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관료사회, 세월호 앞에 서다]
(上) 4·16 정부관료 위기대응 행적 ‘어처구니없는 하루’
09:25 안행부 장관 침몰 보고받음→10:37 경찰교육원 졸업 사진 촬영
11:18 안행·해수부 장관 헬기탑승→ 13:00 두 장관 진도 사고현장 도착
15:00 대통령 만나러 다시 서울행→ 16:00 교육부 장관 현장서 컵라면
20:00 중대본 상황실선 치킨 배달→ 22:20 정홍원 총리 무안공항 도착
24:00 분노한 유가족에 물병 맞아
세월호 대참사를 겪는 동안 행정부 수장들의 움직임을 시간대별로 복기해 보면 현재 공무원 조직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난다. 그 실상은 사건 발생일인 지난 16일 단 하루에 응축돼 있다.
오전 8시 52분, 세월호 조난 신고가 접수됐다. 재난이 발생할 경우 컨트롤타워를 맡는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유선으로 이 사실이 보고된 것은 약 33분이 지난 뒤인 9시25분. 강 장관은 이 시각에 충남 아산 경찰교육원에서 간부후보생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었다. 오전 10시 졸업식 행사가 시작됐고 10시37분 강 장관은 경찰간부들과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비슷한 시간, 주무 장관인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9시께 상황을 보고받고 10시30분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에 도착했다. 이미 세월호는 90도 이상 기울어져 승객들은 배안에 갇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두 장관은 헬기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 .
두 장관이 헬기를 타고 있었던 오전 11시18분, 세월호는 이미 선수만 남기고 모두 가라앉았다. 해경은 바다로 탈출한 승객과 배 난간에 대피한 승객들을 보트에 실어 나르는 소극적인 구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깨고 구조대를 투입하거나 잠수사를 동원한 수색은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오후 1시, 진도에 도착한 강 장관은 2시간여 그곳에 머물다 오후 3시10분께 다시 헬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로 청사에 마련된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방문 예정시간은 5시10분, 강 장관은 10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 못했다.
그는 이날 밤 세종로 중대본 상황실에 머물기로 하고 고위공무원들과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안행부는 이후 중대본의 기능을 상실한 채 세월호 사건에서 '열외'됐다.
비슷한 시각 진도, 오후 8시40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 단상에 해수부 장관이 올라 섰다. 그는 "문해남 해양정책실장을 현장 총책임자로 임명해 만반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문 실장에게 구조상황이나 잠수사 투입에 대해 물었으나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재난이나 구조활동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정보, 경험이 없었다. 흥분한 가족들은 문 실장의 멱살을 잡고 의자를 집어던졌다.
밤 10시20분, 정홍원 국무총리가 무안공항에 도착한 뒤 목포 서해해양경찰청에 들러 긴급 사고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는 "지금 현재로는 1분 1초도 주저할 시간 여유가 없고 촌음을 아껴 인명을 구조해야 한다"며 "해군과 군함을 포함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달라"고 지시했다. 사고 발생 13시간이 넘은 상황에서 내린 총동원령은 허무한 메아리가 됐다.
이에 앞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이날 오후 4시 유가족이 통곡하는 진도실내체육관 의료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은 관료집단의 행태가 기행 수준으로 악화돼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공직사회 전반을 쇄신하는 데 자극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원전비리, 탈세, 공기업 개혁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 곳곳에 관료마피아들이 썩어서 이해관계자와 유착돼 있는 것이 부패의 근본원인"이라며 "한국사회에서 법으로 정하지 않고, 처벌 규칙을 정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기 때문에 관료들의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上) 무능 보다 ‘참담한 無존재’ 대한민국 공무원
(파이낸셜뉴스 2014-04-29 22:04)
(上) 4월16일 치욕의 날
무능 보다 참담한 無존재… 군대식 관료조직, 윗사람만 찾았다
위기시 지위고하 없는 美.. 한국은 윗사람 입만 쳐다봐
부처끼리 정보도 안준 채 큰일 닥쳐야 협력관계 구축
2014년 4월 16일 하루는 대한민국 공무원 역사의 치욕이다. 사고로 끝날 일이 대참사로 바뀌는 나라. 이제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 폭탄'을 쏟아낼 것이다.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몇몇 고위 공무원이 옷을 벗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왜일까? 현장에서 무능을 드러낸 바로 그 관료들이 책상에 앉아 다시 대책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고등고시 시행으로 이 땅에 등장한 관료집단은 지난 66년 동안 한 번도 개혁다운 개혁을 맛보지 못했다. 그들이 세월호 대참사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들에겐 위기일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겐 기회다. 다시는 죄없는 어린 목숨이 무심한 어른들 때문에 죽지 않도록, 생때 같은 아이들을 앞세우는 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개혁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편집자주>
#. 미국 9.11 테러 당시 현장 총지휘책임자는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건물을 포함한 9개 블록을 관장하는 뉴욕의 소방책임자가 맡았다. 고위관료들이 급히 현장에 달려온 것은 세월호 참사와 다를 게 없었다. 미 본토가 공격받은 초유의 재난상황에서 뉴욕시장과 연방정부 관리들도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이들이 맡은 역할과 행동은 우리와 너무도 달랐다. 고위 관료들도 모두 그 지역 소방책임자의 밑에서 일했다. 뉴욕시장은 행정지원을 맡았고 재무부가 파견한 긴급비상예산관은 필요한 돈을 현장에서 곧바로 지원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구조팀의 활동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재난방재의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오락가락 행보로 사실상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제외된 뒤 공무원들이 세운 대책은 더 높은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침몰 이틀째인 지난 17일 총리실을 필두로 안행부, 해양수산부 등 11개 관계 부처가 꾸린 범부처사고대책본부는 정홍원 총리가 본부장을 맡았다.
안행부 장관이 수장에 오르면 다른 부처 소관인 해경과 해군을 지휘할 수 없다는 것. 또 같은 급에 있는 해수부, 국방부,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를 내릴 위치가 아니라는 이유다.
이 같은 발상 자체가 관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직급이나 부처의 서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조직이 지휘권을 행사해야 하고 윗사람이라도 그 지휘에 따라야 한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후 평소 재난 상황에 대해 훈련돼 있지 않은 총리가 공직서열 2위라는 이유로 현장에 상주하는 것이 관료집단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을 책임지는 목포해경은 해양경찰청장의 지휘를 받고 해경청장은 해수부, 해수부는 안행부, 안행부는 총리의 지휘를 받는다. 보고와 의전이 난무하는 동안 정작 효율적인 구조활동은 벌이지 못한다.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의 발언이 이 같은 상황을 잘 말해준다.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가 더디다고 항의하자 그는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다. 난 두 손 다 들었으니까 더 원하는 게 있으면 내 윗사람한테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연구부장은 "위기관리의 딜레마 현상이 있다.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는 군대식 관료조직이 필요하지만 현대사회는 하나의 관료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사회"라며 "우리나라처럼 관료제가 강한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는 특히 관료들의 특성이 분야별로 자기조직을 지키려는 문화가 있어 정보도 안 주려 한다. 이것을 깨려면 네트워크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위기가 닥쳐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고 사전에 해놔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中) 불사조 공직자의 ‘책상머리 지휘’, 대한민국을 침몰시키다
(파이낸셜뉴스 2014-04-30 21:48)
(中) 복원력 강한 官피아
우리나라의 권력 구조는 정치인과 관료가 이끄는 쌍두마차다. 정치인은 선거로 선출되지만 관료는 시험을 봐서 합격한 사람들이다. 정치권력은 4~5년에 한 번씩 교체되지만 관료권력은 단 한번 합격으로 정년까지 보장되고, 퇴임 이후에도 연금과 산하기관 재취업으로 종신토록 영화를 누린다.
세월호 참사에서 재난 구호를 맡은 수장들의 면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료들에게 의존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세월호 범정부대책본부의 수장들, 이들은 해난 사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데도 평시와 마찬가지의 권한을 쥐고 있었다. 결국 상명하복의 관료시스템이 재난 상황에서는 참사로 이어졌다. 대책본부를 총지휘한 정홍원 총리는 28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31년 동안 검사로 일하면서 수사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 2012년 한나라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새누리당과 인연을 맺어 총리로 발탁됐다. 책임총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대통령제하에서 우리나라 총리는 '의전 총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총리가 보여준 행정 장악력의 수준은 껍데기뿐인 '의전'에 불과했다. 부본부장인 안전행정부 장관은 23세 약관의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리실, 내무부, 지방자치단체, 행정안전부 등 37년 동안 행정관료로 살아온 사람이다. 또 해양수산부 장관은 27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과 부산에서 20년 가까이 판사생활을 하다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현재 3선 의원이다. 지난 3월 해수부 장관에 임명될 때도 전문성이 없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들은 해난 사고에 대처할 전문적 지식이 없다. 대부분 20대에 공직에 진출해 평생을 '갑'의 위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중대본부 실무진 역시 행정관료들이 독차지 했다. 중대본 차장인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은 행정부처에서만 일했고, 총괄조정관인 이재율 안행부 안전관리본부장도 지방행정 이력이 대부분이다.
행정의 수뇌부가 이처럼 20대 '청년등과'에 성공한 고시출신의 관료들이 장악했다하더라도 현장의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일했다면 세월호 참사의 양상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시를 기다리는 데 익숙한 실무자들이다. 세월호가 기울고 있을 때 '선내 진입 구조'라는 여섯 글자를 명령한 관료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관료들이 자신의 업무영역을 벗어난 것에는 신경을 안 쓰고 복지부동하고 책임회피하는 것이 만연해 있다"며 "안행부와 해수부가 연안사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다투다가 총리가 와서 범정부대책기구를 만들었지만 다시 해수부에 돌아가고 청와대가 해난 사고 컨트롤타워냐 아니냐 논란까지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에는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사소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관료집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관료집단에 진출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고시라 불리는 시험이다 보니 이 관문을 통과한 '제3의 인종', 공무원은 그들만의 끈끈한 조직을 형성한다. 그 정점이 5급 고시다. 올해 5급 공채 시험 선발 예정 인원은 430명으로 행정직 298명, 기술직 93명,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39명 등이다. 해마다 400명 내외 극소수의 인원이 5급 공채를 통해 관료사회에 진입하고 이들이 고위 공무원 그룹을 형성한다. 관료사회는 상부와 하부가 철저히 구분되는 이원체제로 구성돼 있어 9급, 7급 출신의 고위공무원단 진입은 극히 제한돼 있다. 선출되지 않은 종신 권력이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신뢰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 역시 관료들이 맡고 있다. 관료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늘 실패하는 이유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연구부장은 "고시제도의 특징은 전문성보다는 일반성, 포괄성을 갖고 있어서 고시를 통과한 사람은 어디에 갖다 놔도 일정 정도의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수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고 지적했다.
(中) 퇴직해도 ‘밥그릇 챙길 곳’ 수두룩
(파이낸셜뉴스 2014-04-30 21:50)
해피아의 전형 국토부 前차관, 30여년간 요직 거치다 퇴직
작년 해운조합 이사장직 공모, 단독후보로 일사천리 당선
세월호 참사에서 해피아로 지목된 전 국토해양부 J 차관(한국선박협회 이사장)의 퇴임 이후의 행적을 보면 이들의 밥그릇 챙기기가 얼마나 집요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J 전 차관은 1982년 행정고시 26회에 합격한 뒤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이후 해양수산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2년 직업공무원의 최고 자리인 국토부 2차관에 올랐다. 당시 국토부와 해양수산부가 통합된 상태에서 해양수산부 몫의 차관 자리였다. 그는 1년 2개월 뒤인 2013년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재취업 선택 1순위는 한국선급, 그해 3월 새 회장 선출이 임박해 있었다.
정부로부터 선박 검사를 위임받은 한국선급은 1200억원의 매출에 직원이 860명으로 해수부 퇴직 관료들이 많이 가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역대 11명의 회장 중 현직 전영기 회장 등 3명을 제외한 8명이 해피아 출신이다. 장·차관 급은 물론 국장급 간부들도 더러 회장을 했다. 관례대로라면 J 전 차관의 차례였다. 그러나 의외로 한국선급 임시총회에서 참석회원 총 86명 중 46표를 획득한 평검사원 출신 전 본부장이 당선됐다.
민간기관 진출에 실패한 J 전 차관은 5개월여 뒤 한국해운조합을 노린다. 선박 운항관리를 맡고 있는 해운조합 역시 해피아의 요람이다. 1962년 이후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다.
한국선급에 비해 임직원 규모가 3분의 1정도의 단체다. 역대 이사장은 해피아 중 주로 국장급 출신이 장악해 왔다. 해운조합은 지난해 9월 모집공고를 냈는데 J 전 차관 이외에 응모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해운조합은 같은 달 9일 모집을 마감하고 10일 심의를 거쳐 13일 대의원 등 모두 24명이 참석한 임시총회에서 일사천리로 단독후보 J 전 차관을 이사장에 선임했다.
조합 주변에서는 J 전 차관을 이사장에 앉히기 위해 해수부 직원들이 암암리에 활약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中) ‘모피아’.. 외환위기때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파이낸셜뉴스 2014-04-30 17:34)
IMF 외환위기는 가시적인 재난은 아니었지만 경제시스템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상황이었다. 외환위기 사태 이전 국가를 좌지우지했던 막강한 경제 관료집단, 모피아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개혁의 칼날이 드리워졌고 거대 조직은 갈갈이 찢어졌다.
그러나 모피아 조직은 위환위기 이후 굳건히 재건됐다. 이들의 탁월한 '복원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모피아라는 말은 옛 재무부의 영문 약자 'MOFE'에서 비롯됐다. 관치금융시대 은행의 상여금 지급조차 관료들의 동의가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은행직원들에게 크리스마스 상여금을 지급하려고 은행 담당자가 재무부 청사에 찾아와 퇴근 직전까지 기다리다 관료의 재가를 받고서야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경제관료의 양대 축은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집행되던 때 경제기획원이 관료사회를 주도했으나 이후 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 금융을 맡고 있던 재무부의 힘이 세지기 시작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의 경쟁관계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해소된다. 문민정부는 두 기관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 공룡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경제관료들의 친목모임도 재경회로 통합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줬다. 외곽 조직이 국가 행정을 좌지우지했다. 문민정부는 군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는 척결했지만 모피아는 오히려 키워준 셈이다.
1997년 외환보유고가 바닥 나고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자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모피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비등했다. 재정경제원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재정경제부, 예산청, 금융감독위로 분리됐다. 통상기능은 외교부로, 통화신용은 한국은행으로 떼어줘야 했다.
정권도 바뀌었다.그러나 위기 수습에 나선 김대중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다시 모피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당시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탄생한 신정부는 JP계인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에게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그는 모피아의 대부로 불렸다.자신이 재무부 장관시절 금융정책과장이던 이헌재씨를 금융감독위원장 자리에 앉혀 위기극복의 야전사령관 임무를 줬다. 이후 재벌 구조조정과 금융권 대수술이 집행되면서 모피아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경원 차관 출신이고, 후임 윤증현 장관은 재경원 금융정책실장 출신이다. 관료 의존적인 국가 시스템에서 위기의 원인 제공자가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관리연구부장은 "일본에도 원전문제에서 관료조직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관료제가 강한 전통을 갖고 있다"며 "관료조직의 특성이 분야별로 자기조직을 지키려는 문화가 있어 정보를 안 주려고 하고 비밀주의가 강해 개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下) 반복되는 셀프개혁.. 검은 거미줄부터 끊어라
(파이낸셜뉴스 2014-05-01 17:25)
관료-유관기관 유착… 기수서열, 학연에 지연에 ‘줄~줄’
개혁은 말로만… 공무원 100만·공기업 부채 500조 시대
#. 한국은
관피아(관료+마피아)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다. 한국의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은 '모피아(기획재정부+마피아)'다. 국민 주거의 핵심인 부동산 정책은 '건설마피아(국토교통부+마피아)', 세계에서 부모의 교육열이 가장 높은 한국의 교육정책은 '교육마피아(교육공무원+마피아)', 각종 규제는 '규제마피아(감사원.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마피아)'에 의해 좌우된다. 퇴직 이후 관련 이익단체의 요직에 앉은 고위공무원들과 현직 관료들의 유착관계를 이르는 단어가 관피아인 것이다. 규제와 인허가가 많은 부처에서 관피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하다. 세월호 참사로 또 하나의 관피아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이유다. 해수부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해운사 이익단체의 요직을 꿰차면서 만들어진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다. 또 해피아의 등장으로 관료와 이익단체의 유착관계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이 증명됐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관료조직의 무능과 무지, 부패를 한꺼번에 보여주면서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관료개혁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이어오면서 빠지지 않고 강조됐다. 1960~70년대 정부 중심의 초고속성장 과정에서 지나치게 무게가 실린 관료의 힘을 빼고 민간 영역과 국민에게 힘을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출범하는 정부마다 관료개혁을 강조해왔다. 관료조직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개혁 없이 덩치만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문책과 개각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관료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1998년부터 5년 단위로 공무원 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규모는 지난 2003년 한 차례 감소를 보인 이후 지속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첫 조사에서 한국의 공무원 총원은 88만7095명을 기록했지만 2003년 조사에서 대폭 감소가 이뤄지면서 72만8642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어 2008년에는 30%에 가까운 큰 증가세를 보이며 94만5230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다시 4.1% 늘어난 98만3869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조사의 경우 헌법기관 공무원 2만2605명까지 합할 경우 한국 공무원의 규모는 사상 최초로 100만명을 돌파하게 된다. 역대 정부에서 작은 정부를 외치며 민영화를 진행했지만 공무원 규모는 오히려 커진 것.
단순히 공무원의 숫자가 늘었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행부에 따르면 정원이 100만명을 돌파해도 전체 경제활동 인구 대비 5.7% 수준이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약 15%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공직사회가 복지나 치안 등의 정책 수요를 내세워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했지 행정의 비효율을 줄이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복지예산이 45%, 복지 대상자가 157% 증가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4.4% 느는 데 그쳤다. 소방공무원은 총 3만8587명으로 공무원 1인당 담당해야 할 국민이 1320여명에 달하는데 미국·일본 등과 비교해 과중하다. 정작 필요한 부문은 외면 받는 상황에서 관행적으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비효율성이 증가한 것.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개혁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것이 이른바 '관피아'다. 관료와 관련 이익단체의 길고 긴 유착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또 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의 지난 2012년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286곳 중 약 30%에 달하는 82곳의 기관장이 주무 부처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별로 보면 농림수산식품부(80%), 금융위원회(60%), 고용노동부(50%), 보건복지부(44%) 등이 평균치를 웃돌 정도로 심하다. 또 산하기관과 유관 협회가 많은 지식경제부에서는 퇴직한 후 기관장을 두세번까지 하는 공무원이 나올 정도다.
정부부처 출신 퇴직관료들이 전문성을 살려 산하기관을 잘 운영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적이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는 지난 2008년 290조원에서 지난 2009년 336조8000억원, 지난 2010년 397조원, 2011년 459조원, 2012년 493조4000억원으로 매년 급증했으며 지난해에는 5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해피아 전에 원전마피아 등 관피아의 문제를 막기 위해 국회가 공무원을 감독해야 하는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퇴직관료들이 유관기관에 재취업하는 것을 더 강력하게 막고 정치권에서 감시감독을 해야 관피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 관료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문제가 공직 순혈주의다. 고시 기수 서열과 출신지역, 출신 학교 등에 따라 선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수십년간 형성된 비뚤어진 순혈주의는 그동안 척결대상으로 분류됐지만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관료사회에서 전문가가 활동할 수 있는 폭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장 능력이 뛰어나도 고시에서 몇 점 더 받거나 좋은 학교 출신이 고위직으로 가는 구조에서 전문가는 활약하기 어려우며 조직 전체가 무능해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개방형 직위(고위공무원단 기준) 총 166곳(각 부처 책임운영기관장 포함) 중 충원 절차를 끝낸 곳이 139곳. 이 중 민간 인사가 자리를 차지한 직책은 31개에 불과했다. 한 사무관은 "인맥과 출신 지역 및 학교, 고시 기수가 중요한 한국 공무원 사회에서 민간 전문가는 관료들과 섞이지 못하고 있다"며 "개방형 시스템 도입 이후 들어온 민간 전문가들 중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간 사례도 허다하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고시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는 대신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격시험제도를 도입하는 방안과 순환보직을 강화해 고시순혈주의를 약화시키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옥상옥’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기대보다 우려
정부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안전처(가칭)를 신설하기로 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의문이 앞서고 있다.
국가안전처는 안전행정부의 안전 관련 조직과 소방방재청을 통합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다. 여기에 민간 재난전문가 보강 등을 통해 전문성과 실무적 능력을 보강하겠다는 복안이다. 국가안전처를 총리실 산하에 두는 이유는 지휘체계에서 혼선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먼저 국가안전처가 재난 상황이 왔을 때 관련 전문가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정홍원 국무총리가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아서 현장을 총지휘했다. 하지만 결과는 부처 간 업무조정 실패로 혼선을 보여줬다. 단순히 새로운 조직을 신설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국가안전처가 '옥상옥'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별도 조직을 만들 필요 없이 안전행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된다는 논리다.
국가안전처 구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개조 수준의 강력한 관료개혁을 천명하며 나온 대책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반복됐던 '위기-대책-위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가 발생하면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새로운 공무원을 늘리고 대거 예산을 투입하는 관행적인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중심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한다.
참여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에서 2800개 이상의 매뉴얼을 만들고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오면서 NSC가 재난 대응 기능을 상실하면서 모두 사라지게 됐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관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때 미국 뉴욕시 소방대장이 상황을 장악하고 지휘한 것처럼 우리도 재난 전문가들이 전체 지휘를 하고 관련 기관들이 군말 없이 따르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재난 전문가도 아닌 총리가 국가안전처를 총괄한다고 해서 현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 치 > 국가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개조 첫 단추 '官피아'부터 수술하라] 낙하산 세 번은 타야 "복받았다" 부러워하는 공무원들 (한국경제 2014-04-28 10:32:04) (0) | 2014.05.06 |
---|---|
[공직사회 철밥통을 깨자] <1>폐쇄적 공직 고용 구조 (서울신문 2014-05-01) (0) | 2014.05.03 |
[초유의 官崩] X피아 패거리즘부터 청산해야 <1> (아시아경제 2014.04.29 07:19) (0) | 2014.05.02 |
朴대통령, 관피아 개혁 어떻게 할까 (뉴시스 2014-04-30 18:39:52) (0) | 2014.05.02 |
"박 대통령, 관피아 척결하려면 관료가 써준 보고서 의존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5월 01일) (0) | 2014.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