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5일째 시위… 성직자들도 둘로 갈라져
개혁파 종교지도자들 '부당한 선거' 공개서한
하메네이, 수세에 몰려
이란 대선의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반(反)정부 시위가 장기화할 조짐이다.선거에서 패배한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Mousavi)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시위 5일째인 17일에도 테헤란과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열었다. 무사비 후보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이틀 전 친(親)정부 이슬람 청년 민병대인 바시즈의 발포(發砲)로 숨진 시위대원(최소 7명)을 추모하는 대형 집회를 18일 열기로 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17일 서울에서 한국과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치른 이란 축구 대표팀의 일부 선수들도 손목에 무사비 지지를 상징하는 초록색 밴드를 감았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외국 언론들의 시위 취재를 금지하는 등 보도 통제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외국 언론들은 사무실 밖의 현장 취재가 금지됐고 전화 취재만이 허용됐다. 또 취재비자 기간이 만료된 외국 기자들은 출국을 강요당했다. 17일 이란 외무부는 "일부 외신이 폭도들의 대변자가 됐다"고 비난했다.
- ▲ 친정부 집회 '맞불' 16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중심가에 수천 명이 모여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흔들며 친(親)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종교 단체가 동원한 사람들로, 이 사진 역시 정부가 운영하는 이란학생통신(ISNA)을 통해 배포됐다. 이란 정부는 외국 언론의 현장 취재를 금지했다./AP 연합뉴스
보수·개혁파 간 충돌로 '두 동강 난' 이란의 이면(裏面)엔 인구 7000만명의 중동 최대 이슬람국가인 이란을 30년간 이끌어온 종교 엘리트집단 내부의 전례 없는 분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보다 높은 '최고 지도자'직을 맡고, 주요 국가 기관과 핵심 요직에 성직자들이 포진하는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다. 대선과 총선 출마 희망자는 이슬람 성직자들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로부터 이슬람신앙을 검증받아야 한다. 대다수 정치인이 종교 엘리트집단에서 배출된다.
물론 이란 종교 엘리트들 사이에 보수·개혁 대립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의회·선거에서만 드러나던 갈등들이 이젠 길거리로 옮겨지고 있다.
이번 대선을 둘러싼 이슬람 보수·개혁 갈등의 두 축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Khamenei·보수)와 하셰미 라프산자니(Rafsanjani·중도개혁) 전 대통령이다.
- ▲ 서울에서도‘대선 부정’항의 17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를 치른 이란 축구 대표팀이 경기 시작 전 기념 촬영을 했다. 주장 알리 카리미(8번)를 비롯해 선수 5명이 최근 이란 대선에서 패한 개혁파 후보 무사비를 지지하는 의미로 손목에 초록색 밴드를 감았다./AP뉴시스
명망 높은 종교 지도자이기도 한 라프산자니는 무사비 전 총리, 모하메드 하타미(Khatami) 전 대통령 등 대표적 개혁파들을 규합해 이란의 종교 중심지 콤에 모여 있는 이슬람 고위 성직자들에게 이번 선거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공개서한을 보내는 한편,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며 보수파를 압박한다.
하메네이는 수세에 몰린 상태다. 유세 때 분출한 국민의 개혁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아마디네자드의 재선을 서둘러 추인하는 무리수를 뒀다가 역풍을 맞고 뒤늦게 개혁파의 재검표 요구를 수용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혼란은 이슬람의 양대 세력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이 발표된 13일 이후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연일 전국이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최대 시위에 몸살을 앓자, 종교 엘리트들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17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 신정(神政)정치의 약화 또는 붕괴를 성급하게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목하는 이슬람 보수·개혁파조차도 '이슬람 신정정치의 유지'라는 점에서는 목표가 같아 이런 전망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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