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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女의사 2만명, 가진 능력 다 발휘해야죠` (조선닷컴 2010.04.21 03:05)

"女의사 2만명, 가진 능력 다 발휘해야죠"

입력 : 2010.04.21 03:05

신임 여의사협회장 연세대 박경아 교수
생명 구하는 일에 지장없도록 결혼·출산같은 난제 해결돼야

"2000년대 초에 한 지방 의대에서 레지던트 세 명이 연달아 자살했지요. 모두 여성이었어요. 의사가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모르고 의대에 왔는데, 아내·엄마·며느리 역할까지 하라니 못 견뎠던 겁니다."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박경아(60) 교수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2004년 '여성과 의료'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선배들이 나서서 '여의사는 남자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는,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시키자는 취지였다.

최근 한국여의사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 교수는 "의대에 진학하는 여성이 계속 늘고, 이들 모두가 우수한 자원들"이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있어 가진 능력을 다 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여의사회의 역할"이라고 했다. 현재 여의사의 수는 1만8000여 명이고, 이 중 6000명이 여의사회 회원이다.

박경아 회장은 임기 안에 국제여의사회 총회를 유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1980년 대만 해도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의료봉사의 대상이었다”며“하지만 이제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게 됐음을, 그것도 야무지고 확실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의대에 여학생이 많아지면서 그 안에서도 '여의사회'가 꼭 필요하냐는 말도 나옵니다. 왜 꼭 '여'의사로 묶여야 하느냐는 거죠. 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권익단체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에요. 10년 전만 해도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성형외과·피부과 같은 인기 과에서 여학생을 안 받겠다고 했어요. '유리천장', 의료계 내 성추행 사건도 여전히 존재하고요."

박 교수는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박정규 전
서울대 의대 교수이고, 어머니는 나복영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최초의 여성 해부학자)로 한국여의사회 3대 회장을 지냈다. 박경아 교수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도 1979년 연대 교수로 부임한 것은 '가족 중 두 명 이상 교수를 지낼 수 없다'는 당시 고대의 규정 때문이었다. 모녀는 여전히 한집에 산다.

"어머니 때만 해도 여의사는 희귀종이었어요. 우리 때도 비슷했고요. 지금요? 수가 많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예쁘고 야무집니다. 그 힘들다는 외과에서도 활약이 대단해요. 그러나 결혼과 출산이라는 '난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의사협회 회장 임기는 2년이다. 그동안 협회는 여의사의 권익뿐 아니라 여성건강 증진, 성폭력 피해자 및 미혼모 지원 같은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 박 교수는 세계무대에서 한국 여의사들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히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국제여의사회 활동에 참여해 1989년 재정의원, 2002·2004년에는 서태평양지역 부회장·회장을 맡았다. 2000년 호주 총회 때는 20~60대 의사(본인 포함) 12명으로 구성된 부채춤 쇼로 회장을 휘어잡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