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청와대 참모 정책체제 바꾸고 공직사회 저항 극복해야"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에 회의감..."권력층이 스스로 무엇을 바꿀지 먼저 밝혀야
"직업윤리·안전의식 없는 대한민국…참사는 계속된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 바꾸고 윤리 구축, 세월호 참사 기억 노력해야"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의 평형수를 빼냈고 화물을 과적하고도 화물을 고정시키는 '고박'조차 제대로 안했다. 결국 복원력을 상실한 배는 우리 해역에서 두번째로 조류가 센 맹골수도를 지나다 침몰, 복원력을 잃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고 직후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직업윤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은 있으나마나 했고 '나 혼자 살겠다'는 선장 등의 무책임한 태도는 사고 피해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물론 안전보다는 돈벌이에 급급했던 청해진해운과 승객을 버려둔 채 배를 빠져나간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에서 이번 사고와 피해확산의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의 온상이 된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국민들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국가개조'라는 처방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 '국가개조론'은 공허하기만한 상태다.
◇ 朴 대통령 '국가개조론'에 회의감
사고 발생 2주만인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국민안전대책 수립을 지시하면서 공무원 비리 척결, 공직사회에 대한 고강도 개혁 의지 등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을 언급했고 지난 2일 종교계지도자 10인을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로 빚어진)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단단히 마음을 잡고 (국가를) 개조하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공직사회의 적폐 등과 관련해선 업계와 유관 감독기관의 '갑을 유착관계'를 비롯해 오래 전부터 우리사회에 고착화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를 뿌리뽑기 위해 시스템과 제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국가개조론에 대해선 적지않은 회의감이 표출되고 있다. 계획이 구체적·장기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직사회의 저항 등으로 '국가개조'가 선언적 의미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개조론에 대해 "국가개조라는 막연한 말만 가지고는 개조가 안되고 각론에 들어가면 엄청난 저항과 문제가 발생하게 돼있다"며 "사람들이 답답해하니까 총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도 이번 사고가 공직사회의 부패, 해운업계의 비리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봤지만 청와대가 이 같은 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 수 있을 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는 "지금 청와대의 참모·정책체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청와대의 이해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은 과업을 설정하고 체계를 만들고 사람을 선정하는 기획을 해야한다"며 청와대 체제 정비 및 인적쇄신의 선결을 통한 근본적인 국가개조를 촉구했다.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게 이번 국가개조의 핵심이 돼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의사 결정권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층에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개조의 출발은 권력층이 스스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그런데 이번 국가개조를 주창하는 주체가 청와대이고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대해 개조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은 국가개조의 핵심 대상이 청와대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명하달식 국가개조는 국민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권력층 스스로 신뢰를 잃었던 부분을 밝히면서 개조하지 않으면 결국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공학적인 발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효율적인 개혁을 위해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은 마찬가지였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좋지만 일부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는 등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개혁이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지만 이게 안 되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지지와 협조를 바랄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개혁할 것인지 구체적인 철학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장은 박 대통령이 국가 재난·안전관리 컨트롤타워로 제시한 '국가안전처'가 운영상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이번 사고에서 정부가 보여준 대응 미숙은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기존 재난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점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난관리 시스템이 3중, 4중으로 구축돼있는데 여기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못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안보 뿐만 아니라 국가위기도 관리해야 하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부터 매뉴얼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선은 재난관리를 하는 공무원들이 왜 개조돼야하는지 공직사회 내부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멘탈 바꾸고 윤리 구축, 세월호 참사 기억 노력"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개조는 근본부터 뜯어고치자는 말"이라면서 "제도적 변화만으로는 사회 전반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우리 사회의 '멘탈'이 바뀌어야 하고 윤리가 구축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우선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윤리는 직업윤리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 일한다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세월호의 선장을 감시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임무를 다했을 지는 의문"이라면서 "선장에게 없었던 것은 결국 직업윤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사회에는 급속한 경제성장때문에 결과지상주의, 성공지상주의, 금전만능주의 등의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면서 "직업윤리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성보다는 성적에 치중해 공무원을 뽑는 행정고시 등 국가시험의 문제점, 퇴직 이후 공무원의 유관업체 취직 관행,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 부재 등을 문제삼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위원회 대표는 "1980년대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등 '원칙대로 살면 망한다. 무조건 벌고 보자'는 기조가 사회지도층에서부터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너도나도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교복업체들마저 어떻게든 교복을 비싼 값에 팔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사회 밑바닥까지 직업윤리는 무너진지 오래"라며 "사회지도층이 먼저 변해야 사회 전반의 직업윤리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사회적 변화는 상대를 비판하는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성적 실천'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전쟁과 경제발전, 민주화 등을 불과 반세기 만에 경험하면서 충분한 숙성의 시간을 갖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이중성을 내재화하게 됐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가슴에 리본을 달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해운업계의 안전불감증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운전할 때에는 학교 앞 안전 속도조차 지키지 않는다.
그는 "장기적 과제일수록 미시적인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일상 속의 작은 실천들이 쌓여 사회를 바꾸는 것이 오래 걸리더라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망각하지말고 오랫동안 끌고 가면서 자신의 생활 속에서 철저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실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오 위원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국민성으로 보는 일각의 견해와 관련 "우리사회에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을 국민성과 연관시킬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청해진해운의 운영 행태나 정부의 대응 과정 등을 볼 때 일반 상식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면서 "우리의 국민성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문제있는 국민성이라고 볼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유 원장은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거치면서 경제적인 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됐다"며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점철돼다보니 안전은 상대적으로 미흡하게 여겨진 게 사실"이라고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국민 의식의 개혁 없이는 국가개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시스템은 선진국이지만 의식은 이를 따라잡지 못한 만큼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민들이 스스로를 점검·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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