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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임채진 검찰총장 문답> (연합뉴스 2009.06.05)

임채진 검찰총장 문답>

굳은 표정의 임채진 총장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사표를 제출한 임채진 검찰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로 출근을 하고 있다. 2009.6.5
leesh@yna.co.kr
임채진 검찰총장은 5일 퇴임식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권교체기의 검찰총장직은 엄중하고 무거운 자리이자 치욕까지 감내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6개월의 재임기간을 되돌아보고 검찰의 부정부패 수사는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임 총장과의 문답.


--이달 3일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는.

▲원래 1일 낼까 했으나 한-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었고 총장이 며칠이라도 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중수부에 힘을 실어주려 했다. 그러나 천신일 회장의 영장이 기각돼 수사가 장기화할 것 같아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은 수사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노코멘트다. (직무대행인) 차장과 중수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총장이 되리라 예상했었나.

▲전혀 생각 안 했다. 총장이 정말 골치 아픈 자리다. 특히 정권교체기 총장이 되면 정말 힘들다. 검찰국장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사법제도개혁, 보안법 폐지 등과 관련해 검찰 입장을 밝혔었기에 내가 총장감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총장직은 실제 어떠했나.

▲대단히 어려운 자리였다. 내정자 시절부터 BBK 사건 수사를 보고받았고 그 사건 결정을 내린 뒤에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 같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술 마시고 친구에게 `거짓 없는 우리 결정이 후회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하늘이여 도와주소서'라는 문자를 보냈었다.

--언론에 섭섭한 점은.

▲내 위치가 보혁, 전 정권과 현 정권,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중간지점에 있다. 사건 처리할 때는 강경론과 온건론의 중간에 있다. 인격모독성 기사에는 좀 속상했었다.

--`이렇게 했을걸'이라고 후회하는 건.

▲노코멘트.

--검찰 개혁 목소리가 높은데.

▲과거 논의됐던 게 다시 거론되던데 채택 안 된데 다 이유가 있다. 사실 언론과 검찰의 관계가 제일 문제이지 않나.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속단하지 않으면서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결정도 하기 전에 혐의가 있다 없다, 구속해야 한다 불구속해야 한다는 의견 기사를 쓴다. 소신 있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이 같은 관계는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변호사 개업하나.

▲그래야지. 퇴임이 급하게 결정돼 아직 사무실도 못 구하고 자동차도 없다.

--학교로 갈 생각은 없나.

▲원래 꿈이 교수였지만 돈이 없었고, 그다음에 판사를 원했는데 법무관 시절 군사법원에서 탈영 후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진로를 검사로 바꿨다.

--노 전 대통령 비보를 들었을 때 심경은.

▲대답 안 해도 되겠지.

--`사퇴의 변'에서 역부족이라 했는데.

▲결과적으로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았잖아. 사건에 대한 언급은 내 몫이 아니다. 노코멘트이다.

--가장 힘든 때는.

▲이번 수사였다. 좋은 일은 일선 검사들과 참모들이 다 한다. 나한테 오는 건 골치 아픈 일만 온다. 총장이 권력자라 하는데 아니다. 사표를 내니까 가슴 속에 꽉 막혔던 것이 탁 터지는 것 같다. 후배들은 대단히 능력이 뛰어나고 트레이닝을 겪어왔다. 일선 검사들이 안 흔들리면 아무 문제 없다. 이런 때일수록 검찰은 딱 뭉친다.

--중수부 폐지론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 못한다. 부패수사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지 약화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중수부 폐지해서 부패수사 기능 약화시키면 우리나라는 부패 공화국이 될 것이다. 중수부를 폐지하면 누가 좋을지 생각해 봐라. 수사가 제대로 되길 바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정치권에 있다고 보는가. 중수부 가동되면 총장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대가 고위공직자, 재벌이고 대형사건이다. 나도 새벽 서 너 시에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깰 때가 많았다.

--공직자비리수사처, 상설 특별검사 설치에 대해서는.

▲공수처를 대통령 산하 부패방지위원회 밑에 둔다면 안된다. 중수부보다 훨씬 자의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특검제도 자체가 검찰을 부정하는 거라서 검찰조직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하자고 얘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검 들어올까봐 조금 무리하게 수사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특검이 안 들어오도록 철저히 수사하는 것은 순기능인 반면 면책하려고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은 역기능이다.

--검찰의 힘이 세다는 의견에는.

▲일 안 하면 검찰이 왜 정면에 나서 싹쓸이 안 하나 하고, 의욕적으로 일하면 또 힘이 너무 세다고 한다. 우리조차 안 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법무부나 청와대 압박은 없었나.

▲그거는 답을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노코멘트. (※사건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간담회 이후 부가설명했음)
--법무부 장관과 갈등설이 있었는데.

▲법무부와 검찰은 긴장관계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수사는 건드리지 말라고 발톱을 세운다. 수사지휘권 발동이 강정구 교수 사건 1건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문건으로 내려오는 게 있다. 광고주 협박사건이나 시위 엄중대처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도 수사지휘가 있었나.

▲사건에 대해서는 얘기 안 한다고 했지 않나.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1년6개월 동안 수없이 흔들렸다. 이쪽에서 흔들고 저쪽에서 흔들고. 정권교체기 총장 자리는 엄중하고 무거운 자리다. 어쩌면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기도 하고 위태로운 자리기도 하다. 의견 개진은 자유의 영역이지만 결정은 책임의 영역이고 총장은 결정권자이다. 무거운 사건일 경우 힘들다. 새 총장을 잘 도와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