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요즘 꿈에 자주 보인다 … 고인 생각하면 ‘스떼끼’ 떠올라”
[중앙일보] 2010년 08월 18일(수) 오전 01:41
무던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 1주기(18일)를 앞두고 여러 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고, 그것 때문에 가장 분주한 이가 권노갑(80·사진) 전 민주당 고문이다. 그는 DJ와 함께 정치 역정을 함께한 ‘동교동계’ 좌장이다. 그는 16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추모 강연회를 했다. 이어 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요즘 꿈에 자주 대통령이 나온다”며 “그립다”고 했다.
-1주기를 맞는 소회는.
“너무 보고 싶다. 빈자리가 이리 클 줄은 몰랐다.”
-고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어떤 것인가.
“스떼끼(stick·지팡이)다. 스떼끼는 생애를 살아오며 겪은 모든 고난·시련·박해의 상징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평화와 통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DJ의 유훈이 있다면.
“첫째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다. 성인이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박해를 줬던 사람조차 용서하는 사랑이 김대중 대통령에겐 있었다.”
-‘용서와 화해’를 말했는데 DJ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 존재였나.
“박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영구 집권하려는 것은 비판했다. 그러나 (DJ가) 생전에 그런 말을 했다. ‘산업화를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1997년 대선 과정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0년 ‘박 대통령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나를 불러 ‘박정희 정권하에서 가장 탄압받았던 사람이 나하고 자네다. 사업회를 만들면서 내가 명예회장을 할 테니 자네가 부회장을 하라’고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부회장을 했다.”
-예전에 두 분이 필담을 많이 나눴다고 하던데.
“유신 시절 동교동 자택 옆이 중앙정보부 아지트였다. 도청 때문에 얘기를 못했으므로 글로 대화했다. 끝나면 그걸 찢어서 화장실에서 성냥으로 태웠다. 급할 때는 얼른 찢어서 먹기도 했다. 윤보선 대통령이나 문익환 목사에게 전하는 귀중한 편지는 볼펜 안에 심을 빼고 종이를 말아넣었고, 어떨 때는 구두창에 넣기도 했다.”
-출간된 DJ 자서전을 보면 권 고문에 대해 “섭섭했다”는 대목도 있다.
“2000년 초 내가 2선 후퇴론에 시달렸다. 그때 박지원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통해 외국으로 나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왔다. 처음엔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반대했다. 불명예스럽게 정치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뜻을 안 따랐는데 ‘섭섭했다’고 쓰셨더라.”
-DJ가 강조한 정치의 핵심은.
“세대교체와 대연합이다. 대통령은 항상 신선한 인물들을 영입해 당을 새롭게 바꿔가는 모험을 했다. 서거 직전에는 민주당이 대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 것이다. 야당은 특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 고문이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2000년엔 자주 만났으나 그 후로는 아니다. 만난 일 없다.”
-과거에 비해 동교동계 인사들이 정치 일선에선 많이 물러나 있다.
“(DJ의) 사상이나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행동하는 양심’(김한정·최경환씨 등 DJ 참모 출신의 40∼50대 그룹 모임)이란 모임을 하고 있고 ‘김대중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은 방파제 역할도 할 거다. 민주당도 김대중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신을 계승해야 집권 여당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1주기를 맞는 소회는.
“너무 보고 싶다. 빈자리가 이리 클 줄은 몰랐다.”
-고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어떤 것인가.
“스떼끼(stick·지팡이)다. 스떼끼는 생애를 살아오며 겪은 모든 고난·시련·박해의 상징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평화와 통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DJ의 유훈이 있다면.
“첫째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다. 성인이 아니고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박해를 줬던 사람조차 용서하는 사랑이 김대중 대통령에겐 있었다.”
-‘용서와 화해’를 말했는데 DJ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 존재였나.
“박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영구 집권하려는 것은 비판했다. 그러나 (DJ가) 생전에 그런 말을 했다. ‘산업화를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1997년 대선 과정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0년 ‘박 대통령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나를 불러 ‘박정희 정권하에서 가장 탄압받았던 사람이 나하고 자네다. 사업회를 만들면서 내가 명예회장을 할 테니 자네가 부회장을 하라’고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부회장을 했다.”
-예전에 두 분이 필담을 많이 나눴다고 하던데.
“유신 시절 동교동 자택 옆이 중앙정보부 아지트였다. 도청 때문에 얘기를 못했으므로 글로 대화했다. 끝나면 그걸 찢어서 화장실에서 성냥으로 태웠다. 급할 때는 얼른 찢어서 먹기도 했다. 윤보선 대통령이나 문익환 목사에게 전하는 귀중한 편지는 볼펜 안에 심을 빼고 종이를 말아넣었고, 어떨 때는 구두창에 넣기도 했다.”
-출간된 DJ 자서전을 보면 권 고문에 대해 “섭섭했다”는 대목도 있다.
“2000년 초 내가 2선 후퇴론에 시달렸다. 그때 박지원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통해 외국으로 나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왔다. 처음엔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반대했다. 불명예스럽게 정치에서 물러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때 뜻을 안 따랐는데 ‘섭섭했다’고 쓰셨더라.”
-DJ가 강조한 정치의 핵심은.
“세대교체와 대연합이다. 대통령은 항상 신선한 인물들을 영입해 당을 새롭게 바꿔가는 모험을 했다. 서거 직전에는 민주당이 대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 것이다. 야당은 특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 고문이 박근혜 전 대표와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2000년엔 자주 만났으나 그 후로는 아니다. 만난 일 없다.”
-과거에 비해 동교동계 인사들이 정치 일선에선 많이 물러나 있다.
“(DJ의) 사상이나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행동하는 양심’(김한정·최경환씨 등 DJ 참모 출신의 40∼50대 그룹 모임)이란 모임을 하고 있고 ‘김대중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은 방파제 역할도 할 거다. 민주당도 김대중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신을 계승해야 집권 여당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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