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
“내가 죽은 뒤에도 자식처럼 키운 이 수목들은 몇 백 년 더 살며, 내가 제2조국으로 삼은 한국에 바친 마지막 선물로 남기를 바랍니다.” 1979년 귀화한 한국인 민병갈(1921~2002) 천리포수목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의 본명은 칼 밀러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미군 장교로 부임하면서부터다. 25세 혈기왕성한 청년은 한국에 오자마자 자연에 매료돼 전역 후에도 떠나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1962년 어느 날, 그는 휴가차 태안반도 만리포 해수욕장에 놀러갔다 우연히 천리포 구석진 땅 1만9800㎡를 사게 됐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원을 조성하기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천리포수목원이 태동하게 된 배경이다. 1979년, 그는 ‘재단법인 천리포 수목원’을 설립하면서 아예 귀화를 결심했다. 1주일에 나흘은 서울에서 일하고 사흘은 천리포로 내려와 살았다. 스스로 연못을 만들고, 야간에도 횃불을 밝힌 채 나무를 심기도 했다. 국내 식물학의 대가 이창복씨가 쓴 식물도감을 너덜너덜할 정도로 많이 본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광릉수목원이 1987년에야 문을 연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식물사랑’은 대단하다. 전체 넓이 59만4000㎡에 달하는 이곳에는 지금 1만5000여 가지의 국내외 식물이 자라고 있다. 목련만 500여 가지, 무궁화만 250여 가지일 정도다. 그는 세계 330여 개의 수목원, 식물원과 종자를 교환하고, 외국 경매를 통해 식물을 끊임없이 수집했다. 천리포 수목원이 세계 수목학회와 미국 호랑가시나무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받기까지는 그의 이같은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경학자 이동협씨는 천리포수목원을 101번 다녀온 뒤 최근 ‘정원소요’라는 책을 펴냈다. 야생식물의 보고로 한택식물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기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이 식물원이 보유하고 있는 식물만 9000여 종에 달한다. 1984년 개원한 국내 최대 사립 식물원인 이곳에는 남한의 자생 초본류 1250종, 목본류 500종과 북한의 자생식물 150종을 비롯하여 외래 초본류 1700종, 목본류 600종이 자라고 있다. 한국 특산식물과 법정보호식물, 희귀멸종식물 등 1750여 종도 구경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식물의 보고(寶庫)다. 오죽했으면 아시아 대륙을 압축시켜 놓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까. 아시아 모든 식물을 한반도 안에 모아놓았을 정도로 밀도 높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자라는 자생식물은 4500여 가지로 유럽 전체를 통틀은 것과 맞먹는다. 산 하나가 보통 한 국가의 식물수종수와 맞먹을 정도다. 영국의 식물수종이 800여종인데 우리는 북한산이 700여종, 울릉도가 800여종, 제주도가 1990여종일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도 438종에 달한다. 설악산에 65종, 한라산에 75종, 지리산에 42종이 자라고 있다. 또 식물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자랄 경우 명품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약용 식물만 1200여종에 달할 정도다. 한반도가 식물과 약초의 백화점이 된 데는 ‘사계절 + 반도국가 + 화강암’ 이라는 3박자가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대장금’과 최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 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비밀의 화원’인 천리포수목원 개방 5개월여만인 16일 현재 관람객이 12만명을 돌파했다. 6만6000㎡밖에 개방하지 않고, 관람료가 무려 7000~8000원인데도 불구, 이같은 기록을 세웠다. 자연이 곧 최고의 관광상품인 시대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한국의 자연은 분명 ‘최고의 관광 상품’이 되기에 충분하다. 서울에 천리포수목원, 또한 한택식물원 분원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4대강 정비사업을 하면서 이들 식물원을 벤치마킹해 조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관광 상품은 없다. 12일 피터 레이먼 미국 미주리주 식물원장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23차 국제보존생물학대회(ICCB)에 참석, “지구환경 변화로 인해 해마다 식물 수천 종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의 소중함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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