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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대선 후보 인물탐구](2) 가족 이야기 - 박근혜 (경향신문 2012-12-04 22:24:34)

[대선 후보 인물탐구](2) 가족 이야기 - 박근혜

“나라와 결혼했다”…조카 사랑 끔찍
ㆍ특권층 비판엔 “어머니께 근검 배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지난달 7일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걸투(GIRL TWO) 콘서트’에 참석했다. 토크쇼 형식의 이날 행사에서 박 후보와 학생들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손병호씨가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손병호 게임’을 했다. 게임에 참여한 한 학생이 “두 명 이상 남자와 데이트 안 해 본 사람 접어”라고 외쳤다. 박 후보는 손가락을 접지 않았다. ‘두 명 이상 남자와 데이트를 해본 적이 있다’는 얘기였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탄성과 웃음이 터졌다.

박 후보는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본받고 싶은 남학생이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자서전에는 스스로를 ‘미팅 한번 못해 본 대학생’이라고 적기도 했다.

또래들이 결혼할 즈음 박 후보는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박 후보는 결혼에 대해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결혼은 언제쯤 할 거냐고 하면 “이미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성주 선대위원장은 박 후보를 “화이트 골드 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갖춘 30대 이상 미혼 여성을 말하는 골드 미스에 60세라는 박 후보의 나이를 빗댄 표현이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잠깐 언급한 바 있다. 박 후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육영수 여사가 “네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니”라고 물었는데, 박 후보는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답변 못드리겠는데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귀띔해주렴. 좋은 벗을 만나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동생 박지만씨의 아들 세현군을 유난히 아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만씨는 서향희 변호사와 2004년 결혼해 이듬해 세현군을 낳았다. 지난달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조카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태어나서 저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며 “여러 가지 재롱을 부린 것도 기억이 난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면 케이크가 없을 때에도 허공에 대고 ‘후후후’ 하면서 촛불을 끄는 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잃고 싶지 않은 세 가지(2007년)에도 ‘조카 세현이’가 포함됐다.

한편에선 올케인 서 변호사가 삼화저축은행 법률고문을 맡은 것을 두고 로비 의혹 등이 불거졌고 ‘만사올통(올케를 거치면 안되는 게 없다)’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여동생 근령씨와 2008년 10월 결혼한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는 육영재단 문제 등을 둘러싸고 박 후보를 비방하고 허위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1960년대 말 청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오른쪽에서 두번째).


박 후보의 본관은 고령 박씨로,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2월2일 아버지의 부임지던 대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자 서울로 올라온 박 후보는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청와대에서 지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부드러운 성품으로 유명하지만 훈육은 엄격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자녀로서 특권 의식이나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박 후보는 1999년 펴낸 <나의 어머니 육영수>라는 책에 적었다.

“간혹 친척이 해외 여행길에 산 것이라며 저희들에게 줄 선물을 가져올 때면 어머니는 기뻐하는 저희들의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그 자리에서 친척을 나무랐다. 남이 안 가진 것을 갖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을뿐더러 건전한 시민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연유로 박 후보는 ‘특권층이고 서민들의 애환을 모른다’는 야권 비판을 편견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달 22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근검절약 정신은 말도 못한다. 어머니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다”면서 “저는 지금도 어디 가면 전기 끄고 수도 잠근다. 특별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박 후보는 지속적으로 ‘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었다’는 말을 들었고 5·16 군사쿠데타를 비롯해 아버지와 얽힌 과거사 인식은 야당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지난달 26일 10·26 33주기를 맞아 박 후보는 “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고 했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박 후보는 끊임없이 평범함을 갈구했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1989년 11월29일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게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해진다. 항상 폭풍우, 비바람, 번개 등 바람 잘 날 없이 불안하고 위태위태하여 마음 한 번 푸근하게 가져보기 힘든 것이 내 운명인가 하고도 생각해 본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2) 가족 이야기 - 문재인
 (경향신문 2012-12-04 23:20:29 )

ㆍ“노무현 고향집 부러웠다”는 실향민
ㆍ자녀 교육방침은 ‘본인 의사 존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시골집에 놀러갈 때마다 참 부러웠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또 고향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분 마음도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은 이북에서 피란 온 실향민이었거든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공식사이트에서 밝힌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에는 고향이라는 뿌리를 잃어버린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문 후보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의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이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피란을 와서 거제 포로수용소 인근인 경남 거제면 명진리 남정마을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문 후보가 태어났고, 7살 때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한국전쟁은 문 후보의 집안에 짙은 상흔을 남겼다. 전쟁통에 갑자기 “적수공권(赤手空拳) 빈털터리”(<문재인의 운명>)로 피란 온 사람들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성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친 문용형씨는 고향에서 ‘수재’라는 소리를 듣던 인물이었다. 함경남도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흥남시청 농업계장·과장을 지냈다. 전쟁은 부친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조용한 성품의 부친은 장사 체질이 아니었다. 빚만 잔뜩 졌고, 장사에 실패한 이후 더욱 말수가 줄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부친은 197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문 후보가 강제징집된 군대에서 제대해 복학하지 못하고 있던 낭인 시절이었다. 그는 “(아버지께) 잘되는 모습을 조금도 보여드리지 못한 게 평생의 회한”이라고 했다.

과묵한 성격이 똑같았던 부자(父子)는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부친은 당시 대표적인 저항잡지인 ‘사상계’를 읽고 이웃 대학생에게 한일회담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등 사회의식이 깊었다. 문 후보는 “아버지가 나의 사회의식, 비판의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연민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었으며 어느새 닮아 있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가계는 어머니 강한옥씨(85)가 거의 꾸려나갔다. 좌판 옷장사, 구멍가게, 연탄배달 등 여러 일을 했지만 호구지책을 겨우 면할 정도였다. 그래도 교육열만은 높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월사금을 마련했다. 문 후보는 “(부모님은) 중·고교 6년 내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그냥 믿고 맡겨주셨다”고 했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는 말도 항상 했다고 한다.

 

1980년대 말 부산 동물원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문재인 후보(오른쪽).

이 같은 가풍은 문 후보 자녀교육관에도 투영됐다. 1남1녀를 두고 있는 문 후보의 교육방침은 ‘본인 의사 존중’이다. 그는 “두 명 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인정해주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키워왔다”고 했다. 아들 문준용씨(30)는 건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해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딸 문다혜씨(29)는 3살배기 아들을 둔 주부다. 문다혜씨는 아버지의 출마를 반대해 출마선언식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나, 무대 뒤편에서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김정숙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이지만 딸 바보”라며 “시험공부로 밤을 새워야 하는 딸이 무섭다고 하니까 옆에서 졸면서도 같이 있어줬다”고 말했다.

부인 김씨는 대학 2년 후배로 대학 축제에서 처음 만났다. 문 후보가 시위 도중 최루가스를 맡고 실신했을 때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게 긴긴 8년 연애 시작이었다. 문 후보는 “그때 ‘아!’ 했죠”라고 했다. 김씨는 문 후보가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군대에 강제징집됐을 때, 고시 공부하러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갔을 때 모두 면회를 왔다. 김씨가 군대에 있는 문 후보를 처음 면회할 때 남들 다 들고오는 통닭 대신 안개꽃을 한아름 들고온 건 유명한 일화다. “커피값을 아낀다고 버스 타고 얘기하다가 매번 내릴 곳을 놓쳐 종점까지”(김씨) 가며 키워온 ‘닭살’ 사랑은 1981년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다.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김씨가 문 후보 앞에서 일부러 담배를 물었다. 다른 여자에겐 너그러우면서도 ‘내 여자는 안돼’라고 하는 남자들과 똑같은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 후보는 잠자코 있었다. “왜 가만 있느냐”고 했더니, “담배는 네 선호인데 내가 왜 참견하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문 후보가 ‘믿을 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씨는 최근 트위터에 문 후보가 길을 걷다가도 김씨가 좋아하는 꽃을 보여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평소 말이 없어 제가 쿡쿡 찔러야 몇 마디 하는 어찌 보면 재미없는 남자, 그래도 이런 자상하고 따뜻한 면이 있으니”라고 적었다.

문 후보 가계는 평범하다. 형제는 2남3녀다. 누나 문재월씨(63)와 여동생 문재성씨(57)는 주부이고, 남동생 문재익씨(53)는 원양어선 선장이다. 막내 여동생 문재실씨(50)는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 영도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