애를 넣어 함께 끓인 홍어애국을 세 번만 먹으면 한겨울 강한 추위와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나돈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새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인곤 전남도 해양수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