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서울대 최고령 신입생, 피아노 앞에 앉기 위해… 51년을 기다렸다
[기악과 늦깎이 재입학 변현덕씨]
생활고 시달리다 졸업 못했지만 가난과 병마에도 꿈 꺾지 않아
"연주하는 순간만은 정말 행복"
이날 연주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 1학년생 변현덕(80)씨가 입학 후 처음으로 교수로부터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는 자리. 변씨의 연주를 듣던 이언 홉슨(63) 교수는 "미스터 변은 기교가 아닌 본능으로 연주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변씨는 홉슨 교수의 칭찬에 힘이 났는지 "선생님 앞에서 첫 연주를 마친 것으로 만족해야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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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대 음대 연주실에서 서울대 최고령 신입생인 음대 기악과 1학년 변현덕씨가 이언 홉슨 교수에게 입학 후 첫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김지호 기자
변씨는 올해 서울대 최고령 신입생이다. 사실 51년 만에 서울대에 재입학한 늦깎이 복학생이다. 1964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변씨는 한 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떠났다. 그랬던 그는 미등록 제적자는 1회에 한해 재입학이 가능한 학칙에 따라 반세기 만인 올해 1학년으로 다시 입학했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변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변씨 가족은 해방 직후 서울로 내려왔지만 6·25가 가족을 갈라 놨다. 전쟁통에 아버지가 납북됐고, 나머지 가족은 부산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당시 15세였던 변씨는 부산 미군부대에서 구두닦이로 돈을 벌었다.
휴전이 되고 야학을 다니던 변씨는 1954년 서울대 식물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음대 피아노 연주실을 맴돌았다. 변씨는 결국 1964년 서울대 음대에 다시 입학했다. 그리고 선진 피아노를 배우겠다며 한 학기 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 구니다치 음대에 편입했지만 돈이 없어 밤마다 술집에서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손님들은 변씨더러 '조센징'이라 욕하며 음식물을 던지기 일쑤였다. 변씨는 등록금이 모자라 휴학을 반복하다 결국 6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변씨는 뉴욕에서 낮에는 채소 가게 종업원 일을, 밤에는 피아노 조율을 했다. 가난했지만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지 못해 음악원에 등록해 한 달에 한 번씩 개인 지도를 받았다.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더라고." 하지만 이민 10년 만에 조그마한 채소 가게를 열었다가 강도를 당해 재산을 날렸다.
1990년 귀국한 변씨는 간간이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다. 하지만 2005년 척추 유착증을 앓게 되면서 다시 피아노를 손에서 놓았다. 병원에 입원한 것만 스무 번이 넘었다. 변씨는 "투병 생활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했다.
그러다 기적처럼 지난해 초 병상에서 일어섰다. 완쾌하자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연주자는 청중이 있어야 생명이 붙어있는 거예요. 대학생이 되면 최소한 교수님들은 내 연주를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에 바로 입학을 결심했어요." 그는 젊었을 때 화려한 쇼팽과 모차르트를 좋아했다. "나이를 먹으니 베토벤이 위대한 것 같아.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 두 귀 멀쩡한 난 행복한 거야." 여든의 노인은 인생의 마지막을 연습실에서 불사르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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