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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해적

소말리아 해적 (1)

소말리아 해적이야기 (1)

2006년에도 말라카 해협의 해적 이야기를 다룬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또 해적 이야기다. ‘카리브해의 해적’도 아니고 이번에는 ‘소말리아의 해적’이다. 최근 몇 년간 소말리아 인근에서 해적이 급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어선이나 화물선의 선원들이 여러 차례 붙잡혀 인질이 되었다. 급기야는 T-72전차를 실은 우크라이나 선적 화물선이 납치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도 큰 축에 속하는 초대형 유조선이 납치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결코 작은 수준의 피해자라 할 수 없는 우리나라도 군함을 파견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동네가 뭐가 잘못돼서 ‘현대의 카리브해’로 돌변했을까? 그리고 이야기를 꺼낸 김에 우리 해군 함정이 파견된다면 어떤 장비를 가져가야 할지도 간단하게 언급해볼까 한다.

해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중 하나이다(매춘보다는 역사가 짧겠지만). 사실 남의 물건 도적질하는거야 아주 오래된 직업(?)이지만 인류가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물건을 나르면서 해적도 오래지 않아 생겼을 것이다- 물건이 있는 곳에 날강도가 있는 법이다.


해적. 어디 해적인지는 모르겠음
그리고 해적은 당연히 배가 많이 지나는 곳에 집중적으로 출몰한다. 해적으로 유명하던 카리브해도 16~18세기 사이에 중남미의 스페인-영국-프랑스의 식민지와 본국을 잇는 중요한 무역의 경로였고, 리비아 인근과 지중해 연안도 멀게는 로마 시대부터 해적에 대한 언급이 있는 유서깊은(?) 해적 출몰지였다. 2006년에도 언급한 말라카 해협은 현대에도 운송료 절약을 위해 화물선들이 엄청나게 오고가는 길목이다. 자연히 배가 많으면 그 배를 털기 위한 해적이 출몰하게 마련이다.

물론 현대에는 해적이 쉽게 출몰하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해군이나 해양경비대, 해양경찰과 같은 조직이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해적의 전성기로 우리에게 각인된(사실 다른 지역, 다른 시대에 훨씬 극성을 떠는 해적들도 많았지만) 카리브해 지역의 해적들중 상당수는 실제로는 사략선(Privateer), 즉 영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 프랑스나 스페인 배들을 공격하는 일종의 ‘사설 해군’에 가까웠고 자연히 인원이나 설비도 정규 해군과 비견될 수준이었지만 현대에는 그런 식의 정책을 펼칠 수도 없고 정규 해군함정과 상대할 수준의 해적선을 만들자면 돈이 들어도 너무 들기에 수지가 안 맞는다(몇백, 몇천억짜리 배를 겨우 해적질 하려고 만들자니…).

그러나 모든 나라의 해군이나 해양경비대가 멀쩡한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해양치안 조직들은 물론 치안조직 자체가 거의 ‘구색만 갖춘’수준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해상교통의 요충지가 이런 ‘부실한’나라에 걸쳐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라카 해협같은 경우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해적 전성기(?)때에는 중국 해군이 옷만 갈아입고 해적질을 한다는 의심마저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국제적 공조와 여러 가지 대비책 마련등으로 최악의 해적 출몰지로 악명높던 말라카 해협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여기서 해적이 나왔다는 뉴스, 요즘 아주 뜸하지 않은가?). 2006년에 본지가 동승 취재한 해양경찰의 해외 합동훈련도 그렇듯 이제 말라카 해협은 주변국들의 노력이 나름대로 빛을 보고 있다. 그런데 말라카가 잠잠해지자 또 다른 불길이 치솟고 있다. 바로 소말리아이다.

화물선 승선을 시도하는 소말리아 해적

소말리아의 해적

어떤 동물이 번식하려면 알맞은 환경과 먹이가 있어야 하지만 해적도 마찬가지다. 앞서 적은대로 사냥감(배)이 주변에 많고, 또 천적(군대나 경찰같은 치안조직)이 없거나 적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부족해도 해적의 숫자는 급감하거나 아예 번식하지 않는다.


화물선에 올라타는 중인 소말리아 해적들
현대에 들어 이런 조건을 극적으로 충족시켜 해적왕국이 되어가는 곳이 바로 소말리아다. 사냥감은 많은데 사냥을 방해하거나 번식을 못하게 하는 적대적 환경도 거의 없는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일단 지정학적으로 사냥감은 충분하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말리아는 홍해의 입구 근처에 걸쳐있는 나라이다. 홍해는 그 끝에 위치한 수에즈 운하로 인해 세계적인 해양교통의 요충지인 만큼 배의 통행량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1년에 약 2만척이 통과한다는 통계도 있으며, 특히 이 지역을 지나는 유조선의 양은 대단하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30%가 소말리아 바로 앞의 아덴만을 지난다는 통계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가 많이 지난다고 해서 꼭 해적이 창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홍해는 에리트리아, 이디오피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수단, 이집트등 여러 나라에 걸친 좁은 내해(內海)이며 지리적으로만 보자면 차라리 수단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예멘같은 나라가 해적질에는 유리할지도 모른다. 소말리아는 홍해 입구 근처에 있지만 예맨이나 이디오피아는 아예 홍해 입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우디나 수단, 이집트도 좁은 홍해를 직접 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서 해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독자 여러분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지리적으로 홍해 주변국들 중에서는 오히려 약간 불리한 소말리아가 오히려 최악의 해적 창궐국이 됐을까? 바로 ‘천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홍해 주변국가들 중 멀쩡한 나라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소말리아는 최악이다. 하다못해 이디오피아도 어느 정도의 치안능력이 존재하는 반면 소말리아는 말 그대로 무정부상태에 가깝다. 연방정부라는 것은 있지만 이름뿐이며, 대통령조차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선출된것이 아니라 케냐에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될 만큼 허술하다. 사실 소말리아는 1991년 이래 제대로 된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맞으며, 정부가 실제로 통치하는 지역은 매우 제한적이다.

당연히 군대와 경찰이라는 존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이런 환경에서는 말 그대로 주먹이 법이다. 그리고 주먹을 가진 세력이 돈을 벌기 위해 눈을 돌린 것이 자기 앞바다를 지나는 풍족한 사냥감, 즉 외국 배들이었다. 경찰도 군대도 해군도 제 구실을 못하는 나라에서 힘 있는 부족이나 군벌세력이 사냥을 하시겠다는데 누가 말릴까?

소말리아가 위치한 홍해및 아덴만등의 입지를 보여주는 그림

우려되는 ‘해적산업’

특히 소말리아는 바다와 육지 모두의 치안이 엉망이라는 점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이 해적의 소굴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이 지역의 나라들은 소말리아에 비하면 그럭저럭 치안과 질서가 잡혀있는 곳들이다. 따라서 해적들도 어느 정도는 ‘목소리를 낮출’수 밖에 없고, 특히 상당한 인원과 장소, 조직이 없이는 곤란한 인질극은 말라카의 해적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배와 인질을 붙잡고 돈을 뜯어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화물선처럼 큰 것을 보관하면서 여러 인질도 함께 감금하고 그 몸값을 협상하려면 경찰이나 군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넓고 안전한 장소, 경찰이나 군대가 구출 시도를 감히 할 수 없게 만들 충분한 무장조직, 그리고 협상을 진행할 조직과 인원이 갖춰져야 한다.

치안이 어느 정도라도 이뤄지는 나라라면 이 모든 것을 갖추기란 매우 어렵고, 따라서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은 해협 주변의 작은 섬에서 모터보트등으로 발진해 목표 선박을 습격하지만 인질을 잡거나 배 자체를 점거하기 보다는 배에 실린 현금이나 선원들의 귀중품만 빼앗고 도망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설령 배를 빼앗아도 선원들은 죽이고 화물은 팔아버린 뒤 화물선은 아예 다른 배로 이름을 바꿔 팔아버리는게 보통이었다. 특히 외국으로 향하는 화물선은 적게는 수천달러, 많게는 수만 달러의 현금을 싣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 털어도 소규모의 해적들에게는 수지맞는 장사였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다르다. 단순히 돈과 화물을 터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배를 붙잡아 몸값을 뜯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호화요트 한척을 점거했다가 프랑스 특수부대의 투입으로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럴만한 장소가 있고 환경이 허락하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소말리아 북부에는 몇 군데의 ‘해적도시’가 생겼고 그중에서도 ‘일’이라는 항구도시는 서부시대의 골드러시에 비교할만한 ‘해적 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거의 해적으로 먹고 살 정도인데, 이 정도가 되어도 해적을 제지할 경찰이나 군대가 나서기는 커녕 사실상 해적조직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자르틴 부족은 현재의 소말리아 의 유수프 대통령이 속한 부족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외부인들은 소말리아 해적이 사실상 소말리아 정부의 묵인까지 받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물론 유수프 대통령은 현재 공개적으로는 해적의 행위에 분노를 표하고 소말리아 영해를 외국 해군에 개방해 자유롭게 해적 소탕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말리아 내륙에서는 해적 소탕을 위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해적들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아예 공무원을 사칭하며 외국 선박에 승선하는 경우마저 있는 지경이다.

도시만이 아니라 소말리아 북부지역이 거의 다 이런 지경, 즉 ‘해적타운’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처럼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금 몇 푼을 배에서 뜯어내는게 아니라 아예 배와 승무원을 통째로 끌고 가 몸값을 요구하는 편이 수지맞는 장사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만 달러, 많게는 수백만 달러(수십억원!)의 몸값을 받는다면 이 가난한 지역에서는 문자 그대로 ‘산업’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의 돈이다. 작년만 해도 3천만 달러가 몸값으로 지불되었다는데, 소말리아 북부 푼틀랜드 지방정부의 1년 예산이 2천만 달러밖에 안되는 실정에 이 돈이면 말 그대로 지역 전체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이미 몸값으로 지불된 돈이 5천만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산업’이라는 표현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일’항구에서는 외국 배가 한척 납치되어 들어올 때마다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가 된다고 한다. 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는 사람들 중에는 고급 SUV에 타고, 고급 양복을 빼 입고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다는데 이들은 ‘해적들의 회계사’나 ‘인질협상가’라고 자청한다. 실제로 무엇이 되었든 이미 해적질이 이들에게는 ‘쉬쉬하며 하는 범죄’가 아니라 당당한 비즈니스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인질 산업이 중요시되자 범인들의 인질에 대한 대접이 좋아지면서 인질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식당 -현지 기준으로는 상당히 고급인- 까지 여러 군데 생겨 번창하고 있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단 붙잡힌 인질을 구출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도시 전체가 해적소굴이 된 상황에서는 자칫 어설픈 인질구출 시도가 ‘제2의 블랙호크 다운’꼴이 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프랑스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내륙에서 해적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던 것도 범인들이 도심지에서 떨어진 변두리의 도로를 차로 이동하던 것을 신속하게 헬기로 인원을 투입해 가능했고, 그 뒤에 해상에서 벌어진 호화 요트 구출작전도 범인들이 배를 소말리아의 항구쪽으로 돌리려 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 전에 빨리 해치우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2008-12-12 18: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