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 돌파한 한국 증시에 '3大 기현상'
① 경기선행지수↓ 주가↑
② 채권·주식 동반 강세
③ 주가 뛰는데 환율 그대로
글로벌 금융위기 거치면서 외국인, 한국에 투자 늘어
"주가 2000" "다시 조정" 향후 증시 전망은 엇갈려
"주식·펀드 분할 매수를"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주가와 경기선행지수가 따로 움직이는 것은 처음 봅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임원이 "우리나라 증시에 기현상(奇現象)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밝힌 이야기다. 유가증권시장의 코스피지수는 지난 10일 27개월여 만에 1800선을 돌파했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증시 상승세를 반기고 있지만 증권가에선 '과거 잣대로 설명되지 않는' 기현상이 속출하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증시에 나타난 대표적 기현상으로는 ▲주가와 경기선행지수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주식과 채권가격의 동반 강세 ▲주가 대비 원화 환율의 상대적 약세 등을 꼽을 수 있다.
◆기현상 1: 주가와 경기선행지수의 디커플링
그동안 주가가 경기를 미리 반영한다는 이야기는 상식으로 통했다. 주가를 경기선행지수라고 설명하는 교과서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국내 선행지수(전년 동월 대비)와 주가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주가와 선행지수의 동조화는 완전히 깨졌다. 주가는 꾸준히 저점을 높이며 우(右)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선행지수는 지난 7월까지 7개월 연속 하락하며 하락 추세를 걷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선행지수 하락세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기현상은 지난 2008년 9월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선진국은 회복세가 지연되고 있지만 신흥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선행지수가 경기 전망 지표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기업은 선행지수 하락에도 불구하고 올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유익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기는 현재 확장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행지수로 경기나 주가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현상 2: 주식과 채권가격의 동반 강세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은 보통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주식시장이 강세일 때는 채권가격은 약세(금리 상승), 주식시장이 약세일 때는 채권가격은 강세(금리 하락)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에서 채권가격이 연일 강세를 보이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가가 6% 이상 급등한 올 하반기에 국내 채권 금리는 국채와 회사채는 물론 단기물과 장기물 구분없이 일제히 급락세(채권가격 급등)를 타고 있다. 국채 3년물(物) 금리는 지난주 한때 3.35%까지 급락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 기록한 사상 최저치(3.24%)에 바짝 다가섰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주식과 채권가격의 이례적 동반 강세는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선진국의 재정문제가 부각된 이후 대한민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 국내 주식을 9조원어치 이상, 채권을 20조원어치 이상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기현상 3: 주가 대비 환율의 상대적 약세
주가와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그동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원·달러 환율은 주가 상승기에 하락(평가 절상)하고, 주가 하락기에 상승(평가 절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주요 기업의 실적 호전으로 주가 상승이 예상되면 외국인이 주식 매수에 나서고, 이는 원화에 대한 수요 증가에 따른 환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움직임도 올해 크게 약화되는 양상이다. 올 들어 지난주까지 주가는 10% 가까이 올랐지만 지난 10일 환율(1165.7원)은 연초에 비해 오히려 상승해 있는 상태다. 지난 4월 말 1100원이 깨질 것처럼 가파르게 떨어지던 환율은 올 하반기엔 1150~1200원에서 움직이고 있다. 올 상반기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달러 강세와 올 하반기 엔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원화가 상대적 약세현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선 것도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현욱 한국개발원 연구위원은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원화 절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목돈 투자보다 분할 매수 바람직"
국내 증시에 기현상이 속출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와 증시가 그동안 선진국에 비해 선방(善防)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증시 전망에 대해선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르면 연내에 주가 2000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올 4분기에 정점을 찍은 뒤 다시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고려 중인 투자자들이라면 목돈을 한꺼번에 투자하기보다 분할 매수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현철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갑자기 크게 조정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면서도 "분할 매수나 거치식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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