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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귀화자 이춘려씨 “4전5기 끝 경찰됐어요” (한겨레 2010/10/15 20:37)

귀화자 이춘려씨 “4전5기 끝 경찰됐어요”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0/10/15 20:37

[한겨레] 월드컵 자원봉사 인연으로 도전


“다문화 여성들 어려움 덜어줄 것”
“귀화자라서 안 뽑아주는가 했는데, 4전5기 끝에 진짜 경찰이 됐습니다.” 15일 충북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새내기 경찰 이춘려(31·사진) 경장이 졸업장을 받았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2004년 귀화한 이 경장은 6년 남짓동안 5번의 도전 끝에 ‘진짜 경찰’이 됐다.

2001년 남편 강봉석(41)씨와 결혼을 위해 제주로 건너온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자원봉사를 하면서 경찰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중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제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유창한 중국어 구사 인력이 없던 경찰 쪽에서 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뒤 제주 경찰은 중국인 유학생 절도사건, 중국 해적선박 나포 사건 등이 났을 때도 그에게 통역 도움을 청해왔다.

그는 이때부터 ‘경찰이 돼서 정식으로 일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2004년 처음 외사계 특채 선발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제대로 준비를 하기 위해 3년간 제주대 대학원에서 동시 통역을 전공했다. 말에 섞여 있던 사투리도 완전히 교정했다. 2008년 두차례, 2009년 한 차례 다시 경찰에 도전했지만 잇따라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 경장은 결국 ‘253기 신임 외사계 특채’ 합격자가 됐다. 무려 ‘116대1’의 경쟁을 뚫었다. “8년 넘게 한국의 말과 문화를 열심히 공부한 게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서 너무 기쁘죠.” 이 경장은 2008년 한 중국인 유학생이 길에서 주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썼다가 추방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사전에 중국어로 법률 지식을 알릴 수 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텐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힘쓰고 싶어요.” 18일부터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으로 근무하는 이 경장은 “다문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거나, 동시통역 전공을 살려서 경찰의 국제 업무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이정욱(25)·박연춘(41) 경장 등 귀화한 중국 동포 2명도 이날 정식 경찰이 됐다.
<사람들> 첫 귀화 경찰관 아나벨 경장
(연합뉴스 2010/10/19 08:31)
귀화 경찰관 아나벨 경장
필리핀 출신 귀화 경찰관 아나벨 경장이 외국인 범죄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2010.10.19

"다문화가족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 출신 첫 귀화 경찰관인 아나벨(43.여) 경장은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는 다문화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게돼 보람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나벨 경장이 경찰관이 된 것은 2008년.

아나벨 경장은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1997년 한국으로 건너와 귀화했다.

전남 함평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아나벨 경장은 함평경찰서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하다 외사경찰관 특채에 응시해 경찰관이 됐다.

아나벨 경장은 중앙경찰학교 교육을 마치고 2008년 7월 안산 단원경찰서에 배치돼 외국인특별치안센터에 근무하다 기구 개편으로 단원서 외사계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다.

아나벨 경장의 하루는 외국인들이 어려움없이 생활하고 있는 지 살피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가끔 엉뚱한 일을 겪기도 한다.

외국인 소재 파악을 위해 가정집을 방문하면 집주인이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관이라며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해도 막무가내여서 안타까울때가 있다고 아쉬워 했다.

아나벨 경장은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남편과 큰아들(13), 시어머니는 전남 함평에, 둘째 아들(12)과 막내 딸(10)은 안산에서 아나벨 경장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시골에서 농장을 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아나벨 경장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시어머니께 항상 죄송한 마음이지만 다문화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는다"고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