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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어라! 몸 좋네’ 이 말 한마디면 끝 (한겨레 2013.07.06 16:45)

‘어라! 몸 좋네’ 이 말 한마디면 끝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감옥에서 만든 식스팩을 드러내며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몸]
나의 몸 <4> 전 국회의원 정봉주의 식스팩

▶ 식스팩은 근육 단련이라기보단 살과의 싸움에 가깝습니다. 근육을 만들기에 앞서 뱃살, 내장지방을 없애야 하니까요. 우리 몸의 배는 겉엔 뱃살, 안엔 근육과 내장, 척추뼈가 있습니다. 배근육(복근)은 아래위로 뻗은 복직근과 좌우로 나뉜 나눔힘줄로 구성됩니다. 세 갈래, 혹은 네 갈래로 나뉜 나눔힘줄이 피부 위로 드러나면 바로 왕(王)자가 뚜렷한 식스팩이 됩니다. 감옥에서 1년간 운동에 열중한 정봉주 전 의원에게 식스팩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사람이 두 발로 걸으면서 배는 우리 몸 중에서 가장 움직임이 적은 부위 중의 하나가 됐다. 걷거나 뛸 때 운동할 때에도 다른 부위에 비해 배는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긴 현대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뱃살이 쌓이기 쉽다. 뱃살은 특별한 신경을 써야만 없앨 수 있는 부위가 됐다.

요즈음엔 단순히 뱃살을 빼는 데 그치지 않고 복근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그냥 복근이 아니라 배에 왕(王) 자가 선명하게 보이고 초콜릿처럼 갈라진 ‘식스팩’이다. 식스팩 만들기에 한번이라도 도전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린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운동만큼 식이요법이 중요하다. 탄수화물, 지방의 섭취를 최대한 줄여야만 온몸에 쌓이는 체지방이 줄어들고 신체부위 중에서도 덜 움직이는 배에 쌓이는 살이 적어진다. 배의 운동량보다 더 많은 체지방이 쌓이면 아무리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들 식스팩은 요원하다.

식스팩은 성형수술로 만드는 유일한 근육이기도 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식스팩 수술’을 입력하면 수십개의 병원과 광고글이 손짓한다. 엄밀히 말하면 식스팩 수술은 근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이다. 운동을 하는 남자들은 어느 정도 복근이 있기 때문에 복부를 덮고 있는 지방층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기만 해도 된다. 복근이 뚜렷하지 않으면 식스팩의 윤곽대로 지방을 제거한다. 하지만 쉽게 만드는 몸매는 금세 무너지는 법이다. 운동과 식이요법이 생활습관으로 자리잡지 못하면 식스팩은 유지되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 잊기 위해 맨손으로 운동

지난 2일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로 정봉주(53) 전 의원을 찾아갔다. 그는 감옥에 수감된 일년 동안 식스팩을 만들었고, 출소 여섯달이 지난 지금도 식스팩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3월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는 ‘봉봉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을 농민회 회원들과 함께 만들었고, 이를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유통창구로 키울 계획이다.

풍호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실개천이 흐르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어떻게 봉화에 자리잡았는지’ 묻자 정 전 의원은 “제가 봉화 정씨입니다”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피선거권이 십년간 박탈된 현실에서 여의도에 기웃거리거나 유학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파고들고 싶었다. 봉화에 연고는 없지만 뿌리를 찾아서 왔고 풍광이 마음에 들어 풍호리에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사진촬영부터 시작했다. 농민들이 오가는 풍호리 마을회관에서 웃통을 벗고 식스팩을 촬영하는데 살짝 어색했다.

“지금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는 어색해하면서도 “이왕 찍는 거 화끈하게 해야지”라며 자세를 취했다.

대법원 판결 나기 한달 전
트레이너에게 맨손 운동 배워
기구도 단백질도 없는 감옥서
하루 두시간 이상 운동하자
똥배 없어지고 식스팩 생겼다

“상처받으면 대개 골방에
틀어박혀 좌절을 하잖아요
골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싸우면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어요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돼요”

정 전 의원과는 지난해 12월29일 서울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출소한 그는 “감옥에서 나와 정식으로 하는 인터뷰는 윤 기자랑이 처음이야” 하며 인터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감옥에서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한참 운동한 얘기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가 운동에 대해 얼마만큼 진지한지 몰랐다. 그런데 올해 4월 정 전 의원은 느닷없이 헬스책을 발간했다.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 서점에 가서 정 전 의원의 몸뚱어리가 드러난 책을 별생각 없이 펼쳤다. 그는 진지함을 넘어 비장했다.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생각해보면 너무 억울한 감옥생활이었다. 한평도 안 되는 골방에 갇혀 보니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감에 빠졌다. 나는 이 공포를 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골방에서 맨손으로 운동했다.”

정 전 의원은 ‘골방에서 맨손으로 몸을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감옥에선 운동기구를 사용할 수 없고,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식이요법도 불가능하다.

“제가 감옥에서 몸을 만들었다니까 운동기구를 제공받으며 특혜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운동기구는커녕 세로 2m, 가로 1.4m의 독방에서 일년을 보냈습니다. 맨손으로 운동할 수밖에 없었죠. 단백질보충제는커녕 몸을 관리하기 위한 보조식품도 없었습니다. 운동량에 비해 제공되는 음식이 빈약하다 보니 늘 배가 고팠죠.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관리는 홍성교도소 독방에서 사치죠.”

골방에서 몸을 만든 것이 상징성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싸우라는 것. “사람들이 대개 세상에서 상처받으면 골방에 틀어박혀 좌절하잖아요. 골방에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골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면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어요.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죠. 저도 운동을 하면서 한계상황에 도달했을 때 삶의 의지를 다졌어요. 인간의 뇌는 정말 신기해요. 팔굽혀펴기를 하다가도 가장 한계가 올 때 뇌는 온갖 기억을 꺼내놓고 다시 의지를 다지게 해요. 사람이 죽을 때도 짧은 순간에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고 하잖아요. 정말 신기하게도 운동하다가 극한에 몰리면 ‘정봉주, 이대로 안 죽는다. 어디 두고 보자’라는 생각이 들며 의지를 다지게 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운동은 몸의 자극이 아니라 뇌의 자극이에요.”

뒤돌아선 채로 팔과 등근육을 선보이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

 

감옥에선 수감자들끼리 운동 정보 교환

정봉주 전 의원은 어떻게 감옥 안에서 식스팩을 만들었을까. 2011년 11월 그는 전문 트레이너를 찾아 감옥에 갈지 모르니,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다. 대법원에서 선거법 판결이 나기 한달 전이었지만, 감옥에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2~3주 동안 집중적으로 맨손 운동을 배웠고 감옥에 들어가서는 수감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감옥 안에선 하루에 두시간 이상을 운동에 투자했다. 독방에서 매일 1시간30분 집중적으로 운동을 했고, 하루에 한번 50분 주어지는 외출시간에도 운동을 했다.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생각보다 많아요. 팔굽혀펴기나 앉았다 일어나기도 어떻게 자세를 잡느냐에 따라 방법이 여러가지죠. 복근운동으로도 누워서 상체 들기, 몸 접기, 자전거타기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철봉이나 유산소운동을 주로 했고요. 수감자들끼리 운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해요. 등이나 어깨운동을 할 때 페트병을 이용한 것은 감옥 안에서 배운 운동이죠.”

그는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공부와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던 ‘축구선수’였고, 고등학생 때 꾸준히 쿵후, 권투 등의 격투기를 익혔다. 학원사업,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조기축구팀 선수로 활약했고 꾸준히 배드민턴을 쳤다. 그런 그에게도 뱃살은 피할 수 없었다.

“운동은 꾸준히 했지만, 뱃살은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점점 아저씨 몸매가 돼서 달라붙는 와이셔츠를 입으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통스러웠죠. 나꼼수(인터넷 팟캐스트)를 하면서도 계속 몸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는데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의 헬스책에는 배가 나오고 팔다리는 가는 전형적인 50대 아저씨 몸매의 사진이 실려 있다. 감옥에 수감되기 전 그의 모습이다. 그는 운동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고 했다.

“식스팩이 사실 뱃살 아래 있는 복근이에요. 누구나 복근이 있잖아요. 복근 위를 덮는 뱃살을 없애고 근육을 조금 키우면 식스팩이 나오는 거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어요. 운동도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고, 뱃살 아래 있던 식스팩을 드러내게 하는 거죠.”

 

스트레스 받으면 식스팩이 풀린다

정봉주 전 의원은 욕망에 솔직한 편이었다. “그래도 결국 자랑하려고 몸을 만든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런 재미가 없으면 몸을 만들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는 정치를 하기 전 영어학원인 외대어학원을 운영하던 시절의 기억을 꺼냈다.

“한번은 제가 예체능 계열 학생의 학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 학부모는 자녀가 영어를 너무 싫어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몇 달만 지나면 너무 영어만 공부해서 걱정일 겁니다’라고 했더니 학부모가 피식 웃더라구요. 그러고서 제가 그 학생에게 석달간 발음만 잡아줬어요. 다른 건 하나도 안 가르치고 각종 영어발음만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을 시켰죠. 저는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익히는 ‘습’(習)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발음교정만 해줬냐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종종 책을 읽어보라고 하잖아요. 두세달에 한번 정도씩은 기회가 오죠. 그때 내가 가르친 친구가 읽으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들 깜짝 놀라요. ‘어라! 발음 쩌네’ 이럴 때 애는 뽕을 맞는 거죠.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이 아인 계속 영어책만 읽고, 영어공부만 해요.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내 몸을 과시하고, 인정받는 경험이 없으면 몸 못 만들어요. 요즘엔 겨울에도 겉에만 두툼한 옷을 입고 안에는 반팔티셔츠를 입잖아요. 실내에서 외투를 벗을 때 ‘어라! 몸 좋네’, 이 말 한마디면 끝난 거예요.”

‘정봉주에게 식스팩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기 삶의 기준”이라고 답했다.

“식스팩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근육과는 차원이 달라요. 만들기도 어렵지만 없어지기 쉬운 것이 식스팩이에요. 생활의 긴장을 늦추면 식스팩은 금방 뱃살로 덮입니다. 최근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지지한 것이 불법선거운동이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되고서, 일주일간 운동을 못했어요. 그래서 식스팩이 약간 풀렸죠. 지금 식스팩을 유지할 것이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설마 또 감옥에 들어갈까 싶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 스트레스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식스팩을 유지할 겁니다. 이 스트레스와 지금 상황에 싸우기 위해 운동을 하겠단 의미예요. 그래서 식스팩이 내 삶의 기준이에요.”

현대사회에서는 조화될 수 없는 욕망들이 뒤섞인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주변엔 먹을거리들이 넘친다. 고기, 기름이 듬뿍 들어간 고열량 음식들은 그럴싸한 이미지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텔레비전에는 8등신의 미남미녀만 출연한다. 먹고 싶은 욕망, 몸을 만들고 싶은 욕망,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욕망이 서로 엉킨다. 사람들은 더는 건강을 위해 음식을 먹지 않는다. 건강보다 보기 좋은 몸이 중요하고, 다이어트에 금기인 음식들은 오히려 금기이기에 매력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식스팩은 이런 굴절된 욕망들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식스팩을 만들려고 굶으면서 운동하다 탈이 나기도 하고, 성형수술로 식스팩을 만들기도 한다. 식스팩을 유지하겠다는 정봉주 전 의원은 몸이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욕심이 과욕일 때 문제가 돼요. 욕망을 어느 선에서 절제해야죠. 그 기준은 몸이 아닐까 생각해요. 보기 좋은 몸보다, 진짜 좋은 몸이 중요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