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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여성조선] 가족은 나의 힘 (조선일보 2014.03.26 11:42)

[여성조선] 가족은 나의 힘

결혼 십 년 차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주부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행복 바이러스 전도사 정은표를 만났다.

 

 


	[여성조선] 가족은 나의 힘

한 예능 프로를 통해 ‘지웅이 아빠’로도 잘 알려진 탤런트 정은표. <해를 품은 달>
(이하 <해품달>)의 내시부터 <별에서 온 그대>의 부동산 업자, 최근 <신의 선물-14일>(이하 <신의 선물>)에서 맡은 바보 역할까지 연기자로서 그의 ‘미친 존재감’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 브런치 토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미난 입담부터 탁월한 패션 감각까지, 주부들을 전원 매료시켰으니 말이다.


 


	[여성조선] 가족은 나의 힘
바보 캐릭터,
막내아들에게 배우다

어느 작품에서든 ‘신의 한 수’로 활약했던 정은표. 그런 그가 연기에 몸을 담은 건 우연한 계기였다. 내년이면 오십이지만 여전히 연극배우를 꿈꾼다는 그는 젊은 날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배우의 열정, 그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연극배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였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연극반이 생겼어요.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라는, 아주 깡촌에 있는 학교였어요. 어려서부터 문화적 혜택을 못 받고 자랐는데, 연극반이 생겨서 들어가게 됐어요. 사실 연극이 좋아서 들어간 게 아니고 아무도 안 들어가니까 선생님이 반장부터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간 거예요. 연극부 선생님이 가정 선생님이셨는데 정말 예쁘셨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정말 재미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광주에 있는 극단을 찾아다녔어요.

연극, 영화, 드라마 중에서 가장 흥이 나는 것은 뭐예요? 사실 저는 지금도 연극배우가 꿈이에요. 연극을 안 하면 연극배우가 아니잖아요. 탤런트고 영화배우죠. 그래서 지금도 틈틈이 연극을 해요. 무대에 서는 게 좋아요. 저는 그걸 ‘설렘의 크기가 다르다’고 표현해요.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볼 때, 그 앞에서 공연할 때, 공연을 마치고 집에 올 때 그 설렘이 정말 커요. 영화나 드라마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니까 사람 앞에서 하는 것과는 좀 달라요.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연극이 제일 행복해요. 물론 영화나 다른 방송은 저에게 돈을 주니까 그 행복이 있죠. (좌중 웃음)

지금 대학로에서 하고 있는 연극이 다소 무거운 연극으로 알고 있어요. 본인의 선택인가요? 사실 배우의 운명이 어떤 면에서는 불쌍한 게, 제가 톱스타가 아닌 이상 선택하는 입장이 아니라 선택당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역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매니저도 없고요. 5년 전까지는 있었는데, 돈을 적게 벌더라도 애들하고 같이 지내고 싶어서 혼자 해요. 운전도 직접 하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쫓아다니기보다 (제안이) 들어오면 하고 다른 때는 노는 식이죠. 지금 하는 작품(<그와 그녀의 목요일>) 같은 경우는 조재현, 박철민 씨와 저, 이렇게 셋이 한 사람을 연기해요. 정민이라는 인물이죠. 

어떤 배역인가요? 저와 많이 닮았어요. 일단 잘생긴 외모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내가 못생긴 게 되는데. (좌중 웃음) 말하자면, 잘나지 못한 인물이에요. 연극 차제는 그리 어둡지 않아요. 남자는 교수고 여자는 기자인데, 두 사람이 결혼은 안 했지만 애를 낳은 사이죠. 같이 살았지만 결국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헤어져 살게 돼요. 딸 때문에 목요일마다 만나 토론하며 인생을 풀어간다는 이야기예요. 소통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연극의 주 타깃은 4~50대겠군요. 제가 내년에 50이 돼요. (주부 중 한 분이 어려보인다고 하자 웃으며) 머리 모양이 이래서 그런가 봐요.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신의 선물>)에서 맡은 역할이 바보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머리를 잘랐더니 더 애기 같나 봐요. 그런데 내년에 50이에요. (좌중 웃음)

실제 모습이 훨씬 어려 보여요. 그렇죠? 우리나라가 방송 기술이 안 좋아. (좌중 웃음) 아직 이 얼굴을 제대로 못 담아줘요. 무슨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죠?

시청률 50% 드라마의 조연과 시청률 3% 드라마의 주연 중 택하라면 무얼 택하시겠어요? 어렵네요. 지금은 둘 다 상관없는데 만약 <해품달>을 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시청률 50% 드라마를 선택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시청률 3%도 상관없고요. 꼭 주인공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저도 주인공은 많이 해봤어요. 단막극이지만 KBS <드라마시티> 여섯 작품 연속 주인공을 한 적도 있고, 연극에서는 여러 번 했고요. 지금 <신의 선물>에서 회당 한 신 나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분량이 많지 않지만) 정말 재밌어요. 제가 어떤 인물을 표현하는 게 좋은 거지, 분량이 많이 나오는 게 좋은 건 아니거든요.

‘신 스틸러’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해품달> 때도 김수현 씨보다 더 눈에 들어왔는걸요. 모든 배역을 본인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재주가 남다르신 것 같아요. 무던히 노력하셨을 텐데요. 배우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겠죠. 저의 경우는 무엇보다 절실함이에요. 어떻게 해서든 이 인물에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죠. 예를 들어 <해품달>을 찍기 전은 제가 배우로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시기예요. 예능 <붕어빵>을 통해 ‘지웅이 아빠’, ‘하은이 아빠’로 불리면서 연기자 정은표가 어느 순간 예능인이 되어 있더라고요. 드라마도 잘 안 들어왔고요. 그 무렵 <해품달> 대본을 받았어요. 역할이 정말 좋은 거예요. 나보다 좋은 배우들이 많은데 왜 이걸 나한테 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때 저는 절실했던 때라 자다가 새벽 3시에 깨고 그랬어요.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 대본을 계속 봤죠. 그 인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혼자 화장실에서 중얼중얼하고 있으면 아내가 놀라서 뛰어와요. 어디 아프냐고요. 저는 어느 캐릭터를 맡으면 그 인물에 대해 ‘이런 인물일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해요.

지금 하고 있는 바보 캐릭터(<신의 선물>의 기동호 역)는 어떻게 연습하나요? 이 캐릭터의 롤 모델은 저희 집 막내 지훤이에요. 20개월짜리 애기요. 지훤아! 부르면 네에~ 이래요. 순간 ‘그래! 내가 저렇게 하면 바보 같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훤이 보면서 따라 해요. 항상 관찰을 하죠.

바보 캐릭터가 꺼려지진 않았나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제가 연극에서는 안 그런데 방송 쪽에서는 주로 코믹한 역할이 많이 들어와요. 그래서 가끔 저를 개그맨으로 아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 저도 아쉬움이 있죠. 진지한 역도 맡아보고 싶고요. 마침 이번 <신의 선물> 같은 경우는 코믹이 아니라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배역이에요. 감독님이 제안했을 때 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잘 소화하고 있는지 물어봤죠. 캐릭터 이름이 동호인데, (감독이) ‘형, 그냥 동호야’ 하더라고요. ‘아, 나를 바보로 봤구나’. (좌중 웃음) 고맙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믹하게만 봐주는데 다른 면으로도 봐준 거니까요.

눈빛이 뭐랄까, ‘바보의 눈빛’이에요. 나이에 비해 눈이 맑아 보여요. (정은표가 폭소한다) 바보 맞아요. 제 아내하고 제가 12살 차이예요. 개월 수로 하면 13년 차이가 나요. 저 사람이랑 살다 보니 제가 많이 어려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오히려 어른스러워지고요. 후배들이 나이 차 나는 아내와의 결혼이 어떠냐고 물으면 무조건 하라고 해요. 살아보니 좋더라고요. 저 사람은 장녀고 저는 막내거든요. 그래서인지 12살 차 나는데도 불구하고 중간 지점에서 잘 만난 것 같아요.

정은표 씨는 배우라는 생각이 안 들고 옆집 사는 이웃 같아요. 친근하네요. 저는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그래서 누가 길 가다 아는 척하면 낯설어요. ‘아니 왜 저분이 나를 아는 척하지?’(웃음) 제가 연예계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나 연예인이야’ 하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일은 일이고, 평범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죠.


 


	[여성조선] 가족은 나의 힘
영재 아이,
평범하게 키우고 싶다

이날 주부들 사이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 질문은 단연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IQ 167, 156의 두 영재 아이를 자녀로 둔 아빠인데도 담담한 눈치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그저 행복하게 키우고 싶단다. 

첫째 지웅이와 둘째 하은이가 영재라고 하던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뭔가요? 지웅이가 모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영재라는 결과를 받았어요. 그런데 영재 아이들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예민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저와 아내가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 사회성이에요. 지웅이가 책을 엄청 많이 봐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데, 얼마 전에는 신작 <제3인류>를 읽고 싶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얘기들을 하니 또래 애들을 만나면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얘한테 부탁한 게, 친구들 만나면 지식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쉬운 말로 하면, 잘난 척하지 말라고요.(웃음)

친구들은 많은 편인가요? 다행히 친구들과 잘 어울려요. 날마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요. 어제는 다섯 명, 그제는 일곱 명을 데리고 와서 놀았어요. 지웅이가 학원을 안 가니까 낮에는 놀거든요. 친구들이 학원을 가니까 어제 오던 애, 오늘 오는 애가 달라요. 오는 건 좋은데 오기 전에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하죠. 아빠가 옷 벗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웃음)

영재로 판정 받았을 때 기쁜 반면 걱정도 됐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잘 키우는 것일까 하는 고민으로요. 사실 기쁘지는 않았어요. 어떤 전문가가 말하기를 모든 아이들이 영재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요. 1등을 하는 아이가 영재가 아니라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아이가 영재인 거죠. 지웅이는 고맙게도 언어 영역과 동작 지능(과학, 수학 분야)에 뛰어나다고 해요. 이과, 문과적 소질을 다 갖고 태어난 거죠. 그런 아이들에게 보통 엄마 아빠들은 그 그릇을 자꾸 채워주려고 한대요. 끌고 가려고 하는 거죠. 그럼 그릇은 차고 넘쳐버린대요. 그래서 아이를 그냥 따라가주면 (그릇이) 차지는 않지만 커진다고 해요. 그러니 그냥 지켜봐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애기 엄마하고 저하고 결심한 게, 자꾸 뭘 가르치지 말자예요. 그냥 두어도 스스로 잘할 거라 믿어요. 

지웅이만 부각됐지만 하은이도 참 똑똑하던데요. 둘의 성향이 다른 것 같아요. 먹는 것만 봐도 지웅이는 기름진 걸 좋아하는데 하은이는 담백한 걸 좋아해요. 성격도 둘째라 욕심이 많고요. 오빠를 넘어서고 싶은데 오빠가 자기에겐 큰 산인 거죠. 아이큐 검사할 때 전문가들이 하은이를 보고 ‘이 아이가 더 똑똑한 것 같은데 너무 눌려 있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봤더니, 오빠가 항상 앞서가고 엄마 아빠는 그런 오빠를 칭찬하니까 상처를 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공부 못하는 애, 똑똑하지 않은 애로 인식한 거예요. 그래서 반대로 칭찬해주고 있어요. 하은이가 책을 보고 있으면 ‘지웅이는 책을 좋아하는데 하은이는 오빠보다 책을 더 좋아하네?’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자극을 주고 칭찬해줬더니 두 달 뒤에 아이큐가 16이 더 올라갔어요. 처음에 140이었는데 그 다음에 156이 됐거든요.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이가 달라진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아이큐가) 선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영재 아이 둘 키우기 힘들지는 않는지…. 일단 저희는 사교육을 하지 않으니까 힘들진 않아요. 같이 놀아주는 데 집중해요. 다만 영어는 해줘야 될 시기가 있다고 해서 하고 있는데, 다른 선행 학습은 하지 않아요.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지웅이, 하은이가 영재로 밝혀지면서 어떻게 아이를 교육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작년까지는 육아 관계로 강연을 많이 다녔어요. 그러데 저희는 교육에 대해서 전혀 내세울 게 없어요. 아이와 노는 거, 여행 다니는 게 다예요.

아이와 여행을 자주 가나요? 얼마 전 지웅이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단둘이 제주도에 가는 게 이번이 두 번째예요. 2박 3일 동안 다녀왔는데, 이번엔 지웅이가 저를 가이드해줬어요. 저는 차 렌트만 했고요. 로마신화박물관에서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저한테 로마신화를 설명해주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이가 스스로 찾고 검색하면서 즐기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제가 하는 얘기에요.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해요? 저는 아이가 평범한 게 좋아요. 제 아이가 영재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그 친구(아이들)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요. 지웅이는 만화가가 꿈이에요. 그렇다면 저는 만화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평범한 환경에서 재밌게 노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영재로 태어난 건 축복인데, 좀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옆에서 아이에게 무엇이 되어라,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자신의 성향을 살려서 스스로를 가꾸어나가는 거지, 뭘 해라 마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부모이지만 그 친구의 인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관여만 한다는 건가요? 그냥 두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게 잘못됐을 수도 있죠. 그래도 저와 아내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요. 그냥 두자. 그냥 두면 어떻게든 될 거다. 무책임한 건 아니고요. 아이가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부모의 몫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영재다 보니 주변에서 말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저희는 주변의 기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저희도 기대를 안 하기 때문에 굳이 주변의 기대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사교육을 안 하는데 학교 성적은 어때요? 지금도 공부는 잘해요. 시험 보면 100점, 95점 받아오고요. 공부를 안 시켜도 제법 잘하는 편이에요. 다만 저희가 당부하는 건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에 집중해라’예요. 집에서 공부 안 하는 대신 선생님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라고요.

댁에서는 다정다감한 아빠인가요? 다정한 건 모르겠지만 지웅이가 아빠를 친구처럼 생각해요. 심지어는 가끔 좀 건방지게도 ‘어이, 정은표 씨. 잠깐 나 좀 보지’ 라고 해요. (좌중 웃음) 그럴 땐 욱하죠. 이 자식이?! 정말 친구처럼 지내요.

아이들 얘기하면서 정말 행복해하는 표정이 보여요. 정은표 씨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저희 집이 4남 1녀에요. 제가 막내고요.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시골집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이 정말 고생하면서 키우셨죠. 아시겠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 키우기에 바빴잖아요. 사랑을 준다는 개념보다 그저 묵묵히 키워내는 데 바빴죠. 그리고 결혼 전까지 서울에서 혼자 근 20년을 살았어요. 그때 제일 부러웠던 게 집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이었어요. 저는 하루 세 끼 먹는 게 정말 힘들었고 차비도 없었거든요.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지’였어요.

그 바람을 이루신 것 같은데요. 아내와도 그런 면(가족관)에서 코드가 맞아요. 아이들 키우면서 같이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복할까’를요. 그래서 저희 집 가훈이 ‘재밌고 신나게’예요. 그런 저희 집을 보면서 내가 생각해온 가정의 모습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최종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분들은 ‘그 똑똑한 아이들을 왜 공부 안 시키느냐’ 하지만요. 근데 저와 아내의 소신은 이거예요. 아이들이 지금 행복하면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고요. 공부 잘해서 성공해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조의 여왕
외조의 달인

이날 정은표의 곁에는 아내 김하얀 씨가 함께했다. 실제로 매니저가 없는 그의 곁에서 매니저를 자처하는 아내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해바라기다. 십 년 차 부부가 이토록 애틋할 수 있을까. 과연 행복 바이러스가 샘솟는 커플임을 인정해야겠다.

무명 시절의 설움이나 어려움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해요. 무명 시절이라는 게 조금 애매한데, 제 경우는 극단 생활을 하다가 영화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돈도 제법 많이 벌었고요. 제 주변 (연극하던) 친구들에 비해서는 빨리 풀린 케이스예요.

‘연극배우’라고 하면 가난하고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연극할 때는 가난했어요. 1년에 번 돈을 다 합쳐도 8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 남대문 시장에서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3년을 했는데, 그 당시 주급 10만 원을 받았어요. 엄청 큰돈이었죠. 그걸로 택시비를 냈고 나중에는 택시비도 아까워서 자전거를 샀어요. 자전거로 효창동에서 남대문시장까지 출근하고, 일이 끝나면 대학로로 연극하러 갔지요.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연예계로 와서 (여러분이) 무명이라고 말씀하신 그 기간은 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쨌든 쭉 경제활동을 해왔으니까요. 저는 뭐, 무명 시절이 없었습니다.(웃음)

부인을 잘 만나서 그런 것 아닐까요? (좌중 웃음) 아뇨. 부인을 만나기 전에 아파트도 한 채 사놨고요. 저 괜찮았었어요. 어머님들이 길에서 저 보시면 등을 툭툭 치면서 ‘장가 잘 갔어’ 이러시는데, 저 사람이 시집을 잘 왔어요.(웃음)

아내 분이 야무지실 것 같아요. 진짜 야무져요. 똑똑하고요. 저는 늘 조종당하고 있어요.

그게 행복한 거래요. 어유, 그럼요. 정말 행복해요. 제가 연극하고 촬영 갔다 늦게 오잖아요. 현관문 번호 키 누르고 있으면 저 안에서 소리가 나요. 왜, 정글 나오는 영화에서 코뿔소 떼 막 뛰어오는 것처럼 ‘우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려요. 아내, 지웅이, 하은이, 그리고 20개월 된 지훤이까지 저를 안아주러 뛰어와요. 하은이가 제일 동작이 빨라서 먼저 오면 엄마가 니킥 날리고요.(웃음) 서로 저를 안아주겠다고요.

(일동 입을 모아) 정말 행복하시네요. 그게 아내의 힘인 거죠. 지웅이는 아내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좌중 웃음) 그래서 아이들은 세뇌당하는 거죠. 엄마가 아빠에게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구나.

더없는 내조의 여왕이군요. 아내가 저를 그렇게 사육해요.(웃음) 요즘 저희 집의 가장 큰 화두는 다이어트예요. 왜 이렇게 찌는지 고민해봤더니, 사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녁에 자기 전에 제가 무심코 ‘배고프네. 라면 있나?’ 그러면 아내가 자기는 먹기 싫어도 같이 먹어줘요. 또 아내가 ‘오늘 자장면 먹고 싶네’ 그러면 제가 같이 먹어줘요. 같이 먹는 게 행복한 거예요. 그러니까 외식과 야식이 잦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죠. (좌중 웃음) 지웅이한테 살 빼란 말을 못 하는 게, 저희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키로 갈 수 있으니까 많이 먹으라고 해요. 다행히 키는 또래 애들보다 작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워낙에 키 콤플렉스가 있어서요. 하여튼 아내한테 고맙죠. 그런데 이제 좀 식을 때도 됐는데. (좌중 웃음)

여느 집과 달리 가장의 권위가 살아 있네요. 저는 집에선 거의 대장이에요. 아내가 늘 하는 얘기가 ‘당신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니까 집에서는 편히 쉴 자격이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땐 으쓱하죠. 그래, 나 돈 벌었어! 하면서요.(웃음)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어요? 제가 2002년도에 <이발사 박봉구>라는 공연을 했어요. 그때 제 공연을 봤는데 자기는 살면서 사람 뒤에 후광 비치는 걸 처음 봤대요. 제 뒤에 후광이 보였다네요.(웃음) 그렇게 아내가 팬 모임에까지 가입하면서 알게 됐는데, 어느 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거예요. 10kg 뺀다고 하길래 그만큼 빼면 내가 작은 소원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죠. 그게 계기가 됐는지 한 달 만에 14kg을 빼서 나타났어요. 굶은 거죠. 독한 여자예요. (좌중 웃음) 그때 제가 서른일곱이었는데, (아내가) 참 예뻐 보이더라고요. 자기 결심을 딱 지키는 것도 멋져 보였고요.

스물다섯인데 당연히 예쁘죠! 뭘 해도 예쁠 때죠. 맞아요, 맞아.(웃음) 그때 제가 덜컥 사귀자고 했어요. 사귀기 시작해서 100일 만에 결혼했어요. 그 100일 동안 지웅이도 생기고.(웃음)

의외의 모습이 많네요. 매력 있어요. 저, 되게 괜찮아요. (좌중 웃음)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옷차림이 상당히 패셔너블해요. 신발도 평범하지는 않고요. 아내와 같이 신어요. (좌중 웃음) 한 달 전엔가? 라디오 방송국에서 (홍)록기를 만났어요. 록기가 패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잖아요. 저를 한참 쳐다봐요. 그러더니 ‘형, 센스 있다?’ 이러더라고요. (좌중 웃음) 그때 으쓱했죠.(웃음) 아내는 제 거 사주는 걸 정말 좋아해요. 백화점도 저 사람 옷을 사주겠다고 가서 제 옷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기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싼 옷 사고요. 택배 아저씨를 그렇게 좋아해요. (좌중 웃음)

정은표 씨의 우선순위는 단연 가족이네요. 그럼요. 그래서인지 교우 관계가 안 좋아요. (좌중 웃음) 어디 가서 로비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해야 하는데 아내랑 있으면 행복하니까요. 누구를 만나도 그만큼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 해요. 그리고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뭘 하든 행복할 리 만무하죠. 그래서 공연 끝나면 숨도 안 쉬고 집으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