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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매경춘추] 동가식서가숙 (매일경제 2009.06.17)

[매경춘추] 동가식서가숙

여기저기 정처 없이 다니는 떠돌이 같은 삶을 일컬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한다`고 한다. 참으로 따분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동가식서가숙`은 쉽게 말해 `꿩 먹고 알 먹고`식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려던 중국 춘추시대 한 처녀의 이야기에서 연유된 말이다. 고사를 생각하면 고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지방 제(齊)나라에 혼기에 찬 처녀를 둔 부모가 있었다. 마침 두 곳에서 동시에 혼담이 들어 왔는데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해 부모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연인즉 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넉넉하지만 얼굴이 못생겼고, 서쪽에 사는 사람은 얼굴은 잘생겼으나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부모가 딸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하고 "동쪽을 원하면 왼손을 들고, 서쪽을 원하면 오른손을 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두 손을 다 들었다. 그 이유를 묻자 딸은 "밥은 부잣집인 동쪽에서 먹고, 잠은 잘생긴 남자가 있는 서쪽 집에서 자면 되잖아요"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사실 부잣집에 잘생긴 남자라면 요즘도 웬만하면 거절하기 힘든 혼처다.

사회적으로 만혼 풍조가 만연한 탓에 이제는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를 발족시켜야 할 만큼 결혼과 출산장려는 국가적 어젠더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생아 수)이 1.19명밖에 안 되고 2020년에는 4.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구조(2005년에는 7.9명당 1명)가 된다고 한다. 발등의 불이 따로 없다.

재계는 40시간 근로시간 정착으로 육아부담을 덜어주고 종교계는 생명존중 운동을 펼쳐 발등의 불을 끄는 데 동참하고 있다. 정부도 의료비, 보육료, 교육비 지원은 물론 직장여성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해소 등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양육비, 특히 사교육비 부담은 결혼과 출산을 막는 큰 짐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듯하다. 더구나 요즘은 세계적 경제난으로 23~34세 청년층의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어 제나라 처녀의 고민처럼 `동가식`할 여건이 근본적으로 안 되고 있다. 결국 출산장려의 비결은 따로 없는 듯하다. 제나라 처녀의 바람처럼 `동가식서가숙`할 수 있는 조건을 범국가적으로 갖추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