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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신아시아구상

아세안을 뚫어라> ② 베트남 (연합뉴스 2009.10.18)

아세안을 뚫어라> ② 베트남

한국-베트남 주간 앞둔 하노이
(베트남=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어윤대) 주관으로 18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에서 열리는 <한-베주간>(Korea Week) 행사를 하루 앞둔 17일 오후 주 행사장인 수도 하노이의 국가회의센터(NCC) 앞 도로에 행사를 알리는 깃발이 걸려 있다. 행사 기간에는 가수 <소녀시대> 등이 출연하는 '한-베 우정 페스트벌'과 '한-베 동반성장을 위한 CEO 포럼,' 현지 진출 한국기업과 베트남 근로자들을 연계해 현장에서 인터뷰를 통해 채용을 하는 'Job Festival' 등 40여 가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2009.10.17

SOC.자원 투자진출 필요 ..韓 베트남 투자 부동산.유통.섬유에 치중

지난 7월 현재 인구 8천697만명, 인구증가율 0.977%,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6.2%, 구매력 기준 일인당 연소득(PPP) 2천800달러, 15∼64세 노동인구비율 69.4%...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 팩트북(World Factbook)에 수록된 베트남에 대한 개괄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한 베트남시장을 둘러싸고 한-일-중 3국 간에 신(新) 삼국지가 이미 10년 넘게 벌어지고 있다.

'제2차 중일전쟁'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이 대전을 예의주시해온 상당수 전문가들은 사실상 승패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일본과 중국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박빙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은 한참 뒤떨어진 채 힘겹게 따라붙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2일 베트남 남부 껀터시에서는 조촐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행사가 열렸다. 베트남 최대의 곡창지대인 메콩강 삼각주의 중심지인 껀터시와 빈롱시를 연결하는 폭 26m, 길이 2.75㎞의 4차선 현수교 마지막 공사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공사비를 포함해 모두 2억6천650만달러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 공사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로 이뤄졌다. 일본의 ODA로 건설된 또다른 상징물은 바로 '경제 수도'인 남부 호찌민시의 떤선넛국제공항 신청사다.

지난 2007년에 선보인 신청사의 1단계 공사 역시 일본의 ODA로 이뤄졌다. 또 내년에 마무리될 2단계 공사도 일본돈으로 진행되고 있다. 두 공사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실제로 10억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야심을 엿볼 수 있는 또하나의 사례는 수도 하노이에서 호찌민을 잇는 전장 1천560㎞의 고속전철 참여 계획이다.

베트남판 신칸센(新幹線)으로 불리는 이 고속철은 오는 2036년 완공예정인데 사업비만 560억달러로 이미 일본의 가와사키(川岐)중공업 등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벌써부터 일본 및 베트남 정부 등을 상대로 물밑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일본은 베트남의 재정이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 ODA와 참여업체들이 투자하는 BT(build-transfer)나 BOT(build-operation-transfer) 방식으로 사업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추가 고속철 건설 등 '베팅' 가치가 높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6년 10월 베트남과 '전략적 동반자관계'(strategic partnership) 설정을 천명한 일본의 베트남 ODA 지원 규모는 공여국 가운데 가장 큰 110억달러를 넘어섰다.

일본의 약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일본이 10번째로 베트남과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연대협정(EPA)를 체결, 올해부터 향후 10년 동안 양국 수입액의 92%에 대해 비관세 조치가 이뤄지게 됐다.

이에 발맞춰 캐논 등 일부 일본 업체들은 베트남을 아세안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연합(EU), 중동. 아프리카 지역 등에 대한 수출전진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오는 2014년부터 가동되는 원자력발전소 등 경쟁력을 갖고 있는 중공업 분야에서의 진출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물밑작업을 전개 중이다.

중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과 베트남의 교역액은 200억9천만달러로 중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교역국(수출 45억4천만달러, 수입 156억5천만달러)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으로서는 중국이 첫번째 수입국이자, 세번째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기간에 중국의 베트남 투자도 21억9천만달러로 집계됐다. 올들어서 지난달까지 중국의 베트남 투자는 656건(누계기준)에 26억7천만달러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통계일뿐 우회투자나 간접투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적으로는 이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중국은 내륙과 광시성(廣西省)에서 한국의 인천 격인 하이퐁까지 연결되는 라오까이-하노이-하이퐁-랑손 지역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고속도로 등 토목공사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 등 다각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집중해오고 있다.

중국의 투자 진출 가운데 주목할만한 것이 바로 에너지 분야다. 알루미늄의 주원료인 보크사이트의 경우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1(80억t)을 갖고 있는 베트남에서 중국은 이미 국영기업인 중국알루미늄공사(차이날코)를 앞세워 중부 고원지대에 채광권을 확보했다.

석탄도 마찬가지다. 꽝닌성 등 북부지역에 밀집된 탄광에서 생산되는 상당수 물량이 이미 중국에 수출 형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4월 16일자에서 중국의 이런 싹쓸이식 '우호적 침략'에 대해 중국 경계무드가 확대되고 있다며 실상을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일본과 중국의 이런 체계적이고 공격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한국의 베트남투자는 투자금액 측면에서는 적지 않지만 아직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평가다.올해들어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지난달까지 133건, 13억5천만달러로 미국(39억6천만달러)과 대만(13억6천만달러)에 이어 3위로 다시 올라섰지만 여전히 주택건설, 유통, 섬유.봉제 등 일부 업종에만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포스트 차이나(Post-China) 신흥 유망시장 ▲해외수출을 위한 생산기지 ▲무역과 투자가 결합된 복합시장으로서의 속성을 활용하려는 특징이 강하다.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지난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9천49만달러의 무상원조를 해왔지만 이는 연평균 503만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또 한국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한 유상차관 형태의 EDCF(대외경제협력기금)는 지난 8월말 현재 27개 사업에 7억9천만달러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이율과 상환조건 및 국산(한국산)화 비율 등 조건은 일본과 중국의 유사 지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한국은 지난해부터 오는 2011년까지 ODA와 EDCF를 합쳐 1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지만 ODA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이는 일본이 올 한해 공약한 9억달러에 비하면 작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 베트남이 발주하는 '영양가' 있는 대형 SOC사업에 한국업체들의 참여 기회는 저조할 수밖에 없다.

현지 경제전문가는 "일본이 공여국 최대라는 ODA를 무기로 자동차, 전기전자 등 기술.자본집약적인 산업 중심으로 진출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 역시 대만까지 포함하는 화교경제권 부활을 꾀하면서 에너지와 SOC 부문에 대한 지원과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반면 한국은 두 강대국의 협공 속에서 삼성전자와 LG, POSCO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섬유.봉제 등 노동집약형 산업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구나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참여하는 형태가 아니라 개별기업과 업종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단기적이고 비체계적일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졌다"면서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면서도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