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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마오쩌둥 말년 특수임무 수행한 비밀그룹 (연합뉴스 2009.05.19)

마오쩌둥 말년 특수임무 수행한 비밀그룹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은 1960년대 어려운 시절 인민들과 함께 끼니를 거르는 등 특권을 거부하고 소박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자 각 방면의 기관과 요원들로 구성된 ’비밀그룹들’로부터 특수 대접을 받는 것까지 뿌리치지는 못했다.

중국 신문들에 따르면 마오쩌둥 말년 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활약했던 비밀그룹들이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76년 9월9일 그가 사망하자 모두 해산했다.

마오쩌둥을 위한 ’의료그룹(醫療小組)’은 지난 1971년 처음으로 만들어져 1년간 유지된 뒤 해산했다. 그러나 1974년 6월 두번째 의료그룹이 발족해 그의 사망 때까지 유지됐다.

또 마오쩌둥이 노년에도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룹도 생겼다. 1972년 글자 크기를 크게 한 서적을 편집출판하는 임무를 띤 ’대자본(大字本)그룹’이 발족됐다.

이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은 푸단(復旦)대와 상하이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교수와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책을 만들 때마다 15권씩만 출판했다.

마오쩌둥은 나중에 자신을 위한 전용 서적을 5권만 출판하도록 지시했다. 그의 백내장병이 악화되면서 글자 크기도 갈수록 커져 상하이 중화(中華)인쇄공장이 활자를 특수 제작했다.

고전시가 가사를 읊는 ’낭송그룹(吟唱小組)’도 만들었다. 낭송그룹의 조직과 녹음 업무는 당시 문화부장이던 위회이융(于會泳)이 주도했다.

중국공산당사출판사가 출판한 ’마오쩌둥 생활기록’에 따르면 낭송자들의 대다수는 문예계 저명인사들이었다.

낭송자들이 가사의 의미와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베이징대학 고전문학 담당 교수 4명이 낭송자들에게 해설 강의를 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을 위한 연극을 연출하고 TV 중계차로 방영까지 해주는 희곡그룹(戱曲小組)도 있었다.

1974년 마오쩌둥이 창사(長沙)에서 휴양을 할 때 일부 연극 단원들이 생사패(生死牌)나 토학전(討學錢) 등 옛날 연극을 공연했다.

마오쩌둥이 즐겨 피웠던 시가를 전문으로 만드는 ’시가특별제조그룹(雪茄特製小組)’도 있었다. 그는 원래 담배 ’중화(中華)’를 즐겨 피웠으나 나중에 시가를 주로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