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출신으로 삼성전자 단독 CEO 맡은 최지성 사장
- ▲ 최지성 사장
최지성(58) 사장이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얼굴'로 떠올랐다.
최 사장은 15일 발표된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의 단독 CEO를 맡았다. 이윤우 부회장이 부품 부문을, 최지성 사장이 완제품 부문을 맡아온 체제에서 최 사장이 전체를 총괄하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이윤우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서 대외업무 등을 주로 챙기게 된다.
삼성그룹은 15일 삼성 사장단 인사를 통해 "부품과 세트 사업간의 시너지를 위해 최지성 사장을 통합 단독 CEO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문과(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인 최지성 사장은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CEO는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 맡았으나, 최 사장은 탁월한 실적으로 삼성전자의 대표 CEO가 됐다. 마케팅과 비용관리 등 수완이 남다르다는 것. TV와 휴대폰 사업을 맡아 글로벌 최강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영업을 하면서 이론 공부에 몰두해 웬만한 엔지니어 못지않은 기술지식을 쌓았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최 사장과 기술 회의를 마치고 나면, 유능한 엔지니어들도 진이 빠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병정에서 디지털 보부상까지...삼성전자 CEO 최지성 사장
최지성 사장의 별명은 '독일 병정', '디지털 보부상'이다. 목표를 정하면 지독하리만큼 매달리면서 동시에 냉철한 판단능력도 겸비했다는 평을 듣는다. 겉보기에 좋은 것보다 실속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스타일이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을 두루 거쳤다. TV와 휴대폰 사업을 맡아 최고 반열에 올렸고, 반도체 사업도 거치며 탁월한 수완을 과시했다. 삼성그룹의 사령탑 역할을 한 회장 비서실에서도 근무했다. 삼성의 간판 CEO로서 손색이 없는 경력을 쌓아온 것이다.
최지성 사장과 관련된 일화는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이 지난 198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인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반도체 영업을 할 때 얘기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고자 최 사장은 1000페이지 분량의 원어 기술교재를 달달 외웠다. 반도체 제조와 생산과정을 철저히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최 사장은 프랑크푸르트에 부임한 첫해에 반도체를 100만달러 이상 팔았다.
최 사장은 1991년 삼성반도체 기흥관리팀장, 1992년에는 반도체판매사업본부 메모리수출담당 사업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1993년 10월 삼성회장비서실 전략1팀장 대우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94년 반도체본부 메모리영업담당 이사, 1996년 반도체판매사업부장 상무이사, 1998년 반도체판매사업부장 전무이사로 고속 승진했다.
◆보르도 TV 신화를 차세대 사업으로 확장
최 사장은 1998년 정보가전총괄 디스플레이사업부장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긴다. 이어 2000년 정보가전총괄 디스플레이사업부장 부사장, 2001년 디지털미디어총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부사장 등을 거친다.
2002년에는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총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부사장, 2003년에는 디지털미디어총괄 부사장, 2005년에는 디지털미디어총괄 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장 등을 역임했다.
최 사장은 특히 2006년 보르도 LCD TV 등 전략제품을 통해 세계시장을 적극 공략, 삼성전자가 세계 TV시장 1위에 오르는 '기적'을 이뤘다. 이른바 '보르도 신화'다.
최 사장은 2007년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부임한다. 휴대폰과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부문이다. 이때그의 마케팅 수완이 증명된다. 고급폰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명 '최지성표 저가폰'을 내세워 아시아, 중남미, 동구권 등 신흥시장을 공략한 것.
이는 단순히 고급폰만으로는 세계시장의 강자로 군림할 수 없을 것이란 그의 판단 때문이었다. 최 사장은 당시 "노키아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주변에서는 무리한 목표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삼성 휴대폰은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높여와 향후 수년내에 노키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탁월한 실적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단독 CEO까지 오른 최 사장의 앞에는 더욱 막중한 임무가 놓여있다. TV, 휴대폰, 반도체 등 기존 사업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차세대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것.
지금까지는 글로벌 시장의 1위 업체를 적당히 따라가면 됐으나 이제는 삼성전자가 제일 선두에 서게 돼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이 삼성의 고민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이후 창조경영을 주창하며 차세대 사업(일명 신수종사업) 발굴에 힘을 써왔으나 아직까지 가시적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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