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용접봉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최희암 전 농구감독
["농구나 회사나 사람 관리는 똑같아. 신뢰를 주니 매출이 오르더라①]
1980~1990년대 겨울스포츠의 대명사는 농구였다. 프로농구가 태동하기 전에는 실업팀과 대학팀이 모두 출전해 우승을 가리던 ‘농구대잔치’의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 1993~1994년 시즌에는 현대전자·삼성전자·기아자동차 등의 쟁쟁한 실업팀을 누르고 연세대 농구팀이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연세대 농구팀 감독을 맡아 대학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코트의 마법사’가 최희암(60)씨다. 최 감독은 선수 못지않게 유명세를 얻어 CF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연세대가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한 게 벌써 20년도 넘었다. 그때 선수들이 지금 프로농구 감독을 하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그는 2009년 프로농구팀 인천 전자랜드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지금은 경남 창원시에 공장을 둔 고려용접봉(KISWEL)의 사장으로 일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40년 이상 농구선수와 감독으로 살아온 그가 용접할 때 필요한 철제를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지난 1월 23일 창원으로 내려가 그를 만났다. 오전 11시40분경 KTX 창원역에 내리자 177㎝의 키에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최 사장이 기자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연세대 농구팀 감독을 맡아 대학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코트의 마법사’가 최희암(60)씨다. 최 감독은 선수 못지않게 유명세를 얻어 CF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연세대가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한 게 벌써 20년도 넘었다. 그때 선수들이 지금 프로농구 감독을 하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그는 2009년 프로농구팀 인천 전자랜드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지금은 경남 창원시에 공장을 둔 고려용접봉(KISWEL)의 사장으로 일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40년 이상 농구선수와 감독으로 살아온 그가 용접할 때 필요한 철제를 만드는 회사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지난 1월 23일 창원으로 내려가 그를 만났다. 오전 11시40분경 KTX 창원역에 내리자 177㎝의 키에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쓴 최 사장이 기자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 경남 창원시 성산로에 있는 고려용접봉 생산공장에서 완성 제품을 앞에 두고 사진 촬영에 응한 최희암 사장. / 임영근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최 사장이 고려용접봉에 입사한 건 2009년 10월이다. 전자랜드 감독을 그만두고 4개월가량 쉬고 있을 때 전자랜드 구단주의 친형인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이 최 사장을 영입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는 중국 다롄 법인장으로 임명됐다. 경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중국어를 잘하지도 못하는 그에게 회사 오너는 중국 사업을 통째로 맡겼다. 최 사장은 다롄 현지에서 114명의 직원들과 생활하며 따뜻하고 정직한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다.
최 사장은 위기관리능력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2013년 초 STX다롄조선소의 부도 여파로 조선소에 주로 납품하는 용접봉 회사도 연쇄부도의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고려용접봉 다롄법인은 월 2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을 때다.
고려용접봉은 STX다롄조선소에서 80억원의 채권을 회수하지 못했고 매출도 급감했다. 최 사장은 현지 대사관과 은행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STX의 회생을 호소했다. STX다롄조선소 채권사협의회 대표를 맡은 그는 국내로 들어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국회, 청와대를 찾아가 STX의 관계사들이 채권 회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 사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권은 회수되지 않았고, 고려용접봉 다롄법인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직원을 112명에서 74명으로 줄였다. 매일 아침에 하던 체조도 중단했다. 직원들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회사에서 내준 차량도 팔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가 솔선수범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고 했을 때 홍민철 회장님은 ‘감독이 떠나면 거기 남은 사람들은 누가 책임지냐.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규모도 축소해 살아남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전체 외형의 3분의 1을 축소했다. 그 결과 회사는 작아졌지만 수익구조는 개선됐다. 뭔가 큰 전환을 꾀하기보다 차분하게 내실을 다져 생존했다.”
최 사장은 지난해 봄 본사로부터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고려용접봉의 국내외 영업과 구매를 총괄하는 사장으로 영전했다. 중국 다롄에서의 5년간 경영성과와 위기관리능력이 회사 오너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7월 최 사장은 짐을 싸 공장이 있는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연세대 농구팀의 전성기를 만들기 위해 했던 것처럼 국내 영업조직을 분석해 업무를 재조정했다. 다롄에서 경험한 위기능력을 발휘해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도 짰다.
“회장님이 저를 영입하고 한 달 뒤 다롄으로 가라고 할 때는 정말 막연했다. 나를 왜 영입하셨는지, 그곳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구나 회사나 다 사람을 움직이는 점은 비슷했다.”
최 사장이 다롄법인장으로 갔을 때 처음에는 매출이 줄어 고전했다. 9개월째 들어 조금씩 흑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용접봉이라는 게 장기간 꾸준히 관리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산업인데, 농구처럼 선수들을 고교 시절부터 쭉 지켜보고 관리해 데려오는 노력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직원들을 편하게 대했다. 실수를 해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매출이 쭉 신장됐다.”
최 사장은 경영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오랜 감독 생활을 통해 터득한 시각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든 일은 자기 기준으로 보게 마련이다. 나처럼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이 와서 기존과는 다른 시각과 리더십으로 일해주길 오너는 바랐던 것 같다. 임기응변이 아니라, 신뢰와 일관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②편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