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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이란 개혁파의 간판 무사비는 개혁적인가? (연합뉴스 2009.06.18)

이란 개혁파의 간판 무사비는 개혁적인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이란 개혁파가 옹립하는 미르 호세인 무사비(67) 전 총리는 이제 ’이란의 간디’로 불리며 반정부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서방 시각으로 볼 때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맞선 카드로서 마지막 순간에 지명된 온건한 인물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18일 논평했다.

무사비는 1979년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추종자이자 강경파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혁세력의 간판으로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이니 현 최고지도자와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무사비의 투쟁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강경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적인 저항운동인지,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인지 구분이 확실치 않다고 뉴욕 타임스는 지적했다.

무사비는 이란 북서부 하메네흐에서 차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하메이니 현 최고지도자와 동향에 친척지간이다.

이슬람혁명 후 외무장관을 거쳐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총리를 역임했으며,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란 경제를 잘 지탱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총리 재임 시절 핵무기 암시장에서 원심분리기의 구입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서방으로부터 의혹어린 눈총을 받고 있다.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다른 많은 인물들처럼 그도 혁명 초창기의 선동적인 급진주의가 평화와 국가 건설의 시기에는 완화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주변 인물들은 말하고 있다.

무사비의 정치 행로에 대한 글을 쓴 맨체스터 대학의 강사 샤흐람 홀디는 “그는 혁명의 혼혈아”라며 “그는 이슬람 원칙에 헌신적이지만, 진보적인 열망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많은 사람들은 1980년대 총리로서 혹독한 경험을 한 무사비가 위험한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호한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종교적으로 믿음이 깊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캠페인에서 함께 뛴 유명한 정치학 교수인 아내 자라 라흐나바드는 무사비가 당선될 경우 여성 인권을 향상하고, 최소한 2∼3명의 여성 각료를 임명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첫째 딸은 핵물리학자이고, 막내 딸은 이슬람 차도르를 잘 입지 않지만, 부모는 개의치 않는다고 친척들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