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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알고 보면 재미있는 러시아 성씨 (조선일보 2009.06.14)

알고 보면 재미있는 러시아 성씨

 

“진짜 몸집 엄청나네. ‘표트르 톨스토이’ 이름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걸!”
얼마 전 한 행사장에서 러시아의 유명 TV 뉴스프로그램 진행자 중 한 명인 표트르 톨스토이(Tolstoy·39)를 본 러시아인이 한 얘기다. ‘표트르’라는 이름은 돌 또는 바위를 뜻하고, ‘톨스토이’는 뚱뚱하다는 의미의 러시아어 ‘톨스트이’에서 유래된 성(姓)이다. 체격이 육중한 방송 진행자에게 성과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차원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다.

또 지난 6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에서 열린 프랑스 오픈 여자 테니스 단식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Kuznetsova·24)가 우승하자, “역시 성을 잘 타고 났기 때문에 우승했다”고 말하는 러시아인들도 있었다. 쿠즈네초바라는 성은 장인(匠人)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스베틀라나라는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스베트에서 나온 것이어서 ‘장인의 기술이 빛을 발했다’는 의미로 그녀의 우승을 풀이한 것.

러시아의 성에는 톨스토이나 쿠즈네초바 처럼 특이하거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Medvedev) 현 러시아 대통령의 성은 곰을 뜻하는 단어 메드베지에서 나왔다. 이처럼 동식물과 관련된 성으로는 볼코프(늑대), 레베데프(백조), 자이체프(토끼), 미슈킨(생쥐), 코로빈(암소), 골루비예프(비둘기 혹은 딸기), 그리보프(버섯), 차이킨(차·茶) 등이 있다. 또 손체프(태양), 밀로프(비누), 크니긴(책) 등은 사물에서 파생된 성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반드시 러시아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는 캠벨(입술이 비뚤어진 사람), 스미스(대장장이) 등의 성이 흔하다. 그러나 러시아 언어학자들은 러시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이하고 재미있는 성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러시아에는 원래 성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활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정착해 살면서 씨족들을 구별할 필요가 발생했고, 자신들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정해 성으로 만들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이 등장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특이하거나 우스운 뜻을 지닌 성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