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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파워 10人' 릴레이 탐구]남재준 국정원장 (조선일보 2013/05/25 07:50)

['파워 10人' 릴레이 탐구]]남재준 국정원장

-지고 있을 땐 지고 있다고 해라
댓글사건 압수수색 담담히 수용 '지난 정권 문제 털겠다'는 의지
-직원들에 "화랑 관창처럼 일하라"
朴대통령과는 비정기 독대, 2년후배 김장수 실장과도 협조
-"융통성·소통 부족하다" 評도
與 "北과 물밑대화될지 걱정"… 北 전문가들과 공부모임 가져

 

① 남재준 국정원장

박근혜 정부 출범이 100일을 앞두고 있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도 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2013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 정부 인사 10명을 선정해 ‘파워 인물 탐구’ 코너를 신설한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소개한다. 다만 게재 순서는 실제 파워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남재준(南在俊·69)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 관저에서 간부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한 간부가 양주 한 병을 들고 갔다. 회식이 끝나자 그 간부는 양주를 다시 들고 나왔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개인적으로 받는 건 곤란하다는 게 원장님 방침이더군요."

◇"2급 이하는 가능한 한 안고 가겠다"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검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압수 수색을 요청했을 때 남 원장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얼마 후 그는 간부들에게 말했다. "전투에서 지고 있으면 국민에게 '지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거짓말로 '이기고 있다'고 하면 그 순간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한 간부는 이를 두고 "지난 정부 때의 문제를 투명하게 다 털고, 국정원을 일신하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3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軍때 별명 '생도 3학년' '남순신' -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3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남 원장은 부임 후‘국가와 조직에 충실한 사람과는 끝까지 같이 가겠다”고 말해왔다. /전기병 기자
3월 22일 취임한 그는 '인사 쇄신'과 '조직 개혁'의 두 태스크포스(TF)부터 만들었다. 취임 25일째인 4월 15일, 그는 1급 간부의 90%를 교체했다.

그는 "1급 간부들은 지난 3~4년간 부서장을 맡은 사람들이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와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그 이하는 다 안고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급 이하 인사는 상당 부분 부서장 자율에 맡겼다. "중요한 일이면 계급과 상관없이 직접 보고하라"며 "전화를 해도 좋고, 나를 찾아와도 좋다"고 했다. 그는 간부들에게 "역대 왕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기억 못 한다. 하지만 15세의 화랑 관창(官昌)은 다들 안다"면서 "계급이나 직책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관제 도입 계획

남 원장은 국정원에 전문관제(專門官制)를 도입할 계획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직급정년이 경찰이나 군인보다 빨리 돌아오는 것이 직원들의 오랜 불만이었다"며 "남 원장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전문성 있는 사람이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 원장은 지난 4월 중순 1·2·3차장과 기조실장 인선을 할 때 몇몇 후보를 청와대에 추천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고른 사람들을 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의지가 강하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 원장이 대통령에게 주례나 정기 보고는 아니더라도, 보고할 일이 있을 때 청와대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비정기 보고를 하는 셈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할 일이 있었는데 남 원장이 '이 건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며 양보한 일이 있다"며 "비교적 협조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남 원장의 육사 2년 후배다.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후 직원들에 대한 당부

여권에서는 "남 원장의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고들 말한다. 남 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국방안보특보단' 일원으로 박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경선에서 지고 난 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남 원장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요즘엔 근무시간이 끝나면 서울 내곡동의 관저에서 산책하거나 책을 읽는다. 가끔은 북한 전문가들과 '공부 모임'을 갖는다. 일부 여권 인사는 "남 원장은 융통성이 부족하다. 북한과 물밑 대화도 해야 할 국정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라고 했다. 남북 관계를 통일부 중심으로 풀어가려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 탓도 있지만 실제로 국정원이 올해 들어 남북 관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남 원장은 외부 인사들과 약속 잡는 일도 드물어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도 듣는다.

◇마셜 장군 연구한 딸깍발이

남 원장은 군인 시절 휴전선에 안 가본 곳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비(非)하나회인 그는 하나회 출신들에게 밀려 동기(육사 25기)들보다 승진이 워낙 늦었고, 줄곧 전방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의 별명은 '생도 3학년'이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도 '직각 보행'을 했고, 부하들과 회식하면 마무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그는 임지마다 이순신 장군 영정을 걸어뒀고, 지금 관저에도 이순신 장군 영정이 있다. 그래서 '남순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남 원장은 미국의 군인 겸 정치가 조지 마셜(Marshall)의 리더십을 연구하며 그 세월을 견뎠다. 2차 세계대전 중 참모총장을 지낸 마셜 장군은 전후 유럽 부흥 계획인 '마셜 플랜'을 제창한 공로로 195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남 원장은 "마셜 장군은 10년간이나 중령으로 복무했다. 그 기간 각 분야에서 실무를 익혀 나중에 승승장구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1993년 하나회를 척결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잇따라 승진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엔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하지만 인사 청탁을 거절한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청와대 내 386 참모들과 갈등이 시작되면서 2005년 초 육군참모총장에서 물러났다.

 

 

나서지 않는 '비서型', 새벽마다 "오늘도 무사히…" 기도

 (조선일보 2013.06.01 03:37)

['파워 10人' 릴레이 탐구] ②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 人事에 관한 권한은 막강
줄대려 안간힘 쓰는 사람 많아… "탈락한 이들 모두 나 욕할 것"

- 청와대 생활 석달만에 5㎏ 빠져
귓속말 보고, 별명은 복무기강… 대통령에 苦言 한달 한번은 해

- "정무적 판단 부족" 지적 나와
'代讀사과' '3단계謝過'에 우려… "공무원 장악엔 적임자" 평가

 

허태열(許泰烈·68) 청와대 비서실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택시기사처럼 산다"고 말한다. 택시기사가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러듯 "오늘도 제발 무사히…"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새벽5시 기상… 석 달 만에 5㎏빠져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신문부터 훑어본다. 정부 출범 초반부터 연일 인사(人事) 사고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이어 러닝머신에서 30분 정도 운동한 뒤 오전 7시쯤 비서동인 위민관으로 출근한다. 이정현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매일 아침 갖던 현안대책회의는 최근에 중단했다. 하지만 비서실장 주재 수석회의(수·금요일), 인사위원회 등 늘상 회의의 연속이다. '소통 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저녁 식사는 대개 외부 인사들과 한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대통령 취임 후 몸무게가 5㎏가량 줄었다고 한다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 대통령 취임 후 몸무게가 5㎏가량 줄었다고 한다. /오종찬 기자

 

허 실장은 임명되자마자 부인(61)과 함께 청와대 바로 옆 비서실장 공관으로 들어갔다. 석 달 남짓 지난 지금, 몸무게는 5㎏ 정도 빠졌다. 한동안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먹었다.

허 실장은 "언제 무슨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늘 긴장해야 했다"고 했다. 지난 3월 한 여권 인사가 몇몇 인사 실패의 원인을 묻자, 허 실장은 "그건 국가기밀"이라고 받아넘겼다.

"비서는 비서일 뿐"…나서지 않아

청와대 관계자는 "허 실장은 '비서실장이라도 비서는 비서일 뿐'이란 복무 방침을 지켜려 한다"며 "웬만한 일에도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보안 중시' 원칙에도 충실하다. 행사장이나 이동 중에 수시로 박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보고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낮아 바로 옆에서도 안 들릴 정도라고 한다. 허 실장이 사석에서 "청와대에 온 뒤로 대통령한테 지적도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허 실장도 이런 세평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주변에 "대통령의 고민이 더 깊은데 매번 싫은 소리를 할 순 없지만,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쓴소리도 하려고 한다. 내 나이가 있는데 다음 자리 욕심을 낼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안 한다고 해도 이상하고, 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고 한다.


	朴대통령 “개성공단 최후의 7인 안위에 조마조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성공단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어느 순간 모든 합의가 물거품이 되는 것을 우리가 봤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7명의 국민 안위를 위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나. 저는 더 그랬다”고 말했다.
朴대통령 “개성공단 최후의 7인 안위에 조마조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성공단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어느 순간 모든 합의가 물거품이 되는 것을 우리가 봤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7명의 국민 안위를 위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나. 저는 더 그랬다”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인사에 관한 한 그의 권한은 막강하다.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지만 공기업과 금융기관장 등 주요 인사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수천개 중 하나를 노리는 사람들은 허 실장에게 줄을 대려고 부심하고 있다. 최근 몇몇 인사를 두고 "허 실장이 알게 모르게 특정 인맥을 챙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허 실장은 "탈락한 사람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두 나를 욕할 것 아니냐. 감수한다"고 했다.

행정 실무에 강점… "정무 판단력 부족" 지적

청와대 내에서 허 실장은 "관료 장악에 적임자"란 말을 듣는다. 그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박정희 청와대' 5년을 포함해 25년간 내무부 관료 생활을 했고 부천시장, 충북도지사직을 거쳤다. 그 후 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특히 행정에 밝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수석비서관 회의나 부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 보면 공무원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고 어느 부분을 슬쩍 넘기려 하는지 꿰뚫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월 허 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기 전에 청와대 수석들이 야당 의원 역할을 맡아 '리허설'을 한 적 있다"며 "처음엔 '민망하다'면서 삼가던 수석들이 점점 고약한 질문을 하는데도 허 실장이 잘 대답하더라. 실제 국회에 출석해서도 무리 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역시 경력을 무시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요즘 허 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복무기강'이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 이후 "어떤 자리든 절대 2차 술자리는 갖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고 한다. 그가 나타나자 청와대 직원들이 "'복무기강' 떴다"고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허 실장이 '비서' 기능에만 충실하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인사 파동 때 허 실장이 김행 대변인을 내세워 '대독 사과'를 했던 것, 윤 전 대변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남기 전 홍보수석→허 실장→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단계 사과'를 했던 것에 대해선 "정무적 판단 능력의 부족"이란 비판이 여권에서도 나왔다. 한 여권 중진 의원은 "허 실장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다고 해도 어려운 얘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