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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뉴스/세계가 놀란 한국

거대과학 한국의 힘(조선일보 2009.01.01)

<1>대덕 핵융합연구장치
섭씨 1억도의 핵융합 부품 기술
30여 기업·연구소 참여해 개발
거대과학 분야 첫 원천기술 '눈앞'

한국 과학이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하면서 수천억원이 넘게 들어간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줄을 잇고 있다. 거대과학은 그 자체로 모든 과학기술이 총집결된 결과물이자 일상생활에서 기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를 변화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거대과학의 현장을 찾아 미래를 향한 한국의 힘찬 맥박을 짚어봤다.

지난해 말 대덕 연구단지 국가핵융합연구소. 12년간 3090억원을 들여 독자기술로 만든 핵융합연구장치(KSTAR)에서 연구원들이 우주왕복선에 붙이는 내화(耐火) 타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흔히 보는 커다란 쇳덩어리 같지만 그 안에 미래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불'을 숨기고 있다. 바로 '인공태양'이다.

KSTAR은 태양처럼 수소 핵이 융합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양산한다. 수소 500g만으로 고리원전급 발전소 4기를 하루 동안 가동할 수 있고, 온실가스나 유독성 방사성 폐기물도 없다. 우리 기업들이 이 '무한 청정에너지원' 개발에 참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조선·건설·발전 경험으로 만든 인공태양

KSTAR의 진공용기 안에서는 섭씨 1억도가 넘는 상태에서 핵융합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극고온의 물질이 벽에 바로 닿으면 장치가 녹아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 벽 안에 영하 269도의 초전도 자석을 넣어 고온의 물질을 밀어낸다.

양 극한의 온도를 공존시키는 진공용기는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이 회사 박경호 부장은 "우리가 제안한 기술과 시제품이 수차례 퇴짜를 맞아 포기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역사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명감으로 계속 도전했다"고 말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현대중공업은 1억도 차이에도 버틸 수 있는 철강 구조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초전도체는 두산중공업이 담당했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흘러도 저항과 열이 발생하지 않는 물질이다. 발전소 건설로 잔뼈가 굵은 두산중공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용 초전도체를 시공할 수 있었다. 인공태양이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냉각수는 대우건설이 맡았다. KSTAR의 냉각수는 불순물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불순물은 전기가 흐르는 통로 구실을 해서 수만 볼트에서 가동되는 KSTAR에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의 KSTAR은 새로운 에너지원(源)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가 12조원을 투자하는 ITER사업에 KSTAR의 핵심 기술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덕=전재홍 기자 jhjun@chosun.com
50년 뒤 300억달러 시장 확보

이밖에 삼성중공업·고려제강·한국원자력연구원 등 30여 기업과 연구소가 KSTAR 건설에 참여했다. 참여 기업은 '국제핵융합로(ITER) 건설'에도 참여한다. 우리나라가 분담금 대부분을 KSTAR 건설에서 개발한 부품을 현물출자형식으로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

특히 ITER에 들어갈 진공용기의 20%를 우리 기업이 제작한다. 오차 10㎜ 이내의 초정밀 기기이다. 이케다(Ikeda) ITER 사무총장은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KSTAR을 건설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ITER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KSTAR는 우리 기업에 새로운 시장도 열어 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50년 후 극동지역에서만 상업용 핵융합발전소 수요가 최소 1000억달러(약 13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KSTAR에서 얻은 앞선 기술로 이 시장에서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

핵융합 같은 거대과학은 다양한 산업 부문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핵융합을 일으키는 초고온 상태의 플라스마.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플라스마 기술이 필요한 분야가 70%라는 분석도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수소발생장치, 태양전지 등에 응용되는 것까지 합하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수백조 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핵융합연구소는 분석하고 있다.

경쟁분야서 원천기술 보유 첫 사례 될 듯

경제적 효과뿐만이 아니다. 핵융합연구소의 권면 박사는 "KSTAR 성공으로 세계에 새로운 에너지 양산 방식을 선보여 과학 한국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엄청난 이미지 제고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KSTAR의 1차 플라스마 실험 성공 이후
영국BBC방송 취재진이 한국을 방문,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 각국이 경쟁하는 분야에서 처음으로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다. ITER사업단 한국 측 대표인 정기정 박사는 "한국은 핵융합에서만큼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면서 "KSTAR은 한국이 건국 이래 거대과학에서 후발 주자가 아닌 원천기술을 보유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융합 사업을 수행하면서 생긴 특허권으로 인한 수익 역시 보장받는다. 명실상부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인공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한국·미국·일본·러시아·EU·중국·인도가 공동으로 출자해 2018년 프랑스에 건설하기로 한 국제핵융합실험로. 국내 KSTAR의 초전도체를 활용한 핵융합 기술이 그대로 사용될 예정이다.

거대과학

우주왕복선 개발처럼 대규모의 과학자, 엔지니어를 투입해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R&D) 과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