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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시진핑의 ‘中國夢’ 2021년 모습 드러난다” (주간조선 2013.09.16)

“시진핑의 ‘中國夢’ 2021년 모습 드러난다”

시진핑의 중국 1년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본 중국의 꿈

 

▲ ‘중국의 꿈-시진핑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 펴낸 조영남 교수.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오는 11월 중국공산당 제18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8기3중전회)가 베이징에서 열린다. 18기3중전회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18기3중전회 개막을 앞두고 ‘중국몽’을 우리 시각에서 해석한 책이 나왔다. 조영남(48)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중국정치)가 낸 ‘중국의 꿈-시진핑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민음사)다.
   
   세간에는 “시진핑의 ‘중국몽’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나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만큼이나 모호한 정치 슬로건”이란 우스갯소리도 있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전임 중국 지도자들의 슬로건은 어느 정도 구체성이 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장쩌민의 ‘3개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중국몽’은 시진핑의 모호한 표정만큼이나 불분명하다는 것이 중국 연구자들의 대체적 평가다. 지난 9월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조영남 교수는 ‘차이니즈 드림’으로 번역되는 ‘중국몽’을 ‘아메리칸 드림’과 비교해 설명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정리되는 중국몽은 ‘아메리칸 드림’을 염두에 두고 등장한 개념이고, 기존의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중국식 민족주의를 뜻함)’와 ‘유가(儒家)사상’을 결합해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했다.
   
   조영남 교수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중국 베이징(北京)대 현대중국연구센터와 톈진(天津)의 난카이(南開)대, 하버드-옌징(燕京)연구소의 방문학자로 해외에서 연구를 했다. 베이징대와 난카이대는 중국의 ‘8대 명문’에 속하는 학교이고, 하버드-옌징연구소는 중국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자랑하는 미국의 중국 전문연구기관이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에서 ‘중국몽’의 내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라며 역사적 근원을 설명했다. 물론 19세기 당시 ‘중국몽’이란 단어 자체가 나온 것은 아니다. ‘부국강병의 꿈’, 즉 ‘강국몽(强國夢)’이란 형태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중국몽’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편전쟁(1840년) 이후 일어난 양무(洋務)운동(1861년), 변법자강운동(1898년), 신해혁명(1911년)이 ‘강국몽’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과 시기가 비슷한 셈. 조 교수에 따르면 ‘아메리칸 드림’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원래 ‘기회의 땅’이란 뜻의 아메리칸 드림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거치며 소련에 맞서는 ‘자유의 땅’이란 뜻이 더해졌고, 마틴 루서 킹 목사를 통해 ‘인권의 땅’이란 뜻이 가미되며 오늘날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형상화됐다.
   
   물론 ‘중국몽’과 ‘아메리칸 드림’ 양자 간의 주체는 천양지차다. ‘아메리칸 드림’의 주체가 일반인이라면, ‘중국몽’의 주체는 ‘관(官)’이다. 시진핑이 지난해 11월 18차 당대회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이란 취지로 ‘중국몽’이란 단어를 거론한 직후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광명일보(光明日報) 등은 ‘중국몽’에 관한 각종 사설과 기사를 쏟아냈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몽은 일종의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중국몽’의 총괄기획자를 왕후닝(王滬寧)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후닝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이자 중앙정책연구실(당 싱크탱크) 주임으로, 중국공산당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이론가)’다. 상하이 푸단(復旦)대 법학원장 출신으로 일찍이 ‘신(新)권위주의론’을 주창하며 중국공산당의 최대 당면과제로 ‘부정부패’를 지목했다. 장쩌민의 대표이론으로 당장(黨章)에 삽입되며 ‘마오쩌둥사상’ ‘덩샤오핑이론’과 어깨를 나란히 한 ‘3개대표론’도 왕후닝의 작품이다.
   
   사실 “중국몽의 핵심 내용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개념도 장쩌민 집권 때인 1997년 제15차 당대회에 앞서 등장했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당시는 천안문(天安門) 유혈사태(1989년)와 소련 붕괴(1991년)로 중국공산당이 ‘통치의 정당성’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로 겉포장한 ‘민족주의’를 1993년부터 들고나왔다.
   
   조영남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시진핑이 ‘중국몽’이란 자신의 정치적 슬로건을 사용한 ‘시점’이다. 그에 따르면 장쩌민의 슬로건인 ‘3개대표론’은 2001년 장쩌민의 집권 말기에 등장했다. 후진타오의 슬로건인 ‘과학발전관’은 후진타오의 집권이 시작된 지 3년 후 등장해 집권 2기 때인 2007년 17차 당대회 때 ‘지도이념’으로 채택됐다.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 당일 ‘중국몽’이란 자신의 슬로건을 공개했고 이는 전임자들과 비교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이 같은 정치 슬로건 천명은 자신감의 표출이고, 정치적 기반이 그만큼 안정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엘리트 정치의 안정화로 시진핑의 정치적 기반이 전임자에 비해 훨씬 더 탄탄하다”고 했다. 과거 장쩌민과 리펑(李鵬),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 간에는 상호영역을 넘나들며 ‘월권’으로 비치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시진핑 정권은 ‘공동결정’과 ‘각자책임’ 원칙 아래 각자 영역구분이 확실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중국몽이 단순히 추상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정책, 즉 ‘전면적 소강(小康)사회(중산층 사회) 완성’ 방침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본다. 시진핑의 정치적 기반도 탄탄하고, 중국의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진핑은 ‘중국몽’을 실현할 시간표까지 이미 공개한 상태다. 1차로는 중국공산당 창당(1921년) 100주년인 2021년이고, 2차로는 중국 건국(1949년) 100주년인 2049년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1차 목표시점인 2021년이다. 2021년은 16차 당대회(2002년)에서 결정한 ‘전면적 소강사회’가 실현되는 시점이다. 중국이 매년 7% 이상 성장한다면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일본의 GDP를 추월하며 ‘G2(양대 강국)’로 부상한 다음부터 중국과 일본이 충돌을 빚는 일이 부쩍 늘었다. 최근 중국의 ‘핵심이익’ 지역으로 부상한 ‘동중국해’를 두고 일본과 충돌하는 것이 그 예다. 조영남 교수는 “2010년부터 일본은 중국 노이로제에 걸렸고, 미국도 2021년 이후 일본처럼 될 수가 있다”며 “2021년 이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