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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클릭! 취재 인사이드] ‘비련(悲戀) 드라마’ 뺨치는 유명 女배우의 인생 유전 (조선일보 2013.06.07 03:02)

[클릭! 취재 인사이드] ‘비련(悲戀) 드라마’ 뺨치는 유명 女배우의 인생 유전

 

인생을 드라마에 비유합니다. 줄거리는 다양하되 통속적이며 때론 비참하고 동시에 교훈적입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여(女)배우가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시청률 28%(닐슨코리아·전국기준)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막장 시어머니인 배우 박원숙(64)씨입니다.

그녀의 직접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인생은 ‘비련의 드라마’입니다. 50부작인 드라마는 현재 44부까지 방영됐습니다. 그의 연기 인생도 대략 후반부에 들어섰습니다. 그가 맡은 악역은 섬뜩하지만, 덮어놓고 미워할 수 없는 어떤 연민을 동반합니다. 지난달 15일 가졌던 짧은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자주 눈시울을 붉히고, 울렁이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습니다.

당시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개인사의 곡절인만큼, 아마 ‘선데이서울’ 류(類)의 통속성이 포함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과 이별의 진부함은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가 되기 위해 감당해야만 하는 천형(天刑)일지 모릅니다. 시인 박인환도 “인생은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라 읊었듯 말입니다.


	MBC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악덕 시어머니를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 박원숙. 이 따뜻한 미소에서 막장 시어머니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박원숙은“아들역을 맡은 배우가 누구든 정이 간다”고 했다.
MBC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악덕 시어머니를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 박원숙. 이 따뜻한 미소에서 막장 시어머니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박원숙은“아들역을 맡은 배우가 누구든 정이 간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사랑과 결혼

1969년, 그녀는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서둘러 결혼합니다. 예, 맞습니다. ‘속도 위반’ 때문이었습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박원숙은 YMCA 극단 ‘탈’에서 동국대 경영학과 재학생이었던 첫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사건은 두어달 뒤 벌어졌습니다. 남편이 될 그 청년과 함께 연극 소품을 사러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들렀다가 청계천도 걷고, 다방에서 커피도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다 그만 12시 ‘통금(通禁)’시간을 넘겼다는 군요.

버스는 끊기고 갈 데는 없는, 정말 흔한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출된 겁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하룻밤을 보냈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박원숙은 학교로 향하던 버스에서 실신합니다. 병원 진단 결과, 임신 3개월. 당연히 집안에선 난리가 났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가족은 결국 결혼을 허락합니다. 단순했던 드라마 플롯은 점차 복잡다단한 구조로 전개됩니다. 그 해 10월의 일입니다.

남편은 결혼 직후 뒤늦게 입대(入隊)했고, 무거운 몸으로 시집 살이를 하면서도 박원숙은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임신 7개월 차, 박원숙은 임신복 대신 펑퍼짐한 한복을 입고 서울 정동에 있던 MBC에 탤런트 공채 1기 원서를 내러 갑니다. 그녀는 “좋게 말하면 연기에 대한 집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철딱서니가 없었다”고 고백하더군요.

함께 YMCA에서 연극을 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연극배우 추송웅씨가 “연기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계속 용기를 불어넣어줬다고도 합니다. 배가 불룩한 산모가 탤런트를 하겠다며 찾아왔으니, 원서접수처에서도 깜짝 놀랐는지 “임신부는 지원할 수 없다”고 딱지를 놨답니다. 합격하면 곧바로 방송국에서 활동을 해야하는데, 산모에겐 당연히 무리였겠죠. 박원숙은 실망하지도 않았답니다. “애 낳고 다시 오면 되지”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이듬해 탤런트 2기에 합격합니다.

1970년 MBC 공개홀에서 열린 오디션 주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형부에게 언니의 득남 소식을 전하는 처제 역할과 찻값 안내고 가는 손님을 잡아 따지는 다방 마담 역할이었죠. 이 중 하나를 택해 연기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녀가 뭘 선택했을까요? 박원숙은 당시를 회상하며 “연기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며 ‘셀프 칭찬’을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다방 마담이었습니다. 즉흥 연기였는데, 연극에서의 경험을 십분 살려 거의 프로에 가까운(?) 연기를 뽐냈다고 하네요. 연극할 때 맡았던 산적, 작부 역할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아, 이보세요 손님! 하, 참이리 와보세요. 돈 안내셨잖아요?” 김자옥, 한혜숙 등 입사동기 중 애엄마는 박원숙이 유일합니다. 애 딸린 유부녀 신인 탤런트, 배우 박원숙의 파란만장(波瀾萬丈)이 시작된 겁니다.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열연하고 있는 박원숙. 그녀는 이 회에서도 '내가 살면서 별의 별 도둑을 다 겪었지만 씨도둑은 태어나 처음이다', '인간 쓰레기' 등의 언사를 날리며 독기를 뿜어냈다.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열연하고 있는 박원숙. 그녀는 이 회에서도 "내가 살면서 별의 별 도둑을 다 겪었지만 씨도둑은 태어나 처음이다", "인간 쓰레기" 등의 언사를 날리며 독기를 뿜어냈다. /MBC '백년의 유산' 동영상 캡처

◇이별과 아픔, 그리고 현재

드라마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3년간의 첫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끝이 납니다. 남편은 1976년 제대 이후 정력적으로 사업에 뛰어듭니다. 액세서리, 운동복, 스테인드글라스 제조업 등 남편이 벌였던 숱한 사업은 모두 망했다고 합니다. 사업 빚보다 더 큰 독초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었습니다. 1981년 둘은 갈라섭니다. 아들 양육권은 남편이 가져갔고요.

그러다 아이 양육 문제로 2년 뒤 남편과 재결합했지만,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혼인신고한 지 5개월만에 다시 이혼도장을 찍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도 지인의 소개로 만난 두 번째 남편과의 재혼과 남편의 사업실패, 빚, 이혼 등 통속 드라마의 전형이 펼쳐집니다.

박원숙은 인터뷰 당시 전(前) 남편들과의 이야기를 물을 때면 치를 떨었습니다. “아 왜 자꾸 옛날 얘기 꺼내게 해!”라며 화를 내기도 했죠. “옛 기억을 들쑤시면 온갖 잡동사니가 다 떠오른다”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요.


	박원숙이 교통사고로 숨진 아들을 떠나보내며 오열하고 있다.
박원숙이 교통사고로 숨진 아들을 떠나보내며 오열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게 바로 요절한 외아들입니다. 아들이 응급실로 실려왔던 이화여대 목동 부속병원을 지날 때면 아직도 고개를 돌린다고 할 정도로, 상처는 여전합니다. 기사에서도 썼듯이 전도유망한 PD였던 아들은 서른 넷의 나이에 언덕에서 미끄러진 생수 트럭에 치여 숨졌습니다. 아들이 비명횡사하면서 그녀의 비극은 정점을 찍습니다.

아들이 남긴 딸은 지금 중학교 3학년쯤 됐다고 합니다. 혹시나 연락이 올까 싶어 그녀는 전화번호도 안바꾸고 있습니다. 박원숙의 휴대전화 번호는 011로 시작합니다. 그녀는 손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빛을 반짝이며 소녀처럼 들떴습니다. “작년 이맘때 손녀한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고 했습니다. “할머니 잘 계시지요?”라는 단문에 감격해하다 스마트폰 조작 미숙으로 카톡방을 나가버렸다는군요.

이 사소한 에피소드마저 드라마의 비극성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혹시나 손녀와, 재혼한 며느리에게 누가 될까 쉽사리 연락도 못한다는군요. 그녀가 내리누르듯 내뱉은 “나 하나만 보고 싶은거 참으면 돼”라던 독백이 귓가에 오래 남습니다.

박원숙씨의 87세 노모(老母)는 나이 먹어서 혼자인 딸을 지금도 안타까워 한답니다. 박원숙이 “엄마는 결혼지상주의자”라고까지 하더군요. 그래도 앞으로 결혼 같은 단어는 입에도 안 올리겠답니다. 기자에게도 “결혼은 했느냐”고 묻더니, “좋을 땐 다 좋아. 사이가 나쁠 때에도 (사이가) 좋도록 노력하세요”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줬습니다.

“누구나 열차를 타고 종착역을 향해 가잖아요. 내 아들은 조금 일찍 침대칸으로 갔을 뿐이야.” 그녀는 강했습니다. 울먹이면서도 끝내 울지는 않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소한 상처를 남기며 돌아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엄마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요, 어느날 남편이 느닷없이 시금치전을 해달라고 하더래. 아내는 귀찮으니까 그냥 무시했는데, 그 다음날 남편이 죽은거야. 그래서 그 아내는 지금도 시금치를 못먹는대요.” 드라마든 인생이든 질곡(桎梏)을 경험한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메시지가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 건 아닙니다. 그녀의 인생 곡선은 다시 반등을 엿보고 있습니다. 이번 ‘백년의 유산’ 시청률 흥행이 그 반전(反轉)의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막장 시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이 밉지 않고 가슴 절절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