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인물열전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장남 (동아일보 2009.06.12)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장남 정형외과 의사 광범씨

“부친 만류에 꿈 접고 의사로

격투기 맛보고 싶어 링닥터 활동”

“아악!”

7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 신생 종합격투기 대회 ‘무신()’에 출전한 한 선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상대 선수의 머리에 부딪힌 이마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선수가 눈도 뜨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자 파란 가운을 입은 링 닥터가 나타났다. 그는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선수를 지켜보더니 이내 능숙한 솜씨로 상처를 꿰맸다. 링에 복귀한 선수를 주의 깊게 지켜보던 링 닥터는 별 탈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선수들을 돌본 파란 가운의 주인공은 최광범 씨(35).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1922∼94) 선생의 맏아들이다. 광범 씨를 9일 오전 그가 일하는 경기 의정부시 신곡2동 백병원 근처에서 만났다.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 선생의 맏아들 광범 씨(점선 안)가 지난해 6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스피릿MC 격투기 대회에서 경기 도중 쓰러진 김도형 선수(오른쪽)의 상태를 링에 올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제공 최광범 씨



○ 선수들 눈빛 보면 뭉클해져

광범 씨는 정형외과 과장이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무술을 섭렵했다. 합기도, 킥복싱, 택견 등을 배웠고 경기에도 나갔다. 격투기 선수로 계속 활동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무술에 ‘올인’하는 걸 원치 않으셨어요. 누구보다 무술에 애정이 많은 분이셨지만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걸 잘 아셨기 때문이죠.”

광범 씨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50세 즈음부터 무릎, 손, 다리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충고 때문일까. 세 아들은 모두 무술을 즐기지만 업으로 삼고 있진 않다. 차남인 광수 씨(33)는 대한씨름협회에서 일한다. 막내 광화 씨(27)는 필리핀에서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다.

격투기 링 닥터의 일당은 10만∼20만 원 남짓. 휴일 내내 고생하는 대가치곤 크지 않은 금액이다. 광범 씨는 “링 근처에만 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돈을 주고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링에 올라가기 직전 선수들의 눈빛을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선수들 눈빛에 담긴 비장함을 볼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무인들 돕기 위해 장학회 세우고 싶어

‘남편 또는 아버지’로서 최 선생의 모습은 어땠을까. 광범 씨는 아버지를 ‘매우 자상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크게 싸운 적이 없었어요. 자식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분이셨죠.”

광범 씨는 꿈이 하나 있다. 무술은 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 돼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장학회를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무패’의 무인도 있지만 수많은 3류 무인도 있잖아요. 저는 그저 무술이 좋다는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도록 평생 돕고 싶습니다.”

■최배달은?


가라테선수권 제패


황소 40마리 뿔 꺾어


본명 최영의(사진). 192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24세의 나이에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일본의 가라테 10대 문파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무술인들과 겨뤄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00번 넘게 황소와 대결해 40마리가 넘는 황소의 뿔을 꺾은 것으로도 유명한 전설의 파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