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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창의적 기업이 되자`..호칭ㆍ직급 파괴> (연합뉴스 2010/04/18 08:01)

<"창의적 기업이 되자"..호칭ㆍ직급 파괴>

CJ '님 호칭' 이후 제일기획.SK 등 줄이어

국내외 시장에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산업계가 창의성을 지향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호칭이나 수직적인 직급 체계를 과감히 바꾸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직원들의 창의력을 발현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호칭 파괴로 창의성 극대화" = 위계질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직 내 소통을 강화하려는 기업 관리 전략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호칭을 폐지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잘 나타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직급별 호칭을 버리고 `님 호칭제도'를 도입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CJ그룹은 2000년 1월부터 직급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서로 `○○○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호칭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10년간 조직문화는 몰라보게 유연해졌다는 평가가 그룹 내에서 나오고 있다.

수직적 조직문화 속에서는 젊은 직원이 개인 의견을 내기가 어렵지만, 님 호칭을 사용한 이후로는 격의 없이 아이디어 개진이 이뤄지면서 회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그룹 관계자는 자평했다.

실제로 2000년 식품업을 주력으로 삼았던 CJ그룹은 바이오와 미디어, 전자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다양한 성장동력을 갖춘 대기업이 돼 있다.

최근에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사내 인트라넷에 만든 게시판 `이재현님 대화방'에는 입사 1년차 신입사원이 건의를 올리는 등 `님 호칭'에 힘입어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소통 활동이 직급과 무관하게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CJ그룹 신영수 상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직면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직원들의 창의성밖에 없었고 그래서 님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며 "보여주기용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10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직급별 호칭을 폐지하는 시도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 3월부터 사원-대리-차장-국장-수석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직급 체계를 `C1-C2-C3'로 단순화하고 임직원의 호칭을 `프로'로 통일했다.
이런 발상은 2007년 1월 취임 이후 줄곧 `아이디어 경영'을 주창해온 김낙회 사장의 파격적인 사고에서 나왔다. `수직적인 직급 체계와 호칭을 사용하면 아이디어 발상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라는 그의 지론을 현실화한 것이다.

임직원들은 명함에도 직급을 명시하지 않고 `프로'만 새겨 넣는다.

◇"직급체계 자체를 바꾸자" =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직급체계를 손질한 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SK그룹은 계열사 가운데 SK텔레콤이 4년 전부터 도입한 '매니저(Manager)' 제도를 통해 직원 간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사원과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직급을 모두 없애 `매니저'로 단일화하고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겠다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매니저라는 단일 호칭은 직위와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전문지식과 책임을 가진 담당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도 `직급 파괴'에 동참했다. SK가스와 SK E&S는 2008년 초부터, SK M&C는 2008년 5월부터, SK브로드밴드는 2009년 초부터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작년 6월부터 영업관리자의 직위명을 `파트매니저'와 `파트담당'에서 `파트리더(Part Leader)'와 `서포터(Supporter)'로 변경했다.

명령하기보다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리더'라는 직급을 마련하고 리더의 업무를 돕는다는 의미에서 `서포터'라는 직위를 만들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새 직급이 도입되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 분위기가 형성되고 직원간 관계가 더 유연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달라지는 조직 문화 = 호칭이나 직위 체계를 유지하되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개선하려는 기업들도 많다.

삼성전자가 지난 2월 부장, 과장 등 중간간부 인사에서 연한을 채우지 않고 승진을 시키는 발탁인사를 예년의 6배 이상 많은 620명 규모로 단행한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올해를 `트레킹으로 소통하는 해'로 정하고 짬이 나는 주말마다 각 사업부 임직원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는 직급 및 소속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방안을 도출하는 세미나 제도인 '캡(CAP: Communication, Action, Performance) 미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세미나에서 직원들은 개선할 주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관련 직원들이 전부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책을 도출한다.

STX그룹의 경우 이종철 부회장이 제안하는 `등산번개'가 직급을 떠나 상하 간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등산번개'는 이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2∼3시간 산을 오르고 하산을 하면 막걸리는 나눠 마시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활동을 지칭한다.

STX의 서울 주재 임직원들 대부분이 한 번쯤은 참석할 정도로 `등산번개'는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