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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뉴스/세계가 놀란 한국

한국 브랜드 (매일경제 2009.04.28)

"이랜드가 한국 브랜드라고요?"
중국 영캐주얼 1위 이랜드 상하이 매장 가보니

중국 상하이시 바바이반(八百伴) 백화점. 중국 금융ㆍ상업의 중심지인 푸둥(浦東)에 위치한 이 백화점은 연매출 32억위안(한화 5760억원)으로 150만명의 푸둥 시민들이 찾는 상하이시 1위, 중국 3위의 백화점이다.

3층 숙녀복 매장에 올라서자 익숙한 이름의 브랜드 매장들이 눈에 띈다. 유럽 유명 브랜드 에스프리, 온리, 베로 모다 등과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스코필드, 티니 위니, 로엠 등 국내 패션기업 이랜드의 직영 매장들이다.

국내에서는 가두점 중심의 프랜차이즈 판매로 중저가 이미지가 굳어진 이랜드가 중국에서는 상하이 바바이반, 신스제(新世界), 난징의 진잉(金鷹) 등 고급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중고가`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었다.

스코필드 숙녀복 매장에는 고급스러운 소품들을 배경으로 여름용 셔츠와 원피스들이 깔끔하게 진열돼 있다. 셔츠류의 가격대는 700~900위안(한화 12만6000~16만2000원) 정도.

매장 직원 타오샤오팡(陶曉芳ㆍ31) 씨는 "주로 직장 4~5년차인 30세 전후 여성이 많이 찾는다"며 "한 고객이 많게는 8000위안(한화 144만원)어치를 사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장에서 만난 후징(互靜ㆍ화둥사범대ㆍ23) 씨는 "이랜드의 브랜드들은 좀처럼 할인을 하지 않아 고급제품으로 통한다"며 "이랜드가 한국 브랜드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지난해 12월 31일 바바이반 백화점에서 일 년 중 딱 하루 실시하는 세일 행사를 벌였다. 평소 하루 매출인 4만위안(720만원)의 50배에 달하는 200만위안(3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을 냈다. 물밀듯 밀려온 손님 응대를 위해 임시 직원 23명이 추가로 배치됐을 정도.

중국 상하이 바바이반 백화점에 입점한 이랜드의 `스코필드` 여성복 매장.
스코필드 남성복 매장의 경우 T셔츠는 600~800위안에 판매되고 있는데, 같은 층에 위치한 라코스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랜드 키즈와 포인포 매장은 홍콩의 유명 아동복 브랜드인 킹커우 옆에 붙어 있는데, 손님들 대부분이 부유층이다.

스코필드 매장과 로엠 매장 사이에 위치한 유럽의 유명 여성 캐주얼 브랜드 에스프리. 1994년 이랜드 패션 상하이유한공사를 설립한 이래 백화점을 중심으로 고급화 전략을 펼친 이랜드가 택한 전술은 `에스프리 비사이드`였다. 중국에서 인기가 좋은 에스프리 옆자리를 지난 10여 년간 악착같이 지켜온 결과 2007년 여성 캐주얼 1위에 올라섰다.

이랜드가 중국 진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94년 중국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면서다. 이어 96년 상하이 유명 쇼핑거리인 화이하이루(淮海路)에 가두숍을 열고 중국 시장에 이랜드를 론칭했다. 저임금 생산기지 구축에서 중국 내수시장 공략으로 물꼬를 튼 것이다. 그러나 야심차게 기획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가두점 위주로 영업해온 관성에 따라 가두점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은 중국에 가두점을 연 것이 패착이었다.

실패를 교훈 삼아 이랜드가 내세운 전략은 고급화였다. 먼저 A급 백화점 입점과 세일 최소화로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주력했다. 공항 카트 광고를 통해 상위 소비 계층에 브랜드를 노출했다.

이랜드 중국법인 김현수 전무는 "한국에서는 중저가 이미지 탓에 일부 고급 브랜드도 백화점 입점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글로벌 브랜드들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중국에서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2000년 6개월의 테스트 기간을 조건으로 상하이 쉬자후이(徐家匯)의 백화점에 입점한 이랜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2000년 46개에 불과했던 매장 수는 2008년 2325개로 50배 늘었고, 매출도 2000년 5100만위안에서 2008년 44억7600만위안으로 88배가량 올랐다.

■ 8년만에 매출 88배↑… 올해 3200개 매장 확보

이 같은 성공에는 현지화 노력도 한몫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직원들은 평범한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자녀들을 인민학교에 보냈다. 직원의 70%는 중국인으로 고용했다. 현지 백화점 바이어는 현지 출신 직원들이 상대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의류는 중국인의 취향과 체형에 맞게 모조리 새로 제작했다.

김현수 전무는 "중국이라도 다 같은 중국이 아니다"며 "상품 기획단계부터 지역별 기후, 소득수준, 선호하는 디자인을 고려해 인기 제품의 물량이 부족하거나 비인기 제품이 과다 발주되는 일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까다로운 중국 관료들과 콧대 높은 백화점 바이어들을 상대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접대나 로비는 공공연한 관행이었지만, 음주나 접대를 사실상 금기시하는 기업문화 때문에 `술 한 잔 해야 친구가 된다`는 중국인들의 문화에 발을 맞출 수 없었다. 회사의 문화를 중국에 맞추는 대신에 이랜드는 `오래되면 친구가 된다`는 또 다른 법칙에 기대기로 했다.

지난해 5월 쓰촨성 지진 당시 상하이 홍십자(紅十字)에 현금 70만위안(한화 1억3000만원)과 천막을 기증하는 등 사회공헌을 꾸준히 펼친 것도 중국 정부와의 순조로운 관계 정립에 일조했다.

중국인들에게 이랜드는 대표적인 선호 직장으로 손꼽힌다. 바바이반 백화점 로엠 매장에서 일하는 다이융리(戴永麗ㆍ31) 씨는 2006년까지 J브랜드에서 1년간 일하다 이랜드로 이직했다.

최종양 이랜드 중국법인 대표는 "중국 패션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겠다는 목표로 이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중국인들에게 계속 심어줄 계획"이라며 "2012년까지 과장급 이상 직원의 3분의 2를 중국인으로 채우는 등 현지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매출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이랜드는 전망하고 있다. 매장 수도 올해 안으로 32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4월 현재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속옷 등 17개의 이랜드 브랜드는 중국 31개 성, 280개 시의 2469개 매장에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