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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후 부주석때와 닮았다… 두사람 이런건 다르다 (조선일보 2010.10.20 03:00)

['G2 시대' 이끌 中 권력 떠올랐다] 후 부주석때와 닮았다… 두사람 이런건 다르다

후 부주석때와 닮았다
① 57세에 등극 ② 직책명 똑같아

두사람 이런건 다르다
① 공직 승진 연령 ② 부인스타일 딴판

후진타오(68) 국가주석과 시진핑(57) 국가 부주석. 열한 살 차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다. 홍콩 문회보와 명보는 후 주석이 1999년 9월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올라 4세대 주자로 예약됐을 때와 시진핑이 지난 18일 군사위 부주석에 오른 때를 비교했다.

시진핑의 현재 직책은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이다. 이 직책들은 1999년 9월 후진타오가 중국 공산당 제15기 4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올랐을 때와 너무나 정확히 겹친다.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오른 나이도 둘 다 57세다. 누가 연출이라도 한 것 같다.

둘은 칭화대(淸華大) 선후배다. 후진타오는 수리공정학과를 졸업했고, 시진핑도 1975년 22세 늦은 나이에 화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칭화대 법학박사학위까지 취득(2002년)했다.

후진타오 주석과 시진핑 부주석.

명보는 "공직생활 이력을 보면 대체로 후 주석이 시 부주석보다 빠르고 순탄했다"고 말했다. 후는 40세에 중앙위원회 후보와 성(省)급 서기가 됐고 43세에 중앙위원, 50세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반면 시 부주석은 44세가 돼서야 중앙위원회 후보가 되고 47세에 성급 서기, 49세에 중앙위원, 54세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4~7년 정도 후 주석이 앞섰던 것이다.

이는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다. 후 주석은 7000만 젊은 당원을 거느린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고, 시 부주석도 공산당 원로들의 자제를 일컫는 '태자당(太子黨)'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은 아들이 아홉살 때 반동분자로 몰려 16년간 옥고를 치렀고, 시 부주석은 15세 때부터 7년간 산시(山西)성의 황토고원에서 농민들과 생활했다. 아버지가 1970년대 말 복권돼 나중에 부총리까지 지냈지만 아들의 어린 시절을 힘들고 어렵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부인들도 대조적이다.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47) 여사는 국민가수(민족성악 대표가수) 출신으로 활발한 스타일이다. 후진타오의 부인 류융칭(劉永淸·69) 여사는 후 주석과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동기동창인데 국빈 방문을 제외하고는 공식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내조형'이다.

['G2 시대' 이끌 중국 권력 떠올랐다] [中] "도덕 방벽(防壁) 세워라… 불법집단의 머슴 되지말라" 2010.10.21 03:01

시진핑 시대의 정치 과제
"부패 해소·소외층 보호" 개혁 목소리 수용해야… 黨원로까지 민주화 요구
"혼란 비용 너무 크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도입할 가능성 적어

"문장과 말은 짧고 실질적이며, 새로운 이념·사고를 제시해야 합니다. 거창하지만 공허하고, 거짓 수사로 가득 찬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당의 이미지까지 떨어뜨립니다."

지난 5월 12일
베이징 중앙당교(黨校)의 봄학기 입학식.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은 당 간부들을 상대로 말과 문장의 중요성을 1시간 가까이 역설했다. 이른바 '문풍(文風) 개혁'이다. 그는 '장(長)·공(空)·가(假)' 대신 '단(短)·실(實)·신(新)'을 말과 문장 구사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시 부주석은 "군중의 말이야말로 신선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군중을 주인으로, 선생으로 삼으라"고도 했다.

지난해 3월 젊은 간부들과 가진 좌담회에서는 직설적으로 부패의 유혹에 대해 거론했다. "형형색색의 사회 인사들이 투자 개념으로 젊은 간부를 유혹합니다. 뇌물과 주색으로 뇌물 공세를 퍼부으면 도덕 방벽이 약한 젊은 간부는 넘어가죠. 그 미끼에 걸려 불법집단의 머슴이 되면, 당과 인민이 준 권력을 그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는 "언론을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라"며 적극적으로 언론 매체를 대할 것을 주문한 적도 있다.

평소 정치 현안이나 개혁 문제에 대해 과묵한 시 부주석이지만, 당교의 젊은 간부들을 대할 때는 자기 색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들이 자신의 집권기에 함께 일할 재목이기 때문이다.

시 부주석을 비롯한 5세대 지도부는 과거와 다른 정치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비공개·비밀주의 일색이었던 데서 벗어나 시대 변화에 맞게 좀더 개방적인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중국 문제 전문가는 "과거 최고지도자들의 부인과 달리 시 부주석의 부인인 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이 외부로 나와 영부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가 시 부주석에게 안겨주는 부담도 적잖다. 지난 30년간의 고도성장이 낳은 후유증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반면, 이를 해결해야 할 공산당의 집권 기반과 정통성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 당원에서 일선 당원까지 부패와 추문이 끊이지 않아, '공산당=부패'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내 반체제 인사는 물론 공산당 원로까지 나서서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면에는 이런 공산당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시 부주석을 차기 최고지도자로 확정한 지난 15~18일 중국 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도 시 부주석의 동갑내기 칭화(淸華)대 동창인 캉르신(康日新) 전 중국핵공업집단 당서기가 뇌물 수수 혐의로 당적 박탈 처분을 받았다.

시 부주석이 속한 태자당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다. 베이징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는 "중국 내 억만장자의 상당수가 혁명 원로와 고위 간부 자녀"라면서 "시 부주석이 칭화대를 들어간 것도 특권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 부주석이 지난 2007년부터 수시로 '집권당의 집권 능력 제고' '공산당의 선진화'를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5세대 지도부 앞에는 적잖은 정치 개혁 과제가 놓여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비대해진 관료체제와 국영기업 개혁,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농민·근로자의 보호, 사회·고용·의료보험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세제 개혁, 중산층의 정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민주제도 개혁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공산당 내 정치이론가인 위커핑(兪可平) 중앙편역(編譯)국 부국장은 중국 언론에 "앞으로 10년간 개혁의 무게 중심이 사회·정치 영역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당국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혼란'이라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5중 전회에서 나온 대로 법치(法治)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해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의 개혁 관련 주요 발언

“저장(浙江)성 활력의 원천은 개혁에 있다. 저장성은 이미 중소기업주의 사회, 창업자의 사회가 됐다. 중간층이 두터운 항아리형 사회로 변했다.”
(2006년 3월, 저장성 서기 시절 CCTV에 출연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문지도리는 좀이 먹지 않는다. 공산당의 집권 능력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
(2007년 5월 상하이 당서기 시절, 상하이시 제 9차 당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혁명정당에서 전국적 정권을 장악한 장기 집권정당으로 성격이 전환됐다.”
(2008년 9월, 학습시보 기고문)

['G2 시대' 이끌 중국 권력 떠올랐다] "책상을 쳐라, 무서움을 보여주고 주목을 받아라"

['G2 시대' 이끌 중국 권력 떠올랐다] [下] 시진핑의 기질과 정치 성향
신중하고 보수적 성격이지만 비상시엔 과감한 결단 내려
서방의 중국비판에 강성발언 親서민적… 민생개혁 중시

2012년부터 10년간 중국을 이끌고 갈 시진핑(習近平·57) 국가부주석은 후진타오(胡錦濤)보다는 장쩌민(江澤民)과 비슷한 점이 많다.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의 자제나 친척) 배경에다 원만한 성품, 중후한 목소리와 큰 덩치까지. 그의 개인적 성향과 경험, 배경 등을 통해 시진핑 시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해본다.

근면·겸손→집단지도체제 강화

시진핑은 부지런하다는 평을 듣는다. 2002년 저장(浙江)성 서기가 된 뒤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 고충을 묻는 것'이라고 했다. 저장성에 온 지 9개월 만에 관할 90개 현·시·구(縣市區) 중 69곳을 돌았다고 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중국 언론들이 그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 '평이(平易)', '겸손(謙遜)'이다. 부총리를 지낸 아버지(習仲勛·1913~ 1992) 덕으로 원로그룹의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몸을 낮추는 데 익숙하다. 공산당 차기(18기)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들)가 구성되면 웬만한 사안은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무난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안정기에 들어선 중국 집단지도체제가 시진핑 시대에 더 확고히 뿌리내릴 전망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은 자신의 최대 장점으로‘가난한 사람을 찾아 고충을 묻는 것’을 꼽았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후룬베이얼에서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얘기하는 모습. /후룬베이얼(呼倫貝爾)일보
친(親)서민 성향→사회·민생 개혁

아버지가 문화혁명 때 숙청됐다가 후에 부총리로 부활하는 바람에 시진핑의 인생도 '어린 시절은 고생, 성인 시절은 순탄'이라는 궤적을 밟았다. 태자당 출신이면서도 "태자당 냄새가 안 난다", "서민적이다"라는 평을 듣는 것은 고생스러웠던 어린 시절 및 아버지의 엄한 훈도와 관련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숙청됐을 때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과 공산당에 가입하기 위해 각각 8번, 10번 원서를 내야 했다. 집안 형편이 궁하지 않았을 때도 검박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를 따라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 격)에 갔다가 입은 옷이 하도 남루해 근무자가 "누구 집 앤데 이렇게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다니느냐"며 혀를 찬 적이 있다. 시진핑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워낙 검약을 강조해 남녀형제 4명이 성(性) 구분 없이 옷을 돌려 입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수시로 자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혁명 정신을 고취하는 일장훈화를 하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적이 있다. 이런 검소하고 탈권위적인 성향은 사회안전망 확대와 민권의식 수용 등 친서민 개혁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강단·뚝심→비상시 과감한 결단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책상을 치는 게 안 치는 것보다 낫다. 책상을 치지 않으면 무서움을 보여줄 수 없고 주목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책상을 친다'는 것은 격노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러나 단순히 감정을 풀어놓아서는 안 되며 화를 낸 뒤의 결과까지 고려하는 '이지적인 분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푸젠(福建)성 닝더(寧德)시 서기를 할 때 규정을 어기고 주택을 지은 공무원 2000명을 조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민 300만명에게 원성을 듣느니 수천 명한테서 원성을 듣겠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미국 등 서방의 중국 비판에 대해 여러 차례 강성 발언을 한 적이 있는 그는 비상시에 소신과 원칙에 따라 밀고 나갈 소질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 미국·일본과의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중국의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수·신중→민주화나 정치개혁 지연

"지나치게 많은 새로운 견해나 아이디어를 내놓지 말고 행동을 최고로 여겨야 한다." 시진핑은 지방 관리로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새로 관리로 부임하는 사람 중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는 사람이 있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의 이런 발언에 비춰보면 급격한 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는 보수적인 만큼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재주가 많은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중함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총리는 실수해도 대안이 있지만 총서기가 실수하면 방법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지도부의 다수 의견이 개혁 쪽으로 모아질 경우 그도 거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