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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국가개조

"박 대통령, 관피아 척결하려면 관료가 써준 보고서 의존 줄여야"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5월 01일)

"박 대통령, 관피아 척결하려면 관료가 써준 보고서 의존 줄여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개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각계 인사들은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의 출발은 보고서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고서 작성으로 평가 받는 관료들



 관료의 강점은 보고서 작성 능력이다. 박 대통령은 보고서를 중시한다. 관저에서도 보고서를 읽는 시간이 많다고 신년 기자회견 당시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 상황에 대한 판단을 관료집단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존하는 상황에선 관피아를 깰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 원장은 “수직적 리더십하에서는 리더의 심기를 안 건드리려는 게 일반적”이라며 “누군가 보고서를 모아서 전달하는 과정에선 솔직하고 정확한 내용이 보고서에 누락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를 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솔직하고, 그 분야를 잘 아느냐가 중요한데, 그렇지 않은 보고서라면 그 문서는 엉터리”라고 덧붙였다.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역시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은 그 무엇이든 공론화해서 집단지성을 가동시킨 뒤 내려져야 한다”며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집단이 만든 보고서를 보고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6월 한·미원자력협정 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핵재처리와 관련해 새로운 기술이라며 건식 재처리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실용화는커녕 연구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고 정부의 주장은 힘을 잃고 말았다. 공론화→집단지성 가동의 과정이 생략된 단독보고서의 한계였다.



 ◆장관·참모들과 직접 소통 늘려야



 이번 세월호 사고 대응과 처리 과정에서도 소통의 문제는 또 불거졌다. 박 대통령은 4월 17일 진도에 있는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왜 발견 못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학생들이 세월호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게 아니라 상당수의 단원고생이 세월호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은 “국정운영에 있어 대통령의 진정성은 믿지만 혼자서는 소용이 없다”며 “보좌진·참모들에게 받아쓰기만 시키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의원은 “(참모들과 먼저 소통하고)그 뒤에 여당과, 그 뒤에는 야당과 대화를 하면서 전체 국민의 뜻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라며 “ 지금의 청와대는 통치만 있고 정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용덕(전 한국행정연구원장) 서울대 명예교수도 “미국 대통령은 재난 시 와이셔츠 차림으로 참모·전문가와 토론한다”며 “장관이나 참모뿐 아니라 전문가가 참여해서 수직적인 협의가 아닌, 횡적인 논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참모가 언제든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든가, 대통령이 참모 방을 찾아서 기탄없이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새정치연합 유인태 의원도 “대통령은 모든 국정 현안을 참모, 청와대 수석들과 공유해야 한다”며 “그래야 참모들이 정부와 소통할 수 있고 정부도 혼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이 대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세월호 사고 때 공무원들은 물살이 세다는 이론적인 이유로 잠수를 하지 않았고, 관료들은 브리핑만 했다”며 “공무원들과 대통령이 현장에서 먼저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규섭(정치커뮤니케이션) 서울대 교수는 “국민이 재난을 겪을 때는 아픔을 같이 한다는 느낌을 줘야 리더십이 발휘되고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초반 대응이 미숙했다”고 말했다. “현장 중심의 국정운영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도 했다. 박명호(정치외교학과) 동국대 교수는 “(모든 현장에 대통령이 있을 수는 없는 만큼) 대통령이 얘기를 듣는 채널을 여러 개로 넓혀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현장에 대한 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개조 (1) 대한민국이 관료를 위한 나라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4월 24일)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론이 뜨겁다. 이번 사고로 확인된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바로잡으려면 국가 개조 수준으로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개조되지 않고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최우선적으로 메스를 대야 할 대상은 관료 시스템이다. 공무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관료들 스스로의 배를 채우기 위해 ‘마피아’로 불리며 행정 시스템을 사유화(私有化)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그 결과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고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국민의 나라인지, 아니면 관료의 나라인지부터 분명히 가리고 넘어가야 한다.


 세월호 침몰을 보자. 선박 운항과 선사 운영, 안전 관리, 부처 감독, 구조 중 어느 한 단계에서만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끔찍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특히 해양수산부와 산하 단체, 그리고 해운업계의 ‘검은 트라이앵글(삼각형)’이 문제였다.


선박 안전 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의 경우 불과 두 달 전 정기안전점검에서 세월호 선체에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현재 선체 결함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해운조합 역시 세월호에 화물이 과다 적재돼 있는지, 화물이 잘 묶여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출항 전 안전점검보고서를 통과시켰다. 해운사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선박 안전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해수부의 감독 기능은 가동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한국선급은 역대 이사장 11명 중 8명이, 해운조합은 역대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었다. 해수부 출신이 산하 공공기관과 단체 14곳 중 11곳에서 기관장·단체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해피아(해수부 마피아)’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춤까지 춰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썩어 문드러진 마피아 문화가 거의 모든 부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모피아(기획재정부 등),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교피아(교육부), 국피아(국토교통부) 등이 저마다 해당 분야에서 철밥통 지키기와 전관예우 관행을 통해 자신의 배를 채워왔다. 원전 비리와 코레일 방만 경영에도 원전마피아, 철도마피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부패의 고리는 언제든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관료들의 폐해가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시대 변화에 있다. 관료집단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1970~8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강도 높게 추진한 것은 우수한 관료집단의 공(功)이었다. 그러나 지식산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관료 중심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 관료 사회가 경쟁이 아닌 끼리끼리 해먹는 담합의 룰로 움직이면서 낙하산 인사가 관행화됐고, 유착 고리는 더욱 강고해졌다. 이제 관료 사회가 국가 발전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기본적인 궁금증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통령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움직이는 한심한 행태를 반복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미 ‘관료 마피아와의 전쟁’을 예고한 상태다. 박 대통령은 “해양수산 관료 출신들이 38년째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도 서로 봐주기 식의 비정상적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해운 비리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일 태세지만 수사만으론 효과가 제한적이다. 마피아 청산을 위해서는 기존의 관료 시스템을 확 뜯어고치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공직자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을 현행 사기업·법무법인 등에서 공직 유관 단체로 확대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실제 취업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유착 소지를 뿌리 뽑는 등 결연한 각오를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또 한 차례의 ‘정치 쇼’로 끝난다면 실망의 골을 더 깊게 할 뿐이다. “관료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개탄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확고한 의지를 갖고 ‘관(官)피아’와 전쟁에 나서는지는 국민이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것이다.

 

 

국가 개조 (2) 관료의 안중에 국민이 없다

 (중앙일보 2014년 04월 25일)

 

세월호 침몰 참사는 한국 관료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재난 대응을 책임져야 할 정부 조직이 시종 부실하고 무능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 개조 수준으로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해선 정부를 움직이는 관료들의 의식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침몰부터 실종자 수색까지 전 과정에 걸쳐 해당 부처와 관료들은 오직 대통령 얼굴만 바라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우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뒤늦은 대처와 거듭된 발표 번복이 문제로 지적됐다.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 등이 각각 사고대책본부를 만들자 이를 일원화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발족시켰으나 본부장이 총리에서 해수부 장관으로 교체되는 등 혼선이 이어졌다. 뒤이어 침몰 당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 녹취록과 안산 단원고 학생의 119 신고 내용이 공개되면서 해경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현장 공무원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목소리도 제때 반영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지난 16일 사고 직후 “수색 현장을 보고 싶다”며 CCTV 모니터 설치를 요청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가족들과 만난 다음에야 실행됐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가족들이 지난 20일 “청와대로 가겠다”며 도로에서 농성을 벌였다. 어제는 신속한 수색을 요구하며 사고대책본부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여기에 사망자 시신이 뒤바뀌는 일이 세 차례 일어났다. 이 사실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 사이에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의 면담 결과 단원고 재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참담할 따름이다. 대형 재난을 앞에 두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더 큰 문제는 고위 관료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는 점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강병규 안행부 장관은 각각 실내체육관, 대책본부에서 컵라면, 치킨을 먹었다. 안행부 국장은 팽목항 사망자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고, 해경 간부는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또 진도 실내체육관의 교육부·교육청 지원 부스에서 공무원이 실종자 가족이 지나다니는 가운데 스마트폰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장면이 목격돼 물의를 빚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비통한 심정에 공감하고 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다.

 관료들이 무분별한 언행을 일삼는 원인은 애초에 국민이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한 사람을 바라보며 승진과 퇴직 후 ‘낙하산’으로 내려갈 일자리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내부 논리에 갇혀 국민을 대신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미국 링컨 대통령)가 아니라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정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상적인 민주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관료 사회의 실력이 민간보다 뒤처지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당장 이번 사고에서도 세월호 선체 첫 진입과 선체 시신 첫 수습이 민간 잠수사들의 성과였다. 더욱이 정부는 실종자 가족들이 강력히 요구한 후에야 움직였다. 야간 수색에 집어등(集魚燈)을 활용하기 위해 오징어 채낚이 어선들을 동원한 것도, 시신 유실을 막기 위해 저인망 어선을 투입한 것도, 잠수요원들이 동시에 수중수색을 할 수 있는 바지선을 설치한 것도 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전문성과 함께 의지의 문제였다. 가족들은 "조치가 뒤늦게 이뤄지면서 그만큼 구조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관료가 현장이 아니라 책상머리 행정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다 보니 관료들이 국민에게 갑(甲) 행세를 하면서 번거로운 절차를 양산해내고 있다. 고인이 가족임을 증명하는 ‘가족관계등록부’를 한밤중에 떼오라고 하거나, 시신을 인계받으려면 두 시간 걸리는 목포까지 가서 의사·검사의 검안 작업을 거치게 했던 것도 공급자 위주의 행정절차다. 비탄에 빠진 가족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다. 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개방·공유·소통·협력의 ‘정부 3.0’ 비전은 국민을 상대로 한 말장난임이 드러났다.

 원인은 관료들이 고시 중심의 충원 방식에 따른 기수(期數)주의와 부처이기주의에 포획돼 있다는 데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분야에선 과감하게 민간 부문에 협조를 구하는 아웃소싱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최고”라는 그릇된 엘리트 의식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 다양한 경로로 관료를 충원해 경쟁을 유도하기 전에는 내부 담합의 폐쇄회로가 깨지기 힘들다.

  지금 국가 개조를 위해 시급한 것은 관료 사회의 시대착오적인 특권의식을 혁파하는 작업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공복(公僕)을 불신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가의 지속가능성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화를 청산하고 그들의 의식구조를 개혁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후유증은 사회의 기본 토대인 신뢰자본이 빠르게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원고 학생들은 “그대로 있으라”는 선내 안내방송을 믿고 있다가 바닷속에 갇히고 말았다.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잃어선 안 된다. 이제라도 신뢰를 국정 운영의 최고 가치로 두고 시스템을 개혁해 나가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 "관피아 완전히 추방하겠다"

 (중앙일보 2014년 04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검은 투피스 차림의 박 대통령은 국화꽃을 들고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걸은 뒤 묵념하고 분향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에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삼가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세월호 참사 사고와 관련, “관피아(관료 마피아)나 공직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를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심정으로 관료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실히 드러내고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이고 철저한 국민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 4월 28일, 29일자 1면>

 박 대통령은 “해운사와 선장 등의 무책임한 태도가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긴 하지만 들여다보면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고질적으로 뿌리내려온 고착화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잘못된 문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지난해 원전비리와 숭례문 복원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카르텔 구조가 밝혀진 데 이어 해운업계도 유관기관의 퇴직공직자들이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주요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부와 업계의 유착관계가 형성돼 불법성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운업계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업계와 유착관계가 형성돼 불법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는 폐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유관기관에 퇴직공직자들이 못 가도록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온 소수인맥의 독과점과 유착은 한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부처의 문제”라며 “공직사회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며 참사 발생 14일 만에 공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사태 수습이 마무리되면 대국민 사과와 국가개조 구상을 담은 별도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관피아 공화국 개조 … "부처 요동칠 만큼 경쟁 도입을"

 (중앙일보 2014년 04월 24일)

 

세월호 침몰을 계기로 대한민국 관료사회의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침몰의 1차적 책임은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과 선사의 불투명한 여객선 운항 관리에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관료들의 무사안일·보신주의가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3일 “주무 장관이 실종자·사망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현장을 찾아가서 라면을 먹게 생겼나. 총리가 현장에 가서 물을 맞았다고 차 안에 들어갔을 일인가”라며 “국민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생각하지 않고 책임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민심과 유리된 공무원들의 인식을 질타했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우리 정부 조직은 뭔가 일이 터져야 움직이는 피동적 시스템”이라며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은 이렇게는 안 된다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경종)”이라고 지적했다.


 관료 조직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 국가 발전을 주도하는 견인차였다. 최고의 엘리트 그룹이 참여한 관료사회는 국가부흥에 대한 의지와 강한 책임감이 있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당시 일개 사무관의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계획이 나라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만큼 공무원들이 헌신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했다는 얘기다.



부처 이익 챙기는 관가 문화 개혁을

 그러나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보여준 공무원들의 모습은 무사안일·수동적·책임 모면하기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원전 사고와 철도파업, 부실 저축은행 사건의 배경엔 관료들의 전관예우형 재취업을 고리로 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유착 커넥션이 있었다. 국가 개조의 초점은 한계에 도달한 관료 조직의 수술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지난 16일 제주 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세월호로부터 침몰 징후를 처음으로 연락받은 뒤 진도 VTS가 세월호로 연락하기까지는 12분이나 걸렸다. 이 같은 지체의 배경엔 제주 VTS는 해양수산부 관할인 반면 진도 VTS는 해양경찰청 관할이라 조직이 달랐기 때문이다. VTS의 관할 기관이 분리된 데는 해경과 해수부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라는 내부 증언이 나온다. 이 교수는 “요즘 관료들의 명함을 받으면 아래에 ‘정부 3.0’이라며 ‘소통’ ‘교류’와 같은 좋은 얘기는 다 써 있는데 현실에선 관계 부처 회의에 참석해 자기 부처의 이익을 챙기고 와야 능력을 인정받고 훈장을 받는 게 관가의 문화”라고 비판했다.


 전관예우형 재취업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도 쏟아진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우리 사회는 온갖 군데에 마피아가 있고 그로 인해 국민의 나라가 아닌 관료의 나라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해운조합은 지금까지 12명의 이사장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이고, 한국선급은 12명 중 8명이 관료 출신이며 선박안전기술공단의 현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난 대책 매뉴얼을 만들었다는데 이건 현장이 아닌 담당자들의 머릿속과 책상에서 만들어진 페이퍼 행정”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장관급 인사는 “장관이 현장을 찾아가선 왜 비서관을 보내 유족들에게 ‘장관 오신다’고 안내를 하느냐”며 의전 행정·전시행정의 구태를 비판했다.



철밥통 기득권, 책상머리 행정 수술

 이승건 부산대 조선해양학과 교수는 “조선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화물을 꼼꼼하게 고정시키지 않았을 때 배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 안다”며 “그런데 감독 당국이 현장에서 시간 지체를 이유로 컨테이너·차량 등을 대충 결박하고 출항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관리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당국을 질타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국가 개조를 위한 관료사회 수술의 대원칙으로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의 의식 개조를 들었다.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주도적으로 일하는 공직사회의 풍토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국가 개조는 곧 공무원의 의식 개조”라며 “이는 국민들의 심부름꾼이라는 공복 의식을 갖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종 전 수석도 “개인으론 우수한 관료들이지만 기득권에 대한 집착도 대단하다”며 “공직자들은 공복 의식을 가지고 책임지는 자세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고 보신하는 데 경도돼 있다”고 비판했다.



고시 중심 충원방식도 뜯어고쳐야


 공무원의 비효율 극복을 위해 경쟁 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전 본부장은 “부처가 요동칠 정도로 경쟁을 도입해 능동적으로 일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도 “세월호 침몰 직후 곧바로 민간 잠수사들을 대거 투입해 구조에 나섰어야 했다”며 “관료 조직이 민간보다 전문성에서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곧바로 민간 부문의 협조를 받는 아웃소싱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는 “고시 기수를 따져 수직으로 이어지는 기수주의와 부처 내부만을 바라보는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면 충원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고시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로로 관료를 충원해 내부 경쟁까지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정부 부처의 관료가 퇴직한 뒤 관련 기업에 전관예우로 재취업하는 유착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각종 납품 비리나 대형 사고로도 이어지며 부패의 고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마피아로 비유된다. 기고자 : 채병건.권호

 

 

관피아 척결 … 국가개조 그랜드 플랜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4월 24일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바로잡으려면 국가 개조 수준으로 공직사회를 비롯한 대한민국 전 분야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23일 “당장은 사고 수습이 가장 큰 임무지만, 사고 수습과 함께 국가 개조 차원의 대대적 공직사회 인적쇄신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가리는 과정에서 이뤄질 문책성 개각이 관료사회의 병폐인 ‘관피아(관료+마피아)’ 낙하산 관행을 수술하는 신호탄이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또 범정부 차원의 ‘국가 안전을 위한 국가 개조 그랜드 플랜’ 마련 작업에도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도 동조하고 나섰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서둘러 사람을 문책하고 처벌한다고 우리의 책임이 가벼워지지 않는다”며 “여야가 함께 자식 잃은 부모의 절절한 심정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가 개조는 곧 공무원 의식 개조로,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에 안주하는 폐습을 깨고 극심한 조직 이기주의를 바꾸기 위한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순 인적교체론 안 돼 … 국가개조 차원 시스템 개편을"

[중앙일보] 입력 2014년 04월 23일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한 정부의 부실 대응에 따라 문책성 개각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선 ‘내각 총사퇴론’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원한 박근혜계 중진 의원은 22일 “민심을 수습하고 관료사회의 쇄신을 위해 전면 개각이 필요하다”며 “총리를 포함해 내각이 총사퇴하고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혁신연대 소속 한 재선 의원도 “정부가 마치 조직도는 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 ‘페이퍼컴퍼니’와 같았다”며 “내각에 대한 전체적인 점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에선 내각이 총사퇴하진 않더라도 정홍원 총리,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등을 포함한 대폭 개각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많다. 그동안 교체 대상으로 거론됐던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검경의 수사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야 하겠지만 6월 지방선거 이전에라도 개각을 단행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다만 개각을 단행할 경우 단순한 인적 교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직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국가 개조 차원의 시스템 개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여야 중진 의원들이 앞장서 이런 의견을 내놓고 있다. 6선의 이인제 의원은 “사회 전반에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며 “공직사회, 관료제부터 개혁해야 사회 전반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개각을 쇄신의 신호로 삼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 가치로 삼는 국가상을 그려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5선의 정의화 의원은 “관료사회가 갈수록 철밥통이 되고 부처에서 퇴직해 산하기관으로 가는 행태가 반복되면 선량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보는 사회가 된다”며 “관료사회가 목민관(牧民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만드는 개각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부영 고문은 “장관 몇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며 “사고나 위기상황별로 매뉴얼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미리 준비해 놓는 등의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과 함께 공직사회가 세금만 축낸다는 얘기를 듣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도 “부실 발생의 원인인 잘못된 관행과 무책임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며 “정부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개각이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거듭 “국민이 공무원을 불신하고 책임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한다면 (불신받는 공무원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주변에선 박 대통령이 개각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관피아 개혁, 관료에게 맡기면 무력화된다"

 (중앙일보  2014.04.30 15:57)

대통령이 나서 인사시스템 고쳐야
● 행정고시 대신 수시 공개채용
● 기업처럼 직무 세분화해 선발
● 성과급 격차 늘려 경쟁 도입을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동시에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고질적 병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형 참사를 초래한 부실한 안전점검과 무능한 사고 대응의 배후에는 관피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관료사회 개혁은 말뿐이었고 근본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개혁 대상인 관료에게 개혁을 맡겨 온 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박경원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료들은 개혁에 내성이 강하고 웬만한 개혁을 쉽게 무력화한다”며 “관피아 구조를 깨려면 대통령이 직접 공무원 채용·평가·재취업까지 인사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역대 정부가 공무원 인사 시스템을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1999년 민간 경력자 등을 수시로 채용하는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부처 내부 공무원을 개방직에 채용한 비율이 2011년 54.4%에서 2013년 59%로 오히려 늘었다. 1~3급 고위공무원을 정부 공통으로 활용하자는 고위공무원단(고공단)제도는 보직순환 사례가 적어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일반화된 다면평가제는 98년 시작했지만 “노조에 휘둘린다”는 공직사회 내부 반발에 밀려 2010년 사실상 폐지됐다.

 전문가들은 행정고시 제도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법고시는 2009년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2017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외무고시도 지난해 국립외교원을 통한 선발로 바뀌었지만 행정고시는 5급 공채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필요한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직무별로 공무원을 수시로 공개 채용한다.

 싱가포르는 모든 공무원을 개방형으로 뽑아 고위공무원 승진 예정자는 민간 기업 간부로 일정 기간 일하도록 한다. 황성원 군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고시로 뽑는 일본에서도 하급 공무원으로 임용해 실무를 밑바닥부터 배우게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업에서 마케팅·인사·생산 직군을 따로 뽑듯 공무원도 직무를 세분화해 선발하자”고 제안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관료의 부족한 문제 해결 역량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공무원 선발 때 다층면접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공직자 윤리의식과 서비스 정신을 갖췄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계급제로 운영되는 현행 공무원 제도를 성과·능력에 따라 보수·직위를 결정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 교수는 “과장·국장·실장이란 계급 중심으로 평가하지 말고 업무 특성과 난이도에 따라 직무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보수체계도 무사안일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1~4급 이상은 성과연봉제, 5급 이하 공무원은 호봉제를 적용한다. 황 교수는 “성과가 가장 높은 S등급(상위 20%)과 가장 낮은 C등급(하위 10%)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 다”며 “S등급의 성과 상여금 지급액을 대폭 높이고 C등급 비율을 늘려 보수 격차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