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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베일 벗는 리커창의 신경제학 중국 경제 성장엔진 될까 (주간조선 2013.09.16)

베일 벗는 리커창의 신경제학 중국 경제 성장엔진 될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photo 로이터·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8월 27일 개최된 정치국 회의에서 오는 11월 중앙위원 전체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국 회의는 중국공산당 권력의 정점(頂点)에 가까이 있는 25명의 정치국원이 모이는 회의이고, 중앙위원 전체회의는 376명의 중앙위원이 대체로 1년에 한 번 모이는 의사 결정 기구다. 이번에 개최될 중앙위 전체회의는 지난해 11월부터 중국공산당을 이끌기 시작한 시진핑 당 총서기·리커창(李克强) 총리 체제의 경제정책의 밑그림이 완성될 회의라는 점에서 세계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총리에 올라 중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시작한 리커창 총리가 과연 중국 경제가 앞으로 나갈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8월 27일의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는 11월의 중앙위 전체회의 소집 결정과 함께 상하이(上海)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공작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상하이 자유무역지대란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경제의 발전을 견인해온 상하이를 세계 물류의 허브이자 중국 경제의 세계화 시험장으로 업그레이드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또 다른 ‘로켓 추진 장치’를 달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이다.
   
   또한 지난 3월에 취임한 중국 최초의 경제학 박사 출신 총리 리커창이 이른바 ‘리코노믹스(Likonomics)’, 또는 ‘리커창의 신경제학’의 간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이 회의에서 리코노믹스의 핵심 사업이 될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설치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는 것은 오는 11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설치 계획이 당 중앙위의 승인을 거쳐 공식화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원자바오(溫家寶) 등 자신의 전임자들이 대체로 경제전문가가 아닌 것과는 달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베이징(北京)대학에서 농업경제 분야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리커창 총리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당 총서기가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을 찍었으나, 후진타오의 전임 총서기 장쩌민(江澤民·86)이 시진핑 현 당 총서기를 미는 바람에 총리 자리에 앉게 된 실력자다. 그에게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손에 이끌려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발전에 나선 중국이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 두 가지, 즉 너무 벌어진 빈부격차 해소와 한계를 보이고 있는 성장동력에 새로운 엔진을 달아야 하는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임무가 맡겨져 있다. 거기에다가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는 중국도 수요를 늘려 세계 경제의 회복 분위기에 동참하라는 주문을 해왔다. 리커창은 개혁을 촉진하고, 민생도 돌보고, 투자도 자극할 수 있는 세 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야 하고, 그와 함께 투자와 내수, 수출이라는 삼두마차에 채찍을 가해야 하는 임무도 수행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리커창 총리가 마련한 첫 번째 솔루션(solution·해결책)이 상하이에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리커창 총리는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통해 인민폐의 국제화·시장화를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금융허브도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중국 위안(元)화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 데다가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위안화를 자유롭게 태환할 수 없다는 제한에 묶여 있다. 리커창 총리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아직도 자본 시장이 닫혀 있고 환율이 시장시스템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등 국제경제 체제에 완전히 편입됐다고 말할 수 없는 중국 경제가 완전한 국제경제 체제 편입의 길로 갈 수 있다고 전망된다.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 최근호에 따르면 리커창 총리가 준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카드는 2억5000만명에 달하는 농민공(農民工)들에게 거주 도시에 주민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해서 농민공을 도시인으로 편입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지금까지 2억5000만 농민공들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건설노동 등 힘든 노동을 하지만 주민등록을 할 수 없어 농촌에 주민등록을 둔, 말 그대로 ‘도시의 집시들’로 살아왔다. 리커창의 계산은 이 농민공들에게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서 2억5000만 농민공들에게 거주 도시의 교육과 의료, 취업기회, 사회보장 시스템의 혜택을 받게 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시화 비율도 높이고 새로운 수요 창출로 연결하겠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농민공들이 드리워 온 중국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중국 경제가 발전해 나갈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보겠다는 구상이기도 하다.
   
   리커창 총리는 9월 9일자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자신의 명의로 ‘중국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China will stay the course on sustainable growth)’라는 글을 기고했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5년 만에 많은 국가가 세계 경제의 회복에 따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번 주 다롄(大連)에서 개최된 여름 다보스포럼에서 현재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처해 있는 중국 경제의 상황과 강점을 분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많은 중국 경제 관찰자들은 중국 경제의 부진이 하드 랜딩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개혁 프로그램이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 때문에 궤도를 이탈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우리 중국 경제는 지속가능하면서도 건강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으며, 중국은 개혁과 개방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라는 말이다.”
   
   기고문을 통해 리커창은 자신이 지난 3월 총리가 된 이래 새로운 중국 행정부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라는 점과 인민의 생활 향상과 평등 증진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중국은 더 이상 높은 소비와 높은 투자를 계속하는 낡은 모델(old model)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됐으며, 안정적인 성장과 구조조정, 개혁을 추구하는 전체적인 접근법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리커창 총리는 기고문에서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설립 계획과 농민공에게 도시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계획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리는 중국을 외부 세계에 더욱 더 개방하는 새로운 방법인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설치 방안도 탐색 중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내 수요를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13억 인구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많은 인구가 거대한 내수시장을 구성하고 있다는 강점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광대역 통신망의 확대와 4세대 통신망 확대를 통해 소비수요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화는 또 다른 방향에서 커다란 내수 확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시골에 거주하는 인구 가운데 1억명 이상이 앞으로 10년 안에 도시 인구로 편입될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많은 어려움도 예상되지만 이는 어차피 우리가 달성해야 할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리 총리는 그런 구조조정과 새로운 정책의 도입 결과, 2011년에 9.3% 성장, 2012년에 7.7%의 성장을 보인 중국 경제가 올해는 7.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 경제의 업그레이드는 결국 세계 경제에 신선한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커창 총리가 펴는 경제정책을 ‘리코노믹스(Likonomics)’라고 이름 붙인 것은 지난 6월에 나온 바클레이즈캐피털의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리커창 신경제학의 세 가지 기둥이 첫째 자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둘째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것, 그리고 장기적 이익을 위해 단기적 고통을 참고 견디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코노믹스의 결과 중국 경제성장률은 3% 선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 흐름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 전 당 총서기와 같은 안후이(安徽)성 출신으로, 21세 때인 1976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1978년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입학해서 학부 때는 법학 공부를 했으나, 1988년 베이징대학 대학원 경제학과에 들어가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의 농업문제에 관한 ‘우리 경제의 3차원적 구조론(論我國經濟三元結構)’이라는 논문으로 1998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위 과정은 이른바 ‘재직(在職)과정’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과정을 밟고 논문을 쓰는 형식이었다. 그의 당시 직책은 베이징대학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겸 청년정치학원 원장이었다. 리커창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는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주식과 증권이론을 전담한 리이닝(厲以寧·83) 교수였으며, 리커창의 박사논문은 중국 경제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쑨야팡(孫冶方)학술상을 받았다.
   
   공청단 간부로 베이징대학에서 농업에 관한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리커창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주목을 받아 중국 농업의 중심지 허난(河南)성 당위원회로 배속됐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처음에는 농촌에서 시작했으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농촌이 소외되고, 국영기업 역시 개혁개방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비효율의 대명사이자 중국 경제의 커다란 짐으로 되어버린 점에 주목하고 있던 사람이 후진타오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총리로 만든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리커창은 허난성 당서기를 거쳐, 비효율적인 국영기업들이 많이 몰려 있는 랴오닝(遼寧)성 당서기로 일하며 국영기업에 관한 문제점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를 통해 당 총서기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돼 당 서열 1위에 오른 시진핑과, 리커창에 관해서 중국공산당 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정설(定說)처럼 전해지고 있다. 당내에서 후진타오와 장쩌민을 비롯한 현역과 원로들이 모여 후진타오의 후임자 선정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누구를 후임자로 할 거냐”고 묻자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내세웠다. 그러자 장쩌민은 “리커창 동지는 허난에서는 농업의 문제점을, 랴오닝에서는 국영기업의 문제점을 공부했구먼…”이라고 하고는 “그렇다면 중국의 미래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말했고, 이에 후진타오의 말문이 막혔다는 것이다. 장쩌민은 이어 “이 동지(시진핑)는 어떠냐”면서 개혁개방 정책의 최대 수혜지역인 푸젠(福建), 저장(浙江), 상하이(上海) 등 연해지방에서 행정경험을 쌓은 시진핑을 내세웠고, 후진타오는 꼼짝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개혁개방의 수혜 지역에서 행정경험을 쌓은 시진핑을 당 서열 1위의 총서기로, 농업과 국영기업의 비효율 문제를 공부한 리커창을 서열 2위의 총리 내정자로 정한 중국공산당이 이끌고 갈 중국 경제의 앞으로의 방향은, 지난해 11월 8일 18차 당 대회 개막식 때 후진타오가 한 공작보고에 잘 나타나 있다. 후진타오는 이 공작보고에서 자신이 이끈 10년간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10년 동안 중국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방향을 담고 있다. 이 공작보고는 3만여자 분량으로 후진타오와 시진핑이 합의를 이룬 내용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작보고의 제목은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의 건설을 위해 분투하자’이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란 바로 1976년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현재까지 35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개혁개방 정책을 뒷받침해 온 이론들을 총괄해서 붙인 개념이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는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을 하기에는 생산력이 너무 낮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머물러 있으므로, 일정 기간 자본주의의 도입을 통해 생산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주의 초급단계 이론’과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를 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론’을 두 기둥으로 하고 있다. 1980년대 초 당중앙군사위원회(중군위) 주석 자리를 바탕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총지휘하던 덩샤오핑(1904~1997)은 중국이 특유의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는 중산층이 두꺼운 ‘소강사회’임을 분명히 제시했다. 소강사회라는 개념은 유교적인 개념으로 ‘갈등이 없고 안정된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진타오는 앞으로 중국 경제가 어떤 목표를 향해서 갈 것인가에 관해서는 “전면적 소강사회의 건설은 2020년까지 완성되어야 하며, 이때까지 1인당 GDP(국내총생산)를 2010년의 두 배로 만들 것”을 제시했다. 후진타오는 지난 30여년간 양적 발전을 거듭해온 중국 경제가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발전의 평형성과 협조성,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가는 기초 위에서 도시와 농촌의 1인당 소득을 2010년의 2배로 만들 것”을 제시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중국 경제를 빠른 발전의 궤도에 올려놓은 지 35년 만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에 출생한 세대 출신인 리커창 총리가 앞으로 중국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게 될지, 오는 11월의 중국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리코노믹스가 그 밑그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겠다

 

 

신흥국 위기가 기회 중국 구조조정 성공 땐 한국 조선·화학 수혜

 (주간조선 [2274호] 2013.09.16)

구재상 케이클라비스 대표가 말하는 위기 때 투자법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7월 이후 국내외 언론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다. 그런데 좀 혼란스러운 게 있다. 양적완화(확장적 통화정책) 축소는 미국 경기가 회복되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미국 경기는 호전되나 상당수 신흥국의 금융 시장은 크게 요동치며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 세계 경제도 동반 회복된다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지를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선 먼저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이어질 주식과 투자 시장의 변동성에 대처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자산 시장의 구조도 달라졌다. 금융위기 이전 주요 선진국은 부채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소비 촉진을 유발하는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경상적자가 이어졌다. 민간에서 증가한 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택 구매와 연결되었다.
   
   반면 상당수의 신흥국들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의 수출을 통해 경상흑자를 확대해 갔다. 이를 통한 달러 유입으로 유동성 효과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 또 신흥국의 생산 확대가 가능해지면서 상품 시장 역시 강세를 보였다. 주식, 상품, 부동산 등 주요 자산 시장이 유례없는 동반 강세를 연출했고, 부채 확대에 기반한 선진국의 글로벌 경기 활성화는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이런 동조화 양상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히 약화됐다. 세계 투자·자산 시장의 본격적인 차별화가 시작된 것이다. 과거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주요국들은 주식 시장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상품 시장과 주택 시장은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국가 간 주식 시장의 차별화는 더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선진국 주식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반면, 상당수 신흥국 주식 시장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초 이후 미국의 S&P500 지수는 무려 13.9% 상승했다. 하지만 대표적 신흥국 시장인 브라질 주식 시장은 11.8%나 추락했다. 러시아 주식 시장 역시 -11.9%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선진국들의 증시는 강세를 보여준 반면 상품지수는 0.5% 하락했다. 이와 같이 투자·자산 시장 간 차별화가 극명하게 나타나게 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글로벌 성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주식 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리스크는 선진국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품수출 및 내수의존도가 높은 일부 신흥국들의 경기 하강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이들 신흥국이 선진국의 경기 회복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표적 이유는 에너지 가격의 안정화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은 에너지 가격의 구조적 안정세를 가져왔다. 이는 에너지 등 원자재 수출비중이 높은 신흥국의 경상수지 악화를 불러오고 있다.
   
   내수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양적완화 정책의 최대 수혜국은 내수비중이 높은 동남아 국가들이었다. 선진국의 저금리 정책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은 내수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내수시장의 성장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치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저금리정책을 가능케 했던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부각되면서 동남아 시장에서 선진국 자금의 이탈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외환 시장의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신흥국은 해외로부터 과잉공급된 유동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남아 신흥국 시장으로 몰려들었던 글로벌 채권자금이 급하게 빠져나가는 상황이 시장금리 급등을 불러오고 있다. 소비 등 내수 시장 위축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 신흥국들은 수출품 역시 매우 단순하다. 내수 위축을 막을 대안책 마련조차 힘든 상황이다.
   
   신흥국이 다 부진한 건 아니다. 미국의 경제적 위상 강화와 전통 신흥국의 부침 속에서, 제조업 분야에 경쟁력 갖고 있는 일부 신흥국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한국·대만·멕시코가 그렇다. 상당수 신흥국들의 국제 금융 시장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 세 국가의 시장은 안정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내수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경상수지와 외환보유고, 단기외채 등 외환 관련 지표 역시 좋다.
   
   경쟁관계에 있던 상당수 신흥국의 현재 위기 상황이 한국 주식 시장에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주식 시장을 위협하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기회 요인’이 될 것이란 의미다. 이는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태도 변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6월까지 한국 시장에서 순매도 양상을 보였으나 7월 이후 대규모 순매수를 지속하고 있다. 7월 9000억원에 이어 8월 2조3000억원, 9월 1조8000억원대의 순매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주식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다른 부분도 있다. ‘유럽의 경기 회복’과 ‘중국 구조조정 향방’이 그것이다. 유럽 경기회복은 신흥국가의 수출회복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중국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긍정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접근법에 있어서 중국은 경제성장과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장률 급락을 막자는 취지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의 경기부진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당면할 리스크에 대한 우려감이 있었지만, 현재의 중국 상황을 보면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구조조정이 원만히 진행될 경우 과잉 설비와 인원 감축에 따라 한국 기업은 직접적 수혜를 볼 여지가 높다. 조선·화학 등 주요 업종에서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 경제성장률이 2013년 2.8%에서 2014년 3.9%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4년 코스피(KOSPI) 이익증가율도 18.3%로 여타 국가 대비 양호한 수준이다. 시장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 역시 7.8배로 경쟁시장에 비해 아주 매력적이다. 8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최근의 한국 지수 상승으로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경제 지표들은 내년 한국 시장의 추가 상승 여지가 충분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경제 구조는 수출과 내수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다각화된 수출 구조’로 인해 선진국의 경기가 회복되면 IT·자동차·조선 등 여러 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직접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자원 같은 상품 위주의 단순한 수출 구조를 지닌 신흥국이나, 과잉 유동성에 기댄 내수 위주의 동남아 국가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물가안정성과 함께 하반기 이후 점진적인 경기 회복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내수 경기 회복을 조심스럽지만 기대해볼 만하다. 주택가격 안정성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은행업종 등 내수 관련주도 관심을 가져볼 시점이다.

 

 

중국 토종기업 편들기?

 (주간조선 [2274호] 2013.09.16)

LG 에어컨 이어 세탁기마저 퇴출되나

 

▲ LG전자 중국 현지 생산라인 photo LG전자

국산 백색가전의 대명사인 LG전자가 중국 진출 20년 만에 코너에 몰리고 있다. 중국 국무원(총리 리커창) 산하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이하 질검총국)은 지난 8월 29일 LG전자 상표를 붙여 판매 중인 전자동 세탁기에 품질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이를 언론에 공표했다. 중국 질검총국이 지적한 문제의 제품은 장쑤성 난징(南京)의 슝마오(熊猫·팬더)전자가 지난 5월에 생산한 제품이다. 슝마오전자는 난징의 지역 가전 업체. LG전자는 이 업체에서 전자동 세탁기를 납품받아 LG전자 상표를 붙여 팔아왔다.
   
   슝마오전자는 1936년에 설립돼 77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 역대 지도자가 이 회사를 찾았고, 2011년 5월 중국을 찾은 당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방문하기도 했다. 1995년 난징에 생산공장을 세운 LG전자는 슝마오전자와 합작해 세탁기 등을 생산해 왔다. LG전자가 지분의 70%, 슝마오전자가 지분의 30%를 가졌다. 합작관계를 바탕으로 슝마오전자는 LG전자의 대외업무 등에 협력해 왔다.
   
   LG전자 세탁기는 지난 2월에도 상하이(上海) 질량기술감독국으로부터 품질 문제를 지적받았다. 해당 제품 역시 슝마오전자가 생산한 제품이었다. 당시 LG전자는 성명을 발표하고 “LG전자 세탁기는 성능에서 국가품질에 부합한다”고 정면반박했다. 하지만 질검총국의 성명 발표로 LG전자가 또다시 품질 문제로 거명되자 중국 현지 언론은 “또 LG전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LG전자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중국 언론의 보도가 커지는 데 대해 이유를 알 수 없어 중국 현지법인도 의아해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LG전자가 중국 시장에서 ‘에어컨 사태’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휘센’ 브랜드를 앞세운 LG전자 에어컨은 전 세계 에어컨 판매 1위다. 하지만 유독 중국에서만 품질이 문제가 되면서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LG전자는 2006년 중국 시장에서 ‘리퍼비시(refurbish) 제품’을 유통시키다가 공분을 샀다. “LG전자가 중고 에어컨을 새것처럼 포장해 재판매한다”는 현지 직원의 폭로가 계기가 됐다. LG전자는 당시 3개월간 대응을 미적거리다 실기(失機)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LG전자 에어컨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치명타를 입었고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백색가전의 강자’인 LG전자는 한·중수교(1992년) 직후인 1993년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 광동성 후이저우(惠州)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5년 베이징에 중국지역본부를 꾸렸다. 이후 톈진(天津), 타이저우(泰州), 친황다오(秦皇島), 선양(沈陽),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쿤산(昆山), 옌타이(烟台), 칭다오(靑島) 등 중국 전역에 생산라인을 꾸렸다. 외국 가전업체의 이 같은 동시다발적 물량공세는 전례가 없었다.
   
   화끈한 물량공세로 LG전자는 중국 진출 초기만 해도 상당한 성적을 거뒀다. CD롬(1위), 전자레인지(1위), 세탁기(3위), 에어컨(3위), 냉장고(4위) 등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2003년 사스(SARS)가 중국 전역에 창궐했을 때 외국 주재원들이 일제히 철수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중국에 눌러앉아 중국인의 신망까지 얻었다.
   
   하지만 2006년 불거진 에어컨 사태로 인해 LG전자의 이미지는 중국에서 상당히 실추됐다. 최근에는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같은 LG전자의 주력제품이 중국 현지 토종업체에 매출과 시장점유율 등에서 밀리는 추세가 뚜렷하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편들기에 LG전자 같은 외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번 질검총국 검사에 LG전자를 비롯 일본의 샤프, 히타치(日立), 미쓰비시(三菱) 등 외국계 기업들이 대거 포함된 것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지방 질검국은 품질 문제를 꼬투리 잡아 자국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 기업을 괴롭힌 전례가 적지 않다.
   
   LG전자와 중국 당국과의 관계도 삐걱대는 모양새다. 지난 6월에는 산동성 옌타이에 있는 ‘랑차오(浪潮)LG’가 2007년부터 4년간 2억800만위안(약 370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것이 세무당국에 적발돼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랑차오LG는 LG전자와 랑차오가 7 대 3 비율로 합작해 휴대폰을 생산하는 합자(合資)법인이다.
   
   현재 중국 백색가전 시장에서 세탁기는 하이얼(海爾)·샤오텐어(小天鵝), 에어컨은 거리(格力)·하이얼·메이디(美的), 냉장고는 하이얼 등 토종업체들이 시장을 주도 중이다. 특히 칭다오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백색가전 업체인 하이얼은 세탁기(38.9%), 에어컨(23.1%), 냉장고(38.4%) 등 백색가전 전 부문에서 3위 안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특히 중국 현지 가전 업체들은 2009년 중국 정부가 펼친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농촌지역의 가전제품 구매에 보조금을 지급한 정책으로 중국 현지 가전 업체들은 가전하향 정책의 최대 수혜주가 됐다.
   
   반대로 중국 토종기업들의 공세에 LG전자 등 우리 가전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급락 중이다. 중국 인터넷소비연구중심(ZD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탁기에서는 LG전자가 5.6%의 점유율로 6위, 삼성전자가 3.2%의 점유율로 7위다. 냉장고는 삼성전자가 4.4%로 6위, LG전자가 3.8%로 8위다. 에어컨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두 10위권 밖이다.
   
   국내와 다른 유통시스템도 국내 가전 업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가전 시장은 제조사 대리점 위주인 우리와 달리 가전양판점 위주다. 궈메이(國美), 쑤닝(蘇寧) 등 중국의 1, 2위 가전양판점은 중국 전역에 깔린 유통 파워를 바탕으로 ‘갑(甲)’의 위치에 서 있다. 가전양판점에 대해 ‘을(乙)’의 위치에 있는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가전양판점에서 중국 현지 기업과 출혈경쟁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외국계 자동차, 분유, 제약 등에서 반독점법을 적용하는 등 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가전 업계로까지 불똥이 튄 것 같다”며 “현재 검사 환경 등이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재검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