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美특수부대 총에 머리 맞고 즉사…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처를 급습한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머리에 총을 맞고 그자리에서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고 1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에서 미군의 작전과정에서 사살됐다고 공식 성명을 통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이 빈 라덴의 시신을 확보했으며 작전 과정에서 미군이나 민간인의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고 설명했다.
오바마는 미 정보 당국이 지난해 8월 빈 라덴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 관한 단서를 확보하고 추적해왔으며 지난주 빈 라덴의 제거 작전을 단행할 충분한 정보가 확보됐다고 판단해 작전 개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빈 라덴의 사망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임을 강조하고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의 제거가 이슬람권을 향한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빈 라덴의 사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미국을 향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CNN에 따르면 시신의 신원은 DNA 분석을 통해 빈라덴임이 확인됐다. 이 방송은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 빈 라덴이 작전 수행 과정중에 미군의 총탄을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AP통신 등은 대(對)테러 담당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빈 라덴이 지난주에 사살됐다고 전했다.
한편 빈 라덴은 지금까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산악지대에 은신해 온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이번 작전을 계기로 파키스탄 수도 근처까지 은신처를 마련해 은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백악관 앞에서는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 나온 시민들이 미국 국기를 들고 환호했다.
미국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했던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숨졌다는군요. 지금 CNN 라이브뉴스로 마구마구 나오고 있네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사살됐다고 하네요.
오사마 빈라덴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사우디 최대의 건설업체인 '빈라덴그룹'의 소유자인 모하마드 빈 라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방 문화에 심취했던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사우디의 여느 부잣집 아들과 다름없었던 그는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분노한 무슬림 청년
서구화되고 자본주의화된 집안 분위기와 달리 빈 라덴은 이슬람 신앙을 독실하게 신봉했으며, 청교도적인 생활로 빠져들어갔다고 주변에서는 전합니다. 나이 22살에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보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거센 분노심을 갖게 됐던 것이죠. 빈라덴 그룹의 스무명에 가까운 아들들 중에서도 사업수완이 뛰어나고 영민했던 그는 사재를 털어 아프간으로 달려갑니다.
당시 미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아프간 내 이슬람 반군들을 은밀히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양쪽은 자연스럽게 연결됐던 겁니다.
사우디 왕자이자 정보국장이던 투르키 왕자의 주선으로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윌리엄 케이시 국장과 빈 라덴이 만나게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우디의 모든 정보를 주무르던 투르키는 9.11 테러 2달 전에 정보국장을 그만뒀죠. 그 뒤에 주미대사를 지낸 바 있고요. 투르키와 케이시가 오늘날의 이 분란;; '아프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을 만들어냈다고 봐야죠)
빈 라덴은 아프간 무자헤딘들에게 돈을 대고, 미국은 스팅어미사일 등 무기를 지원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습니다. 이 때만 해도 빈 라덴과 미국은 밀월관계였습니다.테러조직의 확대
그러나 1989년 소련군이 물러나고 아프간이 혼돈상태에 접어들면서 양측의 관계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아프간에서의 생활로 더욱더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빈 라덴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를 깨부수기 위한' 조직을 확대한 것이죠. 점조직 형태로 이뤄져 실체조차 파악하기 힘든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전세계에 뿌리를 내린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빈 라덴은 소련이 무너진뒤 세계의 단일 패권인 미국을 적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체첸과 수단, 소말리아의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중남미와 아시아 일대를 넘나들며 테러조직을 확대해갔습니다. 미국은 '호랑이를 키운 꼴'이 됐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갈등이 표면으로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1993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폭탄테러사건(1993 사건에 대해서는 '새로운 전쟁' 참고)입니다.
이 테러로 6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하자 미국은 테러 주범을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람씨 유세프로 알려진 파키스탄 청년이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고, 그 뒤에는 빈 라덴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테러조직은 미 수사당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테러의 뿌리도 깊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필리핀을 잇는 이슬람벨트 전역에 빈 라덴의 지원을 받는 과격파 무슬림 청년그룹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 왕정의 오랜 독재와 부패, 서구 문화의 이슬람권 침식, 빈곤으로 인해 절망하고 분노한 광범한 젊은층의 존재 같은 것들이 빈라덴 세력의 자양분이었던 셈입니다.
다시 아프간으로, 그리고 9·11
사우디 왕정은 반체제 세력이 된 빈라덴을 국외로 추방했습니다(빈라덴과 알카에다의 발흥은 사우디 왕정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근간인 '사우드 세속권력-와하브(사우디의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종교권력'이라는 축을 깨뜨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쫓겨난 빈라덴은 아프리카로 건너가 수단과 소말리아 일대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사업을 재개, 테러자금을 끌어모았습니다.
[오들오들매거진] 믿거나 말거나...빈라덴의 참깨
그리고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에서 대형 연쇄폭탄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대통령은 빈라덴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그의 군사기지가 있던 소말리아를 공습했습니다. 전세계에 수배령이 내려지자 그가 갈 곳은 한 군데, 고향과 다름없는 아프간의 산악기지였습니다. 1996년 아프간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 정권을 버팀목 삼아 미국의 추적을 피하면서 재기를 노렸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WTC와 워싱턴의 국방부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빈라덴이 주범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각국 정부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모순이 중첩된 복잡한 이슬람 세계에서 빈라덴은 '저항의 상징' '알라(신)의 대리인'으로 떠올랐습니다. 빈라덴은 쫓겨다니면서도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의 산악동굴에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고 2년 가까이 추적을 벌였지만 그를 잡는데 실패해 '테러와의 전쟁'이 결국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빈라덴을 사살했으니, 오바마는 이제 아프간에서 손을 뗄 명분을 잡았습니다. 오바마는 계속 이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아프간은...다시 버려진 땅으로 남겠지요. 이미 미국 정부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정부는 "강경 탈레반과 온건 탈레반을 분리해서 온건파와는 권력분점 협상을 한다"는 둥, '출구전략'이라는 것을 가동시켜왔던 차였습니다. 10년 동안 지지고 볶고 그 많은 이들이 숨지게 만든 뒤에 결국 이런 식으로 미국은 상처만 입은 채 손 털고 나가게 되는 건가요...
좀더 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만(시간이 엄떠 ㅠ.ㅠ) ... 어찌 되었든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미국에도, 중동-이슬람권에도, 남아시아에도, 엄청난 혼란만 가중시킨 '실패한 전쟁'으로 기록될 겁니다. 더불어 미군을 과감히 끌어들인 파키스탄에도 혼란이 가중될 것 같네요.
tip. 빈라덴이 사살된 곳이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라는 곳이라죠. 이슬라마바드, 잘랄라바드, 아보타바드...
아프간, 파키스탄 일대엔 '~아바드'가 많은데요. abad는 그 동네 말로 '샘(물)'이라는 뜻이랍니다. :) ‘빈 라덴 사살 작전’ 일등공신은
(세계일보 2011.05.02 (월) 23:23)
CIA특수요원, 준 군사조직… 막후서 핵심 역할
네이비실, 2차대전때 창설… 옛 명성 떨쳐
- 미국의 공적 1호인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해군특전지원단(네이비실·Navy SEAL)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졌다.
막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CIA인 것으로 알려졌다. CIA는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다. CIA는 해외에서 특수활동부대(SAD)로 알려진 준군사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빈 라덴에 의한 9·11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CIA 요원들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체포, 살해하도록 CIA의 권한을 확대했다. CIA는 정보 수집 및 분석뿐 아니라 해외에서 준군사조직을 운영하는 데 주력해 왔다.
CIA는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서 있었다. CIA 특수 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무장조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서 프레데터 드론 무인 항공기를 동원해 테러 기지 공습을 주도해온 조직도 CIA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파키스탄 접경 지대에서 모두 192회의 무인 항공기 공습이 이뤄졌고, 테러 용의자 등 1890명이 사망했다. 현재의 CIA는 군사적 성격이 가장 강한 상태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작전에는 미 해군 특수부대인 해군특전지원단 요원 20∼25명도 투입됐다. 해군특수전사령부 산하인 이 지원단의 전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창설된 해군전투파괴부대(NCDU)이다. 이어 1962년 1월 바다와 하늘, 육지로부터 작전을 펼칠 수 있는 해군특전지원단이 탄생했다. ‘SEAL’은 Sea Air and Land의 줄임말이다.
미 해군 병사와 해안경비 대원들로 충원되는 해군특전지원단은 육박전과 공중 낙하, 파괴, 외국어 등을 배운다. CIA는 지원단의 능력을 높이 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 등에서 합동작전을 펼쳤다. 해군특전지원단은 이번에 빈 라덴 제거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명성을 더욱 떨치게 됐다.
테러와의 전쟁 ‘공적 1호’ 최후 맞다<세계일보>
- 입력 2011.05.02 (월) 18:59, 수정 2011.05.03 (화) 00:24
美, 빈 라덴 사살 … ‘9·11’ 10년 만에 파키스탄서
오바마 “정의 실현”… 알카에다 보복테러 우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으로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 빈 라덴을 추종하는 테러조직이 보복테러에 나설 것으로 보여 ‘테러와의 전쟁’은 새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밤(현지시간) 긴급 성명을 통해 “오늘 내 명령을 받은 미군이 파키스탄에 은신중인 빈 라덴을 사살했으며 그의 시신을 확보했다”며 “정의가 실현됐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근 20년 동안 빈 라덴은 알카에다의 리더이자 상징이었다”면서 “그의 죽음은 알카에다 발본색원 과정에서 미국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취”라고 평가했다.
한 미국 관리는 2일 빈 라덴의 시신이 수장됐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추종세력이 빈 라덴의 시신을 탈취하거나 그의 묘지가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는 시민들이 몰려들어 환호하면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8월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아보타바드에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 지난주 작전을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가안보 관리는 미 특수부대가 애당초 빈 라덴의 생포가 아닌 사살 작전 명령을 하달받았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빈 라덴의 죽음이 테러리즘의 끝이 아닌 ‘피의 복수의 시작’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위키리스크가 최근 공개한 비밀문서를 보면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은 빈 라덴이 체포되거나 암살당할 경우 폭발시키려고 유럽에 핵폭탄을 숨겨 놨다며 “서방에 ‘핵폭풍’이 불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전 세계 미국 공관과 미군에 특별경계령을 발동하고 해외를 여행하는 미국인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의 죽음이 테러와의 전쟁 종료는 아니며 알카에다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면서 “우리는 국내외에서 경계를 늦춰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 라덴 가짜 시신 사진에 속은 전세계 언론
(경향신문
전 세계 언론이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가짜 시신 사진에 속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빈 라덴이 미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는 발표 이후 빈 라덴 사살 소식 못지 않게 관심을 끈 것은 파키스탄 TV방송들이 2일 공개한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이었다.
파키스탄 TV 화면 속의 남자는 이마와 왼쪽 관자놀이 주변에 핏자국이 넓게 묻어 있고 오른쪽 눈은 감겨 있으며 치아가 보일 정도로 입은 벌어져 있는 모습(왼쪽 사진)으로, 실제 빈 라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이 때문에 전세계 많은 언론들은 파키스탄 TV가 방영한 이 사진을 캡처한 와어어(통신사) 사진을 받아 자사 웹사이트에 빈 라덴 시신 사진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얼마 후 파키스탄 TV들이 이 사진은 조작된 것이라며 이를 철회하자 이를 받아 웹사이트에 실은 전세계 주요 언론들도 웹사이트에서 급히 내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지오TV의 이슬라마바드 지국장인 라나 자와드는 2일 AFP통신에 “그 사진은 2009년 인터넷에 올라왔던 가짜 사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위 여부를 확인해본 결과 가자로 판명돼 철회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2일 파키스탄 방송들이 보도한 빈 라덴의 시신과 영국 신문들이 웹사이트에 실은 사진은 가짜”라며 “이 사진은 2년 전 인터넷에 떠돌던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어 “2009년 4월29일 중동의 한 온라인 매체(www.themedialine.org)가 처음 실은 사진으로, 당시 편집자는 이 사진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 가짜 사진은 1998년 찍힌 빈 라덴 생전사진(오른쪽 사진)을 바탕으로 조작됐다고 덧붙였다. 이 생전 사진은 로이터통신에 의해 보도된 바 있다.
빈 라덴 가짜 시신 사진 해프닝은 미국 측이 사살된 빈 라덴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미국이 발표한 빈 라덴 사살이 사실인지 여부와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터였다. 더욱이 미국 측은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신속히 시신을 매장하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그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시켰다고 발표해 의혹을 키웠다.
빈 라덴, 마지막 순간까지 AK47 소총 난사하며 저항
(국민일보 2011.05.03 12:58)
알 카에다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소총을 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영·미권 언론들이 3일 일제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 대테러부대원들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비랄 마을의 한 저택에 빈 라덴이 은신했다는 첩보에 따라 헬기 4대에 탑승, 2일(현지시간) 오전 1시15분쯤 작전에 돌입했다.
헬기가 빈 라덴의 은신처에 접근하자 빈 라덴 측 병사들은 지붕 위에서 로켓 유탄을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를 뚫고 집안으로 무사히 진입한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의 소수정예 요원들은 곧 빈 라덴과 마주쳤다.
빈 라덴은 AK47 자동소총을 쏘아대며 저항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앞에 서서 인간방패가 됐다. 그러나 빈 라덴은 결국 미 특수부대가 발사한 총에 왼쪽 눈을 맞고 쓰러졌다. 그의 두개골 일부는 이때 떨어져 나갔다.
미 특수부대는 쓰러진 빈 라덴을 확인사살 했다. 빈 라덴 옆에서 인간 방패로 있던 그의 부인과 아들 1명, 연락책 2명도 숨졌다. 작전 돌입 40분 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같은 시간 미국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주요 국가안보팀이 특수부대의 헬멧에 장착된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위성으로 전송된 현장 상황을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된 뒤 그의 시신과 부대원들이 현장에 철수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폭스뉴스 "빈 라덴, 최후순간 겁먹고 갈팡질팡"
(연합뉴스 2011.05.06 05:46)
작전참여 美소식통들 인용 보도
오사마 빈 라덴은 죽기 직전 최후 순간에 “겁을 먹고 완전히 갈팡질팡했다(scared and completely confused)”고 폭스뉴스가 5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번 작전에 참여한 미국 소식통들을 인용해 빈 라덴이 자신을 사살한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 요원을 향해 자신의 아내를 밀치기도 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폭스뉴스는 이런 전언은 40분 동안에 이뤄진 빈 라덴 급습 작전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엇갈리는 상황들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식통들은 폭스뉴스에 빈 라덴이 특수부대원들과 마주쳤을 때 “겁먹은 태도(cowardly manner)”로 행동했다고 전했다.
또 빈 라덴이 비록 비무장 상태였지만, 그는 AK-47 소총과 러시아제 반자동 권총인 마카로프(Makarov) 등 2종의 무기에 가까운 문 인근에 서 있었다고 전했다.
한 고위 당국자는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숨진 5명 중 1명만이 무기를 갖고 총을 쏘다 숨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AP통신도 ‘네이비 실’ 요원이 빈 라덴을 사살할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5명 가운데 4명은 비무장 상태였다고 익명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전했다.
이와 관련, 폭스뉴스는 미 특수 부대원이 은신처의 바리케이드 및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여성과 맞닥뜨리는 등 현장이 혼돈스런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른 미 당국자는 빈 라덴이 머물던 거주지에 “최소한 6개의 무기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수부대 요원들이 은신처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맞닥뜨린 첫 번째 인물은 사살되기 전 특수부대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부대 요원들은 이어 은신처 내로 진입했으며, 이곳에서 3층에서 2층으로 뛰어내려오던 빈 라덴의 아들 칼레드와 마주쳤으며, 칼레드 역시 사살됐다.
네이비 실 요원들은 훈련 과정에서 빈 라덴이 자살 조끼를 착용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미 당국자는 “손에 총을 들고 총격을 가한 인물은 한 명이었지만, 다른 무기들이 현장에 있었다”면서 “빈 라덴은 즉각 항복을 하지 않았으며, 가능한한 많은 미국인을 죽이기를 원한다고 밝혀온 그와 같은 인물들은 150% 항복하지 않으며, 당신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잔디 깎는 기계' 소리? 알고보니 '스텔스 헬리콥터'
(조선일보 2011.05.06 15:26)
빈 라덴 사살 작전에 동원됐다는 미국의 스텔스 헬리콥터. 이 헬리콥터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스텔스 헬기’에 대한 전문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5일(현지시각) 미국의 군사 전문가 빌 스위트먼(Sweetman)은 사진을 보고 “H-60 블랙호크 헬리콥터의 개조형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 헬리콥터에는 11명의 군인이 탈 수 있으며 기관단총·기관총·개틀링포(10개 정도의 총신이 달린 기관포)가 장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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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조선일보DB
사진으로 공개된 헬리콥터의 몸체는 다른 헬리콥터의 몸체와 달리 휘어진 각도가 이상해 F-117 스텔스를 연상시킨다고 미국의 폭스뉴스는 전했다. 한 퇴역 전투기 조종사는 “전통적인 블랙호크의 모습과는 판이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추락한 헬리콥터의 꼬리 날개는 꼬리 날이 5~6개 정도로 추정돼 4개인 블랙호크기보다 1~2개 정도 날이 더 많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紙)에 따르면 스텔스 전투기와 스텔스 헬리콥터는 비슷한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스텔스 전투기는 적군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기 위해 설계됐지만, 스텔스 헬리콥터는 움직일 때 소음을 줄일 목적으로 설계됐다. 헬리콥터는 이미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도록 저공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회전 날개 등 몸체에 움직이는 부분이 많아 레이더망을 피하기 상당히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 스텔스 헬기 소리는 1억5000만 달러(약 1600억원) 무기가 움직이는 소리라기보다는 잔디 깎는 기계 소리에 더욱 가깝게 들린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 공개된 스텔스 헬리콥터는 지난 2004년 공개된 RAH-66 코만치였다. 당시 미국은 이 헬리콥터 프로젝트에 6억9000만달러(약 7500억원)을 쏟아부었다가 사업을 중도 포기했다.
CIA 국장 레온 파네타는 이번 작전에 블랙호크가 동원됐다고 말하며 스텔스 헬리콥터의 작전 도입설을 함구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기존의 블랙호크기에 스텔스 기능 등을 추가해 헬리콥터 몸체가 600kg 정도 더 무거워졌는데 작전 시 급강하하느라 한 대가 추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스텔스 전투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미 당국에서는 이 사실을 숨겼다”며 스텔스 헬리콥터 설(說)에 비중을 두고 보도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경량급 스텔스 헬리콥터를 정보수집용으로 사용했지만, 이 사실은 1995년에서야 밝혀졌다. 5000달러에 정략결혼했던 빈 라덴 최후의 아내
(조선일보 2011.05.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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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새벽(현지시각)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아보타바드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에 미국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들이닥쳤다. 대원들은 빈 라덴이 있던 3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고 한 젊은 여성이 자신들에게 달려들자 그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여성은 얼마 후 빈 라덴이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한때 빈 라덴의 인간 방패로 알려졌던 다섯째 부인 아말 알 사다(Amal al Sadah·29)였다.
5일(현지시각) 미국의 CNN에 따르면 알 사다는 9·11테러 1년 전인 200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43세였던 빈 라덴과 정략 결혼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빈 라덴은 자신 아버의 고향이었던 예멘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예멘 출신 신부감을 찾고 있었다. 알카에다의 간부였던 이스마일(Ismail)은 2008년 예멘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자였던 알 사다와 빈 라덴의 결혼을 주선했다”고 했다.
당시 알 사다는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10대 소녀였다. 다른 부인들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을 만큼 젊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도 맞았다. 빈 라덴이 태어난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은 같은 아랍어를 쓰기 때문에 말도 통했다.
예멘의 공무원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아랍 풍습에 맞춰 사위로부터 현금 5000달러(약 540만원)를 받고 딸을 시집보내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빈 라덴은 젊은 아내를 맞는 기쁨에 결혼식에서 시를 낭송하고, 자동소총으로 공중사격해 축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알 사다는 빈 라덴이 가장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졌으며 둘 사이에는 3명의 자녀가 있었다. 현장에서 “빈 라덴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파키스탄 당국에 진술한 12세 소녀 사피아(Safiyah)가 그의 딸로 알려졌다. 빈 라덴은 9·11 테러 직후 태어난 딸의 이름을 유대인 첩자를 죽인 이슬람 성자의 이름을 따 사피아라고 지었다고 한다. “장래에 이슬람의 적들을 무찌를 아이”라는 뜻이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빈 라덴의 마지막 여인이었던 그를 빈 라덴의 시신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로 옮기려 했지만, 헬기 한 대가 기체 고장으로 이륙하지 못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알 사다는 파키스탄 군 당국에 의해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군 병원에 옮겨졌다.
알 사다는 최근 10년간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행적을 꿰뚫는 ‘열쇠’ 같은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파키스탄에 그를 직접 신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파키스탄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라덴은 알 사다 이전에 4명의 부인이 있었으며 20명이 넘는 자식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아들이 11명이며 딸의 숫자는 확실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의 첫째 부인 나즈와 가넴(Ghanem·52)은 15세 때 2살 연상인 빈 라덴과 결혼해 11명의 자녀를 뒀다. 빈 라덴을 따라 수단·아프간 등을 방랑하다 9·11 테러를 앞두고 중동 지역으로 출국했다.
둘째 부인 카디자 샤리프(Sharif·61)는 빈 라덴과 1983년에 결혼했다. 다섯 아내 중 가장 고학력자로 90년대 말 수단에 머물던 빈 라덴과 이혼하고 사우디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부인 나즈와가 결혼을 주선한 셋째 부인 카리아 사바(Sabar)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넷째 부인인 시암 사바(Sabar) 또한 1987년 빈 라덴과 결혼했으나 아프간 침공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다. [빈 라덴 이후] "백악관 상황실 '미스터리 여인'은 누구냐"
(조선일보 2011.05.06 03:00)
신분 놓고 궁금증 확산
對테러담당 국장 토마슨, 핵심 중 핵심만 모인 자리에 처음 보는 얼굴 등장해 관심
이름·직책 외엔 아는 게 없어… 빈 라덴 추적 핵심 인물 추측, 일부선 "공개되지 말았어야"
"그날 백악관 상황실의 '미스터리 여인'은 누구일까."
지난 2일 공개된 백악관 상황실 사진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여성에 대한 궁금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고 수뇌부들만이 모여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뒤쪽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 여성은 도저히 이 자리에 있을 만한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외에는 유일한 여성이고, 나이도 40세 미만으로 짐작된다. 이 때문에 그는 인터넷에서 '의문의 여인(mystery woma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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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공개된 백악관 상황실 사진에서 오드리 토마슨(원안의 여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이 여성은 그간 미국 언론에 등장한 적이 없는 인물이어서 인터넷에서는‘미스터리 여인’으로 불리고 있다. /AP 뉴시스
당시 백악관의 사진 설명에 따르면 이 여성의 이름은 '오드리 토마슨(Audrey Tomason)'이며 직위는 '대테러담당 국장(Director for Counter-terrorism)'이다. 어느 기관 소속의 국장인지도 나와있지 않다. 이날 자리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국무·국방장관, 국가정보국장, 합참의장, 백악관 비서실장, 대테러보좌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 인물들만 모여 있었다. 그래서 토마슨의 존재가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미국 언론들은 토마슨이 정확히 어디 소속이고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취재하고 있지만 백악관측은 명확한 답을 하고 있지 않다.
한 언론은 토니 비에터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에게 "왜 이 여성은 한 번도 알려지거나 공개된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빈 라덴이 사살된 게 이번이 처음이지 않으냐"는 답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토마슨은 '빈 라덴 추적작전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정보당국의 실무 책임자'일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인터넷에선 "그는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나왔고 나이는 34세"라는 얘기가 돌고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한 인터넷 매체는 "구글로 검색해도 도무지 단서가 없고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데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드리 토마슨'이 본명인지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그가 정보당국의 대테러 담당이 맞다면 얼굴이 공개돼서는 안 된다. 이 사진으로 그의 경력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빈 라덴, "9·11 10주년 겨냥 열차 테러 준비했었다"
(조선일보 2011.05.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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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마 빈 라덴 /AP 연합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들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확보한 그의 친필 노트 등을 미국 정보 당국이 분석한 결과,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9·11 테러 10주년을 맞아 뉴욕과 워싱턴 등지에서 열차 테러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이같은 내용을 최근 미국 사법기관 등에 보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빈 라덴의 친필 노트는 은신처에서 발견한 책 속에 있었으며, 구체적인 작전 등 세부 사항은 없었다.
미국 ABC 방송 등은 알카에다가 선로를 훼손한 다음 열차를 탈선시켜 객차를 통째로 계곡이나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최신식 열차는 객차마다 각각의 제동장치가 있기 때문에, 일부 열차를 선로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열차 전체를 탈선시키기는 어렵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교통안전청(TSA)은 지난해 2월 이후 이같은 테러 계획에 진전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테러 경보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공 장소의 보안을 강화하는 등 ‘예방조치’는 취했다.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빈 라덴 은신처에서 발견된 각종 증거물 중에는 열차 테러 내용 이외에도 알카에다가 기획하고 있던 여러 가지 테러와 관련된 웹사이트 주소 등도 있다고 말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컴퓨터 5대, 하드 드라이브 10개, 저장 장치 100개, 서류 수천 장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