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것만은…진술 의존, 법정 퇴짜맞고 호들갑
[검찰 수사관행 이것만은 고치자] (1) 자백의 늪
“이제까지의 수사 관행과 수사기법, 수사상황 브리핑, 보안사항 유출 등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 5일 퇴임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비난 여론으로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한 검찰이 각계의 제언과 비판에 귀 기울여 진지하게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의 검사’로 거듭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관행과 문제점을 5회로 나눠 짚어 본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7일 김평수 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뇌물수수죄 등으로 구속했다.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법원에서 기각되자 검찰은 ‘철저한’ 보강수사를 통해 세 번째 영장을 청구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김 전 이사장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10여일 추가 조사해 기소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일이 터졌다. 뇌물을 주고받은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건설사 대표 장모씨는 2005년 9월20일 오후 7시쯤 서울 강서구 염창동 N호텔 내 1층 한식당에서 김 전 이사장을 만나 2000만원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자백했다. 검찰은 장씨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기록을 작성했고 구속영장, 공소장에서도 N호텔을 뇌물수수 장소로 명시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확인할 결과 당시 N호텔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느라 완전 철거된 상태였다.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간과
뒤늦게 검찰은 N호텔 옆에 있는 R호텔에서 돈이 오갔는데 장씨가 착각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증거 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뇌물공여자 말만 ‘받아쓰기’한 셈이 됐다. 검찰의 주장이 오락가락하자 법원이 지난달 28일 R호텔로 현장검증에 나섰다. 뇌물공여자의 자백을 믿을 수 있는지 법원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당시 이 사건을 지휘한 검사가 바로 지난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검찰청 청사에서 직접 조사한 우병우(42·사시 29회) 중수1과장이다.
검찰은 뇌물 사건을 수사할 때 뇌물공여자의 자백을 증거 확보 수단으로 삼고, 자백의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증거 위주의 과학수사는커녕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간과하는 일이 생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업인 등 뇌물공여자는 죄를 털어놓으면 처벌받고 배신자로 찍히기 때문에 자백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검찰이 공여자를 압박해 자백을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증거에 소홀해진다.”고 지적했다.
대대적인 사정수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구속이나 기소라는 목표를 정해 놓다 보니 검찰이 뇌물공여자의 진술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무죄 가능성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도 ‘박연차 게이트’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흔들림이 없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칭찬’했다. 그러나 자백에 의존한 이같은 수사가 법정에서 어떻게 결론 날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한보철강 인수와 관련해 대학 동창 문모(47)씨에게서 1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김현미 전 민주당 의원을 기소했다. 문씨는 1, 2차 검찰 진술에서 2004년 8월20일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이 그해 8월16일부터 20일까지 중국에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문씨는 날짜를 8월24일로 바꿨다. 뇌물액수도 2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번복했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은 문씨의 진술에서 여러 가지 모순이 발견되고 자백한 동기가 의심스럽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현대차그룹에서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뇌물을 준 사람의 진술만 믿고 내린 기소”라고 지적했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옛 사위 이모씨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받았다. 이씨가 정 전 비서관의 딸과 결혼하며 학력과 경력을 속인 데다 정 전 비서관과의 관계를 내세워 거액의 불법자금까지 받은 만큼 이씨 자백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탈세, 비자금 조성 등 다른 범죄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공여자가 뇌물 혐의를 과장한 것으로 판단되면 다소 의심스럽더라도 무죄를 선고한다.”면서 “공여자 진술이 지나치게 분명하고, 그 진술에 너무 의존한 수사는 ‘짜맞추기’가 아닌가 의심한다.”고 말했다. 뇌물을 주지 않았는데 자백하겠느냐는 ‘상식’으로만 판단하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형사법의 기본을 되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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