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라이프] 아버지와 같은 인생은 절대로 안 살겠다고 맹세했었습니다_김을동
입력 : 2010.02.12 15:43 / 수정 : 2010.02.14 10:13
왜 그땐 미처 몰랐을까 '아버지의 자리'
당신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언제나 그래야만 했습니다. 항상 뒤돌아선 곳, 안 보이는 곳에서 우셨습니다. 자식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보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야 보고 싶고, 그 분의 말씀은 불가능한 곳에서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지난날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였고, 지금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내 인생을 묵묵히 이끌고 지탱해 준 우리들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명사 에세이 '아버지의 추억'
국회의원 김을동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 아버지처럼 정말 당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가정사에는 무심해도 너무 무심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아니 어쩌면 상처를 덜 받고 덜 미워하고자 여러 가지 각도로 생각해봤다.
- ▲ 풍문여고 졸업 때 아버지(김두한씨), 어머니(이재희씨)와 가족사진을 찍었다. 1963년 2월이니 벌써 40년도 넘은 옛날이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고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었으니 자식사랑의 법을 모르겠지?" 부모를 잃고 다리 밑에서 구걸하며 살면서 십여 성상을 동료와 더불어 지냈으니 그들이 부모요, 형제요, 스승이요, 동반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하지만 아버지의 삶이 그리도 당당했던 것은 너무도 욕심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였을까.
아버지는 몇 년 만에 집에 들어와서도 아침에 나갔다 점심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처럼 "여보, 나 왔소" 하며 큰소리 치시면서 동지들을 거느리고 들어오신다. 뻔뻔해도 이만하면 정말 메가톤급이다.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는다고 하시면서 “양반은 부인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 법”이라면서 꼬박꼬박 사극에 나오는 대사처럼 존대를 하시는 모습이 뭔가 평소 이미지와는 안 맞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윗감의 결격사유로 딱 두 가지를 들었다. 일제 때 순사를 했거나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때 지금 남편을 인사시키려고 다방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다. 긴장하고 벌벌 떨고 있는 남자친구한테 그 특유의 작은 눈으로 한 오분간을 뚫어져라 보고 계시더니, 다짜고짜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쥐어 패” 하면서 그걸로 끝이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생 여자를 단 한 번도 때려본 적이 없다. 오죽 못난놈이 여자를 때리느냐고 늘 그러셨는데 사흘에 한 번씩 패라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궁금할 따름이었다.
난 평소에 정말 아버지와 같은 인생은 절대로 안 살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너를 잉태했을 때 아버지를 미워했는데 그래선지 너희 아버지를 너무 판박이했다고. 성격, 모습, 생활, 사고방식이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니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곤 하셨다.
아버지가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55세의 나이에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를 쓰다듬으며 “지지리도 속을 썩이더니 이렇게 빨리 가는구려” 하며 통곡을 하였다. 장례식날 아버지의 영구차가 의정부 어디를 지날 즈음, 고아원 아이들이 조그만 소반에 제물을 마련하고 노제를 지내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사연인즉 아버지는 김좌진 장군 몫으로 나오는 독립연금을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가치있게 써야 한다며 아예 고아원에 기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아원 원장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얼마나 목놓아 울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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