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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 맥

호남향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전남일보 2014. 06.09. 00:00)

호남향우,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다방면 지대한 영향력
광주ㆍ전남출신 수도권 500만… 시리즈 연재

 

흔히들 우리나라에서 응집력이 가장 강한 단체로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려대교우회를 든다. 그만큼 광주ㆍ전남 출신을 비롯한 호남 향우들의 결속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선거 때면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뒀던 것도 호남 향우들의 역할 때문이었다.

수도권 광주ㆍ전남 출신 호남 향우는 줄잡아 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북 지역 300만 명을 합하면 수도권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800만 명에 이른다고 향우회 측은 보고 있다. 부산 80만 명, 대구ㆍ경북 45만 명, 대전 45만 명, 제주 12만명 등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도 상당수의 호남 향우들이 뿌리를 내리고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통틀어 1000만 명의 호남향우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호남 향우들의 진출은 '고향 탈출'로 대변되는 '이농현상'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는 광주ㆍ전남의 인구 감소와도 직결됐다.

해방 당시까지만 해도 영남 인구가 약 550만 명, 호남 인구가 500만 명 정도로 영남 인구가 10% 정도밖에 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6ㆍ25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구 균형이 무너진 것으로 향우회 측은 보고 있다. 6ㆍ25를 거치면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렸고 산업화 과정에서 전라도 사람들이 서울ㆍ부산 등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탈고향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 수도권으로 이동했으나 전남 동부권 사람들은 부산으로, 해남 등 남부권 사람들은 상당수 제주도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대학 진학 등을 통해 입신출세를 하기 위한 '학업 상경'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무일푼으로 고향을 등지는 '맨주먹 상경'이 그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공부를 통해 주로 관료ㆍ법조계ㆍ경제계ㆍ언론인 등에 진출, 성장했다. 이들은 지역 명문고 출신들이 주축을 이뤘다. 광주의 경우 광주일고ㆍ광주고 출신들이 주류를 이뤘고, 전남 동부권은 순천고, 전남 서부권은 목포고 출신들이 주축이 됐다. 물론 고교 무시험제가 실시되면서 명문고 중심의 진출이 약화됐다.

이른바 '돈 없고 백 없는' 젊은이들은 맨주먹으로 상경, 종업원이나 자영업을 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이들 가운데는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가 상경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향에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50~60년대에 서울로 진출한 향우 1세대들은 대부분 노년기를 맞아 현직에서 떠나 있거나 상당수가 작고한 상태다. 현재 수도권에서 호남 향우의 중심은 70~80년대에 진출한 향우들로 보면 된다.

'고향 탈출'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대규모 이농현상이 나타난 지 반 세기가 훨씬 지났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향우들이 어떤 곳에 진출해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관심이 없었다. 전남일보는 이번 주부터 11월 말까지 매주 한차례씩 서울ㆍ경기ㆍ인천ㆍ대전ㆍ대구ㆍ부산ㆍ제주 등 전국 주요지역에 진출한 출향 인사들의 진출 분야와 활동상을 직접 현장취재를 통해 기록한다.

 


 DJ 정치적 고향 '역경의 세월'… 꽃피운 문예 '목포의 눈물'

(전남일보 2014. 06.09. 00:00)

호남인맥 목포<상>
일제 수탈~ 군부독재시절까지
소외와 아픔 겪으며 낙후
입신양명 위해 맨주먹 상경

 

첫째줄 최봉인 전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 박지원 의원, 천정배 전 의원, 부좌현ㆍ김미희 의원, 권노갑 고문, 전해철 의원(왼쪽부터). 두번째줄 서기호 의원, 이매방 명인ㆍ최청자 교수, 최영철 감독ㆍ가수 최유나씨(왼쪽부터). 마지막줄 하철경 회장, 문학평론가 황현산씨, 가수 남진씨, 개그맨 배동성씨, 국악인 박애리ㆍ오정해씨(왼쪽부터). 배경 사진은 1930년대 목포 전경. 뉴시스ㆍ전남일보 자료사진ㆍ목포시 제공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로 대변되는 도시 목포(木浦). 목포는 1897년 개항된 이래 숱한 역경을 겪으며 성장한 도시다. 일제시대 목포항은 식민지 수탈항으로 활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해방 이후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엔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제 개발에서 소외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근래 인근에 전남도청이 위치하고 무안국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대교 등이 갖춰지면서 서남권의 중심도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목포가 언제부터 목포라고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순신 장군이 진을 쳤던 고하도가 목화의 집산지라서 이곳에서 생산한 목화를 일본으로 실어 날랐기 때문에 목화의 항구라는 뜻의 목포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영산강 물과 서해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길목쟁이' 처럼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해 '목개'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옮겨서 목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흔히들 목포를 호남선의 종착역이라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륙을 향해 진출하는 출발점이다.

목포가 갖는 의미는 지리적 위치 만큼이나 우리나라 인재의 관문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남 서남권에서 모여든 인재들을 가르치고 육성한 인재의 산실이었다.

목포를 중심으로 인근 군(郡)지역 우수한 인재들이 일찌감치 부모 품을 떠나 목포로 유학,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신안ㆍ무안ㆍ영암ㆍ진도ㆍ해남ㆍ완도ㆍ강진 등지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목포로 모였다. 목포와 좀 떨어진 영광ㆍ장흥ㆍ나주 쪽 인재들도 목포로 모여 들었다. 그 중심에는 목포지역 초ㆍ중ㆍ고가 큰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목포의 인재들이 주로 진학한 초등학교는 구도심에 위치한 북교초등, 유달초등 등이다. 중학교는 목포중, 유달중(당시 목포 이중) 등이 우수 인재를 모았고 고등학교는 목포고ㆍ문태고ㆍ목포상고ㆍ목포공고 등이 있다. 목포 출신 가운데는 초ㆍ중ㆍ고를 목포에서 졸업했지만 실제 출신고향은 목포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기사 중 실제 고향은 괄호 안에 표시).

고교 입시가 존재하던 시절엔 단연 목포고가 두각을 나타냈다. 목포중ㆍ고를 거친 학생들은 상당수가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에 남아 수도권에서 전남 서남권을 대표하는 인재들로 성장했다. 물론 당시 대학이 있던 광주로 진출한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로 진출한 목포 출신 '청춘'들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등을 통해 관계, 법조계, 언론계, 재계, 문화예술계, 군(軍)계, 그리고 정치계 등으로 진출해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로 성장했다. "목포 출신 유명인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는 말이 그래서다. 이처럼 목포는 전남서남권 교육센터의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목포 출신 서울 진출자는 타지역에 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맨주먹 상경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목포는 김대중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동교동계의 고향으로 정치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6명을 배출(인근 군 출신 포함)할 정도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거목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계

이른바 동교동계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출신 거물급 정치인들은 많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신안 하의도ㆍ목포상고),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고문(목포상고ㆍ동국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신안 도초ㆍ목포중ㆍ목포고 8회)등이 있다. 현역의원으로는 박지원(진도ㆍ문태고)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부총리ㆍ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최영철 현 서경대 총장(완도)도 목포서 초등을 나와 목포중ㆍ고,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다. 전 헌법재판관을 지낸 조승형 국회의원도 목포북교 초등, 목포중ㆍ고를 나왔다. 천정배(신안 암태)ㆍ유선호(영암) 전 의원도 초등부터 목포에서 살았고, 목포고 출신이다.

현역 의원으로는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경기 안산시단원구을) 의원이 목포중ㆍ목포고 24회이고, 정의당 비례대표 서기호 국회의원도 목포고 37회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경기 안산시상록구갑) 의원도 목포가 고향으로 영흥중 출신이다. 여성으로는 통합진보당 김미희(경기 성남시중원구) 의원이 목포여고를 졸업하고 서울 약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전 의원으로는 김정균(목포고 8회ㆍ연세대 정외과ㆍ공화당 전국구), 민병초(해남ㆍ목포중ㆍ서울 중앙고) 등이 있다.

●문화예술계

목포는 문화예술의 요람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6명이나 배출했기 때문이다. 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차범석, 서양화가 김환기(신안), 여류소설가 박화성, 한국화 남농 허건,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상 작고)이 있고, 현재 생존해 있는 예술원 회원으로는 우리나라 무용계에서는 유일한 최청자 세종대 석좌교수가 있다. 최 교수는 목포 중앙초등과 중앙여중ㆍ목포여고를 거쳐 서울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 무용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에 '툇마루 무용단'이라는 국내 유일의 민간무용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한국무용학회 회장 등 우리나라 현대무용계의 대부다.

예술원 회원은 되지 않았지만 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많다. 살풀이춤의 대가 이매방 선생, 한글 서예의 대가 평보 서희환 선생 등이다. 서희환 선생은 1968년 국전사상 전무후무하게 한글서예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박화성 씨의 장남인 천승준, 차남 천승세('만선')씨 등도 문학평론가와 소설가로 유명하고, 셋째 천승걸(목포중) 씨는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를 오래했다.

문학평론가 김현, 진보적 문학평론가 황현산 씨 등도 목포 출신이다. 현존하는 한국화가로 목포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최근 목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전정 박항환 선생과 한국예총회장인 하철경(이상 진도) 선생 등이 어릴 적부터 목포에서 화업을 쌓았다.

가수로는 이난영ㆍ남진을 빼놓을 수 없고, '흔적'의 최유나(해남)가 목포여고 28회다. 개그맨으로는 목포 덕인고 출신 배동성이 있다. 연예인 겸 국악인으로는 서편제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오정해 씨가 목포 출신으로 초ㆍ중ㆍ고를 목포에서 다녔다. 요즘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박애리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KBS 국악대상을 수상한 인재다.

음악가로는 최영철(63) 서울오라토리오 감독이 있다. 목포중ㆍ고를 졸업한 최 감독은 1991년부터 서울오라토리오 합창단, 오케스트라, 드보르작 아카데미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체코 프라하 음악원/드보르작 음악원 감독 겸 교수를 하고 있는 최 감독은 체코 정부로부터 실버 메달(2005년)과 문화예술 최고 영예상을 수상(2009년)하기도 했다.

목포 출신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끈끈한 연대감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데는 최봉인 전 재경광주ㆍ전남향우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신문 상임고문, 전남일보 창간 임원 등을 역임한 최 회장은 '애향의 대부'로서 평생을 목포뿐만 아니라 광주ㆍ전남 출신 향우들을 규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중앙 중심에서 소외된 恨의 역사… 앞으로는 대양으로 나가는 교두보 될것"

(전남일보  2014. 06.09. 00:00)

■ 김성훈 전 농림장관 인터뷰

 

목포 출신으로 농림부 장관을 지낸 농훈(農薰) 김성훈(75ㆍ金成勳) 전 장관은 "목포를 비롯한 남도땅이 마지막 아껴놓은 땅으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지역개발을 할 때는 중앙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남도의 주도 아래 나라를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치축제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농림부 장관때 일본이 세계식품표준위원회(CODEX)에 기무치를 세계표준으로 등재하려고 하자 김치 등재에 나서 일본을 이겼다. '김치'가 세계적인 본명이 된 이유다. 당시 '고추장'도 함께 신청해 인정을 받았다. 이런 인연을 안 박광태 전 광주시장이 광주김치축제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처음 고사를 했으나 명예직이라고 해서 맡은 것이 5년이 됐다.

-본인에게 목포가 갖는 의미는.

△목포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수천년 동안 켜켜히 쌓여온 중앙정치와 중앙중심의 사회경제ㆍ문화역사에서 소외돼온 한의 덩어리다. 그러나 목포는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볼 때 한반도 전체가 태평양을 향해서 돌출해 나아가는 형국을 이룬다. 21세기 이후 우리가 나갈 곳은 태평양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목포에 농축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포는 설움과 한의 덩어리이지만 우리 미래와 발전의 희망봉이다.

- 좌우명은.

△공자님 말씀에 '화이부동(和而不同 -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아니함)'이 있는데, 나는 거꾸로 '부동이화(不同而和)'를 사회생활의 좌우명으로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서로 생김새가 다르고 출신이나 신분이 다르더라도 화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생활 면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다.

-고향 발전(광주ㆍ전남)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중앙을 쳐다보면서 발전계획 세워서는 안된다. 중앙의 식민지가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중앙에서 할 만큼 한 사람들이 고향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데서 우리끼리 싸움이 일어난다. 이런 사람들은 고향에서 자리를 뺏으려 하지 말고 고향이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박근혜 정부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세력으로 광주ㆍ전남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 무콘텐츠ㆍ무뇌의 지도부들이 새누리당의 대안세력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광주ㆍ전남사람들이 마음을 줄 수 있는 곳이 없다. 이제 광주ㆍ전남의 발전계획은 우리지역이 선두에서 이끄는 발상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고향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죽지 말라고 하고 싶다. '맨 나중된 자가 맨 머리가 된다'는 성경말씀이 있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자원과 미래가 눈앞에 있다. 남도가 미래의 친환경적인 성장과 발전의 기관차다. 그동안 푸대접 받아서 개발에 소외됐던 아껴놓은 땅이 크게 써야 할 땅이 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 문화가 사는 곳, 역사가 있는 곳이 바로 남도 땅이다.


김성훈 전 장관은

▷1939년생 ▷ 목포중ㆍ고 졸업, 서울대 농과대학 졸업 , 전남대 대학원 농학석사, 미국 EWC 하와이대 대학원 농업경제학석사, 동 대학원 경제학박사 (농업경제학 및 자원경제학 ▷중앙대 교수, 유엔 FAO 아ㆍ태지역 유통ㆍ금융ㆍ협동조합 책임자 겸 아ㆍ태지역농업금융기구(APRACA) 사무총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한국농업경제학회장, 대한민국 국무위원 겸 농림부 장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상지대 총장 ▷現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ㆍ고문, 세계(광주)김치문화축제 추진위원장, 장보고 기념사업회 이사장,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 정의센터 대표

 


50~60년대 서울 상경 '맨주먹 자수성가' 수두룩

(전남일보 2014. 06.19. 00:00)

[호남인맥] 해남
조선시대 유배 후손 민ㆍ윤ㆍ이씨 등 뼈대있는 집안 많아
6ㆍ25 후 이념 갈등 휘말려 젊은이들 서울로 서울로
현재 수도권만 65만 추산… 대법원장ㆍ국회 부의장 배출

 


해남은 우리나라 육지의 끝자락이어서 바다와 접해있지만 농토 또한 넓은 곳이다. 실제로 전남도내에서도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가 가장 많은 군(郡)이다. 예전에는 고흥군 면적이 가장 넓다고 했으나 간척으로 육지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가장 넓은 곳이 됐다. 한때는 시로 승격하려는 움직임이 일 정도로 군세(郡勢)가 대단했다.

예로부터 해남은 제주도로 가는 길목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귀양와 정착한 이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해남에는 뼈대있는 집안 사람들이 많다. 민씨, 윤씨, 이씨 등이 대표적이다.

해남은 규모만큼이나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족하고 예술인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문장가인 성연은 '정원루기'에서 해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성곽은 바다가 다한 곳에 평평히 임해 있는데/ 풍연(風煙) 10리에 나그네가 누각에 오르네/ 희미한 구름이 들을 휩싸니 산은 그림 같고/ 큰 물결은 하늘을 적시어 땅이 뜨는 듯하네….'

시(市) 승격 움직임이 일 정도였던 해남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 역시 이농현장이었다. 젊은 청춘들은 60년대부터 서울 등 전국으로 흩어졌다. 공부 잘한 젊은이들은 목포나 광주 등 대처로 나가 공부를 통해 서울로 향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춘들은 맨주먹으로 상경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해남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온 과정에는 6ㆍ25도 한몫 거들었다. 오길록 재경해남군향우회장은 "6ㆍ25 때 해남사람 2000명 정도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했다.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도 좌익이라는 연좌제에 묶여 취직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뜬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억척스런 해남사람들은 서울 등 수도권에 정착,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분포를 보이며 성장했다. 수도권 해남 향우가 서울에만 35만명, 경기도에 20만명, 인천에 10만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계

15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봉호(해남중ㆍ고, 전남대) 전 국회의원이 5선 정치인으로 중앙무대에서 활동했다. 현직 정치인으로는 최재천(서울 성동구갑)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광주일고와 전남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의 길을 걷던 중 지난 17대때 국회에 입성한 뒤 19대때 재입성에 성공한 인물이다. 또 임수경 국회의원도 원적은 해남이다. 아버지 임판호씨가 해남 출신이기 때문이다. 해남 출신 채일병 전 국회의원(전 광주발전연구원장)도 있다.

젊은 정치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이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이 있다. 현산면에서 초등학교(현산초등)를 졸업하고 광주로 진학, 광주 동성중ㆍ광주상고(현 동성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하고 MBC 기자로 입사해 보도국장까지 지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변인을 맡은 이후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으로 차세대 정치인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방정치인으로는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 출신인 박영순 구리시장이 지난 6ㆍ4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새정치민주연합)은 마지막 관선 구리시장도 맡은 경험이 있어 이번 당선으로 네번째 구리시 시정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또 문내면 출신인 김기대(새천년민주연합)씨가 서울시 성동구을 광역의원, 화산면 출신 김영섭씨 금천구 구의원, 송지면 출신 강상태(새정치민주연합)씨가 성남시의원(중원구), 산이면 출신 박미숙씨가 경기도 군포시 의원, 문내면 출신 김경완씨가 서울 금천구 구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각각 당선됐다.

●경제계

경제계를 대표한 인물로는 이화일 조선내화 명예회장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내화산업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이 회장은 황산이 고향으로 작고한 이훈동 회장이 일찍이 목포에 조선내화를 세운 이후 현재까지 탄탄하게 기업을 일구고 있다. 윤영달 크라운ㆍ해태제과 회장 아버지 윤태현 회장의 고향도 해남이다. 또 신광웅 전 신동아건설 대표이사도 해남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인물이다. 윤광청 ㈜비앤에스디포 대표이사는 서울 강남 호남선 터미널인 센트럴시티 사장이고, 박제관(산이면 출신ㆍ목포고ㆍ전남대) 금호타이어부천판매㈜ 대표이사, 박효석(화산 출신) 한독화장품㈜ 회장 등도 해남이 고향이다.

해남 출신 중에는 특히 자수성가형 기업인이 많다. 맨주먹으로 상경, 고진감래를 몸소 체험하며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다. 그래선지 이들은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박창길 일지산업 회장은 20대에 상경, 일찍이 달력업에 진출했고 특히 달력을 매는 스프링 개발특허를 받아 성장했다. 성공을 거둔 박 회장은 30억원을 출연해 해남복지회관을 건립, 군에 희사해 고향 노인들의 요람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남중고 동창회 회관 건립에도 2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엄석오 ㈜일레븐건설회장도 어릴 적 고향을 떠나와 양우당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다 부동산과 건설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경우다. 김지호 ㈜귀뚜라미홈시스 인천 대표이사는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을 갖고 있다. 또 ㈜귀뚜라미건설 대표이사, 고려대학교 교우회 상임이사,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상채 안양명학자동차학원 원장도 자수성가형이다. 그는 서울에서 자동차학원을 두 곳이나 운영한 뒤 현재는 안양에서 가장 큰 자동차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 화산면 출신인 한정현 중국 덕주천우레미콘 유한공사 대표는 벽돌건자재 사업에 뛰어들어 지난 2002년에는 중국까지 사업을 확대했고 현지 교민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재중국한인회 수석부회장, 산동성연합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오주 서울 순천향대학장례식장 대표, 김중근 삼익산업㈜대표이사, 이부진 유진테크 대표, 성하철 ㈜명성건축 회장, 오병훈(동광중ㆍ목포고) ㈜루튼회장, 민명술 코스모스악기사대표 등도 젊은 시절 상경, 한 분에서 성공한 뒤 향우를 비롯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는 인물들이다.

해남 출신 여성으로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많다.

박정숙 ㈜장교공영 관리단 대표위원은 1978년도에 상경, 건물관리 개발분양업종에 뛰어들어 성공했고 고향 사랑도 남달라 해남향우회 여성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 서초구 경남쇼핑센터에서 신발전문업체 슈젠을 운영하고 있는 박금자 대표, 서울 서초동 교대역 사거리에서 15년째 한정식집을 운영하며 성공적 삶을 살고 있는 정애숙 장원 대표도 일찍이 고향을 떠나와 성공한 사람들이다.

●법조계

법조계에는 윤관 전 대법원장이 해남출신으로는 가장 원로이고, 현직에는 이성춘(해남중ㆍ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박정원(여ㆍ이화여대 출신)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있다. 그밖에 변호사로는 문진탁 변호사(전 서울지법 부장판사), 윤전 변호사(전 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10여명이 서울서 활동하고 있다.

윤관 대법원장과 윤전 변호사는 형제간으로 두 사람의 아들들도 사법고시에 합격,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 가운데 김다섭 변호사가 새정치민주연합 김포시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어, 국회입성을 노리고 있는 인물이다.

●관계

민동석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들 수 있다. 그는 해남읍 출신으로 일찍이 외무고시에 합격, 외교통상부 제2차관까지 오른 인물이다. 현직으로는 주이석 농수산식품부 질병관리본부장이 있다.

경찰 출신으로는 박진석 전 경찰청 정보국장과 정성기 전 무안ㆍ김제ㆍ순천경찰서장, 윤정하 전 해남ㆍ구로서장을 들 수 있고, 이들은 임학우ㆍ이창균씨 등과 함께 해남이 나은 서장급이다.

군인 출신으로는 윤재갑 전 해군 제3함대 사령관, 김은상 전 육군소장이 있다. 또 윤탁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은 국립극장장도 역임한 바 있다.

●학계

윤내현 전 단국대 부총장는 역사학자(고대사)로 유명하고 고기채 전 경희대 대학원장은 이학박사로 재경해남군향우회 제 10ㆍ11대 회장, 전 재경문태중고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서울대 출신으로 오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도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로는 김영모 (사)제과협회 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일본동경제과학교와 프랑스브랑제리 제빵학교에서 연수를 받는 등 해외기술을 직접 연마해 이 업종에서 새로운 기술을 보급한 인물로 현재 수원여자대학제과제빵과 교수를 하고 있다. 종교계에는 해남 황산 우황리 출신인 이해동 목사가 있다.

●연예 및 스포츠계

전국적으로 알려진 가수는 13명 정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고향무정' '아빠의 청춘'을 부른 오기택씨가 해남출신이다. 그는 낚시하던 중 바닷물에 빠져 뇌출혈 후유증을 앓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올 들어 향남군향우회와 한국예술인단체 총연합회가 서울에서 그를 돕는 '영등포의 밤'행사를 가져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또 홍세민ㆍ최유나ㆍ박우철ㆍ민해경 등이 유명가수로 일반에 잘 알려져 있고, 중견가수로는 진국이ㆍ정문ㆍ토우ㆍ박정희ㆍ민수연ㆍ김은경ㆍ서명희ㆍ황성ㆍ정문ㆍ유비 등이 있다. 탤런트로는 민욱씨가 해남출신이다.

스포츠인으로는 김판근(송지 출신)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현재 호주에서 호주유소년축구 감독을 하고 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안한봉(해남중ㆍ고ㆍ한국체대) 국가대표 감독이 올해 세계레슬링협회에서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또 박미희(화산중ㆍ광주여상) 흥국생명 감독, 박도헌(북평 출신ㆍ조선대) 전 핸드볼 국가대표 감독이 있다.

 

 

DJ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당선 후 대통령께 직언했더니…"

(전남일보 2014. 06.19. 00:00)

■ 오길록 재경 해남향우회장

 

오길록 재경 해남향우회장

오길록 재경해남향우회장(71ㆍ해남중ㆍ고 12회ㆍ전 재경해남중고총동창회장)은 현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권유로 서울로 상경, 1971년 DJ의 대통령 선거를 도왔으나 실패하자 부동산업에 종사하면서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 이후 민추협에 참여, 이중재 전 국회의원을 도와 또다시 정치에 참여했고, 이때 동교동과 인연을 맺어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종합민원실장 등으로 활동하며 DJ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DJ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일반인으로 돌아와 사업전선에 나서 강원도 평창유스호텔을 건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해남 항일독립운동 희생자 추모 사업회 회장을 맡아 추모비 건립과 해남항일운동사 발간에도 매진하고 있다.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장학노 부속실장 비리사건을 파헤쳐 정권을 약화시켰고, 1997년 대선에서는 당시 신한국당의 연수원 담보 500억 불법 사채조달 사건을 폭로하면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왜 정치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들들에 대한 정치 참여 문제를 직언했다는 이유로 일절 직책을 받지 못했고, 당시 1번이던 전국구도 승계받지 못했다.

-향우회 참여와 활동은.

△1977년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으로 잘 나가던 때 참여했다. 이후 부회장만 16년을 했고 지난해 17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고향발전을 위해 한 말씀한다면.

△군세에 비해 중앙을 상대로 한 예산확보나 사업유치가 안돼 지역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남은 대법원장과 국회부의장을 배출한 곳이고 4ㆍ19직후에는 민선도지사(민영남)까지 배출한 곳이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 군세가 쇠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예부터 용력의 고장… 스포츠계 스타 다수 배출

(전남일보 2014. 08.15. 00:00)

[호남인맥-고흥]

 

맨윗줄 왼쪽부터 김태영 축구국가대표 코치, 김영광 경남FC 골키퍼, 신진식 전 배구 국가대표. 둘째줄 왼쪽부터 신중식 전 의원, 김현웅 법무부 차관, 신순식 부품소재투자기관협 부회장. 셋째줄 왼쪽부터 우오현 SM그룹 회장,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이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 김용근 자동차협 회장, 장세동 전 안기부장. 넷째줄 왼쪽부터 강기정ㆍ김승남ㆍ신장용ㆍ박홍근 의원, 소설가 전성태씨.

고흥(高興)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소유한 군(郡)이었다(현재는 간척으로 해남이 가장 넓음). 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농산물뿐만 아니라 수산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때 기록에 '고흥은 예부터 별칭 영주(한라산)와 같은 이름으로 산과 바다가 맑고 아름다우며 기승(氣勝ㆍ기운이나 힘 따위가 성해서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예부터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용력이 뛰어난 역사가 많다. 지금도 정계, 학계, 관계 등 각 분야에 진출한 고흥출신 인물이 많은 이유인 듯하다. 생존해 있는 인물만해도 이대순 전 장관을 비롯, 현직 국회의원만 5명을 보유하고 있는 고장이다. 우리나라 특별검사 조용황 변호사, 재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우오현 SM그룹 회장, '율산신화'를 쓴 신선호, 여류화가인 천경자, 시인 송수권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특히 체육계 인물로는 고흥을 뛰어넘을 수 없다. 고흥이 우리나라 우주항공의 본 고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에서도 나타난다. 고(高)자는 삼단로켓을, 흥(興)자는 조립된 로켓의 발사를 기다리는 발사대를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우주항공의 본 고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흥은 이름자에서 이미 예견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로켓이 발사되기 위해서는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힘이다. 예부터 '고흥 가서 힘자랑 말라'는 얘기가 있다. '박치기'로 세계프로레슬링계를 석권했던 김일이 고흥군 금산면 출신이고,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유제두가 두원면 출신이다. 또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일찍이 서울로 진출한 고흥군 출신들은 재경고흥군향우회 외에도 1974년 수도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저명인사를 중심으로 '고경회'(회장 류해인 정인건설 회장)를 구성, 고향발전 및 후배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계

고흥은 주승용ㆍ강기정ㆍ김승남ㆍ신장용ㆍ박홍근 등 현직 국회의원만 5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정치인의 산실이다. 최근 김선동(47ㆍ순천고ㆍ고려대)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해 한 명이 줄었지만 여전히 많다.

강기정(50ㆍ대동고ㆍ전남대) 의원과 주승용(광주일고ㆍ성균관대ㆍ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7ㆍ18ㆍ19대 3선 중진의원이다. 또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승남(49ㆍ전남고ㆍ전남대ㆍ고흥보성) 의원과 수도권에서 당선된 신장용(51ㆍ예당고ㆍ경남대ㆍ경기 수원시을) 의원, 박홍근(45ㆍ순천효천고ㆍ경희대ㆍ서울 중랑구을ㆍ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9대 금배지를 달았다.

정치 및 관료ㆍ교육계 원로 좌장은 역시 이대순 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81ㆍ순천중ㆍ고ㆍ서울대)이다. 고흥 점암출신인 이 회장은 전남도교육감, 11ㆍ12대 국회의원, 체신부장관, 한국정기통신공사 이사장, 호남대 총장, 경원대 총장, (사)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사)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태권도진흥재단 명예이사장 등 정ㆍ관ㆍ교육계를 오가며 한국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5선의 박상천 전 국회의원(76ㆍ광주고ㆍ서울대 법대)도 판사와 검사를 거쳐 13ㆍ14ㆍ15ㆍ16ㆍ18대 의원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연세대 직선 초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51ㆍ대서면ㆍ대동고ㆍ연세대) 전 인천시장은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1994년), 변호사가 됐고 16ㆍ17ㆍ18대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뒤 민선 5기 인천시장에 당선됐으나 지난 6ㆍ4지방선거에서 아쉽게 낙선했다.

장성민(51ㆍ서울 영일고ㆍ서강대 정외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도 김대중정부시절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홍보비서관ㆍ국정상황실장을 거쳐 16대 의원을 역임했다. 이밖에 최문휴(광주고 4회ㆍ연세대 정외과) 페닌슐라 오너즈 골프클럽 대표는 국회도서관 관장을 지냈고 장홍호(56) 엠브릿지홀딩스 대표이사는 국민의정부시절 청와대 비서실 민정국 국장을 역임했다. 제5공화국 핵심인물이었던 장세동(78) 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도 고흥출신이다. 작고한 인물로는 제5대 민의원 부의장을 지낸 서민호(1903~1974년) 전 의원이 제 2ㆍ5ㆍ6대 민의원, 7대 의원을 지낸 인물로 재경고흥군향우회장과 제5대 재경광주전남향우회 회장도 역임한 거물정객이었다.

경제계

고흥출신 경제인으로는 우오현(61ㆍ광주상고ㆍ광주대) SM그룹 회장과 김철(59ㆍ여수상고) 피앤텔 대표이사 사장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우오현 회장은 지난달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 6단체 중견기업연합회 출범식에서 참석, 박 대통령에게 주택기금 19조원을 활용한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아파트 건립과 지방출신 대학생을 위한 10평짜리 저렴한 기숙사 제공방안을 제안해 박 대통령이 전폭지원을 약속하고 배석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즉각 지시, 기재부 TF팀이 가동되도록 만든 인물이다. SM그룹은 대한해운, 티케이케미칼, 남선알미늄 등의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는 중견 그룹사로 삼라건설을 모태로 진덕산업, 티케이케미칼, 벡셀, 우방, 경남모직, 남선알미늄 등을 인수해 급성장하고 있다.

김철 사장은 휴대폰 업계에서 거물경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앤텔은 1977년 설립한 이래 정보통신기기 케이스 전문업체로서 성장을 지속해오다 지난 2002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2006년에는 '2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사무소와 함께 칠곡공장, 김천 공장, 중국 천진공장, 베트남 EMS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차관까지 올랐던 신윤식(78ㆍ순천농림고ㆍ서울대ㆍ순천대 석좌교수) 정보환경연구원 회장은 데이콤 대표이사사장, 하나로통신 대표이사사장, 하나로통신 대표이사회장를 역임한 우리나라 정보통신분야의 산증인이다.

또 우리나라 최대의 양변기 부속제품 생산기업을 이끌고 있는 송공석 와토스코리아(주) 대표이사, 1970년대 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율산그룹'신화를 썼던 신선호 회장도 있다.

관료계

백형조 전 전남지사와 송언종(77) 전 전남지사가 고흥을 대표하는 관료출신이다. 백 전 지사는 경찰대학장을 역임한 인물로 전남지사를 지냈다. 그는 퇴임 이후인 1996년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 7년여 만인 2001년 동국대에서 경찰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송 전 지사는 체신부장관과 광주시장을 역임하고 법무법인 21세기종합법률사무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의 형인 송하성(60ㆍ광주상고ㆍ성균관대ㆍ파리소르본느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은 행정고시(22회)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통'이다. 송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과 행시 동기로 경제기획원에서 약 10년 동안 함께 근무했다. 이런 인연으로 한때 언론에 탕평총리 기용설이 나오기도 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58ㆍ순천고ㆍ서울대ㆍ제23회 행정고시)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을 거쳐 제2대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을 역임했고, 신순식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상근부회장(55ㆍ광주일고ㆍ한양대ㆍ제24회 행정고시)도 전남체신청 청장 , 부산체신청 청장, 충청지방우정청 청장을 지냈다. 송현담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본부장(60ㆍ단국대 법학박사)은 주택건설분야에서 주요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법조계

현직 법조인으로는 김현웅 법무부 차관(광주일고ㆍ서울대 법대)이 가장 높은 관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차관은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 광주지방검찰청 지검장ㆍ부산고등검찰청 고검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12월부터 법무부 차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수 변호사가 아버지로 부자 법조인이다.

우리나라 특별검사 1호인 조용황 변호사는 우리나라 특별검사제도와 소비자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고향 고흥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독학으로 19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 법조계에 진출한 인물로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에 대한 특별검사로 임명돼 문귀동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그는 또 1989년 소비자보호를 위한 시민의 모임회장과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장을 지내면서 사기세일을 일삼는 백화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김으로써 소비자운동의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시절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과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역임한 뒤 노무현 정부때는 제3대 국가인원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고향사랑에도 앞장서 재경고흥군향우회장과 재경광주전남향우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언론계

고흥이 낳은 언론계 인물로는 신중식 전 국회의원(73ㆍ광주서중ㆍ일고ㆍ서울대)을 빼놓을 수 없다. 신 의원 뿐만 아니라 그 집안은 영암 현씨 집안(현정은 현대그룹회장 집안)과 함께 호남에서 알려진 명문가로도 유명하다.

신 의원은 중앙일보에 입사한 뒤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 인물로, 본격적인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 창간작업에 뛰어들어 정론직필에 앞장 섰고 이후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홍보처장을 맡아 당시 보수언론과의 가교역할을 담당했고 19대 총선에서는 국회의원(고흥ㆍ보성)에 당선됐다.

신 전 의원의 아버지는 고흥군수와 경찰서장을 지낸 신지우이고, 큰형 신정식(1924 ~ 1994년)은 안과전문의로서 전남대 의과대학에서 병리학과 약리학을 전공해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국립소록도병원에서 17년간 근무하는 등 우리 나라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40여 년간 헌신 봉사했다. 작은 형은 건설부장관과 공화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신형식씨다.

체육계

세계적인 프로레슬러로 잘 알려진 김일 선수(작고)가 고흥출신으로 현재 고흥에 기념관과 체육관이 설립돼 운영되고 있고, 유제두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1975년)ㆍ백인철 세계복싱협회(WBA) 슈퍼미들급 챔피언(1989년)이 고흥출신이다.

축구계에서는 국가대표 출신인 장외룡(55ㆍ전 다롄 아얼빈 감독) 전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한일월드컵에서 부상으로 마스크투혼을 보였던 김태영(44ㆍ녹동초ㆍ고흥중ㆍ금호고ㆍ동아대) 국가대표팀 코치, 김영광(31ㆍ광양제철고ㆍ한려대) 경남FC골키퍼, 그리고 아버지 고향이 고흥인 '산소탱크' 박지성이 있다.

또 전 배구국가대표 신진식(39) 삼성화재 블루팡스 코치와 유중탁(54) 전 국가대표 배구감독도 원적은 고흥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2연패의 주역인 장용호(38ㆍ광주체고), 한국 마라톤의 암흑기에 보스턴마라톤대회(1993년)에서 2위(2시간 9분 43초)를 차지해 한국마라톤 중흥에 불을 지핀 김재룡 전 한전코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정구 남자단식 금메달 이요한(20ㆍ점암초ㆍ중ㆍ대구가톨릭대) 등이 고흥 출신이다. 특히 산악인 김홍빈(매산고ㆍ광주대)은 손가락 장애를 극복, 에베레스트를 비롯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고 8000m급 14좌 거봉 등정에 도전하고 있는 인물로 장애인에 희망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한국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화가인 천경자(전남여고) 선생이 고흥을 대표하는 예술계 인사다. 천 선생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대한민국예술원상(1979년)과 은관문화훈장(1983년)을 수상했으며 지구를 몇 바퀴 돌면서 쓴 해외여행기와 수필, 자서전 등 글로도 필명을 날리기도 했다.

동초제의 창시자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 동초 김연수(작고)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광주시립국극단장을 역임한 송순섭 명창, 송수권(60ㆍ두원면ㆍ고흥중ㆍ순천사범ㆍ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 시인이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제6회 채만식문학상ㆍ2011년 제57회 현대문학상(소설부문)을 수상한 전성태 소설가를 비롯 10여 명의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 유명 드라마작가로 여수에서 성장한 김정수(여수여고ㆍ본명 김정숙)씨도 원적은 고흥이다.

 

 

쉰줄에 고려대 경영학과 2005학번 "출향인들 고향에 더 관심 가졌으면"

(전남일보 2014. 08.15. 00:00)

■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

 

송공석(62ㆍ宋公錫) 와토스코리아㈜ 대표이사는 고흥 대서면 출신으로 16세 되던 해에 상경, 양변기 분야 종업원으로 근무한 뒤 1973년 남영공업사를 설립했고, 1997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양변기 부속제품 생산기업인 와토스코리아㈜로 탈바꿈해 한국 위생도기업계의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을 이끌고 있다. 그는 최근 인천에서 본사와 공장을 장성으로 이전, 연락사무소만 인천에 남겨두고 장성에 터를 잡아 130여 명을 고용하는 등 지역의 고용창출 및 소득증대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와토스코리아㈜는 위생도기 주요부품을 유명 메이커에 공급하는 업체로, 다양한 형태의 양변기 부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고급기술을 요하는 전형적인 다품종소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중국ㆍ일본ㆍ태국 등 6개국에 수출하는 기업으로 2005년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송 대표이사는 사업적 성공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물절약과 환경개선에도 큰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세계물의날 기념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10년 올해의 녹색상품 본상, 2014년 철탑산업훈장(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늦깎이로 향학열을 불태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50대에 접어들어 고입검정고시(2003년)ㆍ대입검정고시(2004년)를 통해 고려대 경영학과(2005학번)에 진학해 20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부에 매진, 졸업했다.

부모님 산소 성묘 등을 위해 일년에 세차례 이상 고향을 찾는다는 그는 고향발전과 관련, "고흥의 지역적 특성과 기후를 충분히 활용해 지역농축산물을 브랜드화해서 출향인사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잘 사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지금은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고향 정치인을 비롯한 지역민들이 이런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매진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