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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700억달러 굴린 `헤지펀드王 몰락 (조선일보 2011.05.13 03:00)

700억달러 굴린 '헤지펀드王(갤리언펀드 설립자 라자라트남)'의 몰락

라지 라자라트남. /로이터 뉴시스

내부자거래 혐의 14건 모두 유죄 평결… 최고 205년형
골드만삭스 이사회 멤버와 전화통화 내용 감청돼 덜미
스리랑카 출신으론 최고 부자
한때 재산 15억달러 세계 236위
엔지니어링 전공 기술株 대가

"첫 번째 공모혐의 '유죄', 두 번째 공모혐의 '유죄'… 14번째 증권사기 혐의 '유죄'."

11일
맨해튼 연방법원. 12명의 배심원은 '헤지펀드의 거인' 라지 라자라트남(53) 갤리언 헤지펀드 설립자에 대해 검찰이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한 14개 범죄를 모두 유죄 평결했다. 법전상으로는 최대 205년, 연방법원의 가이드라인상으로는 19년 6개월의 형이 기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역사상 최대 내부자거래 사건이며 앞으로 월가를 뒤흔들 평결이라고 보도했다.

힌두어로 '왕'을 뜻하는 이름인 라자라트남은 검은 얼굴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배심원의 결정을 들었다. 그를 법정에 세운 연방검사 프릿 버라라는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가장 성공적이며 특권을 누리는 프로페셔널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욕심과 부패가 비리를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재봉틀 회사 매니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기술주(株) 전문가로 한때 70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소유했던 인물이 몰락하는 순간이다.

스리랑카인 출신 중 최고 부자

라자라트남은 전 세계 스리랑카 출신 가운데 최고의 부자로 알려져 있다. 2009년 포브스지 선정 미국의 400대 부호 순위에서도 236위에 올랐다. 당시 추정 자산은 15억달러(약 1조6320억원)였다.

라자라트남은 대부분의 자산을 주식투자를 통해 벌어들였다. 1983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한 직후 그가 처음 몸담은 직장은 미국의 체이스맨해튼은행이었다.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던 그는 이곳에서 최신 기술을 가진 기업들에 대한 대출심사를 담당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1985년부터는 '니담앤코(Needam & Co)'라는 소규모 투자은행의 전자산업 담당 애널리스트로 옮겼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년 뒤엔 리서치 담당 책임자로, 6년 뒤인 1991년엔 불과 34세의 나이로 이 회사 회장이 됐다. 이듬해엔 회사로부터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니담이머징그로스파트너십(the Needam Emerging Growth Partnership)'이란 이름의 펀드를 설립해 펀드매니저의 길로 들어섰다. 나중에 이 펀드를 인수해 지금의 '갤리언펀드'로 이름을 바꿨다. 그가 운영한 펀드는 주로 기술 관련주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

최고경영자와 '빈번한 대화'로 정보 캐내

미국 언론은 이날 확정된 유죄 평결보다 그를 꼼짝 못하도록 옭아맨 수사기법에 주목했다. 검찰은 그동안 마약이나 폭력 또는 테러조직 수사에 사용했던 감청기법을 처음으로 화이트칼라 범죄에 동원했다. 지난 2008년부터 감청된 45개의 녹음테이프는 결정적으로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녹음테이프 속에서 라자라트남은 "어제
골드만삭스 이사회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는데 이번 분기에 주당 2달러의 손실을 본다는 거야. 월가(街)에서는 주당 2.5달러의 이익을 내는 것으로 예상하는데"라며 중요한 내부자 정보를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2008년 7월 29일 골드만삭스의 이사회 멤버였던 라자트 굽타와의 통화에서는 그가 상업은행이나 보험사 인수와 관련해 "뭐 들은 것 없느냐"고 묻자, 굽타가 "그래. 이사회 회의에서 큰 토론이 있었다"고 확인해준다. 검찰은 라자라트남이 반도체회사인 ATI와 AMD의 합병 등을 포함한 내부자 정보를 이런 식으로 캐내 모두 6300만달러의 이득을 올렸다고 보고 있다.

라자라트남은 자신의 투자 철학에 대해 "최고의 투자 아이디어는 잦은 기업 방문과 투자 기업 고위 관계자들과의 빈번한 대화에서 나온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가 말한 '빈번한 대화'란 결국 내부자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던 셈이다.

케네스 허징거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검사는 AP통신에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감청기법 사용은 게임 체인저"라며 "월가는 이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