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준 재능에서 리더의 재능으로 바뀐 '카리스마'
입력 : 2010.02.19 21:45 / 수정 : 2010.02.19 23:34
카리스마의 역사
존 포츠 지음|이현주 옮김|더숲|544쪽|2만5000원
《카리스마의 역사》는 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카리스마'라는 용어와 그 용어에 관련된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카리스마'는 애초에 하나님이 준 특별한 재능을 가리키는 종교적 개념으로 탄생하였다. 이 말은 서기 50~62년에 쓰인 사도 바울의 서신에 처음 나타난다. 바울은 카리스마라는 말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래서 대개 '은사'(恩賜·spiritual gift)로 번역된다. 그리고 1세기에 이 말이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 처음 사용될 때에는 예언이나 치료 등 기적과 같은 능력을 의미했다. 이후 바울의 서신이 신약성서에 포함되면서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카리스마의 원뜻을 확대하여 사회과학 개념으로 확립시켰다. 즉, 보통의 인간에게 없는 초자연적·초인간적 재능이나 힘을 카리스마라 부르고, 그 대상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카리스마적 지배'라고 정의했다. 이는 법률에 따른 지배(합법적 지배)나 관습에 따른 지배(전통적 지배)와는 달리 카리스마의 소유자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 ▲ (왼쪽 위부터)아돌프 히틀러, 마틴 루터 킹, (왼쪽 아래부터)다이애나 빈, 버락 오바마./조선일보 DB
1940년대 말까지 카리스마는 베버의 지배이론의 맥락 안에서 이해되었다. 즉, 리더의 재능이나 권위의 힘을 의미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 카리스마는 특히 정치인에게서 나타나는 강한 개인적 매력이나 자력(磁力)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계기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들의 TV 출연이었다. "1960년대 전반기에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피델 카스트로, 무하마드 알리 등 각자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언변을 보여준 이들은 TV를 통해 다른 나라에 있는 청중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카리스마의 현대적 의미는 "특정 개인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타고난 자질"인데, 이 정의는 대체로 베버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베버가 공식화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지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베버에서 출발한 카리스마 이론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업조직과 경영에 관한 권위자로 인정받는 존 코터는 효과적인 리더십에서 카리스마의 역할을 부인한다. 리더십에 신비로운 것은 전혀 없으며, 리더십은 카리스마나 다른 특이한 개인적 자질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심리학 분야에서도 렌 오크스라는 학자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알려진 지도자 11명을 상대로 심리측정 검사를 했는데, 그들에게서 자아도취증이라는 특징 외에 별다른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호주 매쿼리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인 저자는 종교계 카리스마와 세속 세계 카리스마 사이의 관계도 살핀다. 일례로, 카리스마 있는 인물들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에서 세속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가 중복될 수가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의 열광적인 추종자들은 일부 논평가들에게 '대중 메시아 신앙'이란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가 보기에 오바마의 연설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특징, 즉 큰 소리를 지르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존 F. 케네디와 함께 20세기 가장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킹 목사가 연사로서 청중에게 활기를 불어넣은 힘은 구전(口傳)을 통한 전달력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카리스마를 받은 예언은 기록된 원문이 없이 입으로 전달되는 전통을 갖고 있을 때 번성했다.
카리스마란 용어에 얽힌 2000년의 변화를 다루다 보니 고대 부분이 다소 딱딱하지만, 베버 이후 현대 사회에서 카리스마가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지를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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