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진과 화산을 불러온다고(1)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인해 지진과 화산이 빈번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21세기판 점성술사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비가 오지 않거나, 화산이 터지거나,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면 인간이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고 했던 아주 옛적에나 있었던 점성술사가 떠오르면서 말이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게 인간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누구나 다 알지 않은가. 게다가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기후현상이 어떻게 땅 속의 일인 지진과 화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단 것일까. 이는 너무나도 얼토당토않은 비과학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과학자라고 한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이 그렇다는데. 대체 이게 웬 말일까?
지진과 화산이 일어나는 걸 보고 기후변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지진과 화산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보인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로 지진과 화산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나왔다. |
아주 작은 변화로도 지구의 땅은 영향 받는다
지난 9월 중순, ‘지질과 지형학적 위험에 대한 기후의 영향’(Climate Forcing of Geological and Geomorphological Hazards)이라는 주제로 과학자들이 영국 런던에 모였다.
이 자리에 모인 과학자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지구의 땅덩어리가 매우 민감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지구의 땅덩어리의 움직임과는 전혀 무관할 거 같은 날씨와 기후조차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면 지구의 땅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산과 지진, 산사태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학자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가 화산과 지진을 불러오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초, 알프레드 베게너라는 독일의 과학자가 내놓은 대륙이동설만큼이나 파격적인 주장처럼 보인다. 우리가 디디고 사는 이 견고한 땅덩어리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인다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데, 그런 땅덩어리의 움직임이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니 말이다.
어쨌건 대지의 어머니는 우리의 생각처럼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듬직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의 행동에 끊임없이 반응하고 있는 변덕스런 존재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이런 주장이 아무 근거도 없는,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기후와 지구 땅덩어리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 간에 연관성을 찾아왔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지구의 돌덩어리들이 그 위에 떠있는 공기와 얼음, 물, 바다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9월 런던에서의 모임을 조직한 영국 런던대학 지구과학부 빌 맥과이어(Bill McGuire) 교수는 “지층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면서 “단지 아주 작은 변화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엘니뇨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구의 땅덩어리에 영향을 주어 화산과 지진을 불러오는 것일까?
맥과이어 교수 연구팀은 옥스퍼드대학의 연구팀과 함께 지구의 바깥쪽 땅덩어리인 지층 위에 떠있는 바다가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이를 위해 그들이 주목한 곳은 수많은 거석의 석상들이 놓여있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스터 섬에 주목했다. 사실은 이스터 섬 자체가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지각판이었다. 이 지각판은 다른 단층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떨어져있기 때문에 다른 지질학적 요인으로부터 기후변화에 의한 판의 변화를 구분하기가 쉽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이스터섬은 과학자들에게 기후변화와 땅의 움직임을 관찰하기에 좋은 장소다. 그 아래에 있는 땅(사진 속 네모)이 다른 땅덩어리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후변화로 인한 땅의 움직임만을 확인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
맥과이어 교수 연구팀은 1973년 이후 이곳에서 일어난 지진 중 규모 4에서 6 사리의 지진이 언제 발생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대표적인 이상기후현상인 엘니뇨가 일어났을 때 수중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더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엘니뇨와 지진이 서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엘니뇨가 지진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연구팀은 이에 대해 이렇게 추론하고 있다.
엘니뇨가 일어날 때 그 지역의 해수면은 수십 센티미터가 상승한다. 이는 물의 양이 늘어난 셈이다. 그로 인해 해저면 아래 돌덩어리에 난 구멍 속에 있는 물의 압력이 높아진다. 이 정도의 압력은 돌덩어리들이 각자 제 위치에 머무르게 해주는 마찰력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 즉 돌덩어리들이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엘니뇨로 인한 해수면 높이에서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땅덩어리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화산폭발이 더 많았다
그런데 바다에서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건 지진뿐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화산학자 데이비드 파일(David Pyle) 교수에 따르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가 화산폭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파일 교수 연구팀은 지난 300년 동안 일어난 화산폭발이 언제 발생했는지를 조사했다. 그러자 화산폭발이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빈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아냈다. 즉 북반구가 여름일 때보다 겨울일 때 전 세계적으로 화산폭발이 20퍼센트 가량 많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화산폭발이 계절에 따라 나타나는 빈도가 달라지는 것일까? 연구팀은 북반구가 겨울일 때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의 높이가 약간 낮아지는 게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북반구에는 대륙이 많아 남반구가 겨울일 때보다 북반구가 겨울일 때 물이 땅에 얼음과 눈으로 더 많이 쌓이게 되어 해수면이 낮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지는 북반구의 겨울에 왜 화산폭발이 더 잦았던 걸까? 세계적으로 화산대는 해안선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 거리 내에 있다. 따라서 계절적 요인으로 인하 바다의 무게의 변화가 화산폭발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생각한다. 즉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바다가 그 아래에 누르는 압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화산이 폭발했다는 얘기이다.
북반구에 해가 덜 비치는 겨울철일 때가 여름일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화산이 더 많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겐 기쁜 소식이 아닐까? 북반구의 겨울과 반대로 기후변화는 해수면을 상승시키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바다의 압력이 높아져 바다 속의 화산은 더욱 꼼짝도 못하는 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아쉽게도 해수면이 낮아질 때 화산이 폭발한다는 논리가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화산을 억누를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 예가 알래스카 화산 관측소의 스티브 맥너트(Steve McNutt) 박사가 조사한, 알래스카 반도에 위치한 마운트 파블로프 화산이다.
맥너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마운트 파블로프 화산은 겨울철에 더 자주 폭발을 했다. 흥미롭게도 이 화산이 겨울에 더 자주 폭발하는 이유는 앞서의 경우와 반대였다. 이 지역은 겨울철에 대기압이 낮아지고 폭풍이 워낙 세서 해수면이 오히려 30 센티미터나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도 화산분출이 겨울철에 더 잦은 까닭은 뭘까. 이에 대해 파블로프 화산의 경우 주변의 바다가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무게가 늘어나 오히려 땅 쪽으로 마그마를 밀어붙이기 때문에 화산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이라고 맥너트 박사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해수면이 낮아져도 화산이 더 자주 폭발하고 해수면이 높아져도 화산이 더 자주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모순되는 얘기 같지만 어쨌거나 해수면 높이에서의 변화가 해안선에 미치는 압력에 변화를 주면서 이전보다 화산이 더 자주 폭발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의 높이가 달라지면 지진과 화산이 빈번해질 수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에 변화가 생기고 땅 위의 얼음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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